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배 (박열아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사막의 배 (박열아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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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60년대 한국 문단을 열었던 박열아 시인의 유고시집

박열아(朴烈我)라는 이름은 오늘의 독자들에게 낯설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낯섦은 시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문학이 오랫동안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던 한 시인의 자리와도 관련되어 있다. 1938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전표지역」이 당선되며 문단에 등장했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하며 문학의 길을 걸었던 그는 이후 문단 중심부에서 멀어져 고향에서 긴 세월을 보냈다.

그는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않았다. 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에 대해 누구보다 엄격했기 때문이다. 발표한 작품들조차 쉽게 만족하지 못했고, 원고를 한 권의 시집으로 묶는 일에도 끝내 신중했다. 시를 향한 그의 태도는 성실함을 넘어 염결에 가까웠다. 한 편의 시를 세상에 내놓는 일에 엄격했던 시인은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시집을 생전에 출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2025년 작고했다. 그리고 남겨진 작품들은 유족들의 손을 거쳐 마침내 유고시집 『사막의 배』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도착했다.

시인 문정희는 이 시집의 출간을 두고 “뒤늦게 도착한 책이 아니라, 너무 일찍 쓰였으나 우리가 늦게 읽게 된 책”이라고 평한다. 이는 단순한 헌사가 아니다. 『사막의 배』의 출간은 한 시인의 유고를 정리하는 일을 넘어, 우리 문학이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던 한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던 작품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이면서 우리는 비로소 박열아 시인의 시를 개별 작품이 아닌 하나의 세계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박열아 시인의 시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물의 밀도다. 그의 시에는 군화와 철조망, 탄피와 묘비, 갱도와 석탄 같은 사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전쟁은 철조망의 상흔으로 남고, 노동은 석탄의 무게로 드러나며, 인간의 고통은 낡은 육체와 사물의 질감 속에 스며든다. 그는 관념을 설명하기보다 사물을 통해 현실을 드러낸다. 문정희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에는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으며, 다만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사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물들은 서로 부딪치며 시대의 압력과 인간 존재의 무게를 형상화한다.

등단작 「전표지역」은 이러한 시 세계의 출발점이다. “무덤으로 가는 커다란 군화 발자죽마다/ 슬프게 싱싱한 가슴들이 잠들어 있다”라는 구절에서 죽음은 추상적 비극이 아니라 땅 위에 새겨진 물질적 흔적으로 나타난다. 전쟁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풍경과 육체 속에 각인된 상처다. 이후 「목탄」, 「부두」, 「파선」, 「젊은 수부의 편지」에 이르면 시인의 관심은 산업화의 현장과 노동 현실로 확장된다.

특히 「목탄」은 박열아 시 세계의 핵심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나도 목탄이고/ 지금 당신도 목탄이다”라는 선언에서 목탄은 인간 존재를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이미 타버렸으나 아직 식지 않은 물질, 검게 변했으나 여전히 열기를 간직한 존재. 시인은 그 목탄 속에서 노동과 생존, 좌절과 분노, 그리고 쉽게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동시에 본다. 박두진 시인은 이 작품을 두고 “현대적 허무와 비극과 분노와 고발, 저항의식이 집결된 시”라고 평했다. 실제로 「목탄」은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세계는 연작시 「사막의 배」에서 더욱 확장된 규모로 펼쳐진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시인은 그들의 삶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고뇌는 가마니가 되고 허무는 화살이 되며 노동은 석탄이 된다. 감정은 사물로 변하고, 사물은 다시 인간의 육체와 결합한다. 박열아 시인의 시는 이처럼 물질과 존재가 서로 스며드는 독특한 시적 구조를 통해 시대를 형상화한다.

그러나 박열아 시인의 시를 폐허와 절망으로만 읽는다면 중요한 층위를 놓치게 된다. 『사막의 배』를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또 다른 시인을 만나게 된다. 「사막의 배」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들의 죽음은 그러나 다시 일어선다”라고 노래하는 순간,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전환된다. 더 나아가 「우자의 말」에서는 “비어 있으므로 더욱 넘치는 무한”을 노래하고, 「남해에서」에 이르면 “작은 섬 하나 갖고 싶다”는 담담한 소망에 이른다. 젊은 시절의 시가 시대의 상처와 정면으로 맞섰다면, 후기의 시는 그 상처를 품은 채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바라본다. 그의 시 세계는 폐허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생명과 관조를 향해 나아간다.

박열아 시인의 시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은 바다와 황토다. 바다는 떠남과 귀환, 죽음과 생명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반복되고, 황토는 농민의 삶과 세대의 기억을 품은 공간으로 나타난다. 그는 전쟁의 시인이자 노동의 시인이며, 농민의 시인이자 바다의 시인이다. 그의 시가 보여 주는 것은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견딤의 역사’이며, 그 견딤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 존엄의 기록이다.

문정희 시인의 말처럼 문학은 “망각과 싸우는 예술”이다. 우리가 지금 『사막의 배』를 읽는 것은 한 시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을 넘어, 그가 남긴 언어 속에서 한 시대의 상처와 생명력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오랫동안 불리지 못했던 이름이 다시 우리 문학의 자리로 돌아온 지금, 『사막의 배』는 오래 잊혔던 한 시인의 귀환이자 우리가 놓쳐 왔던 시간과 다시 마주하게 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번 유고시집에는 시인의 주요 작품들뿐 아니라 등단 이전의 초기 발표작,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전표지역」의 원문과 육필 원고, 당선 소감과 심사평, 동국대학교 재학 시절의 문학 활동 자료, 필사본과 창작 메모, 그리고 시인을 기억하는 여러 기록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시인 문정희의 추모 글과 생애 자료를 더해 한 시인의 문학적 궤적을 입체적으로 복원했다. 특히 신문 지면과 육필 원고, 각종 문헌 자료들은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맥락과 창작 과정을 보여 주는 귀중한 기록으로서 이 시집을 한 시인의 삶과 문학을 증언하는 아카이브로 확장시킨다.
저자

박열아

1938년전북순창출생.본명영렬(榮烈).1960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시「전표지역(戰標地域)」이당선되어등단.1962년동국대학교국문학과졸업.‘신춘시’동인.귀향후2025년작고.

목차



11시월(十月)
13아침
14여름
15전표지역(戰標地域)
18목탄(木炭)
22대낮
23원(怨)
24해적(海賊)
25파선(破船)
28젊은수부(水夫)의편지
30우자(愚者)의말
36바다
37부두(埠頭)
38사막(砂漠)의배




57폐촌(廢村)에서
58농부(農夫)의집
60사막(砂漠)
62살아나는피
63한촌(寒村)Ⅰ
64한촌(寒村)Ⅱ
65수심가(愁心歌)Ⅰ
67수심가(愁心歌)Ⅱ
68자객(刺客)
69황토밭에서Ⅰ
70황토밭에서Ⅱ
71겉보리
72보리
73입동(立冬)무렵
74겨울등(燈)
76압록에서
78남해에서




81가을뎃상
83삼월
84풀잎
85꽃
86달
87새벽
88신발
89시월(十月)
90가을수채화
92입추(立秋)
93섬
94나비
95해바라기
96바람
98밤눈
99가을강(江)
100기다림
101갈매기


자료
104시인박열아

시인을기리며
131다시부르는이름,박열아시인|문정희(시인)

출판사 서평

시인을기리며

다시부르는이름,
박열아시인


문정희(시인)



한시대의문학은언제나그시대가끝내다받아들이지못한이름들을남긴다.빛을향해나아가던언어가어느순간그바깥으로밀려나더깊은어둠속에서오래숨쉬는일이있다.박열아라는이름은바로그러한경우에속한다.이시집은뒤늦게도착한책이아니다.오히려너무일찍쓰였으나우리가늦게읽게된책이다.
박열아라는이름은낯선이름이아니었다.다만오래도록불리지않았을뿐이다.동국대학교에서수학하던시절,서정주라는같은스승아래에서문학을배우던시간속에,그는분명히우리곁에있었다.그러던그를다시떠올리게한것은어느날그의아드님이보내온한통의편지였다.오래묻혀있던기억이그때문득또렷해졌다.
1960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전표지역」이당선되었을때,박열아시인은여느시인과달리하나의징후로받아들여졌다.그것은전쟁이후의폐허와상처를감상으로풀어내지않으면서도,그내부에응결된고통을끝까지응시하려는새로운시적태도의출현이었다.당시문단은여전히서정의계보위에있었으나그틈사이에서보다단단하고거친언어로현실을밀어붙이려는움직임이나타나고있었다.박열아시인의시는바로그변화의한복판에놓여있었다.
그의시에서먼저다가오는것은감정이아니라장면이다.설명하지않고,설득하지않으며,다만그자리에놓여있는사물들.그러나그이미지들은서로를밀어내고부딪치며하나의압력을형성한다.전쟁의잔해는풍경이아니라응결된물질로남고,노동의시간은서사가아니라육체의피폐함으로드러난다.인간은그속에서감정을토로하는존재가아니라상처와흔적을몸에지닌채견디는존재로나타난다.이때시는서정을덜어낸자리에남은밀도,곧현실의무게를직접감당하는언어가된다.
특히「목탄」과「사막의배」에이르면그의시는하나의상징적물질과집단적경험을결합시키며더욱넓은장을형성한다.목탄이라는물질은시대의잔해이자내부의불씨로작동하고,사막과바다는소진과생존이교차하는현장으로변한다.이때그의시는개인의서정을넘어,시대의균열과집단의상처를떠안는구조를갖는다.그것은존재의조건을드러내는방식이다.
1960년대는한국시가새로운전환을모색하던시기였다.전쟁의기억은고스란히남아있었고,산업화의징후는사회의질서를빠르게바꾸고있었다.시는더이상개인의내면에머무를수없었고,보다넓은현실과맞닿아야했다.그과정에서등장한여러시적도전가운데박열아시인의시는특히강한밀도와긴장을지니고있었다.그의언어는매끄럽지않았고,때로는거칠었으며,그렇게의도적으로서정을밀어냈다.그렇게시대의균열은더욱선명하게드러난다.
그럼에도그의이름은어느순간문단의전면에서멀어져갔다.그것이개인의선택이었는지,시대의흐름이만들어낸결과였는지는단정하기어렵다.다만분명한것은문단의중심에서멀어지는일이곧시의소멸을의미하지는않는다는사실이다.오히려다른삶의자리를마련하는과정에서시는더깊은곳으로침잠하기도한다.
문학사는기록된이름들만으로이루어지지않는다.오히려기록되었으되충분히읽히지못한이름들,혹은기억의바깥으로밀려난이름들이그사이를채운다.박열아시인의시는바로그공백속에놓여있었다.그렇기에이번유고시집이자첫시집의출간은한국현대시가놓쳐버린한갈래를다시불러내는일이다.이는한개인의복원이아니라문학사자체의균형을회복하는작업에가깝다.
그의시를다시읽는다는것은과거를복원하는일에그치지않는다.오히려지금의시가어디에서있는지를되묻는일이다.세계와의긴장을포기하지않는언어,현실과부딪히는태도,그리고그것을끝까지밀고나가는의지.박열아시인의시는이러한질문을다시우리앞에놓는다.
문학은기억의예술이지만,동시에망각과싸우는예술이기도하다.어떤이름들은오래도록빛속에머물고,어떤이름들은어둠속에서잊힌다.그러나그어둠속에서더오래지속되는목소리도있다.
이제우리는이이름을다시불러야한다.그것은한시인을위한일이라기보다우리문학이스스로의잃어버린시간을회복하는일이기때문이다.이시집이그첫장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