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착

미도착

$12.00
Description
“세계란 저쪽을 향해서 멀어진 사람이
반드시 이쪽으로 돌아오는 거래”

아이가 점멸하는 세계를 가로질러 하얗게 명멸하는 시간 속
서로의 끝이 맞물리며 내내 이어질 이야기
남수우 시인의 첫 시집 『미도착』이 걷는사람 시인선 122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남수우 시인은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미세한 균열의 기억과 무수한 틈을 내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틈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유가 그를 좋은 시인으로 살게 하리라는 믿음이 들었다”는 심사평과 함께 작품을 발표한 그가 등단 이후 4년 만에 50편이 담긴 시집을 가지고 돌아왔다. 자신의 생활이 오래전의 누군가를 향한 애도이기를 바랐던 시인은 첫 번째 시집 『미도착』에서 “구시가지 쪽으로 멀어지”(「산책」)던 한 사람이 언젠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미도착」)올 것이라는 불가능한 소문을 믿으며 “기다림 없이 기다려”(신춘문예 수상소감) 보는 방식으로 기도의 한 형식을 이루어낸다.
남수우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표제작 「미도착」의 첫 번째 시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란 저쪽을 향해서 멀어진 사람이 반드시 이쪽으로 돌아오는 거래”. 남수우 시에서 ‘세계’는 우리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견고하고 확고한 영역이 아니라, 기억의 파편들이 일상의 틈새로 스며들어 서로 얽히고 뒤섞인 혼합된 재세계에 가깝다. 그렇기에 표층적 측면에서 말이 되지 않는 기억의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파편의 기억들이 “잠자리의 입방체 얼굴 속”에서 천지간 “동서남북”을 바라보듯, 무수한 “아이”(「호수공원」)가 “고사리 끝에 맺힌 작은 고사리와 더 작은 고사리”(「프랙탈」) 너머로 현전해 펼쳐질 것이다.
시집의 화자는 자신의 곁을 무수한 아이들이 수없이 스치고 지나가도 “너와 잠시 앉아 있고 싶구나”(「공원의 맞은편 오후」)라는 말을 기어코 삼키고 마는, 어딘가 적막한 성정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가령, 아이의 이름이 궁금하지만 “너는 누구였을까”(「호수공원」)라는 속엣말을 중얼거리며 입술을 달싹이거나 그저 고개를 주억일 뿐이다. 화자는 아이들이 자신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기를 끝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집요한 응시에서 비롯된 장면들은 “흰 눈을 기다리는 시간”처럼 “시제가 없다”(「캐럴」). 그렇게 겹겹이 쌓인 장면들 속에서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은 흐릿해진다.
선형적인 시간이 헐거워진 빈틈으로부터 “야기된 이야기”(「프랙탈」)가 있다. “시간보다 앞선 기억처럼 종이 위에 먼저 도착하곤 하는” 이야기(「모래 아이 이후」). 기승전결의 완성된 맥락 없이, 그저 이야기 속을 헤매게 되는 이야기. 그것이 멀리 있는 혼자가 헤맬 숲이 되어 하나의 장소로 남기를 바라며, 남수우 시의 화자는 “백사장에 그린 그림들”(「동거」)처럼 이야기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해설을 쓴 김진석 문학평론가가 이야기하듯, 남수우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워도 닿을 수 없는 뒷모습에서 순간적으로 스치는 표정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라도 온몸이 다물어져 그 시간 속에 망연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내게 뒷모습을 안겨 주던 날 모서리가 처음 삼킨 태양을 생각했다”. 우리는 저마다 “지구 끝”에서 끝으로 뻗어 나간 자기 앞의 외줄기 길을 구불구불 돌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흉터를 간직한 햇살이/따갑게 몸 안을 맴”(「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도는 순환 고리를 기민하게 감각하는 장면을, “서로의 끝을 맞물며”(「프랙탈」) 내내 이어질 이야기를 말이다.
저자

남수우

2021년문화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잠자는녹색그림자
플랫
베란다숲기억
막대그늘
프랙탈
구름사다리
물아래저녁
셔터
계주
루프
겨울저녁식사
잔광
비온뒤숲속
오렌지빛터널
기계새와노래하는굴뚝
배웅과마중
아무도등장하지않는이거울이마음에든다

2부도시의시간
행렬
문과밖
돌아래해변
오후가되면서쪽으로부터한뼘
아지트
나선아이둘
일월의창턱
캐럴
알사탕분홍루
동거
얼음상자배달
미도착
두사람
벤치와낮잠
실감
일과
모조식물원토우
야간경비

3부맞은편으로부터
기둥사이로
공원의맞은편오후
너의지나가는사람
루의자리
재생과되감기사이
저녁과후렴
호수공원
돌아가는사람
수풀과풀숲
소리나선계단
횡목
산책
낱말카드
모래아이이후
기도
아침의계속

해설
나의첫심부름
-김진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