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가루가 된 안녕

별빛 가루가 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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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별빛 가루가 된 안녕 - 예술의 구원과 기억의 윤리를 되살린 환상의 걸작
가순열의 『별빛 가루가 된 안녕』은 예술과 그리움, 그리고 인간의 기억이 서로를 비추며 빚어낸 하나의 정교한 서사적 결정체이다. 동화의 형식을 빌려 예술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오랜 질문에 가장 새롭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응답한다. 이 작품은 아동문학뿐만 아니라 예술의 근원과 인간 존재의 존엄을 탐구하는 본격 문학의 영역에 이르는 성취를 보여준다. 한국 동화가 한때 사실적 리얼리즘이나 도덕적 교훈에 머물렀던 전통 속에서 이 작품은 문학의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윤리적 깊이와 미학적 고도를 동시에 증명한 보기 드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서사는 이중섭 화가의 비극적 삶과 가족의 이야기를 환상적 상상력으로 복원하는 데서 출발한다. 서귀포 자구리 공원과 ‘이중섭 거주지’라는 현실의 공간을 배경으로, 작가는 ‘이상한 초대장’을 통해 세상을 떠난 가족이 72시간 동안 재회하는 기적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 세계는 초자연적 사건으로 촉발되지만, 그 본질은 오히려 예술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그림 속에서만 다시 만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설정은 이중섭 회화의 정서적 근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화가가 생전에 편지와 그림으로만 전할 수 있었던 사랑, 말로는 다하지 못했던 그리움이 이 동화에서는 언어로 환원되어 다시 살아난다. 이처럼 가순열은 상상력의 힘으로 예술가의 내면 세계를 문학의 서사로 옮겨 놓으며 회화적 정서를 언어의 리듬으로 되살려낸 탁월한 성취를 이룬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은 단순한 기적이나 감정적 위무에 머물지 않는다. 가순열은 예술이 인간의 시간을 어떻게 구원하는가를 탐구하는 서사적 탐구자라 할 수 있다. 그리움이 현실을 넘어 예술로 바뀌는 순간, 문학은 죽음을 일시적으로 유예시키며 생의 새로운 층위를 열어 보인다. 이 작품에서 ‘기억’은 정지된 추억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현재성을 갖는다. 이중섭이 생전에 편지마다 적어 넣었던 ‘나중’이라는 단어는 이 동화에서 ‘지금’으로 바뀐다. “나중을 믿었던 게 잘못이었어.”라는 고백은 기다림의 시간을 ‘현재’로 전환시키는 단호한 선언이다. 작가는 그리움을 유폐된 감정이 아닌 살아 있는 윤리적 행위로 다루며, 지금 사랑하고 지금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움은 더 이상 결핍이 아니라 존재의 형태가 된다.

작가는 이중섭을 역사적 인물로 재현하는 대신, 그의 그림 속 존재들-달 정령, 까마귀, 팔레트, 황소, 멀구슬나무 등-을 정령으로 소환해 예술과 인간이 서로를 기억하는 관계로 새롭게 엮는다. 이들은 화가의 내면에서 태어난 분신이며, 동시에 그를 기다려온 관객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들의 등장은 단순한 환상의 장치가 아니라, 예술과 감정, 인간과 작품 사이의 상호 기억 작용을 시각화한 존재론적 장면이다. 예술이 작가를 기억하고, 작품이 인간의 감정을 되돌려주는 이 교차점에서 문학은 하나의 존재론적 통로가 된다. 이로써 『별빛 가루가 된 안녕』은 ‘작품이 작가를 기억하는 이야기’이자 ‘예술이 인간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서사적 구조는 회화의 시간과 문학의 시간을 완전히 중첩시킨 탁월한 성취로 평가할 수 있다.

달 정령의 초대장부터 이중섭 가족의 재회, 하늘 런웨이의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서사는 완벽한 원형적 순환 구조를 이룬다. 이야기의 종결부에서 가족이 별빛 가루로 흩어지는 장면은 이 동화가 감정의 위무를 넘어 예술의 윤리와 기억의 형이상학을 품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들의 작별 인사는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존중한 채 다시 예술 속으로 돌아가는 엄숙한 의식에 가깝다. 그 순간 ‘죽음’은 더 이상 단절이 아니라 예술의 일부로 편입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중섭이 “지금이 너무 행복하오. 지금이 너무 소중하오.”라고 말할 때, 그 ‘지금’은 단순한 시간의 단면이 아니라 존재의 회복 그 자체다. 그리움은 결핍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시간을 이겨내는 가장 순수하고 영원한 방식이 된다. 이 지점에서 문학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니라, 예술의 영혼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엄숙한 의식으로 변모한다. 『별빛 가루가 된 안녕』은 예술의 본질을 향한 이 순환의 여정 속에서 인간이 예술을 창조하고 예술이 다시 인간을 구원하는 근원적 교류를 완성시킨다.

가순열의 상상력은 예술이 인간을 다시 인간답게 만드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의 문장은 맑고 단정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붓질처럼 살아 있다. 그 안에는 이중섭의 그림이 지닌 선의 떨림, 빛의 여운, 그리고 가족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별빛 가루가 된 안녕』은 동화의 외피 속에 예술론과 존재론을 품은 보기 드문 작품으로 한국 근현대 예술사의 비극을 문학의 언어로 구제하고, 상실된 사랑을 기억의 서라로 되살려낸다.

이 작품은 한국 동화의 미학적 경계를 새롭게 확장했다. 동화가 단지 아동의 정서를 다루는 장르를 넘어, 예술과 인간의 근원적 관계를 탐구하는 철학적 문학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그리움과 예술, 현실과 환상이 맞닿은 경계에서 태어난 이 서사는 잃어버린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며 예술이 지닌 구원의 힘을 아름답게 드러낸 작품이다.
저자

가순열

동화집
『못다그린초상화』
『이별여행』
『바보들만사는동네의생각깊은이야기』
『가짜백점2』
『달님에게여자친구가생겼어요』
『아리랏섬친구들과백만유튜버날쌘고래』
『설문대할망의찻잔』

동시집
『해님도가끔게으름피우고싶다』

청소년소설
『노랑나비날개를펴다』
『달팽이침낭』
『초록장미거울속으로사라지다』외

목차

작가의말가순열4

이상한초대장10
중섭가족이만나기1분전16
중섭가족의재회20
수십년전58
소원빌기72
천만명76
추억더듬기82
하늘런웨이94
달과까마귀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