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 페이지

사랑의 한 페이지

$16.00
Description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중 여덟 번째 작품, 『사랑의 한 페이지』를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2번으로 펴낸다. 루공 마카르 총서 중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렬하게 내면을 파고드는 작품으로, 파리의 구석진 언덕 위에서 미망인 엘렌, 병약한 딸 잔, 젊은 의사 앙리 사이에 생겨난 감정의 균열을 통해 사랑·질투·유전이라는 총서의 핵심을 가장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여준다. 나아가 도시의 빛과 바람, 일상의 정적을 감정의 무대로 삼아, 작은 설렘 하나가 어떻게 인물을 흔들고 비극을 예고하는지 세밀하게 포착한다.

엘렌의 사랑이 잔의 질투를 자극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뒤틀리고, 의사의 세계와 엘렌의 삶이 충돌하며 긴장은 빠르게 고조된다. 집안의 광기를 물려받은 아이의 운명과 사교계의 가벼운 연애 문화, 빈민들의 비참한 다락방이 교차하는 이 이야기 속에서 사랑은 구원과 파멸의 양면을 드러낸다. 한순간의 사랑이 어떻게 삶 전체를 다시 써 내려가는지 보여주는, 졸라의 가장 인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에밀졸라

(ÉmileZola,1840-1902)
1840년프랑스파리에서태어났다.프랑스에귀화한이탈리아인토목기사의아들로,아버지를따라남프랑스의엑상프로방스로옮겨가프로방스자연에깊이물든어린시절을보냈다.비록아버지가일찍사망하며가정에위기를맞았지만,중학교시절미래의위대한화가가될폴세잔과친분을나누고열여섯살에는처음으로드라마와시를습작했다.열여덟살에파리로돌아가창작을향한열정을이어갔지만경제적어려움으로인해스무살부터직업전선에뛰어들었다.이후아셰트출판사에서일하며다양한지식인들과교류한졸라는몇몇신문에처음으로기고문,서평,콩트등을실으며본격적으로작가,저널리스트의길을걸었다.그의초기작품중대표작인『테레즈라캥』(1867)은비평가들로부터“포르노같은작품”이라는비난을받았지만인간의어두운내면을파헤치는그의첫자연주의소설로지금까지많은이들에게예술적영감을주고있다.이후졸라는『목로주점』(1877),『제르미날』(1885),『인간짐승』(1890)등총스무권에달하는‘루공마카르총서’를20년에걸쳐세상에내놓았다.이로써자연주의의대표주자로자리매김한졸라는동시대작가들의큰지지를얻었다.1898년에는프랑스언론사상가장유명한기고문이된「나는고발한다!」를발표했다.고등사범학교학생들,작가들,예술가들,과학자들,교수들의대대적지지가잇따랐다.하지만국방부장관이졸라를명예훼손으로고소하면서중죄재판소로소환된그는열다섯차례의공판끝에법정최고형을선고받아런던으로원하지않는망명을떠났다.졸라는1902년파리의자택에서가스중독으로사망했는데,그의사망을두고반드레퓌스파가저지른암살이라는주장이끊임없이제기되고있다.졸라의장례식에서아나톨프랑스는“인류양심의한획”인졸라를기렸다.사망할때까지노동자와인권,정의를위해목소리를높였던그는시민의절대적인지지를받았다.1908년에졸라의유해는시민의애도속에서위인들의안식처인팡테옹으로이장되었다.

목차

1부
2부
3부
4부
5부

옮긴이의말
작가연보

출판사 서평

한집안의역사로시대전체를해부한졸라
그거대한연작속에서발견된가장인간적인내면의기록,
『사랑의한페이지』

“그녀는자신의죄가소중했다.”(본문)

에밀졸라는19세기프랑스자연주의문학을대표하는작가로,사회구조와환경,유전적조건이한인간의성격과운명을어떻게결정하는지냉정한관찰로기록했다.‘루공마카르청소’가바로그관찰의기록으로,한집안의혈통을따라제2제정기의프랑스사회전체를해부하듯보여준다.부르주아가정의사교계부터도시빈민의거친생활,성직자와정치인의위선,병증의유전,산업노동자의투쟁까지모든계층과공간이하나의거대한서사안에서맞물리면서졸라는한세계를창조해냈다.이러한맥락속에서졸라는인간을낭만적주체가아닌복잡한조건들의총합으로바라보고,그조건들이일으키는갈등과욕망,비극과희망을사실적인언어로압축해냈다.루공마카르총서를읽는다는것은한시대의문화를통째로경험하는동시에인간이라는존재의내부구조를해부하듯들여다보는일에가깝다.그리고,바로이연작의여덟번째작품이『사랑의한페이지』다.

『사랑의한페이지』는루공마카르총서중에서도이례적으로조용하고내밀한분위기속에서진행되는‘사랑’이야기다.졸라가사회적비판의목소리대신인간감정의미묘한떨림에집중한작품이라할수있다.총서의다른작품들이거대한산업,빈곤,계급갈등같은외부세계의충돌을중심으로서사를구축했다면,이소설은그초점을좁혀파리의한언덕위에서살아가는한미망인과그녀의병약한딸,그리고한의사의관계에온전히집중한다.그러나이는단순한감정소설이아니다.루공마카르가문의계보속에서이어지는신경질적기질과유전적요인이아이‘잔’의병약함과엄마를향한질투,정서적불안으로이어지는과정을통해연작의전체구조안으로자연스럽게녹아든다.다시말해『사랑의한페이지』는사회적현실을다루는졸라의전작들과결을달리하면서도,인간내면과유전이라는연작의근간을잇는독특한한권으로자리하게된다.졸라가얼마나다양한방식으로인간을탐구할수있는지를증명하는동시에,사랑이라는감정이어떻게개인의삶을파괴하거나구원하는지보여주는드문작품이다.


아름다운미망인엘렌,
집안의광기를물려받은딸과황홀한사랑을선사해준남자사이
비극의삼각지대에서다

“오늘그녀에게는타락이필요했다.
그녀는당장,그리고심각한타락을바랐다.”(본문)

소설은남편을잃은뒤파리의구석진언덕위에서딸잔과함께조용한삶을살고있는미망인엘렌을중심으로펼쳐진다.잔은병약하고신경질적인기질을타고나작은충격에도쉽게불안해하며,발작이찾아올때면밤낮이뒤바뀐듯한긴장과공포가집안을뒤덮는다.어느날밤잔이심한발작을일으키고,엘렌의집에세를내준젊은의사앙리가급히찾아와아이를치료하게된다.결국의사는아이가낫기까지아이의엄마인엘렌과고요와긴장속에서밤새아이의곁을지키고,그과정에서엘렌과의사사이에는이름붙일수없는감정이서서히싹틔우기시작한다.숨을헐떡이는아이를사이에두고이루어진이첫만남은이후세사람의위태롭고병적인관계를규정하는출발점이된다.엘렌은의사에게서남편을떠나보낸후로잊고살았던안정감과설렘을느끼고,의사는엘렌의침착함과고요한기품안에숨겨진정열의온도를감지한다.그러나어린아이는어머니의마음에생겨나는이변화를직감적으로느끼며,자신에게만향해온어머니의사랑을빼앗길지도모른다는불안감에점점강하게휩싸이고만다.

『사랑의한페이지』가단순히‘로맨스’장르로치부될수없는이유는,엘렌과의사사이에피어난사랑과정열이잔이라는아이를중심으로기묘하게뒤엉키기때문이다.아이의이글거리는눈빛과질투로인한발작은어머니와의사의관계를격동으로몰고가기도하고한순간찬물을끼얹기도한다.아픈아이를겨우잠재우고방의한구석에서은밀히나누는사랑의밀담은어머니엘렌에게비할데없는관능을선사하고,아이는그런엄마의변화를서서히알아차리며압박해오기시작한다.여기에의사의아내쥘리에트와그녀의사교계친구들,그리고파리상류층의가벼운불륜문화가등장하면서엘렌이속한세계와의사가속한세계가극명하게대비된다.이렇듯에로스적사랑과모성,질투와죄책감이하나의매듭처럼얽히며,이이야기는로맨스,미스터리,코미디,추리등다양한장르를분주히오간다.


한페이지의사랑이
한인생전체를다시쓰기까지

『사랑의한페이지』는거대한사회적서사위에구축된루공마카르총서중에서가장사적이고조용한이야기지만,오히려그렇기때문에인간을가장깊숙이들여다보게만드는작품이다.한여성의마음깊은곳에서피어오르는사랑과죄책감,병든아이가느끼는불안과질투,부르주아사회의가벼운욕망과빈민층의절박함이한공간에서충돌하며만들어내는긴장은곧인간이어떤조건속에서사랑하고흔들리고무너지는지를있는그대로보여준다.졸라는이소설에서비극을과장하지않는다.대신파리의빛과바람,고지대에서내려다보는도시의풍경,아픈아이가누워있는푸른방의정적같은일상의장면속에감정의균열이조용히스며들게만든다.그래서이이야기는소리없이시작해서서히무게를늘려가며,결국독자의마음에깊은흔적을남긴다.『사랑의한페이지』는한집안의유전적역사라는거대한기획안에서‘사랑’이라는감정이어떻게한사람의삶전체를다시쓰게만드는지보여주는기록이다.책을덮고나면,사랑이누구에게어떤모양으로찾아오는가,그리고한페이지의사랑이어떤대가를남기는가,라는질문이잔향처럼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