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입장권 (양장본 Hardcover)

에덴 입장권 (양장본 Hardcover)

$12.00
Description
에덴의 관리비와
도시의 기록
도시의 산책자가 있다. 그는 빌딩과 카페, 층간소음과 분리배출, 구두수선과 MRI, 목련과 플리마켓을 같은 무게로 응시한다. 전영관의 새 시집 『에덴 입장권』은 그 산책자가 도시의 일상을 ‘오늘의 기록’이라는 시선으로 더듬으며, 상품과 제도, 계절과 사물의 표면에서 오늘의 감정과 삶의 모습을 채집한 기록이다. 여기서 ‘에덴’은 구원의 언어가 아닌 거래로 발급받는 입장권의 형태로 주어지며, 행복은 결제와 환불, 배달과 반품, 관리비와 공지사항의 문장들 속에서 문득 흔들리는 목련처럼 피어난다.

이 시집의 특별함은 거창한 담론을 내세우지 않고 생활 속 단어들로 세상을 재측정한다는 점에 있다. 택배, 안마의자, 분리배출, 프레임, 서랍, 구두수선 같은 사물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감정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작동한다. 시인은 “타인의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기준을 세우되, 그 문턱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인다. 방백처럼 낮은 톤, 때로는 건조한 유머, 명제와 이미지가 교차하는 문장들이 그 머뭇거림의 리듬을 만든다.
저자

전영관

2011년《작가세계》신인상으로등단.시집『바람의전입신고』『부르면제일먼저돌아보는』『슬픔도태도가된다』『미소에서꽃까지』『에덴입장권』,산문집『좋은말』등이있다.

목차

005시인의말


013피아노조율사
015새벽
016플리마켓
018박하사탕
020카페테라스
022어죽
024층간소음
026마르크스책방
028오후의크로키
030콜드브루(coldbrew)
032혼자
034햇살은가득히
036수동태
038막회
040눈
042정기검사
044피아니시모


0493월
051택배원
052매화알람
054희망사항
056분리배출
058피로연
060셔터
062바라만보는것
064아무도모르게
066넷플릭스
068생일
070반계리
072원생모집
074소소(昭蘇)
076참견하지않는마음
078목련
080능내역육개장집
082교체


087시트콤
089첫눈
090구경
092납량만흥(納凉漫興)
094모녀
096성탄트리
098바깥
100에덴입장권
102부품의탄생
104사이
106단맛
108용역
110멜랑콜리아(melancholia)
112생인손
114바닥
116내린천
118빈자리로드무비


123벙어리종
125절벽카페엠클리프
126파주성모요양병원
128새옷
130호의
132다음날
134점심시간
136청평호
138우기
140서랍
142해빙
144프레임
146무지개
1482,000

해설
151크로키고현학|이재훈(시인)

출판사 서평

생활어와도시의장면들

표제작「에덴입장권」은시집전체의관문이다.부동산중개인의‘달콤한제안’은“후미진집을한적하다고/비좁은거실을청소하기편하다고”포장한다.현실의팍팍함이수사로미화되는순간,시는그언어를그대로전시하여아이러니로전환한다.“고독은일인가구의관리비같은것”이라는문장은이시집의미학을압축한다.이는고독을비용으로환산하는차원을넘어,혼자살아가는삶에서고독이관리비처럼필수불가결하게부과된다는구조적조건까지드러낸다.

이러한태도는「오후의크로키」에서도확인된다.야쿠르트이젤,체육관전단지를나누는할머니,스콘부스러기를터는여자같은장면은장황한설명대신디테일몇개로포착된다.“노년에서벗어나고싶다는히치하이킹”같은낙차가큰비유가장면위에얹히며관찰과윤리가교차한다.시집은세태를고발하지않고,타자에대한무관심과참견사이에서균형을잡는태도를보여준다.

자동차와의료기기도중요한소재이다.「정기검사」는차량점검과관련된단어들을질병의은유로바꾸는데서멈추지않고,병과기계점검이서로를비추는구조를보여준다.기계는병처럼진단되고,병은기계처럼점검된다.절망은“아팠던곳이모두다기억나는일”로정의되는데,이는고통과기억이붙어있는방식을시적장치로환원한것이다.

「수동태」에서는안마의자가공범,동지,카운슬러로불리며물건이인간처럼호명된다.동시에인간은물건처럼수동적으로놓인다.인간의수동성과기계의수동성이겹쳐지며,그경계가허물어지는아이러니가생긴다.추상적인진술은곧흘러가지만,구체적인손의행위는독자의감각에오래남는다.어루만지고,닦고,붙이고,뜯는반복이바로살아있는시간의증거다.


침묵의문법

교환과연대의장소들또한이시집의무대를이룬다.플리마켓,책방,피로연,막회같은공간에서돈의가치만으로환원되지않는나눔의감각이드러난다.「플리마켓」은슬픔과상처가얼어붙어더는괴롭히지못하는곳을북극의빛으로묘사한다.그러나그것은단순히고통을중지하는장면이아니라,상처마저거래와나눔의장속으로끌어올려공유할수있게하는역설적힘을드러낸다.

「마르크스책방」은풍자와유머가빛나는작품이다.“가장은실외기같은존재”라는한줄은가장을비꼬면서도,보이지않는곳에서고담함을감당하는노동의그림자를인정한다.이아이러니는차갑지않고따뜻하다.

식물또한중요한표현방식이다.「목련」은하얀색의폭발과침묵의기술로감정의과잉을경계하는태도를드러낸다.그러나“최고의묘사는침묵”이라는선언은어떤절제의미학을넘어,언어가목련의압도적감각을감당할수없다는자각에가깝다.「매화알람」과「해빙」은계절이오고감정이녹는과정을발송과기술의은유로번역한다.시인이그리는자연은초월적인배경이아니라생활의작동방식이다.

이러한문체의핵심은생활어와명제가교차한다는점이다.생활어가현재성을확보하고,그사이사이에“고독은관리비”같은명제가봉합선역할을한다.나열이길어지기도하지만마지막항목에서낙차를만들어감정의균형을잡아준다.무엇보다설교가아닌습관의윤리를가능하게하는것은손의동작이다.

결국이시집은불행을고발하거나행복을선전하지않는다.대신불행의체류시간을줄이고행복의체류시간을늘리는생활의기술을보여준다.에덴은약속된낙원이아니라잠깐열리는생활의틈속에서드러난다.『에덴입장권』은과잉을경계하는눈,명제와이미지가맞물리는리듬으로도시의기록이시가될수있음을증명한다.그에덴은입장권을사서들어가는곳이아니라참견하지않으면서도무관심하지않은주의깊은태도속에서잠깐열린다.

전영관시인의작업이갖는의의는만만치않다.그는세계를웅대한서사나추상적이념으로재단하지않고,생활의사소한단어와장면에서시의본질을길어올린다.그의시는일상의사물을감정의바로미터로바꾸고,언어의습관속에서감각을새롭게세운다.『에덴입장권』은도시의사소한풍경이어떻게시가될수있는지를보여주는탁월한증거이며,오늘의시가지향해야할미학적절제와사유의날카로움을동시에갖춘보기드문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