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절의시대,편지로쌓아올린영혼의다리
우리는효율과성과,그리고속도가지배하는시대를살아가고있다.모든것이디지털화되고즉각적인반응을요구받는사회에서가장먼저마모되고소외되는것은다름아닌'사람'과'관계'의온기다.더군다나지난수년간인류를덮쳤던코로나19팬데믹은물리적거리두기를강제하며우리삶의기반이얼마나연약한지,그리고타인과의대면이끊겼을때인간이얼마나고립되기쉬운존재인지를극명하게보여주었다.
이형진의《마음편지》는바로그단절과불확실성의한복판에서시작된고요하지만강력한저항의기록이다.복지관의문이잠기고월례회의조차열수없었던2020년어느날,저자는매달말일직원들에게모바일편지를쓰기시작했다.당초감염병위기를건너가기위한임시소통창구였던글은시간이흐름에따라지인들과지역이웃1,000여명에게배달되는삶의쉼터이자영혼의비타민이되었다.6년이라는시간동안한달도빠짐없이이어진이편지들은단순한업무소식지가아니다.수리산자락의계절변화와복지관구석구석에서일어나는작은기적들을낚아채어타인에게건넨'가장다정한안부'였다.
2.수리산의사계절이가르쳐준수용과채움의미학
저자의글이지닌가장큰미덕중하나는자연을바라보는깊고따뜻한시선에있다.저자의관장실창너머로펼쳐진수리산의숲은그자체로거대한스승이자성찰의거울이다.저자는계절마다옷을갈아입는산을바라보며인간사회가잊고지내온삶의이치를조용히꺼내어놓는다.
봄날산자락에피어나는진달래를보며"인식의한계는곧수용의한계"임을깨닫고,타인의미성숙을탓하기전에스스로가상대를수용할그릇이되어있는지를자문한다.미풍에도민감하게반응하며잎을뒤집는은사시나무를보며이용인을향한'최선의환대'를다짐하고,겨울을나기위해미련없이잎을비워내는가을나무앞에서조직과개인의낡은관습을비워내야할당위성을발견한다.또한,산사태를막기위해가파른비탈길의흙을단단히움켜쥐고있는나무뿌리를보며,눈에띄지않는곳에서방역과돌봄의끈을놓지않는직원들의헌신을오버랩시킨다.
자연에대한이러한관찰은한가로운풍류가아니다.그것은삶의고단함과복지현장의중압감을온몸으로견디며퍼올린숭고한지혜다.저자는숲이서로다른수종과잡목,풀들을있는그대로허용하며풍성해지듯,우리사회역시서로의다름과미완성을허용할때비로소아름다운공동체가될수있음을나직하지만설득력있게보여준다.
3.복지(福祉)의본질:효율을넘어'사람을끝까지믿는일'
사회복지현장은종종수치화된성과와서류,평가라는행정적틀로재단되곤한다.그러나14년간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을이끌어온저자는행정서류가담아내지못하는복지의진짜온도는'사람을대하는관점'에서결정된다고단언한다.
책속에는발달장애아이들이언어대신쏟아내는울음소리,노점에서양말을팔아모은20만원을선뜻복지관이용자들의음료수값으로건넨노점상누님의손길,25년전학교밖청소년으로만나마흔이넘어서도감사편지를보내온제자의구두선물등가슴먹먹한에피소드들이가득하다.저자는이들을결코시혜나동전한닢의대상으로바라보지않는다.이용인을'서비스대상자'를넘어친밀한'연인'으로바라보고자애쓰며,그들의서툰표현속에서삶의위엄과가능성을읽어낸다.
특히코로나19라는절망의터널속에서도"실망의아쉬움보다기대가주는희망이우리를훨씬더행복하게만든다"며기대를포기하지않는저자의태도는오늘날우리사회가잃어버린'사람에대한신뢰'를일깨운다.복지는누군가를불쌍히여겨돕는기술이아니라,그가스스로꽃피울때까지묵묵히곁을지켜주는'기다림과동행'이라는사실을책전체를통해증명해내고있다.
4.일상속에서살아움직이는신앙과섬김의실천
저자의이력에서눈에띄는것은신학과사회복지를접목하여평생을장애인사역과복지현장에바쳐왔다는점이다.그러나이책은기독교적언어로점철된도그마적설교가아니다.오히려신앙의본질인'하나님사랑과사람사랑'이어떻게지극히평범한일상의언어와행위로번역될수있는지를우회적으로,그러나선명하게보여준다.
저자는다윗의세용사처럼뒷산의위험한비닐을제거하러나선직원들에게서성경속헌신을발견하고,물처럼흐르며막히면돌아가고오해마저품어안는원로목사의'물목회'에서공동체의리더십을배운다.예수그리스도를아는지식이관념에머물지않고"머리에서가슴으로,그리고손과발로"이어져야한다는저자의고백은,오늘날말만무성하고행함이빈곤한종교인들에게조용한경종을울린다.신앙이란거창한구호에있는것이아니라매일아침눈을쓸고,허기진직원에게따뜻한누룽지한그릇을건네며,소외된이의안부를묻는'작은선택들의누적'임을깨닫게한다.
5.당신은오늘어떤마음을품고살아가고있습니까?
《마음편지》는읽는이의마음을단숨에압도하는화려한기교의문장은없다.하지만서두르지않고꾹꾹눌러쓴그의담백한문장들은읽을수록깊은숭고함과정서적안식감을안겨준다.책장을넘기다보면어느새차가웠던마음의온도가1도쯤올라가고,주변의소외된이웃과자연을바라보는시선이이전과달라졌음을느끼게된다.
이책은사회복지사에게는초심을회복하게하는거울이요,삶의무게에짓눌린현대인에게는따스한그늘이되어주는나무이며,진정한사랑의실천을고민하는그리스도인에게는삶의지침서다.저자가던지는마지막질문은책을덮은후에도오랫동안가슴속에울려퍼진다.
"당신은오늘어떤마음을품고살아가고있습니까?"
이책은더나은세상을꿈꾸며오늘하루도각자의자리에서버텨내고있는우리모두에게건네는가장성실하고따뜻한위로의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