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론리하츠-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7

미스 론리하츠-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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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너새니얼 웨스트

저자 : 너새네이얼 웨스트 (Nathanael West)
1903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유대계 중산층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24년 브라운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뉴욕에서 호텔 매니저로 일하며 대실 해멋, 제임스 패럴, 어스킨 콜드웰 등 곤궁한 작가들과 교유했다.
1931년 그의 첫 작품 『발소 스넬의 몽상』을 출간하고 이듬해 잡지 「콘택트」를 편집했다. 이 무렵 『미스 론리하트』를 출간했지만, 출판사의 도산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차례로 『거금 100만 달러』와 『메뚜기의 하루』를 발표했다.
1940년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에서 아일린 매케니와 결혼했지만 그해 겨울, 멕시코 주말 사냥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캘리포니아 주 엘센트로 근처에서 부인과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때까지 그는 동시대의 일류 작가들에 비해 재능과 역량을 인정받지 못했다. 1946년 프랑스에서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성공을 거두고, 1957년 미국에서 그의 전집이 출간되면서 그는 비로소 영미문학사에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1962년 『미네소타대학 미국 작가 총서』에서 미국의 문학평론가 스탠리 에드거 하이먼은 그를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더불어 20세기 미국 문학의 3대 봉우리로 평가했으며, 1987년 예일대학교의 석학 해럴드 블룸은 20세기 미국의 산문 문학에서 그와 비견될 작가는 포크너 단 한 사람뿐이라고 단언했다. 서른일곱의 나이로 요절하고, 단 네 편의 작품만을 남긴 그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천재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역자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와 문학 서적을 많이 번역했다. 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와 문학 서적을 많이 번역했다. 최근에는 E. M. 포스터, 존 파울즈, 폴 오스터, 제임스 존스 등 현대 영미 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하고 있다.
저서로 『번역은 글쓰기다』, 『번역은 내 운명』(공저)과 『지하철 헌화가』, 『살면서 마주 한 고전』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1984』, 『그리스인 조르바』, 『보물섬』, 『촘스키, 사상의 향연』,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문화의 패턴』, 『호모 루덴스』, 『중세의 가을』, 『지상에서 영원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헨리 제임스 단편선』, 『조지 오웰 수필선』,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 『리비우스 로마사 I, II』, 『로마제국 쇠망사』, 『고대 로마사』, 『숨결이 바람 될 때』, 『변신 이야기』, 『작가는 왜 쓰는가』,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마인드 헌터』, 『군주론·만드라골라·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등이 있다.

목차

미스 론리하츠, 도와주세요, 나를 도와주세요
미스 론리하츠와 무표정
미스 론리하츠와 어린 양
미스 론리하츠와 얼어붙은 혀
미스 론리하츠와 깨끗한 노인
미스 론리하츠와 쉬라이크 부인
현장 실습을 나간 미스 론리하츠
끔찍한 수렁에 빠진 미스 론리하츠
시골에 간 미스 론리하츠
미스 론리하츠, 돌아오다
미스 론리하츠와 절름발이
미스 론리하츠, 도일의 집을 방문하다
미스 론리하츠, 파티에 참석하다
미스 론리하츠와 파티용 드레스
미스 론리하츠, 종교적인 체험을 하다

초판 옮긴이의 말
개정판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출판사 서평

· 20세기 전반 미국 문학의 세 봉우리 - 『위대한 개츠비』,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미스 론리하츠』
·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대 미국 소설" - 해럴드 블룸

위로를 파는 남자에게서 위로가 사라질 때

"그는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많은 돌을 주어왔다.
사실, 너무 많은 돌을 주어서 이제 돌은 단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돌은 그의 내장 속에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본문 중)

소설은 한 장의 마분지에서 시작된다. 거기에는 상사 쉬라이크가 장난삼아 인쇄해둔 기도문이 적혀 있다. "미스 론리하츠의 영혼이여, 나를 영광스럽게 해주소서." 성 이냐시오의 기도문을 그대로 비틀어놓은 이 문장은, 이 소설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한 줄로 요약한다. 성스러운 것과 값싼 것, 구원과 판매 부수, 기도와 농담이 같은 문장 안에서 뒤엉킨다.

뉴욕 『포스트-디스패치』의 인생 상담 칼럼니스트 '미스 론리하츠'는 침례교 목사의 아들이다. 그의 책상에는 매일 서른 통이 넘는 편지가 쌓인다. 웨스트는 조급하고 절박한 이들 특유의 서툴기 짝이 없는 문장을 그대로 소설 안에 옮겨놓는다. 실제로 작가는 신문사 친구를 통해 진짜 상담 편지들을 읽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 편지들은 소설 속에서 가장 서툴면서 동시에 가장 정직한 언어가 된다. 주인공을 무너뜨리는 것은 어떤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바로 이 서툰 문장들의 무게다.

위로가 직업인 사람은 어디서 위로를 얻는가. 그가 붙들 수 있는 답은 그리스도 하나뿐이지만, 하필 그리스도야말로 쉬라이크가 가장 좋아하는 농담이다. 편집장 쉬라이크는 흙으로의 귀농, 남태평양, 쾌락주의, 예술, 자살, 마약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상상해온 모든 도피처를 화려한 수사로 하나씩 늘어놓고, 그 전부를 남김없이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아무것도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을 값싸 보이게 만든다. 20세기 문학이 만들어낸 가장 잔인한 조연 가운데 하나가 여기 있다.

농담을 만드는 기계, 그 농담의 희생자

"그 내용은 서로 비슷해서, 마치 가운데에 별 모양이 새겨진, 고통의 밀가루로 찍어낸 과자 같았다." (본문 중)

『미스 론리하츠』가 대공황기 소설이면서도 낡지 않는 이유는, 웨스트가 겨눈 과녁이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가난을 소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타인의 고통은 상품이 되고, 상담은 판촉 행사가 되며, 진심은 발행 부수로 환산된다. 술집에 모인 기자들은 저마다 재담을 늘어놓지만 그들은 "농담을 만들어내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단추 기계가 단추를 찍어내듯, 죽음이든 사랑이든 신이든 무엇을 집어넣어도 결과물은 똑같은 농담이다. 타인의 불행이 콘텐츠가 되는 오늘의 풍경 위에 이 90여 년 전의 문장들은 불편할 만큼 정확히 겹쳐진다. W. H. 오든은 이 작가의 이름을 딴 '웨스트의 병'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지금의 자기 자신이기를 끝내 거부하는 병, 소망을 현실의 욕망으로 옮기지 못한 채 환상에만 머무는 병. 미스 론리하츠 역시 그 병을 앓는다. 그는 성인이 되고자 하지만 겸손을 갖지 못했고, 사랑을 설교하면서 노인의 팔을 비틀고 타인의 아내를 갈망한다. 웨스트는 주인공에게 어떤 면죄부도 주지 않는다. 이 냉정함이야말로 이 소설을 감상적인 구원담과 갈라놓는 지점이다.

돌과 꽃 - 잔인함 곁에 놓인 서정

"몇몇 초록의 잎새가 이 피폐해진 땅을 뚫고 나오려면 7월의 잔인함이 있어야 했다."
(본문 중)

그러나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냉소가 아니라 문장이다. 웨스트의 문장은 짧고 건조하지만, 그 사이사이 예고 없이 서정이 튀어나온다. 죽은 사물들로 가득한 세계, 등이 부러진 연처럼 하늘을 도는 신문지 한 장, 바다처럼 부풀어 오르는 여자의 몸, 그리고 술집 카운터 앞에서 문득 되살아나는 어린 여동생의 춤-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정사각형이 장방형이 되고 다시 동그라미가 되는 그 춤. 옮긴이가 이 작품의 유일한 등불이라 짚어낸 이 장면들은, 절망의 한복판에 놓인 짧고 환한 구멍처럼 빛난다.

뉴욕의 유대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이름은 네이선 웨인스틴. 호텔 야간 지배인으로 일하며 소설을 썼고, 할리우드에서 B급 영화 각본을 쓰다가, 1940년 12월 멕시코 수렵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서른일곱, 절친했던 스콧 피츠제럴드가 세상을 뜬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남긴 소설은 네 편이 전부였고, 그는 거의 무명이었다.

그의 부활은 느리게 왔다. 1946년 프랑스의 한 번역가가 이 소설에 매료되어 옮긴 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50년대 초 영국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며 화제를 모았다. 그 우회로를 거쳐 마침내 본국 미국이 그를 다시 발견했다. 1933년 "지루하고 지저분한 책"이라 잘라 말했던 미국의 신문들은, 반세기 뒤 이 소설을 자국 문학의 정전 목록 맨 앞자리에 올려두게 된다.

세계인의 초상, 그리고 다시 만나는 한국어
"인간…… 난 인간을 사랑하는 놈이야. 가슴이 깨어져버린 저 불쌍한 자들을 사랑해……."
(본문 중)

이번 판본에는 옮긴이의 오랜 독해가 함께 실린다. 초판본 후기에서 옮긴이는 이 작품을 M16 소총처럼 낱낱이 분해해 보인 뒤, 질서와 무질서, 언어와 지혜, 고통과 구원, 섹스와 폭력이라는 네 개의 주제가 장마다 자리를 바꾸어가며 회전하는 구조를 짚어낸다. 나아가 이 소설이 왜 한국 독자에게 더 가까울 수 있는지를 이렇게 말한다. 개츠비는 아무리 읽어도 어쩔 수 없이 미국인이지만, 미스 론리하츠가 겪는 고통과 구원의 문제는 어느 한 미국인의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보편의 것이라고. 그리하여 미스 론리하츠의 얼굴은 곧 세계인의 초상이 된다.

옮긴이의 재검수, 편집부의 교정 등의 복간 과정을 거치며 원문의 건조한 리듬과 갑작스러운 서정, 그 낙차를 그대로 옮기는 데 공을 들였다. 개정판 옮긴이의 말에는 스물다섯 해 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은 소회가 담겼다. 그는 이 소설을 박수근의 캔버스에 점점이 번지는 검은 배경에, 그리고 이탄 향이 짙은 위스키에 빗댄다. 어두운 그림이 왜 환한 감동을 주는가. 씁쓸한 술에서 왜 단맛이 나는가. 정반대의 것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웨스트는 어둠에 대해서만 말하고 빛에 대해서는 끝내 침묵한다. 그 빛을 찾아내는 일은 이제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