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초록별

경쾌한 초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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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경쾌한 소리〉, 〈폭삭 속았수다〉, 〈손짓 발짓〉 등의 작품이 수록된 시집이다.
저자

이영숙

저자:이영숙

목차

책을내며

1부경쾌한소리
2부폭삭속았수다
3부손짓발짓
4부예쁜거짓말
5부면허증반납

해설

출판사 서평

순수와진실이만나다
―이영숙의수필세계

수필도나름특징이강하다.문학의주류인시나소설이아니라는것이첫째이유다.물론평론이나희곡도아니다.하지만이들이가지고있는특징을다포용할수있다는것이두번째이유다.세번째는누구나쓸수있다는것이다.하지만문학성있는수필은결코쉽게쓸수없다는것이다.
시는짧고소설은긴데비해수필은그중간이라는것도특징이다.시는숨기는것이고소설은제3자를통해이야기를펼쳐나간다면,수필은자기가주인공이되어주도적으로쓴다는것이다.
여기서특징을살린다는것은장르의구분을확실하게하지만갈수록서로틀어지고만나고헤어지고다시결합하는가운데장르의경계가모호해지고있다.산문시가유행처럼퍼져나가고희곡체수필도오래전에나왔다.장르해체,이도옛말이되었다.퓨전수필이라는말도마찬가지다.
무엇이든어떤틀을만들어놓고그안에가두면,다시말해자유를속박하면어려움을겪게된다.수필이론을보면그런틀이많아의아스럽기까지하다.
수필은쓰는의도에따라이름을달리하기도한다.예를들어일기체로쓸수도있고서간체로도쓸수있다.이렇게확장시켜나가면시체詩體,소설체등도나오게된다.그렇다면시의특징인상상도과감하게가미할수있고소설의특징인대화체를빌려전편을쓸수도있다.이러한파격적인수필쓰기는현대수필에있어서핵심적인요소가된다.이를살려나가야한다는것도고상한수필의한계에서벗어나는다양한시대에부응하는일이된다.
현실이,생각이상상이상으로바뀌는첨단과학세계에서수필은제자리걸음만할수없다.아니다.이제다른장르보다앞서다양한세계를만들어나가야한다.수필이선구자역할을할수있는일들은도처에가득하다.
부담없이현대인들에게다가서기좋다는수필의장점도살려야한다.시처럼어렵지않고이바쁜시대에소설처럼긴글을읽는부담도없다.그러한시대적요청에맞춰다양한시도와새로운소재와문학성있는수필세계를만들어나가야한다.이또한자연스럽게스며들듯일어나야하는일이다.수필의특징은자연스러워야한다는것도빼놓을수없다.
이러한전제는오래수필을쓰고한권의수필집을만드는이영숙수필가의작품을이야기하기위해서이다.수필집속에는한사람의우주가,한생이고스란히들어있다.사상이나철학,사랑과이별등등이어떠한형태로이야기되고풀어나가고의미부여가되고있는가를따져나가는것은그래서진중한일이된다.이를세세히이야기하려면상당한시간과지면이필요하여몇가지로크게특징을잡아이영숙수필가의면면을살펴보고자한다.

이야기곁에서

시를뺀나머지장르는다산문이다.그래서수필과소설은서로다르지만산문이라는측면에서보면이야기를쓴다는점이유사하다.수필속에서제3자이야기가나오면깜박짧은소설읽는기분이들때도있다.이러한소설체수필의진수를이영숙수필가는자주보여주고있다.소재와이야기가문체와잘맞아만들어낸결과이다.

입추가지나자무덥던날씨가조금시원해졌다.저녁이되면공원을산책한다.배롱나무주위를돌며사진을찍고그앞에놓인긴의자에앉아서예쁜꽃을바라보는재미에푹빠져있다.
꽃말은헤어진벗에게보내는마음이다.갑자기심장이벌렁거리며한여인이생각난다.내가새댁때만나2년여한집에살던여인이다.부안으로발령받은남편을따라이사간우리는전세를살게되었다.그곳에서같이세를사는예쁜여자를만났다.
그녀도아들이있었다.방앞에선인장을종류별로많이키웠는데그것을구경하다사귀게되어친구처럼지내게되었다.
―배롱나무에서

배롱나무꽃을보며떠오른그녀가주인공이다.2년여를같이살았던,아들이있었던예쁜그녀이야기가어떤사연으로펼쳐질것인지관심을끌고있다.첫인상이깊게느껴지는부분이다.

주인집은뜰이넓었다.뒤뜰에는앵두나무를비롯해여러과일나무가있고,앞마당에는키가크고굵은목백일홍이우뚝서있었다.우리는배롱나무아래서아이들이자전거를타는것을보며이야기를나누었다.
그녀남편은나이가많고집을비우는일이잦았다.출장간것이라고말은했지만무언가석연치않은느낌이들었다.그렇지만대놓고묻는것도예의가아닌것같아모른척하며일상적인이야기만나누었다.살림도깔끔하게잘하고음식솜씨도좋았다.
―배롱나무에서

그녀의특징을간단명료하게잡아놓고남편이야기로예사롭지않은사연을전개시키며궁금증을유발하고있다.이는구성의문제로이야기를효과적으로풀어내는데유용한일이다.이영숙수필가는이러한세련된구성방법으로독자를글속으로끌어들이고있다.

그날도배롱나무꽃이활짝피었다.깔끔하게차려입은노부인이기웃기웃대문을들여다봤다.누구를찾는것같더니마당에서뛰어놀던아이를보고달려가껴안고울었다.한참을울던노부인은놀라서쳐다보는그녀의손을잡고방으로들어갔다.나는덩달아놀라서얼른아들을안고방으로들어왔다.궁금하지만엿들을수도없는노릇이었기에애만태웠다.
몇시간이지났다.기척없이조용하더니노부인이조용히나와대문을나섰다.배웅하는그녀눈이울었는지뻘겋게충혈되었다.
―배롱나무에서

노부인과그녀와아이사이에묘한기류가흐르고있다.사실이픽션보다더절절한분위기를보여주고있다.수필이소설보다더진한이야기를전해줄수있다는것을증명하고있다.소설체수필의진수가유감없이발휘되고있는것이다.이는수필의장점을살려소설적특징을끌어들인결과이다.

배롱나무꽃은점점더붉게물들어갔다.주인집아주머니가배롱나무밑으로나를불렀다.
“이제야하는말인데….”
아주머니는누가들을까겁나는듯조심하면서말했다.
그녀의남편은원래결혼한사람이라고했다.아이가없어서따로여기에살림을차렸단다.그녀와의사이에서아들을하나얻은남자는신이나서먼저부인과이혼하려고했지만완고한어머니는조강지처는내쫓는게아니라면서아기를데리고오면키우겠다고하더란다.지난번노부인이온것도그문제때문이었다고한다.노부인이자네는젊으니아기를주고새삶을살도록하라며돈을두둑이줬다고한다.
“절대로아기를못준다고했다는데….”
아주머니가안타까운듯말을흐렸다.
배롱나무꽃은지고있는데친정에간다던그녀는백일이지나도오지를않았다.며칠지나집에온그녀의남편은아기와엄마가없는걸알고그길로뛰쳐나갔다.
―배롱나무에서

소재가이야기를만들고그다음어떠한글로형태를만들것인가는중요하다.배롱나무는여기서엑스트라지만차마꺼내기힘든붉은사연을전해주는메시지강한존재로등장하고있다.그리고예전에있었던이야기를통해이시대있을또다른붉은사연들을유추해보게한다.시대가바뀌어도사람살아가는과정에서생기는사연들은끊임없이이어지고생기고또사라지고있다.이를놓치지않고끌어당기는힘이이영숙수필가에게있다는것도확인하게된다.

상상곁에서

문학의나라에서상상은최고의권좌에앉아있다.그런데유독수필의나라에서는그명성만큼제자리를지키지못하고있다.수필이사실적인이야기를해야한다는특징때문이지만사실에기반을둔상상은얼마든지사용가능한일이다.상상이없어오히려수필이딱딱하고삭막한느낌이든다면지나친억측일까.아니다.상상은사실적요소를윤택하게하며여유까지만들어주는역할을한다.초현실까지는아니라도상상을통해사실이안고있는한계도극복하고문학성도확보할수있다.글은생각을쓰는것이기때문이다.

상쾌하면서도달콤한로봇새소리에J씨는눈을떴다.피곤이가시지않아삼십분정도더잘까하다가오늘이어머니생신이라는것이생각나벌떡일어났다.이미생신선물로달나라에육박칠일을패키지로보내드렸지만98세되는날을혼자보내게둘수는없었다.
―中略
벨을누르니똘똘이가쟁반에뜨거운물수건이랑양치할물을가지고온다.오늘따라발걸음이시원치않다.똘똘이녀석,업데이트할때가되었나보다.아침은간단하게알약으로부탁하고뉴스를본다.
―中略
이번에는종합비타민이들어있는귀걸이를사가리라마음먹는다.귀걸이처럼끼고있으면자동으로비타민이투입된다.
―中略
어머니는아직도J씨가어린애로보인다.만날때마다자가비행기운전조심해라,불조심하라며잔소리한다.냉장고단추를눌러자동으로깎은과일을내놓고먹으라고성화를부린다.그럴때마다J씨는어린아이가되어어리광섞인미소를날리며과일을먹는다.
―中略
아침건강체크를위해J씨는닥터를부른다.컴퓨터에연결하기만하면로봇이온몸을진찰하고처방을내준다.이는아직성성하며혈압도정상으로조절되고있고당뇨는위험수위에있으나약만꾸준히먹으면좋아진다고말한다.‘좋아요.’J씨는혼자중얼거리며옷을입는다.
―2045년의어느봄날에서

20년후를상상하며쓴마치공상과학소설같은수필이다.여기서상상과소설이극적으로만나는장면을살펴보게된다.상상은무한대다.그세계를마음껏날아다니도록신神은인간에게특혜를주었다.이은총을쓸데없는생각이라고,현실성이없다고등한시할것인가.그렇지않다.단순하게생각할수없는부분들이상상속에는충분히들어있다.
일차,지금우리살아가는현실과20년후의상상이비유되는모습이새롭고신기하다.달나라로여행을가거나자가비행기를타고다닌다는가상은현실로다가올지모른다.때로모른다는말이가지고있는매력을곱씹어보게된다.
이차,재미가있다.상상이가지고있는특징이다.이를즐기는것은현실의팍팍한현실에윤활유같은역할을해준다.상상도못하고현실에발목잡힌채허덕이며살아가야만하는가.수필도그래야하는가,쉽게동의할수없는부분이다.
이영숙수필가는이미알고있다.상상의세계에서상상이상의이야기와의미가만들어진다는것을.기실20년이문제가아니라30년,50년,100년뒤를헤아려보고있다는것도은근숨기고있다.그런매력을슬쩍꺼내보여주고있다.

손님곁에서

정현종시인은방문객이라는시에서한사람이찾아오는것은한사람의일생이찾아오는것이라고했다.그렇다면글쓰는사람에게찾아오는사람들은모두각별한인연이된다.그사람들의일생을찬찬히살펴보면그안에숨겨진사연들은또얼마나많을것인가.누군들한가지아픔과한恨이없을것인가.그래서글쓰는사람은내말보다는남의말을많이들어야한다는공식이나온다.비록그사람이진상을떨더라도말이다.

우리교회에는걸인들이많이온다.한사람,두사람,셋,넷.시도때도없이와서돈을달라고한다.사무원이정신이없어일을못하자일주일에한번주겠다고공표했다.정해준목요일이면열명정도의손님들이와서아침부터줄을선다.여기온사람들은이곳에서돈을받고는재빨리또다른교회로이동한다.
그중에한사람인그는키도크고허우대도멀쩡하다.넉살인지사교성인지인사성도밝다.줄을서있다가도교인이들어서면넙죽인사를하고활짝웃는다.주일이되면교회식당에와서식판을들고서있고,밥을다먹고도돌아가지않고있다가식당청소때의자를올려놓거나걸레질을도와준다.반찬이남으면싸주는걸기다리기도한다.
―진상손님에서

힘들고어려운사람을도와준다는것은말처럼쉬운일은아니다.그것도멀쩡하게생긴사람이자기힘으로살아갈생각은없이남의도움만바란다면분명진상이다.그런사람에게손님이라고불러주는이영숙수필가의마음이먼저읽힌다.단순히흉보려는것이아니라그밑바탕에사랑과관심이깔려있다.이는이번수필집전편에은은하게깔려있다.

교회를다짓고이사를와서여러가지행사로바쁘게지내던어느날이다.일층에커피자판기가있고교인들이차를마시며대화하라고의자를놓았다.본것같기도하고,처음같기도한어떤사람이앉아우리를보고씩웃는다.옷을단정하게차려입은것으로봐서새로등록한교인인가싶었다.씩웃는얼굴을본순간몇년전까지우리교회를드나들던그진상손님인것을알게되었다.반가운마음에그동안어디서어떻게살았냐고물었더니
“커피한잔빼주면말할게요.”
하며뻐기듯한다.
달달한커피한잔에행복해하며그가말하기를코로나때문에집에다녀왔다고한다.놀라움에집이있었냐고물으니집없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