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감정 - 청색지시선 20 (양장)

가면의 감정 - 청색지시선 20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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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혜영

저자:김혜영
1997년《현대시》로등단했다.시집『거울은천개의귀를연다』『프로이트를읽는오전』『다정한사물들』『가면의감정』을출간했다.평론집『메두사의거울』『분열된주체와무의식』,산문집『아나키스트의애인』『천사를만나는비밀』『영미시의매혹』이있다.미국,중국,일본에시집이출간되었으며일본에서는여러문예지에소개되었다.『AMirrorOpensOneThousandEars』(미국iUniverse출판사),『子打千耳』(중국옌벤대학교출판부),『あなにとぃぅ記』(일본칸칸보출판사)등이다.애지문학상을수상했다.부산대학교인문학연구소에서연구교수로재직하고있다.

목차

05시인의말

Ⅰ가장아름다운죄인
13윤슬
14노란정물
16투명가면
18빛의혁명
20아들의운동화
24극한직업
26雪松(설송)
27외계인가족
30교토에온순례자
32전일빌딩245
34순천만의슬픈알몸
36오후세시의티타임
39동판화를새기는변월룡의독백
42법의여신,디케는잠들고

Ⅱ서로의얼굴을가만히어루만지는
47당나귀와꽃
48봄의정원
50다이아몬드
52자정의언어
54팥빙수
56꿀벌에게
58파란장미와전기자동차
60상자속의새들
62얼룩무늬장화를신고
64Zoom-외계인에게보내는수국의편지
66해바라기밭에버려진발목
68수련의이별
70모더나,모더나-생체실험17번

Ⅲ당신은꽃피는사과나무
73깃털
74장미동의장미는어디로갔나
76칸나
79꽃이시든아침에
80부적을그리는뮤즈의독백
82고유명사와얼굴
85무지개가뜬봄날에
86사춘기를기억하는나무
88떨어지는사람
90수선화를위한박쥐의세레나데
92황금벌레들
94오독하는숲
96이별하는방식

Ⅳ바닷가낡은집을비추는햇살
101뭉게구름이걸어가는오후
102새의마음은어디에있나
104여름창가의풍경
106맨바닥에누운얼굴은
108가면의감정
110낙타가눈을껌벅이는데
112탁발
114그림자의표정
116얼룩
118행복에이르는확률
119오로라로떠나는여인들
122충무김밥
124구룡포해녀의독백
126겨울여행

해설
127시디톡스의공간,봄의정원|문혜원(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집의제목에포함된‘가면’은이러한시세계를이해하는중요한열쇠다.가면은감정을숨기기위한도구이면서동시에감정을드러내는또하나의얼굴이기도하다.사람들은저마다의상처와불안,결핍을감춘채살아간다.감정노동자는미소를연기하고,가족은사랑속에침묵을감추며,노동자는고통을견디고,남겨진사람들은슬픔을삼킨다.『가면의감정』의인물들은대부분자신의속내를직접말하지않는다.시인은그들이쓰고있는가면의표면보다그틈새에서새어나오는미세한감정의흔적에주목한다.

김혜영시인의시에는현실의감정과갈등을직접말하는대신그것을다른존재와장면으로형상화하는방식이자주나타난다.현실을똑바로응시하면서도감정의과잉에빠지지않는이유도여기에있다.고통은이미지라는우회로를통과하며애도의언어로변환된다.이러한형상화는이번시집에서더욱원숙한형태로나타난다.비정규직노동자는낙타가되고,가족의은밀한갈등은외계인의시선으로다시바라보게된다.현실은그대로존재하지만더이상현실의모습으로만남아있지않다.시인은고통을직접진술하는대신다른형상속으로옮겨놓는다.직접말할수없는감정은가면을쓰고나타나고,상처는새로운얼굴을얻는다.

이러한시적장치는환상적장식이아니라상처를견디기위한방식이다.현실을그대로응시하는일은때로너무고통스럽다.그렇다고눈을감을수도없다.시인은그사이에서또다른길을선택한다.상처를지우지않은채그것을다른이미지의언어로옮겨놓는다.이러한상상력은현실을다시살아내기위한힘이기도하다.

「수련의이별」은그대표적인사례다.이시는참혹한사건을재현하는대신죽은아이가부모를위로하는장면을담아낸다.「떨어지는사람」에서는산업재해로추락한청년이북극의오로라가된다.「무지개가뜬봄날에」에서는죽음을앞둔어머니가분홍치마를입은천사로변한다.이변환의과정에서현실의고통은사라지지않는다.오히려더욱선명해진다.다만그것은절망의언어가아니라슬픔과애도의언어로독자앞에나타난다.

이시집에는유독죽음이많이등장한다.세월호희생자,산업재해노동자,노년의어머니,병사들.그러나죽음은소멸로끝나지않는다.사라진존재들은천사와수련,별빛과오로라,바람과같은다른형상으로되돌아온다.시인은사라진존재들을다른이름으로다시불러낸다.

시집전체를통틀어반복적으로나타나는또하나의축은모성이다.군대에간아들을걱정하는엄마,사춘기의아들을바라보는엄마,노모를돌보는딸등의모습이여러작품에서나타난다.그러나이시집의모성은혈연의범위에머물지않는다.시인은노숙인과비정규직노동자,산업재해희생자와사회적약자들의상처를바라보면서도그들을추상적인사회문제로환원하지않는다.그시선에는누군가를돌보고보듬으려는정서가배어있으며,개인의슬픔은타인의고통과공명하며더넓은애도의감각으로확장된다.

그렇기에『가면의감정』은현실비판의시집이면서도분노의시집은아니다.오히려연민의시집에가깝다.시인이관심을기울이는존재들은대부분작고낮고약하다.취업에실패한청년,비정규직노동자,감정노동자,노숙인,집잃은고양이,꿀벌,당나귀,그림자등.경쟁과효율의논리가지배하는세계에서쉽게밀려나는존재들이다.그러나시인은그들의패배를기록하지않는다.대신그들이여전히살아있고,여전히고통받고있으며,그럼에도여전히기억되어야할존재라는사실을기록한다.

『가면의감정』에서가면은감정을숨기는장치가아니다.오히려직접말할수없는감정이자신을드러내기위해선택한또하나의얼굴에가깝다.시인은현실의고통을정면으로진술하는대신낙타와외계인,그림자와천사,수련과오로라같은형상속으로옮겨놓는다.그과정에서개인의상처는타인의슬픔과만나고,개별적경험은더넓은공감의영역으로확장된다.

그래서이시집의애도는죽음을붙드는일이아니라사라진존재들을다른이름으로다시불러내는일에가깝다.시인은상실을지우지않으면서도그것을기억의언어로변환하고,현실의상처를외면하지않으면서도절망에머물지않는다.『가면의감정』이라는제목은바로그지점을가리킨다.가면의틈에서새어나오는작고연약한감정들,그리고그감정들을끝내애도의언어로바꾸어내는시의힘을보여준다.

책속에서

1.
머리에제비꽃을꽂은오필리아가진도앞바다로떠내려가요.2014년4월16일오전8시50분경이었어요.단원고를다니던여학생의교복치마가유람선객실천정으로부풀어올랐어요.차가운바닷물이가슴에서입술로밀려왔어요.우린두손을잡고수련처럼둥둥떠다녔어요.승무원의발자국소리가요란하게복도를울렸지요.우리의귀는점점먹고몸은차갑게식어갔어요.잠수부들이다가왔지만우리의입술은닫혀있었죠.물에잠긴두눈을뜨니청소기를돌리는엄마가보여요.모니터를보는아빠의등도보여요.“아빠,나여기있어요.”라고손짓했는데돌아보지않더군요.

2.
환한빛이우리를감싸주었어요.투명한천사들이다가와속삭였어요.“얘들아,울지마,여긴천국이란다.”바다의터널을지나온이곳은고요해요.먼곳인지가까운곳인지모르겠어요.우리는인어가되어노란리본을달고인사를합니다.엄마의퉁퉁부은눈이아프지만,울지말아요,무중력의방에는꽃들이피어나고바다는코발트빛지중해보다아름다워요.난괜찮아요.사월의정원에핀튤립처럼피어날거예요.향기로운바람이되어엄마의머리카락을스칠거예요.곁에있으니울지말아요.물속수련이피어나면기억해주세요.언제나사랑하고있다는것을.
-「수련의이별」

눈은
가벼워져
희디흰그리움으로온다

성난태풍은
가로수머리카락을할퀴고
가로등은두려워운다

부산아파트신축현장에서
창문바깥으로떨어진청년강보경을
받아준건천사였을까

공사장바닥에묻은핏자국에서
붉디붉은
맨드라미가핀다

아들의시체를안은어머니는
사나운태풍으로울부짖고
시퍼런파도가일렁이는바다

철근이누락된아파트가흔들리는데
떨어지는사람을안아주는
정부는어디에있나요
법은어디로가고있나요

눈이내리면
떨어지는사람은오로라가되어
북극의하늘을물들인다
-「떨어지는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