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심장이 있다

열두 개의 심장이 있다

$14.03
Description
“어떤 절정에선 죽음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내면의 무한대, 그 극도의 긴장을 이겨내며
유한한 삶을 가진 우리를 충만하게 상상하는 시
대전에서 태어나 2004년 《시사사》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송은숙의 신작 시집 『열두 개의 심장이 있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119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신간은 『돌 속의 물고기』 『얼음의 역사』 『만 개의 손을 흔들다』 이후 삼 년 만에 묶어낸 네 번째 시집으로,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내면의 무한대와 마주하며 그 깊이를 견뎌내려는 시인의 충만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일상을 보내면서도 “시인이 하는 일”(「시인의 일」)에 대해 골몰하는 송은숙은 “열두 가지 색 안”에서 “열두 개의 심장”(「화분」)을 발견한다. 열두 개의 심장으로 열두 개의 삶을 살아내는 시인은 바람 든 무에서 “껍질과 칼의 경계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무(無) 안에 새겨진 죽음과 무한의 바람을 마주한다. “무의 실핏줄”(「무」)을 발견하는 것이나 황톳길에서 밟은 병뚜껑이나 사금파리에서 “날카로운 적의”(「새벽이 맨발로」)를 읽는 것은 시인의 직관이기에 가능하다. 직관의 힘으로 “멍”이 상처가 아니라 “전사의 후예”(「멍」)임을 명명하며 “틈을 빠져나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틈」)거나 “우리가 새를 사랑하는 것은 한 마을을 사랑한다는”(「조감도」) 지혜임을 깨치는 것이다.
이렇듯 직관과 예지로 가득한 송은숙의 시 세계는 삶과 죽음의 긴장을 견디며 탄생한 서정으로 완성된다. 자아의 분산을 거쳐야 획득할 수 있는 서정성은 삶의 고통을 충실히 통과한 이에게만 스스로를 내어 주므로, 그의 작품이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바깥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힘을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우리가 묻어 두었던 희미한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경험으로 되살리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체적이고도 추상적인 삶, 환희로 가득하다가도 우리를 부지불식간에 억압하고야 마는 삶의 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이 작업은 죽음의 매혹을 담은 원초적 환상까지도 환기하며, 타자를 안전하고 아름답게 간직하며 떠나보내고자 하는 애도의 마음으로 표현된다. 시인은 생의 절정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를 유연하면서도 폭발적인 에너지로 발산함으로써 “어떤 절정에선 죽음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으아리라는 꽃」)라는 아름답고도 섬뜩한 진리를 건져 올린다.
삶과 죽음은 무한하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분명 유한한 우리와 더불어 존재하는 유한한 무한, 유한한 삶과 죽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저마다의 품과 높이, 깊이를 통해 저 유한한 무한을 상대한다. 비록 우리가 ‘운명’이라는 무한을 상대해내는 그런 비극 속 위대한 영웅은 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운명과 극도의 긴장으로 가득 찬 내면의 무한대를 외면하지 않고 충만하게 느껴냄으로써 무한한 삶과 죽음을 살아낼 수 있게 된다. 이 시집은 생의 유한함이 가진 끝을 알면서도 “두근거리는 시작을 받아쓰고 싶다는 간절함”(시인의 말)을 잃지 않는 용기로, 우리가 가진 내면의 무한함을 잊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준다.
저자

송은숙

대전에서태어나2004년《시사사》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돌속의물고기』『얼음의역사』『만개의손을흔들다』,산문집『골목은둥글다』『십일월』등을냈으며‘화요문학’과‘봄시’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1부시인의일

너머의너머

시인의일
민물가마우지낚시법
안개를발굴하다
추분
피자가게앞에서
끓다
행운의편지
휴지의쓰임새
발목에복숭아나무가
우물

2부텃밭에봉숭아가용용죽겠지
꽃의머리채를잡아흔드는
저녁의발자국
화분
측백나무에별이
모과별
꽃잎이둥글게둥글게


오월은너무빠르게
텃밭에봉숭아가용용죽겠지
으아리라는꽃
작약과함께
개옻나무저혼자붉어

3부호수건너기
대나무꽃
새벽이맨발로
해바라기
호수건너기
매달린것들·1
매달린것들·2
사구
어디서왔는지모르는바람이
이끼
신데렐라야,네유리구두는
거리두기
스물다섯,이태원
시월의꽃

4부나비,나비,나비
오렌지들
학교를떠나는구름씨의몽상
조감도
잠매
바다로가는길
오후에우리는
너무이르게매화를
노을아래서
씀바귀를꺾다
나비,나비,나비
귀의시간
별이하나
유리창으로들여다보는
구름씨의여행

해설
가령절반만남은이태백,지렁이,개옻나무
-양순모(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