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덕시인의시집『닮은건모두아프고달리아꽃만붉었다』가걷는사람시인선126번째시집으로출간되었다.이번시집에서시인은“라디오에서외계外界의말을듣다가세상을떠난다는너의말은오히려도시의작은화분이되고싶다는것처럼들려”(「수목장」)라는구절처럼,죽음을단순한상징이아닌언어와감각의새로운조율방식으로제시한다.죽음은여기서삶의종말이아니라,삶을닮은또하나의질서이자반복되는감각의기입이다.문학평론가김익균은이시집을죽음은이번시집전체를통어하는상징의차원으로올라선작품이라평하며,시적반복과어긋남,실패한문장이만들어내는언어의리듬과긴장에주목한다.
삶은이시집에서더이상본래적인무엇이아니다.그것은끊임없이“꽃모양을흉내”(「겨울해변의늪」)내는,흉내와반복의언어적상태다.“지난계절의이팝나무를보면서죽은사람도사람이라국어사전을뒤적거렸다.”(「장마」)라는시구처럼,살아있음이란죽음의반대가아니라죽음을‘닮은’상태다.이닮음은정확한재현이아니라어긋난반복,실패한흉내이다.“순대국밥을먹다가네부고를전해받았다.온종일비가내렸다.신을모르면서신인척,의자를모르면서의자인척,부추를먹는다.”라는고백에서처럼,살아있음은언제나죽음과맞닿은색조를가진다.
권기덕의문장은종종주어와술어가맞지않고,시간과논리가단절된다.“트랙위에서그림자가돈다묻은것들은사라지는것이아니라자꾸만심장으로변해간다”(「오르골」)는풍경이아니라감각그자체의기형을드러내는방식이다.부적절한주술관계는오류가아닌의도된파열이며,그틈에서독자는다시말을시작할가능성과마주하게된다.
많은시편에서말보다침묵이앞선다.“잎사귀와잎사귀를흔들며죽은새를묻어준다나무는겨울이채오기전에가벼워져어디론가날아갔다다시돌아온다”(「오르골」)라는시구는,언어가끝나는자리에서비로소열리는감각의가능성을보여준다.이시집은말이미치지못하는자리,해석이불가능한경계에머물며독자에게그너머를요청한다.시는이렇듯끝내도달하지못한상태를있는그대로견디게한다.“내가걸어갈때마다숲길은점점복잡해졌고새는사라지고있었네비에젖은눈물과눈물에젖은비가섞여쓴맛이났네”(「저문뒤에야찾아온사람」)라고말하는장면처럼,감각기관이기능을멈춘뒤에도남아있는기억과촉의언어가이시집의깊이를만든다.
『닮은건모두아프고달리아꽃만붉었다』는독자에게‘이해’를요구하지않는다.오히려“새한마리가강물위에내려앉을때가슴을움켜쥐던사람은아직보여줄달이남았을까?”(「구멍에내리는비는미래를삼킨다」)라는장면처럼,감정과언어의소멸과반복,그잔여로독자를안내한다.의미는완성되지않으며,독자는그빈자리에서의미가머물렀던흔적을어루만지게된다.더나아가이시집은시를읽는일이현실이라는텍스트에대한기존의이해를부단히복수화하는생산적인작업이라는점을환기시킨다.권기덕의시는현실을하나의언어질서에종속시키지않고,어긋남과침묵,실패를통해현실을되읽고다시쓰도록독자에게제안한다.
죽음의이미지로소환되는고니는,이시집에서날고있다.그것도빙판위에서“어긋난하늘”(「겨울해변의늪」)을향해.이것은언뜻모순처럼보이지만,바로그모순속에서이시집은죽음과생,실패와반복,침묵과언어가교차하는지점을형상화해낸다.그것은설명을피하고,완성대신균열속에머무르는방식이다.말이끝나는자리에서다시말을시작하는감각,그것이이시집이독자에게건네는가장조용한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