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큰글자도서)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큰글자도서)

$31.73
Description
구청 화장실 앞 한 평짜리 법률 상담소
그곳에서 만난 찡하고 짠한 사람과 세상 이야기
리어카를 끌며 폐지 줍는 할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리어카로 비싼 자동차를 긁어 재판까지 가게 됐다. 판사가 제발 묻는 말에만 답하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타령을 하듯 그간 본인의 고단한 삶을 다 토해 냈다. 급기야 상대측 변호사에게 거짓말쟁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참다못한 판사도 같이 소리쳤다. “자꾸 이렇게 소란 피우면 감치할 겁니다!” 할머니가 그게 뭐냐고 물었다. 어차피 설명해 봤자 말만 길어진다고 생각한 판사는 이렇게 답했다. “엄청 무서운 거예요!” 심각한 분위기와 그렇지 못한 대사에 웃음이 터지려는 그때, 할머니가 다시 물었다. “얼마나 무서운 거예요? 돈 드는 거예요?”
사회복지사의 요청으로 엉겁결에 할머니의 재판에 동행한 변호사는 그 말을 듣고 10톤 화물 트럭에 실려 있던 돌들이 가슴 위로 떨어지는 듯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법정에서 나왔다.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난 터라 밥이라도 들고 가시라고 하자, 집에 치매 걸린 할아버지를 묶어 놓고 와서 얼른 가 봐야 된다고 하신다. 할아버지가 젊어서 바람피운 일이나, 늙어서 아픈 것도 다 감당할 수 있는데, 날씨가 궂은 날에 폐지를 줍지 못하면 벌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미워하게 만드는 돈이 할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한다. 평생 게으름이나 낭비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게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돈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삶은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할머니를 집 앞까지 모셔다 드리고, 식사라도 챙기시라고 수중에 있는 현금을 몽땅 털어, 한사코 거절하시는 손에 쥐여 드렸다. 저희 할머니가 생각나서 그런다고, 손녀가 주는 용돈이라 생각하고 맛있는 고기반찬 사 드시라고 말씀드리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어 주는 변호사가 있다. 법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고, 살면서 변호사를 만날 일 같은 건 없기를 바라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닥치는 불행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구하려고 법이 있다지만, 안타깝게도 그 법조차 내 편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법보다 사람 편에 서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친구 같은 변호사가 곁에 있다면 어떨까. 당장 명쾌한 법적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해도, 내 억울한 처지와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심정을 헤아려 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지금은 신림동이라고 불리는 난곡 달동네에서 나고 자란 천수이 변호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달동네 판자촌에서 사회운동에 헌신한 부모님과 달리, 그는 누구보다 가난이 싫어서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또다시 어려운 사람들 곁에 머물며 그들을 돕는 자리에 가게 됐다. 구청 복도 화장실 앞 한 평짜리 무료 법률 상담소가 그곳이다.
공짜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노숙자, 야쿠르트 배달 아주머니, 일용직 건설 노동자, 유언장을 쓰려면 한글부터 배워야 하는 할머니 등 가장 법의 보호가 필요하면서도 그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어서 그저 손 한번 지그시 잡아 드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의뢰인들의 무력한 모습에서 어린 시절 이웃들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는 저도 모르게 화가 나고, 별 도움도 못 되는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나 고민이 깊었다. ‘의뢰인들이 나보다 더 훌륭한 변호사를 만났다면 더 좋은 답을 얻어 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상담을 거듭할수록 이 자리는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들어 주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인들은 속 시원한 답을 원해서만 그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변호사의 돈이 되는 백 마디 조언보다 한 사람의 진심 어린 관심이 더 절실하고, 그것만으로 힘이 날 때가 있다.
난생처음 듣는 별의별 사연들 앞에서 의뢰인보다 더 황망해하던 초짜 변호사를 누구의 어떤 이야기에도 맞장구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운 건 오히려 의뢰인들이었다. 학교나 책에서는 결코 배우지 못할 인생 경험을 한 보따리씩 풀어놓고 가는 이들 덕분에, 다른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답을 줄 때, 저자는 의뢰인에게서 자기 인생의 답을 배웠다. 그렇게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람이 되어 가는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

천수이

변호사,법학전문박사(민사법),사회복지사(2급).달동네에서태어나고자랐다.‘더불어함께’라는가훈아래사회운동에헌신한부모님과달리,가난이누구보다싫어서돈잘버는변호사가되고싶었다.그러나아무리발버둥쳐도도움이필요한사람들에게서벗어날수없었다.오히려그들에게도움의손길을건넬때마음이편해지는자신을발견했다.대학시절에500시간가까이멘토링봉사활동을하고,변호사가되어서는취약계층을위한무료법률상담자리를택했다.지금은그자리를떠났지만,틈틈이마을변호사로활동하고,장애인시설에대한인권자문,학교밖청소년·한부모가정·스토킹범죄피해자등을위한법률지원을하며지내고있다.

목차

추천의말
프롤로그:법의빈틈을채우는사람의온기

1장준비-달동네K-장녀,로스쿨에가다
태어나보니다정해져있더라
이름이바뀌면인생도바뀔까
돼지에서영웅이되는반전드라마
결핍이독이아닌득이되도록
녹슨칼의쓸모

2장시작-변호사인듯변호사아닌변호사같은
긴가민가할때는대부분기다
진실과사실은다릅니다
속는것도나,속이는것도나
사실우리는모두괜찮지않다
변호사를고소하고싶어요
목도리도마뱀의가을

3장가족-가장가깝고도먼사이
압구정이씨도가능한세상인데
끔찍하게소중한내아이가끔찍한사람이되지않길
내딸이아닌사람이호적에있어요
나도엄마가되고싶다고요
브라보,아빠의인생
이제고작100일주제에탕수육을


4장관계-가장가깝고도먼사이
매일아침10시에동료가온다
명예에살고명예에죽는다
하늘아래태양은둘이될수있어요
친애하는이웃육촌들에게
대체할수없는것들에대한낭만
인정사정볼것있다

5장삶-그럼에도불구하고계속되어야하는것들
다음이궁금해서눈을감지못합니다
조금구겨져도괜찮아요
가혹한삶의끝에헛된희망이라도
망할병에걸렸습니다
차가운머리도그들편에함께서있기에

6장끝-처음과같이이제와항상영원히
세상에의미없는일은없다
가장슬픈공지를합니다
누구보다더힘차게살아남을사람이되어
세상에서제일무서운것은
마지막순간에후회가남지않도록

에필로그:잘듣다갑니다

출판사 서평

리더스원의큰글자도서는글자가작아독서에어려움을겪는모든분들에게편안한독서환경을제공하기위해‘글자크기’와‘줄간격’을일반단행본보다‘120%~150%’확대한책입니다.
시력이좋지않거나글자가작아답답함을느끼는분들에게책읽기의즐거움을되찾아드리고자합니다.


“법이당신편이아닌순간에도
여전히당신편에서고자하는사람들이있다.”

차가운법이미처헤아리지못한빈틈을
사람의온기로채워간682일의기록

아동추행범으로몰려교도소에다녀오니가족들은다이사가버리고어디하나자신을받아주는곳이없어노숙자가되었다는남자.그는억울하게옥살이한것은보상받을수없더라도가족은되찾고싶다며변호사를찾아왔다.
남편의폭력을견디다못해임신한몸으로집을뛰쳐나와과거를숨기고재혼한여자.뱃속의아이를차마입양보낼수없어현재남편의아이인양키운그녀는여전히자신의가족관계증명서에남아있는50년전의흔적을지울수있는지묻는다.괴롭더라도자신만입을다물면,모두가행복할수있다고믿기때문이다.
자전거를타다보행자와부딪쳐상해를입힌의뢰인은지체장애가있다.기초수급70만원으로살아가는그에게400만원의벌금과2000만원의민사소송보상금을마련할돈이있을리없다.노역이라도해서벌금을내고피해를보상하고싶지만,불편한몸을그렇게죗값을치르는것조차허용하지않는다.벌금을감경해주십사재판부에선처를구하게된이유다.
사람은이름따라간다더니,어려서부터‘수이한’사건사고를몰고다니던저자는변호사가되어서도기막히고억울하고엉뚱한사연들을자석처럼끌어당긴다.드라마보다더드라마같은‘출생의비밀’부터보이스피싱,깡통주택전세사기,사생활동영상유포,명예훼손,파산/회생등평범한사람들이살면서겪을법한불운할일들까지그야말로각양각색이다.
언뜻흔하고별것아닌일처럼보이는사연도자세히들여다보면드라마같지않은인생이없다.법적으로는판단이분명하나,인간적으로는잘잘못을쉽게단정할수없는상황도많다.배가고파서마트에서즉석밥과라면을훔친현대판장발장같은어르신,살아서평생가족들에게짐만된아버지의장례치르기를거부하는자식을뭐라고나무랄수있을까.법은옳고그름과유무죄를냉정하게가르지만,사람사는세상은그렇게무자르듯나뉘지않는다.알고보면저마다안타깝고어찌할수없는속사정이있다.그러니내가그삶을살아보지않고는어떤것도,그누구의삶도쉽게함부로말할수없다.
법이아무리잘나고똑똑해도세상만사를해결해줄수는없기에법또한완벽하지않은것이당연하다.그래서2006년대전고등법원의한판결문에서는법을기성복에비유했다.아무리다양한치수의옷을만들어두어도모든사람이그옷에맞을리없는것처럼,법의이성에도빈틈이있다면그틈을메우는것은사람의사랑이라고저자는믿는다.
사랑이라고해서그리거창하고대단한무언가가아니다.우리인생에시린겨울이닥칠때,저자가의뢰인들의이야기를들어주었듯서로의이야기에관심을갖고귀기울이는것,힘들어보이는누군가에게먼저손내밀어주기도하고,누군가가내민손을붙잡기도하며그계절을무사히헤쳐나가는것이다.저자의믿음처럼,이책에는고단하고팍팍한사연들사이로곳곳에따스한온기가가득하다.의뢰인들이수임료대신놓고간,갓쪄낸고구마와손수튀긴오징어튀김처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