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오랜 중국의 역사 속에서 동한 시대는 서한 시대에 정립되어 굳건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었던 유학이 관학으로서의 지위가 심하게 요동치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주요한 원인으로는 동한 시대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던 정치적 부패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부패는 당시의 사회 풍속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적 부패는 결과적으로 동한 사회를 매우 급격하게 문란한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한편 동한 왕조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동한 왕조의 위기 상황은 당시의 학자나 사상가들에게 그들이 처한 현실사회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주요한 학문의 과제로 삼는 기풍을 조성하게 만든다. 아울러 당시 동한 왕조는 황제의 권위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 외척을 견제하기 위해 중용한 환관들은 어느덧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환관세력의 득세는 당시의 학자와 사상가들에게 도덕성과 학문적 소양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정치권에 입문하여 자신들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준다. 즉 군자의 길과 정치권력은 일치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은 당시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경세이상에 대한 새로운 반성적 사고를 통하여 당면한 현실사회에 적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개인의 도덕 수양에 몰두하는 추세를 보이며 상대적으로 정치무대에 올라서고자 하는 경향에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즉 학자들은 더 이상 세상의 부귀권세와 입신양명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로지 자신의 도덕적 성취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의 유학사상이 유행하게 되는 반면 서한 시기의 동중서가 제창한 천인감응설을 기본적인 사상체계로 삼았던 관변 유학사상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아울러 당시의 유가의 경학은 이미 지리멸렬하고 번잡한 자구 해석에만 매몰되어 있는 전혀 생기가 없는 죽은 학문이 되어서 그 효용성을 상실한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시기에 활약했던 민간 유학사상가들 가운데 환담이나 왕충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인물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환담과 왕충의 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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