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림은누구인가?-반골과파이터예술가로서
정치부,사회부등주로스트레이트부서에서일했지만‘미술=예쁜그림=르누아르’라고생각하며한때화가를꿈꾸기도했던한신문기자가문화부미술담당이되면서이상한노미술가를만난다.예쁜그림을요구하는갤러리스트와컬렉터의바람을무시하고온갖잡동사니와그로테스크한이미지를덕지덕지붙인김구림의작품을보면서왜그가평창동에살면서도“작품이안팔려,돈이없어죽겠어.”라고한탄하는이유를알게된다.혼없이공장처럼찍어내는‘잘팔리는작가’와상업미술에대한적의를드러내는김구림을인터뷰하면서기자는군사독재와개발드라이브의시대인1970년대부터미술계변방에서시장미술에저항한그의젊은시절로찾아간다.자신의예술에태클을거는권위주의에맞서캔버스와전시장밖으로뛰쳐나간김구림은미술평론가김종길의명명그대로예술적‘사건’을기획하는‘사건의조직자’였다.
“전위화가김구림은정상인가?”-사건의조직자로서
서울시립미술관(2013)과국립현대미술관(2023)에서열린대규모개인전,“한국멀티미디어아트의창시자”라는『뉴욕타임스』의단독보도,영국테이트모던초청과미국구겐하임미술관의작품구입…….2000년대이후김구림은‘한국아방가르드미술의선구자’로서화려한조명아래서술되지만,실은오랫동안이해받지못했고잘팔리지도않은작가였다.아니,실험예술활동당시‘스캔들’과‘기행’의주인공으로서는주목받았지만그에게붙은‘전위’라는딱지는반(半)조롱의말이었다고보는것이정확하겠다.시대적몰이해는실험영화,누드영화,대지미술,메일아트,보디페인팅등에붙은‘제1호’라는이름이짊어져야할무거운짐이었다.이에맞서김구림은“나의화실은지구나우주같은넓은공간”이라며자신을예술의장르의식을파괴하려는전위작가로규정했다.미술가,음악가,연극인,엔지니어,스님까지규합하여조직한‘제4집단’은금기에대한반발과도전이었고,예술의경직된장르구분을무너뜨리고자한김구림식전위미술운동의정점이었다.
이책의2부는‘김구림’하면가장먼저떠올릴바로이시기,1960년대후반부터1970년대의실험미술작업을집중소개한다.〈1/24초의의미〉,〈문명,여자,돈〉,〈매스미디어의유물〉,〈현상에서흔적으로〉,〈콘돔과카바마인〉,〈육교위에서의해프닝〉,〈기성문화예술의장례식〉등흥미로운작품(=사건)이당시자료사진과김구림본인이수집한신문·잡지스크랩으로생생하게육박해온다.
“잘알지도못하면서”-김구림이말하는김구림
많은평론가와언론이김구림을‘영원한아방가르드’라부르지만,그호명은특히1960~70년대실험미술을전개했을때의활약,즉퍼포먼스와이벤트에초점이맞춰있었다.하지만이책은실험미술이전과이후의평면과입체작품까지아우른다.그간가려져왔던실험미술의양상을밝힌전시였던2013년서울시립미술관의개인전제목〈잘알지도못하면서〉를다시불러와‘김구림심화학습’으로이끄는셈이다.주된방법은인터뷰다.저자는김구림이1958년개인전에출품한첫유화작품〈월야〉부터시작해2020년대현재의〈음과양〉시리즈까지다루며,다채롭게변주중인김구림의속내를풀어내고그의삶을녹여낸다.평면작업이라고해도캔버스에유채물감을쓴작품뿐아니라,비닐을태우고플라스틱과신문지,나뭇가지,컴퓨터칩,잡지사진등을콜라주하고,자수를활용하는등소재도다양하다.입체와설치작업은형광등불빛과플라스틱관을이용한한국최초의일렉트릭아트에서시작해,무명천과나무둥치,삽,의자,전구,걸레,테이블,빗자루같은일상의사물을끌고온작품을거쳐,‘복제되지않는판화’라는역발상의판화시리즈까지이어진다.음악,연극,무용,시와자유롭게노니는장르월경자의모습도드러난다.특히실상과허상,표현과이미지,동양과서양등두가지대비적인개념을부각하면서‘있음’과‘없음’은더불어존재한다는김구림의‘음양’개념에기반한작품다수를소개한다.
이러한서술은오랜기간김구림작가와만남을지속하며만들어진신뢰와친밀감에서가능할수있었다.기자로서의호기심과작가를향한애정으로쏟아낸저자의질문과자신의언어로작업을대변하려는노작가의열정이촘촘한대화로전개되어한국현대미술사의구술사적가치도가지고있다.부록으로미술평론가이자전시기획자인김종길의심도깊은2차인터뷰가이어져‘미의수행자’,‘사건의조직자’김구림의다층적인모습이밝혀진다.
평전인가,도록인가,자료집인가,인터뷰집인가,비평서인가?
저자는책머리에서이렇게말한다.
“나는전기작가도,이책은평전도아니다.김구림을연구대상으로삼은건미술에관한무지에서비롯된호기심에더하여,이후수년간인간관계를맺으며쌓인‘개인적이고감정적인이유’,즉애정때문이다.책을두고편향과편애라는비판이나온다면,그비판을감당하려한다.”(…)그의‘인간적약점이나불완전의흔적’을걷어내려고하지않았다.나와다른평가나해석,비판의여지가있는부분은그출처와인용을남기려고했다.그럼에도윤색과미화의혐의가남는다면이또한감당해야할일이다.”
하지만이책은김구림의생애를알수있는다양한견해와인용을제시함으로써충분히평전과대중적미술비평서로도읽을수있다.작가에게직접제공받은희귀자료와작품사진(130여컷이상)을시원시원한크기로소개하여‘현재진행형작가’김구림의회고전도록(화집)을감상하는재미도맛볼수있다.한편너무빠른시대에우리를찾아온김구림(과전위예술가동지들)이어떻게받아들여졌는지맥락을파악할수있도록흥미로운당시신문·잡지기사전면을수록하여아카이브자료집으로도손색이없다.잡지『공간SPACE』(1970년2월호)은김구림의작업을두고‘그불가해의예술’이라고소개했다(본서372~375쪽참조).자음과모음의이름으로‘끝장과앞장의예술’을내세운표지는한눈에읽기는어렵지만,함께풀어가며재미를느낄수있는김구림표예술을찾아떠나는문의역할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