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그것을 위한 베개 (김혜빈 소설)

단지 그것을 위한 베개 (김혜빈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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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머뭄의 병존(竝存)에서
관용과 이해의 공존(共存)을 그리는,
2023년 박화성소설상 수상 작가 김혜빈 소설집
“그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첼로의 선율이 대화 소리와 뒤섞였다.
음악 소리는 차츰 배경음이 되었다.”

“커다란 배추 위로 이슬이 흘렀다. 차가운 바람 때문에 코끝이 시릴 즈음 고개를 숙였다. 코와 눈, 이마와 입술이 차례차례 흙에 닿을 때까지.”

장편 『그라이아이』로 2023년 박화성소설상을 수상한 김혜빈의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같은 해 박화성소설상을 수상하면서 “참신한 주제 선정과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있는 전개로 마지막까지 심사위원의 마음을 붙들었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두 편을 모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작가는 그만의 참신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 소리가 거슬리는 윗집과 윗집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가 거슬리는 아랫집이 사는 다세대빌라(「단지 그것을 위한 베개」), 사시안을 가진 호준이나 얼굴에 모반을 가진 시내와의 평범한 섞임을 거부하는 사회(「배추밭에 얼굴을 묻을 때」). 서로의 경계 안에서 잠시 머물며 스치는 병존(竝存)의 관계가 아닌 관용과 이해가 함께 어우러져 ‘공존’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소망을 들려준다.

소설의 본령이란 결국 손에 쥔 것이나 흩어져버린 것을 추적하지 않고, 그것을 쥐려고 했던 마음, 그리고 흩어지고 남은 것들을 쫓는 것 같은데, 정말 그런가요? 그렇게나 올곧은 게 소설입니까? 그렇다면 나는 소설을 쓸 수 없는데요. 내가 생각하는 소설은 음침하고 더럽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인데._「작가의 말」에서

몇십 년 전의 미국이든 현재의 대한민국이든, 언제 어디서나 도시의, 아니, 도시 변두리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어딘가 어설프고 어색한 자신의 모습을 의심하고 회의하면서도, 정확히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들. 자신을 일종의 부록 같은 것으로 실감하고야 마는 여자들이 있다._「해설」에서
선정 및 수상내역
ㆍ2024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 소설
저자

김혜빈

2023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같은해박화성소설상을수상했다.장편소설『캐리어』『그라이아이』,소설집『하지의무능한탐정들』(공저)『SF보다­Vol.4그림자』(공저)등이있다.

목차

단지그것을위한베개
배추밭에얼굴을묻을때

해설:변두리헤테로토피아_이소(문학평론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머뭄의병존(竝存)에서

표제작「단지그것을위한베개」의공간은오래된다세대주택이다.지타가1층에세들어사는다세대주택2층에용인,구나,다희가이사를온다.타지에서올라와서울에서같은대학을다니며우정을이어오던그들은사회인이되고한집에살기로결정한다.이사를온후불면증이시달리게된용인은“새벽에깨는것만이문제가아니었다.잠에서깬뒤에는눈을뜬채로아침이오기만을기다리다가아랫집할머니가트는클래식음악소리에놀라편두통을겪기일쑤”였다.숙면을취할수있다고광고하는‘2+1’베개를구입했으나탐탁지않았던용인은자신이쓰던베개를버린다.그베개를아랫집지타가주워들인다.남편과사별하고그가남긴연금의잔액을계산하며홀로지내는칠십대의지타는클래식연주를듣다보면떠오르는여명의붉은빛에“그날하루를살아갈힘”을얻고SNS에뜨는외국정원사진들을보며해외여행을꿈꾼다.
“당연한것처럼두개를묶음으로”파는물건들을굳이단품으로구입하는지타와“두개세트로팔면잘팔릴거”라고생각하는용인,구나,다희는대문문단속부터부딪친다.용인의일행이막이사왔던때지타가그들이대문단속에신경을쓰지않는것을지적하자돌아온답은“저희는항상잘닫아요.할머니야말로항상열고다니시잖아요.아침에잠도못자게음악까지틀면서”였다.지타는마뜩잖은그들에게느끼는“불편한감정은홀로있는저녁이면분노로변했다가알아차리지못하는사이적개심”으로커져간다.나아가그들이문을제대로단속안하는것이자신에대한복수라는생각까지든다.아랫집에서들려오는클래식음악소리가거슬리는윗집과윗집에서풍기는음식냄새가거슬리는아랫집의‘공존’은가능할것인지.

일요일저녁을방해하는수다소리와맛있는음식냄새를견디기가어려웠다.음악소리가시끄럽지않을까걱정했지만시끄러운건윗집도마찬가지였으니마음놓고〈첼로협주곡〉을만끽했다._「단지그것을위한베개」에서

「배추밭에얼굴을묻을때」에서시내(나)와엄마는“도시의가장자리,드높은상가건물이자리한중심가와거리가먼”경기도외곽의신축아파트단지에살고있다.아파트뒤편공터를텃밭삼아작물을경작하는사람들에대해엄마는“허락도없이남의땅에서콩이며양파며마늘같은것을잘도키워먹고있는무뢰배들”이라고비난한다.엄마역시그‘무뢰배들’처럼도시에서농작물을경작한다.단지도시텃밭사업에당첨되어분양받은5평의땅에서그들과는달리‘합법’적으로기르고있다.엄마는도시텃밭에서시내의중학교동창호준을만난다.그리고그의기행을목격한다.“이른새벽,사람이없는시간에밭을살피러가면호준은항상흙에얼굴을묻고가만히엎드리고있”는모습을마주한다는것이다.어릴적친구호준을보러텃밭에따라나서겠다는딸을엄마는여느때와달리달가워하지않는다.“다니던직장까지그만두고대학원에들어갔으면서다시취업할기미가없는”,“정확히는일할의지조차없는”딸을집밖으로나가게하려던평소와는다른반응이다.그표정은15년전호준을불편해하던엄마의모습과같다.“호준은그러니까,어릴적이나지금이나‘엄마가생각하기에함께어울리지않았으면하는친구’”다.
호준은명문대행정학과에차석으로들어갔다.몇년뒤행정고시에붙어5급사무관시보로발령났던호준은채6개월을버티지못하고자진퇴사했다.시험공부를너무해서머리가어떻게된거아니냐고엄마는그랬지만,사시안인호준의재수술을위한퇴사였고시내는호준의결정을이해했다.“특징이있으면잊힐수가없어.나는그게낙인같아”라고이야기하는호준처럼얼굴에모반을지닌시내는이해할수있었다.시내역시서울에있는대학시각디자인과를나와사회생활을시작하고몇차례회사를옮겼다.시내는마지막퇴사후대학원을선택했다.“사회보다는학교가나았기때문이었다.돈을버는곳에서는찾을수없는관용과이해가학교에는존재”했기때문이었다.

호준의말이맞았다.겉으로봤을때평범한아이들은시간이흐를수록이름도반도다잊히지만호준과나는아니었다.우리두사람은얼굴에점크게난애,왜그사시였던애,라고끊임없이호명될운명이었다._「배추밭에얼굴을묻을때」에서

관용과배려가있는공존(共存)으로

도시의삶이란변두리에서중심에좀더가까운변두리,또좀더가까운변두리로동심원의경계선을그리면서중심으로나아가고있는것은아닐까.시내의엄마는농작물을경작하고자하는동일한마음임에도아파트앞빈터에서작물을키우는사람들을향해“저일도참수고로울것”이라는시내의생각과다르게땅주인이얼른‘무뢰배들’을정리하고그곳에번듯한상가를세우기를바라고,‘특별’한호준과‘특별하지만그보다는나을수있는’시내의친분을바라지않는다.중심을향해한단계더안에머물기를원한다.영역안에정착했다는안정감과중심으로나아가고자하는욕망은그자리에‘머뭄’인병존(竝存)의삶일수밖에없을것이다.머뭄이아닌관용과이해를통한공존(共存)의삶을전하고자한작가의바람은아랫집에서지타가틀어놓은드보르자크의음악이들려오고용인,다희,구나가식사를하며나누는대화소리에첼로의선율이뒤섞이는풍경으로온전히전한다.

앞으로도,지타의삶을견딜만한것으로바꿔주는마법같은클래식음악은2층의세여자에겐규칙적으로들려오는소음에불과할것이다.마찬가지로,세여자가함께하는즐거운저녁식사시간은1층의지타에게냄새와소음의침범으로느껴질것이다.헤테로토피아는현실에실재하고그렇기에타인에게어떠한방식으로든영향을미치지않을수없다.심지어,시내가호준의도움을받아텃밭에애정을기울이게되자정작호준은어디론가사라져버리고마는것처럼,나의헤테로토피아가타인의헤테로토피아를밀어낼수도있을것이다.그러나그럼에도,아니바로그렇기에삶은언제나뒤섞이는방식으로변형되며지속된다._「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