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길량 교수의 삶과 음악 (전북음악발전의 선구자)

천길량 교수의 삶과 음악 (전북음악발전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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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천길량 교수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1회 졸업생으로서, 모교인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에 소재한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남을 것을 권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향이며 서양음악의 불모지였던 전라북도로 내려와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과 클래식 음악 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쉼 없이 앞장섰다.
그의 업적을 들여다보면 ‘최초’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는 미래를 만들어냈던 그는 ‘최초’였고, ‘최고’를 만들어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역사 속의 인물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들의 삶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영역을 보고 개척하며 평생 차별과 싸우는 고된 삶, 희생적 삶을 살았다.
저자

최명훈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음악원예술전문사를졸업후독일브레멘국립예술대학교(HfKBremen)에서K.A.Z.Diplom,Konzertexamen을졸업하였다.
중앙음악콩쿠르작곡부문1위,창악회작곡콩쿠르최우수상(1위),안익태작곡상작곡대상(역대최연소),전(全)독일음악대학콩쿠르작곡부문1위,일본타케후국제작곡상,Schimmel상,문화체육관광부“오늘의젊은예술가상”(장관상)등을수상하였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상임작곡가,독일앙상블포르밍스(EnsemblePhorminx)상임작곡가(ComposerinResidence),대구MBC교향악단전임작곡가및예술감독,전북작곡가협회회장을역임하였다.
현재(사)한국작곡가협회이사,(사)전북공연예술협회이사,국립군산대학교음악과(작곡전공)교수로있다.

목차

발간사·04

제1장.*성악가*천길량·12
1.격동의시대,그리고「봉선화」·12
1)1920-53년한국예술가곡의양상·16
2)일제강점기와한국전쟁기:전라북도·17
2.천길량의생애·24
1)테너천길량-그의독창회를중심으로·24
2)국내최초「진달래꽃」을부르다·54

제2장*교육자*천길량·60
1.교육자적발자취-교단과강단에서·60
2.학술논문·64
1)「음악감상교육방법」(1980)·64
2)「발성법의사적연구」(1982)·72
3)「독일예술가곡소사」(1984)·84
4)「Bach와Händel의행적과종교적대표작품에관한
고찰」(1985)·108

제3장*지휘자*천길량·128
1.전북문화예술의대중화운동·128
1)전주시립합창단·128
2)전주어머니합창단·152
3)악회(樂會)와관현악단창단·158
2.전북예술회관건립운동·163

제4장추모음악회·172
1.「故테너천길량교수추모음악회」(1989)·172
2.「故테너천길량교수추모음악회」(1993)·181
3.「故테너천길량교수20주기추모창작가곡발표회
‘온고을소곡’」(2008)·186
4.「故천길량교수‘전북의별’추모음악회(2011)」·187
5.「故천길량교수추모음악회‘플록스꽃’」(2023)·192

제5장맺음말·198

미주·203
참고문헌·206
부록·212

출판사 서평

천길량교수는국내최초김소월의「진달래꽃(정회갑곡)」연주(1951),전북지역의최초독창회개최(1951),전북최초음악대학의교수(1963),최초전주시립합창단창단(1966),최초전주어머니합창단창단(1969)으로합창단의영역을여성계로확대시켰으며,최초성악·기악·작곡부분을섭렵한전북춘추학회창립(1970),최초전주관현악단창립(1973)등을군산대교수재직시절결성했으며현재까지그전통이잘계승되고있는벨칸토회창립(1980),최초추모음악회개최(1989)등그의이름석자앞에‘최초’라는새로운역사를썼다.
천길량교수가보여준개척정신의희생과혁신적인창조정신은오늘날현대사회가필요로하는도전이며기회가될수있을것이다.
본저서인「천길량교수의삶과음악」을작업하면서,그의뜨거운열정과헌신에무한한감동을느끼고,음악인으로서앞서가신선배님의발자취를잠시나마따라갈수있었음이나에게얼마나큰축복인지고백하지않을수없다.

“한겨레의운명을결정짓는근원적힘은그민족의예술적문화적창의력이며,예술이창조력을잃었을때민족은침체되고,문화가자립성을찾을때그나라는흥한다.우리는길이남을유산을개발하고민족적정통성을이어받아오늘의새문화를창조한다.(중략)우리예술을확고한전통속에서꽃피우고우리문화를튼튼한주체성에뿌리박게한다.”(1974년10월1일,전북일보‘문화시론’中에서)

앞의전북일보인용글은〈전북예술회관〉의건립을위해절실한마음을담아쓴천길량교수의칼럼의일부이다.당시전시및예술공연을위한공간마련을위해당위성을설파하고,전북문화예술인들은물론전라북도및도민들의참여를독려했다.이글을쓰고있는나에게도천길량교수가가졌던전북문화예술의발전과전북지역의음악교육및음악인양성에큰뜻을품고있었다.

본저서는천길량교수의삶과음악을중심으로‘성악가’로서당시시대적배경을통한그의활동연혁과생애를다루고,‘교육자’로서대학에재직하여발표했던그의학술논문들을요약하여소개하고자한다.또한‘지휘자’로서합창음악계의발전과여러단체를최초설립하고창단됐던현황등을알아본다.
전쟁의폐허속에서굴하지않고도민들을위로하고음악을위해,다음세대를위해온전히일생을불살랐던우리의스승이자선배이신천길량교수의업적을정리하며앞으로우리가나아가야할길을생각해본다.
전북문화예술의중흥을이끈선구자이자전라북도의자랑인천길량교수의삶과음악,그리고그가우리에게남긴역사적인유산들을통해전북문화의정체성을바로알고,전북을뛰어넘어대한민국음악사에그의숭고하고열정적인음악정신과세계가길이남겨지기를기대하는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