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소방관이저술한소방미시사
불과싸우며발전한인류의발자취담아
화염과연기로뒤덮인화재현장을누비는현직소방관이불과싸우며발전한인류의발자취를책으로엮어냈다.인류는불을발견하고제어하고화재와싸우면서삶의질을높이고대도시를형성해오늘날과같은문명에이르렀다.불이라는관점에서보면,인류의역사는불을다루고화재진압능력과기술및소방조직을발전시켜온역사이기도하다.
《소방의역사》는이처럼중요한인류사의한부분인소방의미시사를탐구한책이다.국내에서는처음이며더구나현직소방관이관련분야역사서를집필한경우는세계적으로도유사한경우를찾기는쉽지않을것이다.소방에관한국내도서나자료가매우부족한현실에서저자는오랜기간과학과기술,인류학과고생물학,도시사를틈틈이독학하고,본격적으로집필에들어간3년동안은퇴근후와비번시간을해외의특허문서,기사,논문,블로그등을뒤지며자료를찾고정리하는작업에꼬박바쳤다.
저자송병준은2006년소방공무원으로임용되어인천소방본부산하공단소방서,남부(미추홀)소방서,인천소방학교에서근무했고,소방청중앙소방학교교수요원,화재교관을거쳐현재인천소방본부소속소방관으로지금도화재현장에서일하고있다.
3억년전지구에불의발생이가능해지고
142만년전호모에렉투스부터불을활용하다
소방활동이전에먼저불이있었다.그런데지구상에불은언제부터존재했을까.소방학에서는불의3요소를‘탈수있는물질(가연물)’,‘산소’,‘열’이라고말한다.이세요소가모두갖춰져야불이일어나는데,이를근거로따져보면우리가사는이지구에불이발생할수있는환경이마련된것은대기에일정한산소농도가조성되고육지에연소가능한유기물이풍성해진시기,즉지금으로부터약3억년전쯤이다.
불은우주공간,이를테면대기가없거나대기조성비가다른행성에서는일상적으로발생하는현상이아니다.대기중에일정한산소농도가유지되고지표면에탈수있는유기물,즉탄소화합물이풍부한지구와같은환경이전제되어야일어날수있다.지구에서도대기중산소농도가21퍼센트로유지되는현재를기준으로가연물이있는공간에열에너지가모이는우연한사건이있어야만발생할수있는,어쩌면지구에서만발생하는아주특별한현상인것이다.-27쪽
그렇다면인류는언제부터불을인지하고활용했을까.불을사용한시점에관한가장오래된증거는케냐체소완자에서올도완Oldowan석기라불리는뗀석기와함께발견된불에탄진흙조각을들수있다.이를근거로호모에렉투스가활동하던142만년전부터불을사용하기시작했다고보는것이고생물학의견해라고저자는소개한다.
이런사실을알게된아이오와대학교의인류학자질프루에츠JillD.Pruetz와유타대학교의니콜허조그NicoleM.Herzog는이침팬지무리를통해초기인류와불의연관성을살펴보는연구를진행했다.두인류학자는인류가불을다루는능력이세단계의인지적진화과정을거치며갖춰졌다는모델을설정했다.
첫번째단계는불의움직임을이해하고예상하여불가까이에갈수있을정도로불의개념을인지하는것,두번째단계는연료를더공급하거나제거해서불을키우거나작게할수있는통제능력을갖추는것,그리고세번째단계는불이없는곳에서불을피울수있는능력을갖추는것이었다.각단계별능력은순차적으로습득하는것으로예측했으며,마지막단계에이르러서야비로소인류가화식을할수있는것으로보았다.-128쪽
불을자유롭게사용하는능력을획득하면서인간의생활전반에걸쳐질적이고극적인변화가일어났다.불을사용하면서문명생활을시작할수있었다는사실에는이견이없을정도로불은생활에불가결하고유용한것이었지만한편으로주변환경뿐아니라인간의생명까지도파괴하는위험성도갖고있었다.따라서불로인한재난즉화재를예방하거나제압하는능력이필수적인요소로떠올랐다.이로부터이책의주제인소방기술,소화약제,소방도구및조직등이어떻게고안되었고변화,발전했는지를추적하는저자의방대한탐사가이어진다.
실수요자의필요에부응한구성
지적탐구와현장지향성을결합한종합소방교양서
인류와불의관계부터탐색을시작하지만《소방의역사》는시계열에따른연대기적구성이아니다.이책은1부소화약제(불을끄는물질)의역사,2부소화기구의역사,3부펌프,유체역학,동력기관,4부소방차의역사,5부스프링클러의역사,6부경보설비의역사,7부피난설비의역사,8부소방관의역사등언뜻보면실무매뉴얼과도같은특이한구성이다.하지만조금만살펴보면이는철저히현장에서필요한실용성을목적으로한접근임을알수있다.저자는지적호기심을충족시키기위한탐색못지않게화재현장이나실무교육현장에서활용가능하도록소방관련실무자나자격증준비자등실수요자들의필요성을염두에두고구성했다.
저자는화재현장은물론관련교육기관에서근무하면서현재사용중인소화약제나소화기구,소방차,소방설비등의기원,쓰임새,작동원리,효용과한계등을사용자들에게알기쉽게전달하는것이얼마나어려운일인지를절감했다.심지어법령등에는실제쓰임과맞지않는용어나사실이일정테두리안에서계속재생산되는현실에의문이많았다.
아무리소방설비와조직을늘린다고해도우리나라에서는매년4만여건의화재가발생하여2천여명의인명피해와1조원이상의재산손실이발생한다.문명이발달하면인간이사용하는기계와물품이달라지고그때마다소화방법도변화한다.이역동적인상호관계를깊이인지하고화재가일어나는조건과방식,대처법에대한관심과다양한상상력을증폭시켜화재를사전에예방하거나피해를최소화하도록교육하는것이이책의주요집필동기이기도하다.
실용성을염두에둔이같은구성은또한소방의최우선목적이인명피해를줄이는쪽으로변화해온과정을일목요연하게보여주는장점도있다.모든소방도구와설비,소방조직의발전은일관되게초기역사에서는건물등재산을지키는데중점을둔활동이었지만현대로올수록인명의가치를우선시하는쪽으로바뀌었기때문이다.
1820년대영국에서는미용사이자화가,작가인에이브러햄위벨AbrahamWivell이당시영국의사설소방대가행하는소방활동의목적이인명보호보다는주로건축물인재산보호에치중하는것을문제로삼았다.이를계기로위벨은화재가난건물위층에서지상으로미처대피하지못해퇴로가막힌사람을창문으로대피시키기위해접이식사다리에바퀴를단피난기구를만들었다.이사다리는접혀있을때는2층까지닿고갈고리가달린추가사다리를펼치면4층까지닿을수있었다.사다리에사람이오르내리는면반대쪽에는위아래가뚫린천으로만든긴자루를매달아여러사람이미끄럼을타서지상으로내려올수있게했다.1836년위벨은‘화재로부터인명을보호하기위한왕립학회RoyalSocietyforProtectionofLifefromFire’를조직하고런던곳곳에85개의사다리차를보급했다.-349~350쪽
대연각호텔화재에서인명피해가많았던이유는경제발전의가치를최우선으로하던시대에인명을중시하는안전의식이뒷전으로밀려난탓이가장크다.그증거로1984년발생한부산대아관광호텔화재를들수있다.대연각화재의교훈으로개선된방화대책이적용되었지만비슷한원인에의해인명피해가컸다.이화재에서는스프링클러가전혀작동하지않았고,호텔내장재는방염성능이없는가연성으로만들어졌으며,경보설비와유도등도제역할을하지못했다.또건물내비상구출입문중다수가잠겨있었다.-644쪽
이처럼《소방의역사》는흥미롭게읽을수있는화재와소방대응의미시사이자인류문명사이기도하지만,소방직무에종사하거나관련업무를준비하는사람들에게는자격증을위한수험서에서는구하지못할배경교양과상식,원리와시뮬레이션을풍부하게제공하는현장지향적인종합교양서라할수있다.
스쿼츠부터스프링클러까지
소방의발전이있었기에가능한대도시의삶
농경사회가되고촌락을이루어살면서가옥밀집도가높아지자화재의규모또한커졌다.특히고대그리스,이집트,로마등문명이번성한곳은예외없이엄청난화재피해를입은뒤에소방기술이나조직이발전하기시작한다.《소방의역사》는기록이남아있는것중불을끄기위한최초의기구스쿼츠부터현대의빌딩에필수설비로들어간스프링클러와화재경보기,유도등에이르기까지소방기술의혁신과발전을촘촘하게탐색한다.
오늘날대도시생활에익숙한현대인들은소방의발전이도시형성에서얼마나중대한역할을했는지쉽게짐작하지못한다.예를들어1666년9월2일부터6일까지런던에서발생한대화재는1만3200채의가옥과87채의교구교회,세인트폴대성당등화재범위내건축물대부분을파괴했는데,이는런던전체건축물의대략5분의4에달하는것이었고전체인구8만명중7만명이거주지를잃을정도의규모였다.런던대화재는화재에대한대비가없다면도시의존립이불가능함을보여준참사였다.
대화재이후1년만에도시재건을위한자금모집수단으로주택대출상품과화재보험이고안되었다.또대화재를겪은런던당국은도시를위협하는화재위험에대처하는정책을적극적으로펼쳐나가1708년에는모든교구에수동소방펌프를보유할것을의무화했고,1726년에는영국북동부요크셔주에영국최초로시의재정으로급료를받는유급소방대를설치했다.이러한보완이이루어진직후런던은산업혁명의중심지가되고불과수십년사이에인구가100만명으로비약적으로증가한거대도시가되었다.산업혁명과대도시화의근저에는런던대화재이후눈에띄게늘어난소방기술과소방조직의발전이존재했던것이다.
큰화재를겪으면서대처방안을강구하고도성에집중되는인구규모를늘려나간것은우리나라도마찬가지다.대규모피해를입은화재와이에대한왕의조치등은《삼국사기》에도남아있다.구체적인소방조직의변천과활동사를자세히들여다볼수있는것은세종대왕때부터다.역시한양에서발생한대화재가던진충격때문이었다.
세종즉위8년째인1426년2월15일한양성에서방화로추정되는대화재가발생했다.당시중부와동서남북5부로나뉜한양에서중부1630호,동부190호,남부350호등한양전체가옥의10분의1정도인2200채의가옥이소실되는규모였다.(중략)
1431년세종13년에는밧줄,사다리,갈고리,도끼를장비한화재진압대격의금화군이편성되었다.금화군은화재를발견하면깃발을올리고북을울려화재사실을알렸고,신패信牌를패용해통행이금지된야간에도이동할수있었다.이들은불이도시전체로번지는것을막기위해건물을파괴하는활동을주로했으며물에적신천으로불을덮어껐다.-678~680쪽
유엔경제사회국(DESA)은인구1천만명이상이거주하는대도시를‘메가시티’로분류하는데,오늘날전세계에는메가시티만30여개에이르며지구상인구의거의절반이대도시에서삶을이어가고있다.이거대한도시화이면에상상을뛰어넘는화재경험과소방의발전이치열하게각축을벌였음을《소방의역사》는생생한파노라마로보여준다.
화재와안전에관심있는일반인에게는교양서이자
위험감수성을키울수있는기회
우리나라에서는매년4만여건의화재가일어나수많은인명피해와엄청난재산상의손실이발생한다.화재가일어나면예외없이인재라는말이나오고방화문이열려있었다,스프링클러가작동하지않았다,비상통로가역할을못했다,경보가울리지않았다는등의사후진단이나온다.화재에대비한건축물의설비가제대로작동하지않은점과더불어안전에대한사람들의무관심이화재를키우고인명피해를늘렸다는것이다.
우리주변을주의깊게둘러보면의외로소방관련도구나장치가곳곳에설치되어있다.하지만평상시이를눈여겨보고사용법에관심을기울이거나유사시에대비해자신의안전을지키려는노력은부족하다.이는소방청이주관한‘화재관련국민인식도설문조사’(2019년)에서도간접적으로드러난다.“화재를위험하게느끼는지에관한질문에화재를직간접적으로경험한국민의86퍼센트는‘화재가위험하다’고응답한반면에,경험이없는국민중에서는전체응답자중75퍼센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