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어 날아가다 (박종덕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새가 되어 날아가다 (박종덕 시집 | 양장본 Hardcover)

$16.10
Description
고통의 서사와 노래의 탄생
박종덕 시인의 시집 『새가 되어 날아가다』가 청색종이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첫 시집 『양털 깎는 남자가 우주를 사라지게 한 이유는 없다』를 통해 존재와 언어의 불안한 경계를 탐문해 왔다. 화학산업계에서 엔지니어 경영자로 살아온 이력 또한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현대 과학과 오래된 인문학의 접점을 오래 사유해 온 그는 이번 시집에서 전통 서사의 원형과 현대적 내면의 고통을 한데 포개며 독특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새가 되어 날아가다』는 최근 시단에서 보기 드물게 강한 서사적 흐름을 가진 시집이다. 제1부에서 제4부로 이어지는 동안 시적 화자는 어둠과 방황 속을 지나며 어떤 세계의 문턱을 향해 나아간다. 개별 시편들은 각각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하나의 긴 수행 서사처럼 읽힌다. 그 중심에는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놓여 있다. 바로 판소리 〈심청가〉다.

이재훈 시인이 해설에서 짚어내고 있듯 박종덕 시인의 시는 인유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의 담론을 제시한다. 특히 심청의 서사를 현대적 고통의 언어로 다시 변주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심청은 더 이상 효의 상징으로 머물지 않는다. 인당수의 어둠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지는 존재이자, 상실과 불안을 견디며 세계의 의미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시집에는 보지 못하는 자들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안개와 밤길, 검게 패인 눈, 흔들리는 그림자와 같은 이미지들. 그 가운데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존재가 안맹자(眼盲者)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 시집의 화자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세계를 감각한다는 데 있다. 그는 눈 대신 소리를 따라간다. 새의 울음과 물결의 흔들림, 개가 짖는 소리 같은 것들이 길을 인도한다.

「연파만리(煙波萬里)」에서 화자는 “개의 울음을 쫓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은유처럼 읽힌다. 확신 속에서 걷는 존재가 아니라 불안 속에서 더듬거리며 움직이는 존재. 세계는 “미망(迷妄)의 뿌연 장막들”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길을 잃는다. 그렇기에 이 시집의 여정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이야기라기보다 길을 잃은 채 계속 움직이는 존재의 기록에 가깝다.

박종덕 시인의 시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은 ‘몸’이다. 이 시집의 화자는 정신의 세계를 갈망하면서도 끝내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몸을 가져 짐승처럼 울고 있네”라는 구절은 이 시집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문장이다. 인간은 욕망과 허기와 두려움을 가진 존재이며, 그 조건에서 벗어난 채 세계를 사유할 수 없다. 시인은 경서와 불서를 뒤적이며 진리를 찾으려 하지만, 결국 언어와 개념만으로는 세계의 실체에 도달할 수 없음을 반복해서 체험한다.

이 지점에서 박종덕 시인의 시는 현대시 특유의 차가운 아이러니와는 다른 결을 드러낸다. 그의 시는 오래된 구도의 언어를 다시 불러오면서도 그것을 교리의 차원으로 밀어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끝내 설명되지 않는 무엇 앞에서 머뭇거린다. “나는 나인 채로 있습니다만/ 새벽녘 정수리에 찬물을 부어도/ 그 내가 나인지를 알지 못합니다”라는 고백은 자기 존재의 중심을 끝내 붙들지 못하는 인간의 흔들림을 보여 준다. 이 흔들림은 철학적 사유 이전의 실존적 떨림에 가깝다.

시집 후반부에 이르면 어둠과 불안의 정조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새와 꽃과 빛의 이미지들이 나타나고, 노래는 슬픔을 견디는 방식으로 변해 간다. 특히 「슬픈 노래의 힘」은 이 시집의 정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서 슬픔은 제거해야 할 감정이 아니다. 슬픔은 오히려 노래의 근원이 된다. 절망 끝에서 사라지는 대신 “아주 가냘픈 노래로 되살아나”는 것. 이 시집이 끝내 붙들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연약한 지속의 가능성이다.

이재훈 시인이 해설에서 언급한 “고통의 서사와 화해의 득음”이라는 표현은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의 흐름을 잘 설명해 준다. 다만 여기서의 화해는 모든 갈등이 사라진 평온의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결핍을 안은 채 세계와 다시 마주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박종덕 시인의 시는 끝내 세계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서로의 슬픔을 더듬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비친다.

『새가 되어 날아가다』는 오래된 서사의 원형과 현대적 불안을 함께 끌어안은 시집이다. 고전의 그림자를 품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고독과 불안을 외면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시집에는 오래도록 귀에 남는 목소리가 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으면서도 끝내 노래를 멈추지 않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한동안 독자의 내면을 떠나지 않는다.
저자

박종덕

화학산업계에서엔지니어경영자로생활하면서한편으로는언어와미적세계를화두로궁구하였다.현대의과학과옛인문학이통섭하는지점에서우리시의전통과현대성의관계가오랜기간동안의관심사였다.그리고이시대의독자와공유할시의창조성에관한새로운길을걷고싶었다.

2023년《월간시인》제2회신인상으로등단.시집『양털깎는남자가우주를사라지게한이유는없다』(2025,인문학사)

목차

05시인의말

Ⅰ어두운단독자
19나는오래전부터노랠불렀다
20연파만리煙波萬里
22내가있어서
24어둠에관하여
27처음의내력
32죽음을보았다는자의고백
35아귀餓鬼처럼
36풍경너머
37악마의놀이
38여우소굴
39꿈속에서꿈을
41몸을가진슬픔에
43허공에묻다
44어화둥둥우리아기
46어디서왔는고
48곽씨부인떠난후에
50새와바람
52우리도그와같이
53바람이전하는말
54종과주인
56발심發心
57수행자
58호명하기
59할喝!
60백정의길
62어부가아닌어부
64한소식
65실과바늘
67달라붙은것들
69멀고먼
70내가있어요
71장승상댁張丞相宅에서의하루
73쇠북소리
74독존獨存
75당신의행방

Ⅱ심청의눈물
79공양미삼백석
82곳간에쌓인것들
83슬픈노래의힘
85당신의뜰
87천개의달
88당신과님
89눈길주는곳
90달빛아래
92행선유감行先有感
93가난한들풀
94산사山寺에서
95꽃들의반란
97벼랑끝에서
99후원後園에단壇을묻고
101흔들리는,숨어있는
102만화방창萬化方暢
103풍물패
105나도모르게
106때가되어
108안다면
109깨진항아리
110물에게묻다
111이유없는이유
112범피중류泛彼中流
113그저바라보기만
114심청의눈물
116아니된다
118떠나가네
120인당수
123광한전廣寒殿어머니
125나는새
126꿈과환생
128길위에서
129영원한질문

Ⅲ빛으로가는길
133타루비墮淚碑를안고
134뺑덕어멈왔다갔네
137크나큰길
139바다로가는길
141망망대해
143노인과수도승
145부처님의외출
146꿈속에서
148무자無字를들고
149다시화두를받다
150불퇴전不退轉
152그의나는
153영산靈山
154씨앗하나
155중첩重疊의겨를
156보고듣는
157성산聖山
159두갈래길에서
161불을때며
162묘한나라
164사랑안에서
166나무그늘에서
167유有의모습
169오직하나
170선문선답禪問禪答
172다시두갈래길에서
174아버님전상서
176절을찾아서
177발톱을바라보며
178길떠난후에
179흙속의보물을찾는사람들
181두사람
183숲길을걷다가
185주인과종
186흔들리는비어있는
188반가사유상
190그것
191어서오세요
193저물은
195꽃들의약속
197도반道伴에게
198스승이여
199죽어있으며살아있는
200몰랐습니다
201보아요
202신령한우레
204고백
206달빛과꽃나무
208님과나
209경이驚異
210내가있음을
212저너머의것
213대오大悟
214경계境界를넘어
215외치는소리

Ⅳ심청을만나다
219천사의놀이
220살아서도죽어서도
222죽음의지배자
224알겠노라
226청이에게
228스스로스스로가
229가던길을멈추다
231복되도다
233연금술
234범내려온다
235바람아
236성성적적惺惺寂寂
238들판에서서
239나무에대하여
241초라한광인狂人
243창문을열면
244그때의일을지금처럼알았더라면
245생生과사死
246그렇습니다
247오도송悟道頌을들으며
249심청을만나다
250잘살았구나
251나의벗이여
253생명나무의열매를따며
254일자一者
255장엄진경莊嚴眞景
256찬송
257예감
258뱀과독
259마지막의처음
260환한날
261귀향길
262기쁜이별
263날아라눈뜬새여
264또다른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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