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날들

찬란한 날들

$17.00
Description
과거와 현재를 교직交織하며 삶의 의미를 깁는
주목해야할 신인 작가의 첫 소설집!
설움과 분노, 절망과 저항 끝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삶의 빛!
어두움 속 저 멀리 작고 희미하게 빛나는
반딧불을 닮은 7편의 이야기

한소은 소설집 『찬란한 날들』에는 2023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국경」을 비롯해 어둡고 구석진 사회의 단면과 극한의 상황에서 선연히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을 예리한 시선으로 묘사한 7편의 단편이 모아져 있다.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세계관과 분위기로 무겁게 느껴지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어째서인지 꺼져가는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처럼 어렴풋한 빛과 희망이 여운처럼 남게 된다. 그때 우리는 학대와 폭력 속에 방치되고 무기력함에 휘둘린 삶을 지나 마침내 다시 출발선에 선 인물들을 응원할 수 있게 된다.

삶에는 분명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우린 가끔 그 앞에 무릎을 꿇기도 하지만,
결국, 온 힘을 다해 일어선다.
먼 훗날 돌아보면, 힘들었던 순간들마저
어쩌면 찬란했던 날들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편 한편의 작품이 되었다.
- 한소은(저자)
저자

한소은

서울에서태어났다.대학에서철학과문예창작을공부했고,2023년강원일보신춘문예에「국경」이당선되어등단했다.읽고,걷고,여행하는걸좋아한다.그시간들을헤아리며생각한이야기를소설로꾸미고있다.

목차

국경
세상끝,소녀
찬란한날들
아이의집
빛의고백
너의날개는그날바람에스쳐가듯흔들리고
화분

출판사 서평

설움과분노,절망과저항끝에서다시피어오르는찬란한날들!
트라우마를뒤로하고빛의세상으로나아가는힘겨운삶의여정

“이제나는서러움이무엇인지알고있다.
사라진불꽃너머다시내게손짓하는저흰연기처럼.”

나무들사이에초조하게몸을웅크리고있는여섯명의사내들.그들은운전수와안내인이이끄는소형버스를타고국경을넘으려한다.그는낯선사내들과버스뒷좌석아래비밀공간,섬뜩한냉기와어둠뿐인그곳에들어가숨는다.아침해가떠오를시간,크리스마스아침이밝아올무렵이면국경에도착할예정이다.그가아이였을때남자(아버지)는여자(엄마)를학대했다.남자는늘술에취해있었고여자는하루종일쇠솥을닦았다.그가자라서소년이되었을때여자는남자를떠났고,남자의분노는소년을향했다.남자의폭력에소년의얼굴은핏물로얼룩졌다.여자가저쪽나라로떠났다는풍문에,소년은여자가있는곳으로가기로결심했다.소년은청년이되었고남자가집을비운사이도망쳤다.그리고지금개조된버스안,역한술냄새가진동하는비좁은공간에서미래를꿈꾸고있다.

남자의두꺼운손이소년의머리를치던날,소년은쇠기둥에이마가깊게패었다.핏물이눈물처럼소년의얼굴로흘러내렸다.피를닦아줄사람은아무도없었다.[…]소년은남자에게아무것도묻지않았다.여자가저쪽나라로떠났다는사실을소년은오랜시간이지난후에야믿을수있었다.소년은여자가있는곳으로가겠다고결심했다.-「국경」중에서(p.17)

열일곱여자아이에게운명은가혹하기만했다.아빠는늘술에취해소리를지르고화를낸다.상이엎어지고집안가구들이부서져나가는날들속에서어느날아빠는집을나가돌아오지않았고몇년후아빠가죽었다는연락을받았다.엄마마저갑자기사라져버리고남은가족은이제남동생과병든할머니뿐이다.돈이필요했다.소녀는친구가회사원아저씨와화상통화를하던채팅사이트에접속했다.그렇게벼랑끝세상에서소녀는서러움을삼키며일탈을꿈꾼다.

초등학교6학년봄,처음내몸에서흘러나오는피를보았을때도,중학교2학년가을,정말작은배낭하나만큼의짐만챙겨엄마가사라졌을때도,작년겨울계단에서구른할머니가다시는일어설수없을지도모른다는불안에시달리던밤에도나는운명을생각했었다.그건마치내가세상에서제일두려워하는사마귀나뱀따위의긴생명체가나를칭칭감고조르는기분이었다.-「세상끝,소녀」중에서(p.49)


구겨진현실에대한애정어린응시와
존재의모습을탐문하는치열하고섬세한서사!

스물여섯.행복할줄만알았던결혼생활이시작되었다.허니문베이비가생기고임신휴가같은건생각할수도없는직장에서출산직전까지일했다.아이가태어난후에도일을쉴수는없었다.휴가는일주일뿐이었다.고단한날들속에서도먼나라의파도소리를상상하며차곡차곡모은돈으로저렴한동남아패키지여행도다녀왔지만,돌파구가되지못했다.아픈아이를안고달려간병원,뒤늦게도착한남편의낯선새양복에서처음맡아보는향이배어난다.이제나는무기력하기만한삶에서벗어나기로결심한다.

우리앞엔,너의이름처럼찬란한날들이펼쳐질거라고하면,아이는이해할수있을까.
어디선가작은벌레가날아와옷자락에앉았다.오래전보았던반딧불을떠올려본다.작고여린그빛은,부신태양빛에가려숨어있다.어둠이내리면,그때는다시볼수있을까.
-「찬란한날들」중에서(p.103)

아내의폐가좋지않다는진단을받고잠시도시를떠나산주변공기가맑은곳으로한달살기를떠났건만그집에들어서는순간어쩐지느낌이좋지않았다.이웃집마당에는얼굴에멍이있고입술이터진채로한아이가쭈그려앉아있다.아내는오히려그곳에서어릴적암흑같던기억을떠올렸다.엄마가일을나가면1층거실에서텔레비전을보던나를위층으로끌던아빠의손,어느날엄마가방문을열고비명을지르던모습,그리고내팔과다리에보이던검은얼룩들…….아내는아이가계속신경쓰여잠을이룰수없었다.

아이는추운듯몸을웅크렸다.아내는아이를가만히안았다.아내의품안에서아이는조용히흐느꼈다.오래된무언가를내려놓고,아주긴시간숨긴채살아가야할무언가를품에안듯이.아이를안은아내의눈에서도눈물이흘러내렸다.
-「아이의집」중에서(p.133)

정착하지못하고떠나야만하는사람들.그리고남겨진사람들.끝없이강하고숨막히는사막에도달하면쏟아지는빛아래서사랑과이별의해답을얻을수있을까.화자는다른여자와그의이름이박힌청첩장을본뒤회사를그만두고먼나라로떠난다.다시살아갈힘을찾기위해.말도통하지않는낯선곳에서룸메이트가된J,그녀의배꼽언저리엔‘타투’가새겨져있었고,그것은세상에태어나는대신빛으로사라진아이의무덤이라고했다.

J의이야기가아파서저는아무말도할수가없었습니다.왜아이를낳지않은거냐고?그를사랑하지않았느냐고?J는빛을잃어가는저녁무렵의하늘같이슬픈목소리로말합니다.난한곳에정착할수없어.세상의모든하늘을내눈에담으려면떠나야만했거든.아이는내게그걸알려주고떠난거야.이젠그만떠날시간이됐다고말이야.-「빛의고백」중에서(p.159~160)

남편의이별통보에세영은갈피를잡지못한채환영처럼어른거리는기억속으로빨려들어간다.고등학생시절한동네에살던우진에대한오랜기억이다.10년만이었다.우진이다시세영의앞에잔상을드러낸것이.수능전날찾아와꼭한번오토바이를태워보고싶다던우진의그애절한눈빛을아직도잊지못한다.세영은그부탁을저버렸고그날밤,사고가있었다.세영은오랫동안그날우진을만나러가지않은자신을용서할수없었다.

성훈을만나야한다.나는이제괜찮다고,나는이제너를사랑할수있다고.나는이제네안에서다른누군가를찾지않을거라고.세영은입술을꾹다물었다.내가두려워했던건우진에대한죄책감이아니었다.다시누군가를잃게될지모른다는,불안때문이었다.
-「너의날개는그날바람에스쳐가듯흔들리고」중에서(p.192)

오십세에알츠하이머진단을받은아버지는엄마와결혼한지얼마되지않은시절로돌아가나를엄마로착각하곤한다.내가태어나고집을나간엄마에게선그뒤로연락이없었다.아버지의병그리고사랑하는사람과의이별을감당할수없었던나는집안에틀어박혀식물의일부가되겠노라결심한다.화분속에뿌리를박은다른식물들처럼.그리고어느날화분속흙더미를파헤치다문득,목덜미가서늘해지는섬뜩한기분에휩싸인다.

“이별은갑작스러운거야.그냥더는너한테아무감정이생기지않아.짜증이난다고.”[…]현수의목소리에선질려버린무언가를떨쳐내려는듯한단호함이느껴졌다.나는오랫동안서있었다.심장어딘가의신경이뭉텅이로잘려나간기분이었다.
-「화분」중에서(p.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