리을의 해변 - 걷는사람 시인선 118

리을의 해변 - 걷는사람 시인선 118

$12.00
Description
“오래 바라보면 어떤 것들은 영혼을 갖게 된다”

존재의 현존을 부정하는 세계를 다시 부정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응시하는 시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2007년 《시와반시》 신인상, 2008년 《영남일보》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조혜정 시인의 첫 시집 『리을의 해변』이 걷는사람 시인선 118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조혜정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순간들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자연의 이미지들을 통해 이러한 주제를 심화시킨다. 루꼴라를 바라보며 상상한 ‘리을의 해변’은 인간이 갈망하는 궁극적인 안식처, 또는 영혼이 귀의할 곳을 의미한다. 이번 시집은 인간의 감정이 자연과 사물 속에서 어떻게 투영되고 해소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며, 리드미컬하고도 섬세한 언어를 통해 독자들은 시인이 그려낸 감정의 흐름을 자유롭고도 유연하게 함께 호흡하게 된다.
저자

조혜정

저자:조혜정
충남당진에서태어나2007년《시와반시》신인상,2008년《영남일보》문학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바나나가너를기억하지못하는동안
바나나
빈화분
링로드빙하여행가이드
왼발이휜남자가지나갔네
아제르바이잔바쿠에서
두부만들기
세계기분장애학회
소곤대는무늬
눈의대장장이
열린부엌
빌런
엘리베이터
버스는달리고

2부하루한권의새
‘검은’을남겨두고
사과의저녁

북향집에서
자두나무전정
기린의날
탁자
아르곤
없는의자
나무의창세기
가라앉는배
벨기에구름
하우스씨나무

3부무사히ㄹ의해변에닿았으면좋겠구나
나무
그가죽었나봐
루꼴라
낙엽아빠
의자와개가있는방
감정의발명왕
어느의사의포테이토헤드
불탄자리의시
정월
몬스테라아단소니
계피를줘
목록
철물점

4부연인과연안의어두움구별하기
검은결혼식

중국식원탁
욕조에서익사한강박증남자의영원한화요일오후
시의깊이
뼈톱이우는계절이었다
북쪽으로가는버스를탔다
비상시를위한기분
연인
복숭아의저녁
배턴터치
꿈도둑플로이드씨
나무는나뭇잎속으로걸어들어가고
솔솔솔바람

해설
리을의해변을향한실존의발자국
―이병국(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바라볼때마다공중에떠있는창밖테니스장의녹색공.마이볼을외치며라켓을휘둘러도여전히공중에떠있는,누가저녹색공을허공의교수대에매달았을까

2024년10월
조혜정

추천사

종종사람들은감정을적당히숨기거나잘드러내지않는것을미덕으로여긴다.사물을대하는태도에있어서도마찬가지이다.좀처럼사물의감정을인정하려들지않는다.이처럼감정에대한억압은때로진실을은폐하고무미건조한일상을만들기쉽다.그래서사물의관습화된이미지에서벗어나그대상의기분이나감정을되살리는조혜정의시작업은매우의미있는일이다.시인에게창가의화분에‘루꼴라’나‘몬스테라아단소니’를기르는일은,루꼴라나몬스테라아단소니같은식물의감정을기르는일이기도한것이다.메마른현실속에서소외된감정을성찰하는시인의이러한발화방식은,사물들에게본래의활력을되찾아주고생활을다독이고삶의근원을탐구하는원동력이된다.시적진실은“별보다더먼곳”(「아제르바이잔바쿠에서」)에있는것같지만명랑한감정에도깃들수있다.시집『리을의해변』은그렇게“전속력으로명랑함에도달하기”(「세계기분장애학회」)위한시적예감으로가득차있다.
-송찬호시인

책속에서

전화벨이울렸지만
누군지알수없었으므로받지않았다
전화를받지않았으므로
누군지영원히알수없었다

모르는것의아름다움
비둘기와돌사이,별과벌사이,비행기와바나나사이
누군가를부르는외침과
횡단보도에멈춰떨어지지않는이상한발걸음사이
사이렌처럼달리고나면
강물처럼열렸던자동차의물결이급하게닫힌다

(중략)

반점도꽃이피는지모르겠어
모든반점은다꽃,아닌가?
식탁위바나나를먹고
돌아보면다시바나나가놓여있다
바나나가너를기억하지못하는동안
더욱넓어지는반점들

(중략)
―「바나나」부분

나는세상의꼭대기
거대한떡갈나무아래앉아있었네

(중략)

부풀어오른침묵을새로산외투처럼입고
왼발이휜남자가지나갔네
외투는넓고넓은살갗같아서
세상눈내리는소리를다셀수있었네
―「왼발이휜남자가지나갔네」부분

동굴에서는들리는데모두에게는들리지않는
희고차가운공중의주파수가사라져없어질때까지
폭설은내내그곳에살았다
오래바라보면어떤것들은영혼을갖게된다
―「눈의대장장이」부분

빌런은빌린과발음이비슷해서생활에자주초대한다
빌린집에커피빌런이있고
빌런을추출할수있는기구를모두갖추고있다
커피추출기구는고문기구를닮아서
향기를쥐어짜죄처럼퍼뜨린다
징벌한잔마셔요
의연하게팔걸이의자에앉아
그런데남극이사막인거알아요?
궁금하지않아서떠보는질문들
물에빠진토끼와캥거루와빌런중누굴먼저구할래!
정교하지않은악담은모른척해도좋지만
넘어지고나서아예드러눕는대답
질문보다먼저넘어진대답
일어서면또다시
넘어질질문을던질테니까
―「빌런」부분

하루한권의새를읽을것을권해드립니다
터미널약국에서무표정한복약지도를받고나는
길잃는가지쪽으로만걷는다
늙지않는사람들이다가와시간좀내주실수있느냐고묻는다
건네는모퉁이의푸른체온이차갑다
―「새」부분

그가죽었나봐
누가쓰던전화번호를쓰는일은
오래입다벗어둔남의외투를입고있는것같아
생각이택배박스속에어팩처럼부푼다
전화기속의그는외롭고단순한사람
밤에일하고낮에잠자는사람
바닥이붉은그의장갑은
트럭을타고방금굴다리를지났을것이다
(중략)
그는잠깐쉬는것처럼오래잠들어있을것이다
그의번호를물려받아쓰는나에게
멈춘심장이마지막부고문자를보내고
트럭위손이빠져나간그의장갑은
한동안손의모양을허물지않을것이다
―「그가죽었나봐」부분

루꼴라,라는말좋아
루꼴라는영양이풍부한서양채소이름
또는ㄹ로내가만든아름다운물고기
루꼴라와함께어항속에서부드럽게호흡하는
ㄹ의레인보우공기들
(중략)
ㄹ에흠뻑젖어,우리바다나갈까상추같은마음을데리고
네이름을즐거운해변에놓아둘게
바다에는같은리듬으로헤엄치는사람들이있고
헤엄치는사람들이무사히
ㄹ의해변에닿았으면좋겠구나
그바다에서는지루해하지않기를바라,루꼴라
―「루꼴라」부분

유칼립투스문장과첫눈은구름다음칸에놓여있다
유능한점술사처럼우리는먼미래보다
맹목적차가움을굳게믿어보기로했다
―「목록」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