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있는 느낌

당신과 함께 있는 느낌

$19.00
Description
“내가 반을 채웠으니 나머지 반은 당신이 채웠으면 좋겠다.”
이윤학이 돌아왔다!
언어의 화가 이윤학이 오랜 침묵 끝에 내놓은 첫 번째 사진 산문집.
시인 이윤학은 번잡한 도시의 소음과 요란한 불빛에서 벗어나 몇 해 전 홀연 산촌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흙냄새와 풀벌레 울음에 마음을 기울이며 그는 일생 자신을 괴롭혔던 지긋지긋한 술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가 산골생활 중 떠올린 아름다운 문장과 직접 찍은 사진, 그 사이에서 태어난 짧은 시와 엽편소설 들이 한데 엮여 이 책을 이루었다.

‘작가의 말’에서 시인은 고백한다.
고요가 삶의 온기를 대신하여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고. 이제는 이름도 가물거려진 “당신과 함께 있는 느낌” 때문이었다고.

책에는 시를 쓰려다 찍은 사진들, 사진을 찍으려다 쏟아진 문장들이 하나의 느린 호흡으로 공존한다. 강아지들이 돌아다니는 늦은 오후의 폐주유소, 진폐증을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면 마스크, 자색 감자를 캐던 그 여름의 냄새, 장판 위 긴 머리카락의 잔상… 슬프고도 아름다운 숱한 기억의 파편들이 존재의 은유로 되살아난다.
삶을 지탱하게 하는 상실과 회복, 슬픔과 감사, 묵직한 사랑은 언뜻 고요한 듯 보이는 문장 저 깊은 곳에서 가쁜 숨을 내쉬고, 그러는 사이 시인은 기꺼이 외로움이라는 격랑의 언어를 평화로운 여백으로 바꾸어낸다. 떠나간 이, 사라진 이름들, 그리고 남은 자의 기억 속에 여전히 머무는 ‘함께 있음’의 감각을 탐색케 한다.
저자

이윤학

저자:이윤학
충남홍성에서태어나1990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시「청소부」「제비집」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먼지의집』『붉은열매를가진적이있다』『나를위해울어주는버드나무』『아픈곳에자꾸손이간다』『꽃막대기와꽃뱀과소녀와』『그림자를마신다』『너는어디에도없고언제나있다』『나를울렸다』『짙은백야』『나보다더오래내게다가온사람』『곁에머무는느낌』,장편동화『왕따』『샘괴롭히기프로젝트』『나엄마딸맞아?』,산문집『시를써봐도모자란당신』,소설『우리가사랑한천국』등을펴냈고김수영문학상동국문학상불교문예작품상지훈문학상김동명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
폐주유소_13부들_14먼곳_16자색감자_20긴머리카락_23돌_24잠결의말_29오줌뉘는풍경_31호수의한점섬에서_32면마스크_38슬픈사람,그봄에멀리갔어요_42한줄의시_45옹이_48라일락_50저녁의밀물_52인격들_53바지락칼국숫집57어쿠스틱기타_58우물자리_61수레국화_62

?2
백매화_67?낮은집_68?흰쌀밥_70바통터치_73수매미_77기다려본다_78컨베이어벨트_80웃는사람얼굴_82다중인격체_84송진_87열매들꽃을물고_88개양귀비_90배막_92봉숭아씨방_95진공관_98배막_92?봉숭아씨방_95진공관_98엄동嚴冬_100까만콩_102?지금은없는바꿈이씨_104인생총량의법칙_111백합의구애_114

?3
혹시라도_118?토끼탕_120?밤의?배_123?귀가_124?봄눈_126?울타리_128?버틴다_130입김_132?화살나무_134입동立冬_137?숨_138?대한大寒_140?하늘못_142?해루질악어집게_145토끼귀선인장_146입춘立春_149미리내_150?수수밭이보이는창문_152향신료_154?목장_156

?4
장대의정신_161뱅어포_162?흰소국小菊_164졸음쉼터_166?마침표_168다비식茶毘式_170탱자효소_173붉은사슴뿔버섯_174파랫국?먹는?저녁_176봄날?저녁볕_178소나기의급습_181뱃머리슈퍼_185복사꽃_186찔레꽃_189접속接續_190굴뚝연기_193안개비커튼_194손수레_196키_198철공소_201

?5
애플청포도_204빗소리_206?국도변편의점_209말벌집_210열대야_213붉은게딱지_214선택의폭_216목련필무렵_218말목_220이별_224?아주까리_227초여름밤_228마른오징어눈깔_230사과당근주스_233먼바다의푸름_234막잔_236우체통옆덩굴장미_238개구리밥_241?늦봄_242?분홍낮달맞이_244

?6
만보기_248?녹슨종탑의사라진종과줄_250목감牧甘_252?옥상의벤치_255?저녁의가면_256?북방의하늘_258?담배꽃밭_262?교정과반영의연속_264?캠핑가스난로_267가시_268?태백_270?봄상추밭으로_271?수목원근처_275?등_276?포옹_279?12월,어느저녁_280?점_282?꽃다지_285?혼밥_286?숨2_287

?7
노르웨이숲고양이_291해감_294?검은칠이벗겨진대문_298쥐색콤비_300사랑해요_306?마가리_308?우리는언제한몸이었지_310채송화_313?처서處暑_314?오래된물조루_316?반딧불이_318?슬쩍_320?수퇘지씨_322?킨츠기金?き?_325?화성의푸른노을_326?김?모시기씨_328?연습?없이?살기_333?상강霜降_334?비둘기묘_336?박주가리_339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아버지가돌아가시고대문간못에걸린면마스크들을보게되었다.사름방아궁이앞에서고양이를안아들고웃는아버지얼굴이떠올랐다.최선을다해숨을몰아쉰진폐증환자,농사꾼아버지,면마스크에끼었던희고고운안개의미립자눈앞에어른거렸다.아버지가50여년농사지은써레질끝낸무논에하늘과주위풍경이얼비쳤다.쓰다듬을게많은봄바람이무논을지나고있었다.기침을멈춘농사꾼아버지전생의설렘이이어졌다.
---p.41

아버지가돌아가시고1년여생사를넘나드는꿈을자주꾸었다.곁에머무는느낌은확실한데형체를드러내지못하는아버지옹이같은입을쭈뼛거리기만할뿐이었다.이승의말을잃어버린것이었다.벌써저승의말에익숙해진것이었다.잠에서깨어나면스탠드를켜놓고물끄러미마주앉아옹이를바라보곤하였다.
---p.48

옥수수와사탕수수의터널안으로흰여름수국이치아처럼드러났다.아이들웃고떠드는소리뒤꼍을돌아나와참깨밭고랑으로이어졌다.
---p.69

그녀에게도나에게도열쇠구멍까지녹이슨자물쇠로잠가놓은잃어버린마음의공간이있을것이다.언젠가잃어버린열쇠를아주잊어버린뒤에남겨진마음의공간.자물쇠가채워지지않았다면나만큼이나늙어버린그녀가오래된문을열고나올지도몰랐다.흰머리가더많은그녀가허리를구부리고나올수도있겠다.
---p.78

봄눈녹는소리들려왔다.순두부퍼담은광주리얼마남지않은물이빠져나갔다.싹이올라오는잔디정원에서콩비린내나는슬픔이밀려왔다.김나는순두부에고춧가루뿌리고아버지의손에숟가락들려준어머니잠깐웃었다.“여보,그것만마시고얼른방에들어가시린몸지졌으면좋겠구먼유.”뜨듯한부뚜막에앉아사기잔의막걸리들이붓는아버지.카.주전자내둘러막걸리쏟아붓는소리콸콸이어졌다.김이오르는냇물흘렀다.탐스러운버들강아지붉게터진볼비벼눈물번지는웃음만들었다.
---p.127

너희아버지어제엄마꿈에나와술좋아한국전이아저씨랑어서좋은데로가자,어깨동무하고떠나더라.그런데어머니는왜술얘기만나오면내얼굴을똑바로보고웃는지도통모를일이었다.
---p.133

추억은,폐허를건너기위해있는게아닌가.
---p.138

나는얼마간아버지와함께늙어갈것이다.언젠가아버지를다시만나면,오랫동안안마신술을처음처럼마셔볼참이다.
---p.138

비탈의밀밭에파란물결이일렁거렸다.밀에닿은부드러워진바람의혓바닥풋내를건드렸다.눈을감았다뜬사이40년이지나있었다.밀밭과내리막길을보고아이들도나도신이나40년전환호를지르고그걸들었다.
---p.156

술한잔하고싶은충동을해바라기를보면서달랬다.뒤돌아서니반달이보였다.이제내가반을채웠으니나머지반은당신이채웠으면좋겠다.
---p.161

올겨울첫결빙이었다.개물그릇에가마솥뜨뜻한물을퍼다붓는어머니휜등위에수십년된TV안테나여태껏전파를잡아저세상사람된아버지온돌방으로보내고있었다.우라지게슬픈날도통한하늘을보면뭐가좀나아지더냐.유낵아,뭐가좀멀리라도보이더냐.멀겋게끓여낸뭇국에돼지비계라도몇점떠다니더냐.
---p.191

내가좋아한사람,끝까지좋아할사람,앞으로좋아할사람에게소중한게뭔지를생각했다.어느새처서도지났다.제집밖에머무는개두마리풍성해진꼬리털을흔들었다.흔한술잔들파묻고그자리를맴돌았다.끝까지나를포기하지않은예전식구들얼굴이떠오르고목소리가들려왔다.
---p.238

언제나나에게독기를불어넣어주는고통이여,나를비껴가지말아라터진둑은다시터진다,홍수는지나간다
---p.269

날이저문다.집입구에무덤두기가있고비석이삐뚜름하게서있다.1급강원공업사앞이다.키낮은벚나무껍질이절반벗겨져있다.춥다고할수없다.염수마른자국희멀건아스팔트바닥에담뱃불비벼끄고가야지.무덤아닌곳어디나천국의겨울,사글세단칸방냉골이었다.
---p.270

그해겨울,우리는하우스단지를떠돌았지봄상추밭으로걸었지우리의입은돌아가지않았지모종보다심하게떨리는연약한몸이었지병든모종을솎아짠녹즙을마시고우리는봄상추밭으로걸었지.
---p.273

이곳산촌엔조그만동산이있어해와달이떠오르는게더딥니다.그래도아주어둡기전에떠오른달이반가워데크에서서한참을바라보았습니다.누구보다겁이많은어머니.늙어가는어머니.안아드리지못한어머니.어머니생각이나는저녁입니다.
---p.280

그녀는쥐색콤비를콕집어내게입히고는계산대로향했다.30여년전한여름일요일대낮에그녀의요청대로겨울콤비를입고밖으로나와걸었다.그녀는웃는얼굴로다행히더위를덜타는내게말했다.“한겨울이면오늘의우리가생각날거예요.그렇다고촌스러운내이름을부르며울지는말아주세요.”
---p.305

십여년전부터써오던장편소설한글파일을열었다.최선을다해고쳐놓고마지막에“사랑해요.”라고속으로말하고는잊히고싶었다.
---p.307

천문대에가는날엔꼭흐리거나비가왔다.지난토요일에도어제도그랬다.내가보고자하는것은먼별이아니니흐려도비가와도상관없다.내가보고싶어하는별과언젠가그려내고싶은별모두내안에있는데…나는천문대에가서천체망원경으로문닫힌하늘을보고돌아왔다.
---p.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