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이 찾아왔다 - 청색지시선 21 (양장)

다정이 찾아왔다 - 청색지시선 21 (양장)

$13.00
저자

김지헌

저자:김지헌
충남강경에서태어났다.1997년《현대시학》을통해등단했다.시집『다음마을로가는길』『회중시계』『황금빛가창오리떼』『배롱나무사원』『심장을가졌다』『다정이찾아왔다』를썼다.제13회미네르바문학상,제8회풀꽃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05시인의말


13절필
14물의캔버스
16노랑어리연꽃
18눈사람
20노동요를듣는아침
22상처에게말걸기
24단풍조문객
26두부
28살구가입을닫았다
30섀도맨
32섬에살아요
34자명종
36운수좋은날
38세족(洗足)
40싸목싸목
42완벽
43시집읽기
44소월과남조사이
46애연가
48폭염도시가되네


51금요일
52흰책이있는도서관
54마음의내력벽
56꽃구경
58꽃의항변
60무연고자김경철씨
62그말씀
64노마드
66당당하게뻔뻔하게
68날지못하는새
70문밖의그대
72손금
74안개의도시
76집사
78유쾌한거래
806140


83손바닥이불
844월의폭설
86그땅에사람이있다
88십자가언덕
90손
92십일월
94저녁의친구
96헛것에도저녁이내려
98시소
100즐거운감옥
101한없이높고깊은
102당근마켓
104돌옷
106그여자지니2
108모시나비의사생활
110빵굽는남자


113모기경전
114움
116도다리쑥국
118가족
119기쁨
120나의식탁은
122누가잡초라고했나
124뽕나무밑동을자르다문득
126꿈꾸는가발공장
128동거인
130수국을기다리며
132메콩강소녀
134빨래
136게발선인장
138바라나시
140벚나무장례식
142저초록들!
144장마

해설
145생명화(生命化)를위한생명화(生命花)의시작(詩作)|나민애(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이번시집에서가장먼저주목하게되는것은문학평론가나민애가해설에서제시한‘사람-꽃’이라는개념이다.나민애는이번시집의특징을“사람에게서꽃을,꽃에서사람을발견하는”단계에이르렀다는점에서찾는다.실제로『다정이찾아왔다』에는자연을바라보다가사람을발견하고,사람을바라보다가꽃을발견하는작품들이반복적으로등장한다.인간과자연을동일한생명의차원에서이해하려는시인의존재론적인식이다.

「운수좋은날」은이를잘보여주는작품이다.화자는단풍구경을떠났지만정작시선을사로잡는것은단풍이아니라노부부이다.손을맞잡고느릿느릿가을속을걷는두사람은어느새단풍을대신하는풍경이된다.시인은그들의현재모습만보는것이아니라“요양원가지말고끝나는날까지같이가자”는노부부의대화를통해“이인삼각으로생의벼랑길걸어왔으리라”헤아린다.자연의아름다움보다사람의아름다움이더크게다가오는순간이다.단풍이있어야할자리에노부부가들어앉으면서자연은인간으로치환되고인간은다시자연의일부가된다.

이러한시선은「싸목싸목」에서인상적으로드러난다.시인은화순적벽을보러갔다가수몰민출신해설사를만나게된다.적벽의절경보다그여인의삶이더크게다가온다.고향을잃었지만고향을떠나지못한사람,아무도귀기울이지않는이야기를반복해서들려주는사람,그삶의궤적이시인의시선을사로잡는다.그녀의귀에는아직도“저녁답에밥먹어라부르는엄마목소리”와“자박자박골목을밟고오는가장의발자국소리”가남아있다.결국화자의기억에남는것은적벽보다그녀의이야기이다.이는풍경보다사람을먼저발견하는김지헌시인의시선을보여주는대목이기도하다.

그러한시선은「꽃구경」에이르러하나의선언으로완성된다.“우린모두꿈속에사는사람꽃”이라는구절은이번시집의핵심을함축한다.꽃은사람이되고사람은꽃이된다.꽃마다사연이있듯사람마다이야기가있으며,사람의삶역시꽃처럼피고지는생명의과정이라는인식이그바탕에놓여있다.이렇게김지헌시인은이번시집에서비로소꽃과사람을완전히일치시키는단계에도달한다.

그러나이시집은생명예찬에머물지않는다.생명에대한긍정은언제나죽음에대한깊은연민을동반하기때문이다.문학평론가나민애는이를‘식물적상상력’이라고명명한다.식물을기르는사람은꽃이피는순간뿐아니라시들어가는과정까지지켜본다.김지헌시인의시선또한그러하다.그는피어나는생명만큼이나스러지는생명앞에서오래머문다.

「눈사람」은그대표적인사례이다.녹아내리는눈사람은전쟁터에서사라져가는이름없는병사들과겹쳐진다.화자는눈사람을바라보며“지금지구한쪽에서죽이고죽어가는/이름모를병사”를떠올린다.눈이녹아사라지듯병사들의삶또한허망하게스러져간다.시인은그소멸의과정을끝까지바라본다.생명을사랑하는사람만이죽음앞에서이처럼깊은슬픔을느낄수있다.

「단풍조문객」과「벚나무장례식」역시같은계열에속한다.낙엽이지는모습을장례의풍경으로읽으며,꽃이진벚나무를통해“하얀소복행렬”이지나간장례식풍경처럼“세상을하직한사람들”을애도하는태도는시인의세계관을잘보여준다.그의시에서죽음은특정존재의사건이아니라생명전체의문제이다.

이러한애도의정서는「무연고자김경철씨」에서절정에이른다.이름없이죽은무연고자에게경찰이붙여준이름‘김경철’.그것은한개인의이름이아니라사회에서지워진수많은사람들의이름이다.시인은그이름을시의제목으로삼음으로써잊히고사라진존재를다시불러낸다.시의마지막에등장하는“노란눈물뚝뚝떨구며고개넘는/감국조문객”은인간대신들꽃이애도의주체가되는장면이다.더구나그를애도하는존재가사람이아니라감국이라는점은의미심장하다.인간이외면한죽음을들꽃이대신기억하는장면은이시집전체를대표하는상징이라해도지나치지않다.생명을향한시인의연민은인간의경계를넘어자연전체로확장된다.

그렇다면생명과죽음이라는두축을연결하는것은무엇인가.그것은기다림이다.이시집의가장중요한정서는기다림에가깝다.생명을발견하는일도,죽음을애도하는일도결국기다림이라는태도속에서가능해지기때문이다.

대표작인「노랑어리연꽃」은그러한기다림의시학을가장아름답게구현한작품이다.시인은금이간수반에물을채우며노랑어리연꽃이피기를기다린다.그러나꽃은끝내피지않는다.기다림은실패로끝난듯보인다.하지만작품의마지막에서화자는“나는지금껏무얼기다렸던걸까요”라고묻고,그것이결국“평생을걸어오면서도보내지못하는그리움”이었음을깨닫는다.여기서기다림은결핍이아니라존재를향해마음을열어두는방식이며,삶을견디게하는정신적자세이다.

「노동요를듣는아침」과「살구가입을닫았다」에서도이러한태도는반복된다.길고양이미미의체온을느끼며생명의소리를듣고,식음을전폐한길고양이살구가다시먹기시작하기를기다리는마음은결국시를기다리는마음과다르지않다.시인은생명이돌아오기를기다리고,시가찾아오기를기다린다.「살구가입을닫았다」의“꽃같은문장도같이와줄거라는”마지막구절에서생명과시가하나의근원에서온다는믿음을보여준다.생명과시는서로다른것이아니라같은자리에서비롯된것이다.

이지점에서‘사랑’과‘사람-꽃’이하나로만나는순간을발견하게된다.사랑은생명을향한태도이고,사람-꽃은그사랑이도달한깨달음이며,기다림은그둘을가능하게하는존재의방식이다.김지헌시인의시는결국기다림을통해생명을이해하고,생명을통해사람을이해하며,사람을통해다시시에도달한다.

『다정이찾아왔다』는생명의시집이면서동시에기다림의시집이다.또한사람을꽃처럼바라보는인간애의시집이며,죽어가는존재들을끝까지기억하려는시집이다.무엇보다이시집은생명을생명답게바라보려는한시인의오랜수행의기록이다.김지헌시인은이번시집에서꽃을피우는일을넘어사람을꽃으로피우고있다.그리고그사람-꽃들이만들어내는따뜻한풍경속에서오늘날우리가잃어버린생명의감각을다시금일깨워준다.“우린모두꿈속에사는사람꽃”이라는깨달음과“꽃같은문장도같이와줄거라는”기다림은결국이시집전체를관통한다.그의시가오래도록독자의마음에머무는이유도바로여기에있을것이다.

책속에서

배롱나무아래수반하나
지난봄노랑어리연꽃한포기를얻어수반에심어놓고는아침저녁줄어드는물을채우며기다렸지요수반아래금이가있는줄은모르고물을채우며배롱나무꽃아래노랑어리연꽃이참잘도어울리겠다는생각에이미꽃을본듯웃음이배곤했지요가끔은고양이들이그물을먹고는수반속구름을물끄러미들여다보다가기도했는데,마치오래전부터의약속인듯말이죠한여름엔수반의물이더욱빠르게줄어동네고양이들이다몰려든줄알았어요
고양이들이분주할때면쏜살같이물까치가다녀가기도했지요

노랑어리연꽃은다녀갈생각이없는지배롱나무만꽃비를흠뻑뿌려주네요
밑동에금이간수반을메우곤아침저녁물을흘려넣으니종일구름이머물다갑니다여전히노랑어리연꽃은와줄생각이없는것같은데,배롱나무아래수반은이말저말받아적느라깜빡했을까요
어느덧배롱꽃도지고마당의나무들약속이라도한듯침묵에드는시간
빈하늘만수면위에머물다갑니다

나는지금껏무얼기다렸던걸까요
60년대식연애처럼서성거리다입도못떼던,한계절이다가도록,아니평생을걸어오면서도보내지못하는그리움이었을까요
-「노랑어리연꽃」

아룬제간은국경없는의사회소속
인도적지원어드바이저
세상에서가장큰감옥이되어버린가자땅에서
목숨걸고동분서주하고있다
우리와똑같은사람들이날마다굶어죽거나
공습으로죽임당하거나미쳐버리거나
삶의터전은이미부서지고파괴되어
부모잃은아이들배회하고
무표정의사람들목숨연명하고있는땅
이세계는어차피모순덩어리라며
어떤사람들은가볍게말하기도하지
작은모니터를통해처참하게파괴된가자땅들여다보며
밥먹듯아무렇지도않게전쟁놀이를보는일
아프다는말에내성이생기듯
슬픔도이미무딘칼날되어
가자사람들에게싸구려희망하나쯤던져주고는
그들의고통을이해하는척
배부른오늘이미안해애써핑계를찾으며
부풀어오르는꽃눈에시선을주다
늙은퇴역군인처럼길고양이나챙기며
다만누군가혁명을일으킨다면
그땐두손들고뛰쳐나갈수도있다고
말이나쏟아내겠지
-「그땅에사람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