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크레딧

김태경

저자: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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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건너의미로넘어가기
―김태경시를맥짚다

이중잣대

시는이중적이다.시자체가비유로되어있기때문에어느한단면만가지고는제역할을하기어렵다.시는특별한양식으로쓴다는말이바로여기에있다.비유는두개의사물이서로부딪친다든지,두개의이미지가겹쳐지며새로운이미지를만든다든지,아니면두개의이야기를통해입체적인의미를만든다든지하는일이다.그때비유되는대상과서로거리가멀다든지,시인스스로낯설게만든다든지,시인도모르는모호한설정을제시하기도한다.이는시의본령이지만그러한특성을요즘처럼바쁘고할일많은세상에끝까지애정으로읽고이해해줄독자를만나기는쉽지않다.
갈수록세상어렵고,시도어렵고그어려운숙제를스스로떠안기도하고독자에게떠넘기기도하는일들이허다한시세계에선뜻들어서기란생각처럼쉽지않다.이렇듯어려운것이시인데도숨겨진매력이있어쓰는사람은많고상대적으로읽는사람은적다.시는멋있고낭만적이고서정적이라고믿으며시구절을인용도하지만한편으로는풀어봐도풀리지않는암호같아서,이해가되지않아서시집을덮거나놓아버리는경우도많다.
이처럼어려운것과달리쉬운시들도많다.채시화되지않은직설적인글들이시의이름으로여기저기돌아다니고있다.이또한시의이중적인모습이다.시자체가이중적이라시가보여주는다양한모습을여기서다따져보기는어렵다.다만어려운시와쉬운시문제를꺼내본다.그리고그중간에좋은시라는말은없지만많은사람이공감하고감동까지불러일으키는보편적인시가있다.요는그중간지점에서이야기하는것도확실하게좋다거나아니라고말하는데부담이있다.시에관한관점이다양하기때문이다.
일련의이러한이야기는김태경시인의시세계를이야기하는데유용하다.인생이라는극장의2막에서늦게시작詩作에입문한김태경은튼튼한시창작수업을해왔고그결과등단을했다.그리고그결과로한뭉치의원고를들고와첫시집을만들겠다고했다.생각보다많은시편에놀랐고,상당부분시창작시간에꼼꼼하게공부한흔적이배어있어두번놀랐다.그리고작품수준이고르다는것에세번놀랐고,연륜에맞는신선한소재와의미확보를하는모습에서네번째로놀랐다.
무엇보다불필요하게어렵거나그렇다고속이다보이는쉬운시가아니라는것이다.알맞은비유와신선한소재와잔잔한의미가만들어내는삼박자는첫시집이지만그진가를한껏올리고있다.그래서독자에게부담주는것이아니라교감을나눌수있는분위기를만들고있다.

소재발탁

무엇을쓸것인가는소재의문제다.대개정제되지않은개인적감정이나주변이야기에머물며직설적인표현으로접근할때시는어려움이따르게된다.이미많은사람이소재로사용한것은부담이될수밖에없다.그때신선한소재를찾아낸다면탄력을받게된다.소재가시한편에서차지하는비중은절반에가깝다고해도무리가없다.김태경은그때주변에서사라진,그만큼소중해진소재를찾아내시의방향을잡고있다.신선한소재인만큼시의특징인새로운이야기를꺼내는데에도유리하다.

날선가윗날
부부처럼힘차게합쳤다
잘익은김치쑹덩쑹덩썰듯
어떤어려움도척척자를수있다고
신나게쭉쭉갈라낼수있다고

살다보면
삼겹살처럼쉽게잘리는것도있지만
쉬이썰어지지않는일도생기는법
―「거멀못」에서

식탁으로까지진출한가위이야기다.두칼날을연결시켜주는거멀못을찾아내고있다.늘쓰면서도크게신경쓰지않는가위자체도좋지만그가위를지탱하는거멀못을꺼내부부이야기로비유하는부분은더세밀한소재가된다.거멀못이없다면부부도따로놀게되고의미도사라지게된다.소재로인해자연스레따라붙는비유도잘들어맞는다.이를통해해체되는가정이많은시대에부부가어떻게살아가야하는지까지돌아보게하는정통시작의모습을보여주고있다.

어릴적
아버지는무뎌진낫을갈다
오래된보퉁이에서숫돌을꺼내
낫갈던숫돌을한번씩갈았다

왜숫돌을가느냐물으면
오래쓰다보면
숫돌도군데군데파여
가끔평잡이를해줘야된다고한다

살다보면
새숫돌처럼꽤괜찮던사람이
어느새울퉁불퉁파여나가
쯔쯔혀를차게만들기도한다

숫돌제닳는줄모르는법
―「평잡이숫돌」에서

숫돌은알지만평잡이숫돌은생소하다.그만큼독특한소재를찾아낸것이다.특징도강하다.그강한바탕에서바로의미가뛰어나온다.한쪽으로만기울어진사람들로넘쳐나는시대에수평을잡아준다는말은그어떤논리로도바로잡기어려운문제를감동스레잡아주고있다.소재가얼마나중요한가를여실히체감하게되는부분이다.현대시에서중요하게여기는의미까지오히려확장시켜주고있다.

7미터높이는아찔하다
그아찔한높이의낡은선박족장위에서
그녀의삶도아찔했다
인생한방이라며집나가
몇년째소식없는남편대신
결국잡을수밖에없던3키로깡깡이망치
어설픈족장에걸터앉아깡으로온종일휘둘러야
했다
깡~깡~
힘에부칠때마다놓아야지마음먹지만
이깡깡이질한방이
밥이되고옷이되고
아이들의연필이되고공책이되는것을보며
결코놓을수없던망치
뱃전에죽어라달라붙는녹마저
척척깨어내던그망치도
가슴한구석
켜켜이쌓이는그리움은어쩌지못하는지
그가떠나던날처럼대평동에비가쏟아지면
벌건녹물옷자락타고흐른다
―「깡깡이망치」전문

뱃전에달라붙은녹을떼어내는일을하는그녀가주인공이다.깡깡이망치로깡깡소리를내며깡으로버티며살아가는이야기다.깡깡이망치가주는사물의구체성은그녀와만나고된일상을떼어내며살수밖에없는현실을대신이야기해준다.시인은자기변명이나자기이야기에빠져허우적거리는것이아니라이렇게슬쩍주변의어려운사람들노래를대신불러주는것이다.김태경이부르는노래속에나오는벌건녹물은그녀가흘리는피눈물이다.
이외에도소재측면에서살펴보면새삼스럽거나깜짝놀랄만한말이쏟아져나와김태경의시세계를다양하고풍요롭게만들고있다.

연륜확인

같은대상을보고도사람마다느끼는감정은천차만별이다.이를대상을보는개별성이라고한다.시인이생명처럼여기는개성과도연결되는부분이다.장미꽃을보고뜨거운사랑을떠올리는사람이있는가하면이별의슬픔을느끼는사람이있다.이는장미꽃을보며자기를발견하고확인하는과정에서개별적인사연이나감정이떠오르기때문에생기는일이다.
다시말하면대상을보고자기확인을한다는것이다.이는대상과나,또는다른사람을대비시키는일이다.그때대상은,예를들어장미꽃은사람일로환치되며새로운생명력을부여받게된다.뿐만아니라사연과의미로연장되는일도생긴다.
이번시집여기저기서김태경은이러한대상에의한자기확인을다양하게그리고연륜을보태깊은의미를확보하고있다.

명절이면어김없이찾아오는
반갑지않은세배꾼처럼
환절기면잊지않고찾아오는손님
절받으라며맨질한콩댐방바닥에
넙죽엎드리듯
목구멍에자리잡고바짝엎드려
헛기침에도도무지일어설기미없는
아랫목보다뜨겁고
콩댐바닥보다뻔질거리고
조청보다더걸쭉하게들러붙는녀석
나살아가며누군가에게
이렇게열렬히구애한적있던가
이제나이육십지나칠십으로가며
시.쓴.다갖은폼잡지만
이리뜨겁고뻔질하고걸쭉하게
뱉어내고뱉어내도
악착같이물고늘어져콜록거리게한적있던가
시한줄써놓고
무장무장피어나는잡생각에
벌겋게얼굴만달아오르는오후
―「목감기」전문

끈질기게달라붙는감기에의한나확인이다.감기를슬쩍의인화시키며시쓴다고폼만잡는나와연결시킨다.여기서확인이확인으로끝나지않고반성으로까지확장되는모습이중요하다.거기다가‘세배꾼’,‘조청’을양념처럼직유로사용하며입체감도살리고있다.그근간에대상에의한나확인이든든하게자리하고있다.

그래도
3열횡대로줄선수박
한통한통두드려본다

통통퉁퉁텅텅탕탕

이소리야말로
제살아온시간의속살들일터

그중높고맑은놈으로골라
집으로향하는발걸음마다
찍히는묵직한의문부호

오늘하루
나를두드렸을사람들에게
어떤소리로대답했을까?
―「수박을두드리다」에서

이시역시,잘익은수박인지확인하며나도하루를잘살았는지확인하고있다.단순하게잘익었는지가중요한것이아니라통통,퉁퉁두드리며수박이살아온내력을확인하는섬세한접촉이감각적으로울려오고있다.
나확인뿐만아니다.다음시는사과에의한아내확인이다.

거실귀퉁이상자에서꺼낸밀양사과한알
깎이면깎일수록
깊은멍자국선명하게드러난다
얼음골보다더차가운세상에서
만나고스치며부닥치는일다반사라지만
풀지못할아픔얼마나깊었길래
푸른멍불도장처럼새기고있었을까

빨간사과처럼곱던집사람도멍이깊었다
어머니와함께산십여년
시집살이이름값하듯
어머니떠난지이십여년지나도
고장난벽시계뻐꾸기처럼,넋두리
불쑥불쑥튀어나왔다
―「사과를깎으며」에서

사과를깎으며확인된멍든부분을보며가슴이멍든아내를확인하고있다.그렇다면이확인은대상을가리지않고얼마든지확장할수있다는결론에닿게된다.실제로이러한기조가김태경의시곳곳에서나름의개성있는특징으로발견되고있다.그위에얹히는인생연륜은편안한여유를만들어놓고있다.

비유정설

시의특징을살리는방편이비유다.이는긴이야기를짧게압축시키거나,한가지이야기로여러상황을느낄수있게하는힘이있다.또한의미를만드는데에도탁월한효과를기대할수있다.비유는다양한수사법으로나타나지만,단순히수사를위한것이아니라시의의도를살리기위한고도의표현으로꼭필요한때에사용하는것이좋다.김태경의비유는시의적절하게활용되고있어시의품위까지한껏살리고있다.

자유공원벤치한쪽
억척스레살아온만기출옥수들이
짧은햇살안주에
독한바람한잔마시며
나도한때잘나갔던사람이라고
이름만대면다아는곳출신이라고
확인할수없는
확인할필요도없는
뻔한풍을떨며
왁자지껄서걱인다

누군들목구멍이포도청이란말로
그푸르른시절
쥐꼬리만한월급에
스스로수갑채우지않았던사람있던가
감옥아닌감옥에갇혀
머리채잡히고휘둘리지않았던이들있던가

그래도세끼밥먹기어렵던시절
자식굶기지않고
어엿이공부시켜출가시키고
등따실집한채는건졌으니
수인의대가로는
이만하면된게지
성공한게지
감옥도훈장처럼떠벌리며
불콰해진사람들이
따스한가을볕에눅눅한몸말린다
―「낙엽」전문

한시절,억척스레살아온노인들이자유공원벤치에앉아가을햇살을쬐고있다.젊어쥐꼬리만한월급을받아가며마치감옥살이하듯살아왔던노인들이이제만기출옥수라고비유되고있다.그리고노인들을다시가을낙엽과비유하고있다.비유속의비유를통해고령화사회로치닫는이시대분위기를실감나게표현하고있다.끝에나오는‘훈장처럼’은단순직유같지만경외하는마음의의미를효과적으로표현한것이다.

첫아이가태어날것이라는
놀라운일기예보가발표되었다
달력마다커다란동그라미가그려졌고
아이를맞기위한계획들이
소복소복쌓였다
일기예보도예기치못하는삶처럼
종종어긋나기마련
삼일이나늦게아이가태어났다
눈이많이오면
다음해는풍년이라는데
함박눈같은첫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