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은 보내고 나는 남아서 - 우리 시대의 시선 5

물결은 보내고 나는 남아서 - 우리 시대의 시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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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길수

저자:한길수
1963년강원화천출생.2015년《시사사》로등단.산문집『살둔마을에꽃이피고시가되고』『그네를밀면참외향이난다』,시집『고립낙원』『물결은보내고나는남아서』가있다.

목차


05시인의말

Ⅰ나무가사는법
13나무가사는법(法)
14등대
15앵두
16초승달
17보금자리
18짓다
19소아병동
20모르고산다는것
21앞잔치
22딱새의노래
24조팝나무
25한가위즈음에
26나무여행
27겨울병아리
28내발자국위에그대발자국덮으며
29물의근육
30그림자
31폭설


Ⅱ달빛마당
35안다
36봄이오나봄
37스무살연가
38까만빗소리
39달빛마당
40우리이렇게
41풍접초
42목화밭에서
43병원가는여자
44살둔강변길
46혼주대행
47간벌
48조약돌
49사랑나무
50서리꽃
51겨울아침의단상
52꽃샘추위
54북한강에서

Ⅲ씨앗의바깥
59씨앗의바깥
60부부
61수취인불명
62낮달맞이꽃
64낙엽
66어스름
67나비의무게로
68꽃이색을버리는시간
70이상징후
71물들다
72태양초
74천렵
75계절을끌어덮으며
76꽃은그냥꽃이아니라는걸
78생각도눈발처럼흩날린다면
79봄맞이
80배경의힘
81꿈이었던것처럼
82애드벌룬

Ⅳ메타버스
87선반의내력
89바람빠진공
91그늘에사는그림자
93맹지(盲地)
94임도(林道)
95개인약수
96내면(內面)으로가는길
98눈부신침묵
99계방산
100독도,그외로움의멀미
102겨울끓이기
103난로앞에서
104서각
105그런날
106무한의서사에게
107은교
108메타버스

해설
109끝없는이야기의그리움|김태선(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집의첫머리에놓인「나무가사는법」은한길수시세계의특징을상징적으로보여준다.“거목이세월을지나온증인이라면/흩날리는낙엽은계절을변호하는몸짓입니다”.거목과낙엽은모두시간의일부이지만시인은둘을같은방식으로바라보지않는다.거목은지나온시간을품은존재이고낙엽은떠나가는시간을드러내는존재다.한길수시인의시선은이처럼하나로보이는풍경속에서도서로다른시간의결을읽어낸다.자연은그에게존재의방식을보여주는언어이다.

이러한시선은시집전반에걸쳐반복된다.「모르고산다는것」에서나무는잘린뒤에야나이를알수있는존재로등장하고,「물의근육」에서는혹한의계곡물이인간내면의근육을길러주는스승으로변한다.「간벌」에서는잘려나간나무가훗날서로를따뜻하게품는장작이되고,「낙엽」에서는떨어지는잎이섭리를깨달은노승처럼읽힌다.자연은삶의원리를가르치는존재다.

그러나이시집을자연시집으로읽는것은충분하지않다.자연은시인의사유가머무는장소일뿐,그가궁극적으로말하려는것은시간과기억,그리고그리움의문제이기때문이다.

한길수시인의시에서그리움은상실의다른이름이아니다.오히려떠난것들을다시현재로불러들이는힘이다.「초승달」의화자는달빛속에서떠난이를떠올리고,「앞잔치」에서는먼저세상을떠난어머니를나비의몸짓속에서다시만난다.「북한강에서」는부모세대의가난과노동을현재의기억속으로불러오며존경과애도의언어로바꾸어놓는다.

특히「내발자국위에그대발자국덮으며」는이러한시집의핵심정서를가장선명하게보여주는작품이다.“사랑이라썼다가지우고/행복이라썼다가지우고/그리움이라썼다가는차마지우지못하니”.사랑과행복은지울수있었지만그리움은지워지지않는다.그것은이미지나가버린감정이아니라현재를구성하는힘이기때문이다.시인은첫눈위에남겨진발자국을따라다시오라고부른다.그리움은다시만남을가능하게하는통로가된다.

이러한특징은시집의제목과도깊이연결된다.『물결은보내고나는남아서』라는제목은시간에대한시인의태도를압축적으로보여준다.세상모든것은물결처럼흘러간다.사람도떠나고계절도지나가며젊음또한사라진다.그러나시인은떠난것을마냥붙잡으려하지않는다.대신남아있는자의자리에서그것들을오래바라본다.

그상징적형상이「조약돌」이다.“물결은보내고나는남아서/뜨겁게,뜨겁게/지난날을굽어보는것이냐”.조약돌은강물에휩쓸려온시간을품고있다.그것은물결을붙잡은존재가아니라물결을통과한존재다.오랜세월동안부딪히고깎이고다듬어지며매끈해진조약돌의형상은곧시인자신이기도하다.중요한것은흘러간시간을되돌리는일이아니다.그것을다시읽고새롭게의미화하는일이다.한길수시인의시는바로그지점에서탄생한다.

이시집의또다른특징은안부의시학이라부를만한세계관이다.시집에등장하는자연은침묵하는풍경이아니다.나무와꽃,강물과새들은모두대화의상대다.「무한의서사에게」에서시인은“살아있는모든자연에게안부를묻고싶”다고말한다.여기서안부란서로의존재를인정하고받아들이는행위다.

그러한태도는「부부」에서더욱따뜻하게드러난다.돌담처럼살아온세월속에서생긴수많은틈을서로가메워주며살아온삶이그려진다.집은낡고기울어질수있지만그안에쌓인금슬은무너지지않는다.「병원가는여자」역시일상의사소한장면을통해사랑이란결국상대를돌보는일임을보여준다.사랑은격정적인감정보다오래함께살아낸시간에가깝다.

한편시집후반부에서는자연과기억의세계를넘어존재론적성찰이더욱깊어진다.「수취인불명」,「이상징후」,「메타버스」같은작품에서는시간과기억,실재와부재의문제가탐색된다.특히「메타버스」는디지털시대의언어를적극적으로수용하면서도결국지워지지않는그리움을말한다.시대는달라졌지만인간의본질적인외로움과그리움은변하지않는다는사실을보여준다.

물론한길수시인의시는최근한국시의실험적경향과는거리가있다.그는난해한비유나해체된언어보다체험에서우러난진솔한진술을택한다.때로는서정이직접적으로드러나고의미가비교적명료하게전달되기도한다.그러나그것은결함이라기보다시인의선택에가깝다.삶의진실을어렵게말하기보다오래살아낸사람의언어로전하려는의지이다.

『물결은보내고나는남아서』는떠난것과남은것,과거와현재,삶과상실사이의간격을응시하며그사이에놓인끝없는이야기에귀기울인다.시인은그리움을통해사라진것들을다시현재로불러오고,안부를통해존재와존재를이어준다.

결국한길수시인의시는묻고있는것이다.흘러가는세월속에서무엇이남는가를.그리고그답을조용히들려준다.물결은흘러가도그물결을기억하는마음은남는다고.사람은떠나도함께나누었던시간은사라지지않는다고.그리하여그의시는끝없이흘러가는시간속에서도끝내서로의안부를묻는따뜻한언어로남는다.

책속에서

세월의강을떠돌다
어느야트막한모래톱에
물결은보내고나는남아서
뜨겁게,뜨겁게
지난날을굽어보는것이냐
물결에흘려보낸
무수한생각의부스러기
모래알처럼수북해서
다시읽을수는없지만
굴곡많은시간을
다듬고다듬어
매끈한표정으로너는
거칠게살아온젊은날을
매만지고있구나
-「조약돌」

벼이삭익어겸손해지는날엔
스치는바람에게안부를묻고싶습니다

붉은등을켜놓은듯꽈리밭환한날엔
떠도는뭉게구름에게안부를묻고싶습니다

밤비치길을걸으며도처에서만나게되는
살아있는모든자연에게안부를묻고싶습니다

무한한풍경속존재의계곡을노래하며
침묵의메아리가삶의가장자리를서늘하게스칠때

우리어느길섶에서느낌으로마주한다면
설레는옷깃으로안부를나누고싶습니다

공허한삶의주름살을버리고
시간을소비하는허망의절정속에서도
안부를나누고싶은것입니다
-「무한의서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