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 (양장)

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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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들은 알고 있었다. 학살과 폭격의 의미를 …
히틀러, 괴벨스, 독일군, 독일 시민
승자와 가해자, 공포와 희망의 뒤섞임
일기와 편지와 법정 기록으로 들여다보는 전범국의 내면
독일인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그들에게 2차대전은 나치즘보다 정당했다

1944년 11월 17일, 독일군 장교인 빌름 호젠펠트는 바르샤바의 한 주택에 들어섰다. 해골 모습의 유대인이 부엌에서 음식을 찾고 있었다. 밤이 되자 호젠펠트는 유대인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쇼팽의 곡에 귀기울였다. 그 유대인이 바로 영화 〈피아니스트〉에 등장하는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이다. 호젠펠트는 슈필만이 건물 다락에 숨도록 도와주었다. 그 후 몇 주 동안 정기적으로 음식도 가져다주었다. 1936년과 1938년의 뉘른베르크 나치당 전당대회에서 강렬하고 신비스러운 전율을 느꼈던 독일군 장교와 호젠펠트는 동일한 인물이다. 그는 모순적인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호젠펠트는 2차대전에서 무엇을 위해 적과 싸웠을까? 독일이 일으킨 전쟁은 그의 내면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리고 언제 그는 독일의 전쟁범죄를 인식했을까?
이 책은 2차대전 사료로 독일인의 혼란스러운 속내에 접근한다. 집이나 길거리에서 포착된 수많은 내밀한 이야기로 2차대전의 편견을 헤집는다. 일기, 편지, 보고서, 법정 기록에 담긴 독일인의 생생한 육성은 전체주의의 전쟁범죄에 숨은 낯설고 새로운 진실을 증언한다. 그 진실이란 독일 국민이 패전의 순간까지 적극적으로 2차대전에 임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들이 내면에 품었던 민족방어 전쟁 논리가 나치즘과 결부되며 어떻게 발전했는지 뒤따라간다.
이 책의 저자는 정보의 넓이를 담보하고자 편지와 일기와 공문서 등을 검토했다. 슈투트가르트 현대사도서관에서 편지 약 2만 5천 통을 살펴보거나 베를린 예술아카데미, 독일 일기아카이브, 베를린에 있는 독일 역사박물관과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전선병사 아카이브와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프라이부르크 독일 연방문서보관소-군사아카이브를 찾아갔다. 정보원들의 공문서, 독일군 우편행낭을 무작위로 검사한 검열관들의 보고서, 개인의 비밀스럽고 솔직한 일기 등을 채록했다. 정보의 깊이를 확보하고자 저자는 사회적 출신이 각양각색인 사람 중에서 특정 개인들을 선택했다. 그들의 사적인 희망과 계획이 전쟁 과정과 어떻게 얽히는지 오랫동안 추적했다.

“이 책은 그 길었던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그 전쟁에서 발생한 독일 사회의 변화를 목록화하고 갈수록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된 전쟁에 각 개인이 적응해간 미묘한 방식들, 종종 되돌릴 수 없던 그 방식들을 기록한다. 또한, 이 책은 사람들이 자신을 형성해간 사건들을 통과하면서 겪은 변화하는 기대와 파동하는 희망과 두려움을 기록한다. 그들의 구체적인 삶은 경험을 재는 감정적인 잣대인 동시에 자기 파괴의 길을 가던 한 사회를 나타내는 도덕적 기압계였다.” _48쪽

저자는 전쟁에 대한 해석이 학문적 연구와 대중적 의식 모두에서 둘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그 두 가지 해석은 전쟁 시기의 독일인을 이야기할 때 상충한다. 한쪽은 모든 독일인을 희생자로 간주하고 다른 쪽은 모든 독일인을 가해자로 분류한다. 저자는 2005년의 종전 50주년 기념 과정들을 지켜보며 이 책의 출발점인 생각과 마주했다. 그는 기존의 역사가들이 올바른 교훈을 전쟁사에서 이끌어내려다가 역사 연구의 본질적 과제 중 하나를 외면했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역사가가 무엇보다도 우선 과거를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1939년 8월 26일에 동원령이 공포되었을 때 독일인은 미래를 몰랐다. 그들은 과거를 떠올렸다. 1차대전 패전이라는 불안한 그림자가 그들에게 드리웠다. 전쟁의 위기가 사회를 과격하게 변화시킨다는 생각은 나치 정권과 독일 사회의 관계를 재고하게 한다. 역사가 대부분은 함부르크 폭격과 스탈린그라드 패배가 독일인을 패배주의로 몰아넣었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독일인은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치즘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역동적인 내면에 집중하는 이 책은 상식과 다르게 2차대전을 설명한다. 독일인에게 2차대전은 나치즘보다 정당했다. 그 이유는 전쟁이 생산해낸 종말론에 있었다. 그들은 의도적이고 폭력적인 정복 전쟁을 민족 방어 전쟁으로 여겼다. 전황이 악화될수록 애국적 헌신으로 더욱 단호히 제 나라를 방어하려고 했다. 독일 사회가 종말론적 사고방식을 수용한 일이야말로 2차대전 후반기에 독일인에게 발생한 결정적 변화였다.
선정 및 수상내역
영국 펜(PEN)이 수여하는 헤셀틸트먼상 수상작(역사 부문)

저자

니콜라스스타가르트

저자:니콜라스스타가르트(NicholasStargardt)

옥스퍼드대학교사학과에서나치역사를강의하고있는영국최고의나치즘연구자중한명.아버지는베를린에서사회주의운동을하다가1939년에나치를피해호주로망명한유대인이고,어머니는호주에서아시아불교문화를연구하는고고학자이다.저자는어린시절일본에도잠깐거주하다가영국으로이주했다.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독일사민당의반反군국주의운동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고,그후런던대학교를거쳐옥스퍼드대학교에부임했다.

2005년에독일인어린이들및유대인어린이들의2차대전경험을재구성한『전쟁의증인들:나치치하어린이들의삶』을발간하여나치즘연구에새로운지평을열었고,2015년에출간한『독일인의전쟁1939-1945』로세계적인명성을얻었다.이책은한국어판에앞서9개국언어로번역되었고,영국작가협회(PEN)에서수여하는헤셀틸트먼상을수상했다.



역자:김학이

한국외대독어과를졸업하고서울대학교대학원서양사학과에서석사학위를받았으며독일보훔대학교역사학과에서「대공황기독일경제정책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

현재동아대학교사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저서로는『나치즘과동성애―독일의동성애담론과문화』와『감정의역사―루터의신성한공포에서나치의차분한열광까지』가있고,번역서로『나치스민족공동체와노동계급』,『나치시대의일상사:순응,저항,인종주의』,『홀로코스트:유럽유대인의파괴』,『히틀러국가:나치정치혁명의이념과현실』이있다.『독일인의전쟁1939-1945』는나치즘에관한다섯번째번역서이다.

목차

지도
서언
편지와일기의주요주인공들

프롤로그

제1부방어전:1939년9월~1940년봄
제1장독일인들에게환영받지못한전쟁
제2장대오의균열을막아라
제3장극단의조치들

제2부유럽의주인:1940년5월~1941년여름
제4장진격
제5장승자와패자

제3부1812년의그림자:1941년여름~1942년3월
제6장독일의십자군전쟁
제7장첫패배

제4부교착상태:1942년초~1943년3월
제8장비밀의공유
제9장유럽의약탈
제10장전사자에게쓰는편지

제5부독일에도착한전쟁:1943년3월~1944년여름
제11장폭격과복수
제12장버티기
제13장빌린시간

제6부완전한패배:1944년여름~1945년5월
제14장참호가된나라
제15장붕괴
제16장종말

에필로그:심연을건너서

약어|주|역자해설:형언할수없는전쟁범죄와내면의성찰
참고문헌|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뒤틀린대의로얼룩진2차대전,
그잃어버린시간을독일인의이야기로복원하다

한병사가1940년2월아내에게보낸편지에썼다.‘그모든것을내년에는할수있을거야.알았지?’2년뒤,다른병사가맹세했다.‘우리가지금하지못하는모든것을다음에는따라잡을수있을거야’.그들은전쟁이후의삶을꿈꿨다.1939년9월에2차대전이발발했을때전쟁은독일에서인기가없었다.그러나전쟁은독일인의적극적인참여가있었기에지속되었다.이책은독일인의자아탐색과정에서흥미롭고끔찍한아이러니를발견한다.그들은저마다다른이야기로전쟁이라는잃어버린시간에참여했다.

독일군장교인빌름호젠펠트는이책에서중요하게다뤄진다.그는1939년8월26일나치가동원령을선포한다음날에징집되었다.독일인이폴란드인에게가한폭력을목격한호젠펠트는아내에게보내는편지에썼다.‘나는병사가된것이얼마나기뻤는지몰라요.그러나오늘나는나의회색야전복을갈기갈기찢어버리고싶습니다.’그는자신이‘인류에대한범죄행위를방어하는방패가된것’을고통스럽게여겼다.어쩌면그고통이피아니스트슈필만을돕는원동력이됐을지도모른다.5년3개월반동안바르샤바에서유대인35만명이학살되었다.도시대부분이파괴되었고130만명이던인구는15만3천명으로감소했다.피아니스트브와디스와프슈필만은형체만남은도시에서생존하여걸어나왔다.

1942년12월초베를린교외에사는역사소설가요헨클레퍼가내무장관프리크를만났다.유대인여성과결혼하여18세의의붓딸을둔그는전쟁직전부터불안했다.그때그는예방책으로유대인아내가강단벽면에루터와힌덴부르크와히틀러의상징으로가득한교회에서기독교세례를받도록했다.1942년12월초,유대인이송이시작되고혼합혼부부를강제로이혼시킨다는소문이자자했다.클레퍼는프리크를다시찾아갔다.짜증난프리크는그를친위대정보국으로보냈다.클레퍼는그곳에서유대인과과장을만났다.클레퍼가아내이야기를꺼내자과장은단호하게대답했다.‘합동이민은허용되지않습니다.’클레퍼딸의출국비자도거부했다.그과장의이름은아돌프아이히만이다.클레퍼가족은그들방식으로독일을떠나기로결심했다.‘오늘우리는함께죽음으로간다.’예수의그림을걸어놓고그들은바닥에엎드려서서로의얼굴을바라보았다.수면제와가스가작동하고있었다.

이책은클레퍼가족의죽음을암시한후역사의아이러니를비극적이고문학적으로서술한다.사실나치는유대인과기독교인부부를이혼시키지않았다.개신교로개종한유대인인빅토르클렘퍼러는그덕분에생존할수있었다.그러나모종의조치가임박했다는신호는계속되었다.1943년3월‘아리아인’과결혼한베를린의유대인남자1,800명이체포됐다.로젠스트라쎄건물에갇혔다.그다음주유대인남자들의아내들이로젠스트라쎄건물밖도로에모였다.그들은외쳤다.‘내남편을돌려내라!’그들은포기하지않았고결국게슈타포는남편들을풀어주었다.

1944년7월20일에누군가가히틀러암살을시도했다.영화〈작전명발키리〉의소재이기도한‘발키리작전’이다.그날클라우스쉥크폰슈타우펜베르크대령이설치한폭탄은히틀러의동프로이센야전사령부회의실에서폭발했다.장교세명과속기사가죽었다.그러나회의실에있던다른24명과마찬가지로히틀러는고막이터지고상처만입었을뿐무사했다.독일인은발키리작전을계기로전보다더결집했다.뉘른베르크친위대정보국보고서에따르면나치에대해비판적인사람들조차발키리작전을우려했다.‘오직지도자만이상황을정리할수있으며,그의죽음은카오스와내전을일으킬뿐’이라고확신했다.

크리체프수용소의전쟁포로식사담당관인콘라트야라우쉬는그곳에서한러시아인에게러시아어를배웠다.러시아어선생이투르게네프소설을낭독하자야라우쉬는‘내가그나라의영혼을만지는느낌,그영혼이스스로를지각하고아는방식으로그영혼을만지는느낌’을경험했다.이아름다운순간에뒤따르는일은학살이었다.1941년11월초에친위특공대가수용소에도착했다.특공대는유대인일부를시멘트공장지하실로데려가사살했다.아내에게쓴편지에서야라우쉬는의미심장한일화를언급한다.‘유대인들이맨발로눈위를걷는’모습을보았다는그의기록은참혹한뒷이야기를암시한다.

1941년7월러시아전선에서행군하면서한스알브링은서구의문명화와동구의자연을대조했다.‘소나무숲이아득히멀리까지뻗어있’는곳에서감자를깎는유대인을보고는원시적이라며'우스꽝스럽게과장할필요조차없다'라고편지에썼다.그는볼셰비키를혐오하고그들의무신론에분노했다.그러나처형때총알이머리밖으로뚫고나오는것을가까이에서보고충격에휩싸였다.고야의가장어두운그림보다더어두운장면들,사살된시체로가득한구덩이들을목격하고그는괴로웠다.1942년3월이면알브링은다른사람이된것처럼생각한다.그는유대인시체더미를보면서종전에는‘마구잡이로무질서하게시체위에시체를던져버렸는데이제는…잘정리되었다’고무심히말한다.한편지에서그는전쟁에서‘잃은것보다더많은것을얻었다’고쓴다.‘우리가지난수백년동안그릇되고갈수록왜곡되어간인간관을추종하다가이제야비로소새롭고도진정한인간관이우리내면에서올라오고있다는것,아마그것이이전쟁의형이상학적인의미일거야.’그가말하는‘전쟁의형이상학적의미’는얼마나2차대전이복잡하고끔찍하며공허했는지밝힌다.

“패전은전쟁중의모든희망을산산조각내고오직고통만을남겼고,헛된영웅주의의그림자는종전이후에어느장군이동부전선의전투에서독일이승리할수도있었다고주장해도그주장을압도해버렸다.그리고또그모든종말론적인예언들에도불구하고독일인들은그러나어떻든횔더린의‘미지의심연’의피안에도있지않았다.”_785쪽

‘비밀의공유’와‘침묵의나선형’,
그때독일인은홀로코스트를이미알고있었다

유럽에사는유대인대부분은1942년초에아직살아있었다.그러나1942년말에유대인대다수는사망한다.

1942년,소독전문가이자친위대장교인쿠르트게르슈타인은유대인옷가지를소독하는방법에대해조언하고자베우제츠를방문했다.유대인들이가스실에모여있었다.엔진을수리하는두시간반동안갇혀있었다.게르슈타인은리비우유대인들이가스로죽는장면을목격했다.그와동행한인물은친위대자문위원이자마르부르크대학교위생학교수인빌헬름판넨슈틸이었다.그교수는그곳에서벌어지고있는일에매료되었다.안경에김이서릴때까지그는가스가흐르는구멍을들여다보았다.벌거벗은유대인들이울부짖는소리를듣고선그곳이‘유대교회당’같다고말했다.이후에어느만찬에서판넨슈틸은수용소요원들이행하는‘작업의위대성’을칭송했다.게르슈타인은스웨덴외교관에게그사실을본국에게전달해달라고부탁했다.베를린의루터파주교에게도알렸다.주교는침묵했고스웨덴으로보낸보고서는서류철에처박혔다.

하사관빌헬름코르니데스는근처의갈리치아라바루스카역플랫폼에서기차를기다리고있었다.그때젖소운반트럭38대가유대인을가득싣고도착했다.리비우에서오는마지막유대인들이라고한경찰관이코르니데스에게말했다.열차에서코르니데스는철도경찰관부부와같은칸에탔다.부부는유대인학살수용소를가리키겠다고약속했다.기차가커다란소나무숲을가로지르는데어딘가에서달착지근한냄새가났다.벌써냄새가난다고경찰관아내가외쳤다.가스냄새라고경찰이웃으며말했다.소각장에서나는냄새였다.비슷한일화가프랑스·벨기에포로들의이야기에서발견된다.노동을위해라바루스카역에도착했을때그들은독일인예비경찰관에게물었다.‘유대인을가득실은열차들이도대체어디로가는것인가요?’경찰관은퉁명스럽게대답했다.‘하늘로.’
1943년봄스웨덴으로탈출하는데성공한벨기에포로두명이영국요원에게정보를전달했다.영국요원은보고서를작성했다.보고서에따르면벨기에포로들에게가장큰인상을준것은유대인절멸이었다.두사람모두학살을목격했다.한사람은유대인을실은트럭이숲으로들어가서몇시간뒤에돌아오는것을보았다.트럭은비어있었다.유대인아이들과여자들의시체가배수로와기찻길에방치되었다.몇몇독일인은유대인학살에이용하는체계적인가스실을자신들이건설했다고자랑했다.

학살소식은독일인들에게빠르게확산했다.죽음의수용소에서시작한소문은전화교환원들,철도원들,화학공장건설엔지니어들을통하여퍼져나갔다.선술집술꾼들의대화와수많은사람의일기에도등장한다.그동안많은역사가는독일인들이홀로코스트에대한정보를가까운친척과가족들사이에서만비밀스럽게공유했다고생각했다.친밀한폐쇄적인집단너머에서는익명의소문으로존재했다고가정했다.홀로코스트는공적인자리에서대화의주제가될수없었다는추정이다.독일경찰과친위대의수장인하인리히힘러는유럽유대인의절멸이비밀리에공유해야하는과업이며‘우리는그비밀을무덤까지가져가야한다’고나치제3제국지도자들에게역설했다.그러나이책의저자에따르면비밀은은밀하지않았다.많은독일인이홀로코스트라는비밀을공유했다.그렇다면그‘비밀’이어떻게일반인들사이에서공유됐던것일까?

이책은괴벨스가사용한조심스럽고섬세한보도관리에집중한다.괴벨스는절멸에대한정보를언론으로독일인에게넌지시내비쳤다.학살정보로공모의느낌을자아내려는의도였다.이과정에서‘알지못하는앎’이구축되었다.그것은공적인충성이나도덕적책임감을요구하지않는지식이었다.이책은‘침묵의나선형’이라는개념으로그지식을설명한다.그용어는전후서독의커뮤니케이션연구자엘리자베스뇔레-노이만이1974년에고안했다.그는전후서독의민주주의와관련하여그용어를사용했지만,그것은1941년과1942년에영향받은개념이기도했다.뇔레-노이만에따르면소수자의위치에있다고느끼는개인은고립이나사회적처벌을두려워해서침묵하는경향이있다.그경향은소수의견을견지하는잠재적인사람의수를줄인다.그와중에언론이다수의견해를보도하면다수의견은도덕적지위가강화되고안정된다.뇔레-노이만은개인의심리적효과에주의했다.사적인압력이고립과관련한개인의공포심을촉발하는데얼마나중요한역할을하는지보여준것이다.

지금껏여느역사서는홀로코스트분석에서작동방식을강조했다.홀로코스트는지난20년간나치독일과2차대전을바라보는우리의시각을결정했다.비교적최근에정립된시각이다.그러나그시각자체는독일인들이2차대전당시학살에서자신의역할을어떻게생각했는지말해주지않는다.이책의저자는독일인이대량학살에관한정보를어떻게받아들이고그지식을어떻게자아에통합했는지이야기한다.독일인에게중요했던것은나치즘이아니라전쟁이었다.따라서그들은제노사이드가전쟁의배경에있다고이해했다.그렇기에유대인과독일인은전혀다른기대와공포를느끼고있었다.이책의저자는바로그문제성이야말로2차대전독일사를서술하는이책의핵심이라고말한다.독일인은제나라가일으킨전쟁이대량학살이라는점을자각했을까?만약그렇다면그사실에어떻게영향받았을까?달리표현하면2차대전은독일인이대량학살에대한지각을형성하는데어떤영향을끼쳤을까?복잡한질문을제기하는이책은전범국의내면을들여다보는풍성하고독특한역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