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 (김선향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 (김선향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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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손바닥에 남은 화인의 기록
- 김선향 시집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
김선향의 세 번째 시집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는 차갑게 식은 타자의 뺨에 닿은 손바닥의 화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기억의 흔적이 아니라, 타자의 고통에 연루된 자의 몸에 새겨진 존재적 각인이다. 시 「80cm」의 마지막 행이기도 한 “나는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라는 질문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적 질문으로 되돌아온다.추천사를 쓴 한영옥 시인은 “싸늘해진 너의 뺨은 손바닥에 화인을 남겼다. 이 화인은 타자의 무한성을 온몸으로 감지한 시인에게 보낸 뜨거운 응답일 것이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의 최대치를 이 불도장이 확인해 준 셈이니 시인이 뛰어다니며 거두어 주곤 했던 삶의 지난(至難)이 저만치서 봄빛으로 되돌아오리라는 짐작은 과욕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비극의 정황 속에 시인 자신을 기꺼이 밀어 넣는 ‘되기’의 시학은 함께 아파하고 보듬어 안는 일이다.
저자

김선향

2005년《실천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여자의정면』『F등급영화』『어쩌다가너의뺨에손을댔을까』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80㎝
쓰는여자들의방
때돈버는언니들
피에타
도망친여자
지난여름의일
임종
숙곡리할매들
선인장
우리월미도(月尾島)
나는얼마입니까?




의자와고양이
밀림여관
봄밤
게릴라걸스
드라우파디
튤립,튤립들
흡혈박쥐
말과함께눈을
나혜석
후문들
금촌역그여자
꽃을사주세요
춤추며타오르며




열대야(熱帶夜)
어렸을때,셋
파초아래
어쩌면
당진언니
유니폼
단전(斷電)안내문이붙던날
물경십일만원
하노이에서온사람들
한밤의그것
이천원
앞을볼수도없는당신에게
김초원선생님
띤띤의편지
오른다




엄마찾아삼십리
예버덩문학의집성가족(聖家族)
호구라는말
축복의티눈
라일락아래홈리스
마당이없는집을지날때면
산호선인장
입관실에서
어떤49재
뜻밖의일
복도에서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제서야
강릉역


해설
죽임을살림으로바꾸는마녀의시|황규관(시인)

출판사 서평

김선향시인의‘되기’는단순한동일화를넘어서자기몸을화인의자리로내어준다.시집해설을쓴황규관시인은이를두고“우리에게지금절실한마녀는죽임을살림으로바꾸는마녀”라고표현한다.이마녀는파괴의기호가아니라보듬고,같이울고,다시살아나는존재의상징이다.김선향시인의시가‘되기’의시학을수행한다는말은곧,타자의고통을내면화하고,그고통의흔적을시의몸에새긴다는뜻이기도하다.

이시집은네개의장으로구성되어있으며,각장은이주노동자,여성,소외된노인과어린이,무명의죽음에이르기까지다양한주변부의삶과죽음을시의중심부로끌어온다.Ⅰ부는주로현실의구체적사건과그피해자에대한기록을중심으로구성되며,베트남출신노동자아이의죽음을다룬「80cm」,그아버지를다룬「피에타」,유가족을위로하는이웃들을다룬「숙곡리할매들」등이서로맞물리며하나의사건을입체화한다.Ⅱ부는여성의삶과역사,정체성에대한사유가중심을이루고있으며,Ⅲ부에서는유년의기억과일상의장면들이다소서정적인톤으로전개된다.마지막Ⅳ부에서는죽음과애도,부재에대한감정이차분하게누적된다.각장은시적어조와정서의결이다르게구성되어있어,전체시집의호흡을유기적으로조율하고있다.

이시집에스며든미학적특징은‘기록’의서늘한정직성과‘되기’의윤리성이다.「나는얼마입니까?」에서는불법노동중추락사한베트남유학생원도산의목소리가시인자신을통해말해진다.이시는그가생전에선생님과함께준비했던자기소개서를바탕으로,죽음직전의내면을독백형식으로풀어낸다.그목소리는결코연민의대상이아니라,한국사회의비극적현실을폭로하는생생한증인으로기능한다.“건장한30대베트남사내의몸값은얼마일까요?”라는질문은,시가윤리적바닥에서도달한가장냉정한반문이며동시에한국사회의구조적잔혹함을드러내는서늘한보도문이다.김선향의시는“정직한문서이자끈질긴증언”이라는표현이꼭어울리는드문시적실천이라할수있다.

「어떤49재」에서시인은“제가너무무력한것같아요”라는베트남여성의말에“말같지않은말”밖에해줄수없다고고백하며,자기안의무력감을응시한다.시인은타인의고통을말하면서도‘말할수없음’에대한자각을끝내놓치지않는다.그렇기에이시집의애도는단순한연민이나동정이아니라,고통의정황에함께주저앉는방식의연루이며,윤리적책임이다.

한편김선향시의중요한주제중하나는여성으로서의몸과노동,그리고발화공간에대한고찰이다.「쓰는여자들의방」에서여성작가들이겪는물리적제약과정신적억압을역사적사례와함께언급하며,“여자들은서재대신아무데서나쓴다”는문장으로귀결된다.이선언은버지니아울프의『자기만의방』과도깊이공명하며,여성적글쓰기의조건에대한동시대적재정의를시도한다.

또한「게릴라걸스」는탈명(脫名)과익명성을통해생존했던여성예술가들의사례를통해,자기이름으로쓰는것과쓰기위해자신의이름을지워야했던여성들의역사를동시에껴안는다.시집곳곳에서반복되는‘되기’의시학-언니가되기,죽은이가되기,무명인이되기-는이러한연대의윤리에서출발한다.그것은동정의감정이아니라,고통에대한몸의감응이다.

형식적으로는내면독백과외부기록이자유롭게교차한다.특히짧은시「산호선인장」,「입관실에서」,「복도에서」는이미지의절제와언어의압축을통해감정의농도를극도로응축시키며,산문시의서사성과는또다른미학적긴장을만들어낸다.

또한시인은말의뉘앙스를집요하게추적하며,언어의지층속에서새로운의미망을발견한다.「도망친여자」에서“버덩”이라는말은생경하고낯설지만,바로그낯섦으로인해익숙한“오름”보다더강한현실감을갖는다.시인은“입안에서굴리면매끄럽지않은,아등바등같은말”이라며,그언어의질감을삶의질감으로전이시킨다.이처럼시인은언어의감각을현실의감각으로되살리는데탁월한역량을발휘한다.

시집의말미에실린「입관실에서」와「인천국제공항에서」는‘죽은자’와‘남겨진자’사이의마지막교차점을기록한다.김선향의시는이처럼죽음을봉합하지않고,끝내살아있는자의감각으로떠나간자의온기를더듬는다.그리하여시는시체가아닌,여전히삶과죽음사이에남아있는마지막“숨”을포착한다.그것은죽음의언저리에붙잡혀있는자들에대한마지막헌사이며,동시에삶에대한고요한경외이기도하다.

『어쩌자고너의뺨에손을댔을까』는감정의표명이아니라,서늘한기록의형식으로말하는애도의언어이다.시인은타자의고통을스스로의육체에새기고,그화인을시의언어로드러낸다.그리고이언어는누구보다오래기억하는자만이말할수있는투명한증언의말이다.김선향의시앞에서우리는아무말도하지못한채,잠시손을얹을누군가의뺨을떠올릴수밖에없다.시인의손바닥에남은화인이우리에게말을거는것이다.지금,너의손은무엇을만지고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