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절망 (양장본 Hardcover)

희망이라는 절망 (양장본 Hardcover)

$12.42
Description
정한용 시인, 등단 40주년 기념 8번째 시집 『희망이라는 절망』 출간

산문시 형식을 통해 쉽고 친근하게 그려낸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와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

절망을 관통한 웃음과 통찰의 시
정한용 시인이 등단 40주년을 맞아 여덟 번째 시집 『희망이라는 절망』을 청색종이에서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운문의 형식을 벗어나 독자와 보다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산문시라는 형식을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문단에서 실험성과 깊이를 갖춘 시 세계를 확장해온 시인의 이번 작업은 기존의 시집들과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대중적인 접근과 섬세한 통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시집으로, 시인 자신의 문학적 전환점이자 새로운 성과로 여겨진다.

정한용 시인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1985년 『시운동』 동인지를 통해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얼굴 없는 사람과의 약속』, 『슬픈 산타 페』, 『나나 이야기』, 『흰 꽃』, 『유령들』, 『거짓말의 탄생』, 『천 년 동안 내리는 비』 등 일곱 권의 시집을 발표하며 인간 내면과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조망하는 시 세계로 꾸준히 주목받아왔다. 그의 시는 존재의 부조리와 세계의 불합리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감정의 층위를 섬세하게 드러내며 문학적 지평을 확장해왔다.

『희망이라는 절망』은 그 연장선상에서 시인이 시와 평론 양면에서 축적해온 사유의 밀도가 집약된 작품이다. 이번 시집은 제목부터 예고하듯 ‘희망’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어떻게 값싸게 유통되고 있는지를 폭로하고, 그 이면의 절망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언어적 기획으로 전개된다. 시인은 희망의 형해화와 절망의 구조를, 고통과 침묵을 통과한 언어로 정직하게 더듬는다.

첫 시 「꿈에서 시를 쓰다」는 시 쓰기의 본질적 감각을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시편이다. 꿈속에서 완성한 여섯 줄짜리 시, 그 시를 듣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시의 감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시는 현실로 돌아왔을 때 재현되지 않는다. “겨우 여섯 줄인데, 세상을 뒤집어 놓을 걸작인데”라는 문장은 언어의 무력감과 창작의 고통, 그리고 상실의 감각을 환기시킨다. 이 부재한 언어는 곧 존재의 핵심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1부의 시편들은 감각적이면서도 자전적인 정서를 담아내며, 시간과 상실, 결핍의 자리를 섬세하게 탐색한다. 「빠지다」에서는 사라진 자전거 바퀴, 죽은 조카, 채워지지 않는 자리들이 삶의 본질적인 결핍을 드러내며, 「괜찮다」에서는 “아니어도 괜찮다”는 반복을 통해 세계의 무심함에 대한 담담한 수용과 내면의 허무를 고요히 마주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시인의 시선은 언제나 정면이 아니라 한걸음 물러선 지점에서 존재의 결을 성찰한다.

2부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과 시대를 겨냥한 시편들이 이어진다. 표제작 「희망이라는 절망」은 ‘희망’이라는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의미를 상실했는지를 블랙 유머의 방식으로 그린다. “상한 희망 한 봉지”라는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 웃음은 곧 자본주의적 허위와 공동체의 붕괴를 폭로하는 비판적 장치로 작동한다. “마트에서 싸게 구할 수 있는 희망”이라는 표현은 허위로 치장된 위안의 민낯을 보여준다.
저자

정한용

1980년〈중앙일보〉신춘문예평론당선과1985년〈시운동〉에시발표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얼굴없는사람과의약속』(1990),『슬픈산타페』(1994),『나나이야기』(1999),『흰꽃』(2006),『유령들』(2011),『거짓말의탄생』(2015),『천년동안내리는비』(2021),『희망이라는절망』(2025)등을냈다.평론집으로『지옥에대한두개의보고서』(1995),『울림과들림』(2006)등,문학론/산문집으로『초월의시학』(2022),『따로/같이』(2023)등을냈다.영어번역시선집『HowtoMakeaMinkCoat』(2015),『ChildrenofFire』(2020)와,스페인어번역시선집『Registrosdelaexperienciahumana』(2024)을냈다.미국아이오와와콜로라도,독일쇠핑엔,아이슬란드라가바튼등에서레지던스작가로활동했으며,시작품이미국,영국,호주,아일랜드,일본,캐나다,보스니아,마케도니아,시리아,스페인,아랍에미리트등지에서현지어로번역발표되었다.‘천상병시문학상’과‘시와시학상’을수상했다.

목차


꿈에서시를쓰다
빠지다
괜찮다
포개어진세계에서
산수유꽃그늘아래
가지가찢어지다
우린모두어딘가에서왔다
돌아가고싶은,돌아갈수없는
둥글게둥글게
안녕,미자르
소리가소리를두드린다
시간저장소
시간의얼굴
시간에는빈틈이없다


희망이라는절망
까치집
이후의빛
선각여래를만나뵙고
겨우전부
붉은숲
서울의밤
우리들의밤을위하여
키세스키세스키세스
눈게야,너어디갔니?
우리는사람이아니다
무지개너머로
어쩌면신이있는거같기도하다
좀비들


툭,잎이지고
예순네개의손
꾀꼬리
머리카락이뭐라카는지
물은혼자서도길을찾아간다
알수도있는사람
푸른여권
땅끝에서보낸날들
로드킬S/Z
누구시던가?
선인장꽃
봄의전언
송홧가루
귀소(歸巢)


분갈이를하며
꽃따기
둥근잎유홍초
풀과벌레
방아쇠를당기며
왼쪽으로넘어지다
엔딩송
내가누운곳
방풍나물을먹으며
그림자지우기
사랑의무게
언젠가우리다시
비록먼지가된다해도
우수아이아

작가노트
113산문시집을엮으며

출판사 서평

절망을견디는유머

이시집에서특히주목할부분은시인이절망을정면에서마주하면서도유머를통해그것을견디는독특한시적전략을구사한다는점이다.이유머는단지익살스러운장면이아니라,절망을인식하고언어화하는방식의일부다.「까치집」은까치부부의토속적이고민담적인말투로부동산이야기를풀어내며,도시의주거위기와사회적불균형을은근한풍자로환기한다.

가장유머의미학이도드라지는작품은「알수도있는사람」이다.SNS알고리즘이추천하는절세미인들과노년남성의당황스러운조우를통해,기술과인간의어색한관계,그리고욕망의아이러니를자조적으로풀어낸다.“야관문”,“아우아의가슴”같은표현은유쾌하면서도쓸쓸하고,결국은인간의본질적외로움과충돌한다.

이러한유머는시인의진지한현실인식과결코충돌하지않는다.오히려그것은슬픔을더정직하게드러내는방식이며,고통을무장해제하는윤리적유희로기능한다.『희망이라는절망』은웃음을통해절망을해부하고,그너머의진실에도달하려는시인의태도를강하게드러낸다.

「붉은숲」은한국현대사의비극을기억의관점에서재구성하며,집단적망각과고통의전이를담는다.「눈게야,너어디갔니?」는기후위기를생태적감각으로환기하며,알래스카에서사라진눈게를통해인간의탐욕과자연의균형이붕괴되는것을예민하게감지한다.「툭,잎이지고」는일상의감각을포착한시로,삶과죽음의경계가얼마나미세하게교차하는지를감각적인언어로형상화한다.

존재론적사유가보다깊어지며,우주적시선이배어드는시들도눈길이머문다.「둥글게둥글게」는사과,별빛,밥공기,비둘기알등의이미지속에서만물의순환성과조화로운리듬을시적으로풀어낸다.「푸른여권」과「땅끝에서보낸날들」에서는언어의경계를넘어서는존재의항해가시작된다.죽은자와의재회,비언어적차원의감각,낯선여행지는결국존재의본질을탐구하는또하나의방식이된다.

『희망이라는절망』은절망의감정을해체하고,그틈새에서시적진실을길어올리는시집이다.시인은절망을포장하거나회피하지않고,그것을말하는윤리를끝까지밀어붙인다.창작의고통과언어의부재조차시의일부로삼으며,시를쓰는행위자체를끊임없이성찰한다.

시인은이번시집을통해문학을어렵지않게,일상의언어속에서삶의진실을발견하길바란다는메시지를전한다.산문시라는새로운형식을통해시와산문의경계를허물고독자에게더가깝게다가가고자하는시인의의도는시집전반에걸쳐뚜렷이드러난다.

『희망이라는절망』은정한용시인의문학적도전이자,존재를둘러싼질문에대한응답이다.이시집은현대사회의아이러니를성찰하는독자,혹은처음문학을접하는독자모두에게넓은울림과공감을안겨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