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 (성향숙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 (성향숙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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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닫힌 세계를 깨뜨리는 다정한 균열, 성향숙의 시적 정원

성향숙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삶과 존재에 대한 질문들이 한층 깊어진 형태로 집약된 결실이다. 가족과 유년의 기억, 여성의 삶, 사랑과 이별, 상실과 회복, 노년과 죽음, 그리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까지 폭넓은 주제들이 시인의 독창적인 상상력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버퍼링, 틱톡, 육각형 인간, 불쾌한 골짜기, 사건의 지평선 같은 동시대의 언어들은 성향숙 시인의 시 안에서 현대의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상징으로 변모한다.

문학평론가 김지윤은 해설 「에피파니의 자리」에서 이번 시집을 “닫힌 세계에 균열을 내는 시”라고 규정하며, “현실이 얼마나 촘촘하게 닫혀 있는지, 탈출의 언어조차 그 폐쇄성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가능한 정밀하게 대면하며 자신의 언어로 닫힌 벽에 균열을 내는 것”이 성향숙 시인의 시가 택한 방식이라고 평한다.

실제로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기제는 ‘닫힌 공간’에 대한 정교한 탐구이다. 「코이의 법칙」의 어항, 「얼음의 제국」의 사각의 고독, 「여름의 속도」의 유리 상자처럼 시집 곳곳에는 폐쇄된 공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공간의 답답함이나 고립 그 자체가 아니다. 시인은 그 비좁고 촘촘한 공간들을 절망의 상징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꿈꾸고 상상하고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의 미세한 움직임에 주목한다. 닫힌 세계는 감옥이면서 동시에 생의 깊이를 탐색하는 실험실이 되고, 견고한 벽은 결국 균열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는 창이 된다.

이러한 시선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준다.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항 속 물고기처럼 갇혀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성향숙 시인의 시는 체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다시 질문하라고 말한다. 왜 우리는 이토록 답답한가. 어떻게 하면 삶은 다시 움직일 수 있는가. 시인은 거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작은 균열과 사소한 빛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틈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한다.

특히 표제작 「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는 이번 시집 전체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성향숙 시인은 멈춤과 지연의 시간을 실패나 낙오가 아닌 또 다른 생성의 시간으로 바라본다. 김지윤 평론가는 이를 두고 “쉼표에 머무는 시간들이 결국 하나의 의미로 전환되는 과정을 기록”한다고 분석한다.

시인이 말하는 쉼표는 상처가 숙성되는 시간이고, 감정이 의미로 변하는 시간이며, 삶이 다음 문장을 준비하는 숨 고르기의 시간이다. 연못을 오래 바라보는 일, 꽃을 보며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는 일, 파도를 응시하는 일처럼 아무런 생산성도 없어 보이는 행위들이 오히려 존재를 회복시키는 순간이 된다. 시인은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쉼표를 충분히 살아낸 사람에게만 도착하는 느낌표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특징은 풍부한 색채 감각이다. 특히 붉음의 이미지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정서적 축을 형성한다. 「석류」의 붉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단풍, 「리스트 컷」의 피는 모두 살아 있다는 감각과 연결된다. 그것은 억압된 삶을 뚫고 터져 나오는 생명의 증거이며, 오랫동안 눌려 있던 감정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의 색채이다. 반면 검정은 고독과 은폐의 색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붉음을 발견한다. 상처와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끝내 소멸하지 않는 생의 의지를 포착하는 것이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깊고 따뜻하다. 「완두콩」, 「원피스」, 「침해」, 「섬집 아기」 등의 작품은 유년의 기억과 가족의 상처를 다루면서도 원망이나 비난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인간 존재의 복잡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래서 성향숙 시인의 시는 아프지만 따뜻하고, 슬프지만 아름답다. 삶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상처가 어떻게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성향숙 시인의 시는 절망을 희망으로 덮어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와 고독, 상실의 시간을 끝까지 응시하면서 그 안에서 피어나는 미세한 빛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닫힌 세계에 생긴 작은 틈새를 통해 스며드는 햇살처럼 다가온다. 이번 시집은 존재의 고통을 정직하게 기록하면서도, 그 고통이 끝내 삶의 긍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성숙한 시적 성취라 할 만하다.

고요하면서도 강렬하게 삶의 본질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언어는 닫힌 세계를 깨뜨리는 다정한 균열이며, 우리가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하는 작은 빛이다. 『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는 삶의 어두운 시간을 건너는 이들에게 쉼표 같은 숨결이 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조용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저자

성향숙

경기화성출생.2000년〈농민신문〉신춘문예,2008년《시와반시》로등단.시집『엄마,엄마들』『염소가아니어서다행이야』『무중력에서할수있는일들』『쉼표를맡겨봐,느낌표로만들어줄게』가있다.

목차

05시인의말


13완두콩
15얼음의제국
18여름의속도
20석류
22비행운
24MUTE
26종달새는종달새대로
28원피스
30비는주술처럼내리고
32오후의습관들
34자발적증발
36리본프로젝트
38슬픔의속도
40리스트컷
42고래요양원
44침해
46섬집아기


51빛과물질에관한이론
53보일락말락라일락
54오후의언덕
56쉼표를맡겨봐,느낌표로만들어줄게
58어쩌다,진화
60프라하에서아메리카노를주문한다는것
62스킨스쿠버
64가랑비엔트로피
66그사이
68온더락효과
70바닥이라는비바체
72낭만감옥
74선곡의이유
766월
78오,감각적인해변이여!
80갑자기오지만그게뭔지모르는그런것


85스쿱마켓에서봄을주문했다
87습관성버퍼링
90분초사회
92나도봄!
94육각형강박
96리퀴드폴리탄
98벌레의시선
100러스틱라이프
102불쾌한골짜기이론
104코이의법칙
106울트라블랙피셔
108EarthHour
110모닝루틴
112사건의지평선
114내가나비인가나비가나인가


119서정시인은집안에잘있고
121콘페이토(confeito)
123주먹
125오후4시와주유소
127장화걸이가있는바닷가풍경
129공중전화부스가있는거리의표정
131개의눈동자속에고래는어떻게들어갔을까?
133테이블마운틴
135이따봐,벚꽃
137얼어붙은별
139동물성
141바른말사전
143지나가버렸네
145벚꽃환장
147불안의꽃[Angstblute]
149모로코는모로코를모르고
151설탕의제국


해설
171에피파니의자리|김지윤(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