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않던두PD구민정·오효정의이야기,
‘그일’이모든걸바꾸기전까지는…
뮤지션김윤아,소설가천선란추천!
“그들이함께마지막을향해가는여정에는유머와존엄이있다.”
“우리가피할수없는두가지,떠나는것과남겨지는것이동시에담겨있다.”
이책은민정과효정,누구나한번쯤스쳐갔을법한이름을가진두사람의이야기다.흔한이름만큼그들이걸어온삶의행로는우리에게도어쩌면익숙한것이다.한가족의아이로태어나,기대에부응하기도하고때로는반하기도하면서자신의꿈을찾아나가는과정.그리고그꿈을이루기위해부단히애쓰고,마침내닿았다고믿었던벅찬순간.
민정은무인(武人)집안의별종이다.아버지는88올림픽국가대표축구선수,어머니는학창시절핸드볼선수,외삼촌들은국가대표축구선수와특전사출신의체육교사다.그러니그가‘육군사관학교여자문과수석합격’의길을걸었다면,틀림없이이집안에걸맞은구성원이되었을테다.하지만그는중학교여름방학때맛본연출을잊을수없었다.방학숙제로만든연극에서,자신이의도한대로울고웃는관객을바라보며가슴이뛰었고,‘나는이런걸좋아하는사람이구나’깨달았던것이다.
결국민정은육사대신원하던과를선택했고,방송국PD로입사해〈1박2일〉〈슈퍼맨이돌아왔다〉〈불후의명곡〉등의예능조연출을거쳐,SF드라마와음악콘서트가결합된〈지구위블랙박스〉를만들며한국PD대상에서TV부문실험정신상을수상한다.그는‘가치있는메시지를재밌게전하는사람’이되기위해멈추지않고달렸다.
효정은이름에갇히기를거부한반항아다.한자로‘조용히효도하라’라는뜻을가진그의이름은,딸만둘이던집안에서아들을바라며지어졌다.그리고정말로,효정아래로남동생이태어났다.타의로주어진인생의첫미션을완수한그는더이상그이름이규정하는삶을따르지않기로한다.중학교시절,드라마감독이되겠다는목표를세운이래그는단한순간도머뭇거린적이없었다.
일찌감치현장에뛰어든효정은치열하게갈고닦은실력을인정받아프리랜서PD가되었고,〈아는형님〉의예능조연출,드라마〈구르미그린달빛〉〈이태원클라쓰〉등의내부조연출을거쳐,〈경성크리처〉의포스트프로덕션슈퍼바이저를맡았다.효정은고된만큼달콤한성취의쾌감을맛본뒤,더큰무대와성공을향해쉼없이내달렸다.
‘그일’이없었다면,두사람은멈추지않았을것이다.그러나‘그일’은예고없이찾아와,두사람의발걸음을멈춰세운다.그리고이제,두사람의삶은전혀다른방향으로흘러간다.
우리는우리의이야기가어떻게끝날지이미알고있다
이삶의끝에서우리는무엇을아쉬워하게될까?
민정과효정은공동연출자로처음만난다.민정이속한방송사의대기획공모전에서그의기획안이1위를차지하며,무려4회차에24억원예산이배정된것이다.이프로그램을반드시성공시키고싶었던민정은“유능하고,센스넘치며,책임감강하고,성실한…유니콘같은PD”를찾아헤맸고,그렇게효정을만나게되었다.무턱대고돌진하는공격수같은민정은,그뒤를단단히지키며현실을조율해줄수비수같은효정을단번에알아본다.그순간부터,둘은완벽한파트너이자,둘도없는소울메이트가된다.
어느날민정은효정의컨디션이좋지않다는사실을알아채고병원에가보라고권한다.그무렵효정은민정과의공동연출작을준비하면서,동시에대형드라마의포스트슈퍼바이저로도일하고있었다.“인간의기본욕구인수면욕과식욕은가볍게무시”하고,“며칠내내오전에쓰러졌다가점심에링거를맞고오후에출근하는루틴”으로살고있던참이었다.효정은별일아닐거라생각하며병원을찾는다.그러나예상밖의진단이내려진다.위암4기,라고.훗날,효정은이날을이렇게회상한다.“미친듯이벌었던돈도,가지려고악썼던명예도,무너진건강앞에서는바사삭가루가되어흩날렸다.환자로판명된그시각부터난포스트슈퍼바이저도,연출하는감독도아닌그저‘31세(여)’일뿐이었다.”
우리는우리의이야기가어떻게끝날지이미알고있다.이야기의시작이‘탄생’이었으니그끝엔당연히‘죽음’이오리란사실을.하지만그사실을까맣게잊은듯산다.영영일어나지않을일,혹은아직은먼일이라여기며살아갈때,정작우리는무엇을놓치고있는걸까?끝이정해진이야기속에서,우리는우리가남길이야기를온전히써나가야한다.
전력질주하던민정과효정은속도를늦추고,나란히발걸음을맞춘다.이제두사람의걸음마다,‘이삶의끝에서우리는무엇을가장아쉬워하게될까?’라는질문이따라붙는다.두사람은더는소중한것들을‘언젠가’로미루지않기로한다.
“누군가의기대를충족하며살지않아도된다는걸명심해.너의삶은너의것일뿐이야.”
우리는다시명랑해질수있다
이이야기는누구의것도아닌,온전히나자신의것이므로.
어디선가마주쳤을법한이름을가진두사람의이야기는,‘끝’을마주하는순간더이상익숙한궤도를따르지않는다.길이바뀌자,그길을둘러싼풍경도달라진다.민정은그변화를이렇게기록한다.“효정은타인의기대에부응하기위해노력하며살아온게후회된다고했고,그걸깨달은순간부터는온전히자신에게집중했다.걸으면서나뭇잎사이로내리쬐는햇살을느끼고,햇빛에반짝이는강물을보며감탄하고,신나게지저귀는새소리에귀기울였다.”
일이우리삶의많은부분을차지하고,그를통해얻는인정이마음을풍족하게만든다는사실을부정할수는없다.이사실을누구보다잘아는효정은,아끼는동생에게마지막으로이렇게편지를남긴다.
힘든날은덤덤하게지나보내고,행복한날은말랑말랑한마음으로실컷즐기렴!매년건강검진꼭받고.80퍼센트만열심히살아.(…)20퍼센트는꼭휴식에쓰렴.
사실너의인생이80이고,일이20이어야하는데.
왓더헬!세상에그게쉽겠니…?누구보다잘안다.
그리고누군가의기대를충족하며살지않아도된다는걸명심해.너의삶은너의것일뿐이야.(「동생,석준이에게」중)
편지속“왓더헬”이라는짧은한마디안에는담담한체념과단단한다짐이스며있다.삶이란결코뜻대로되지않는다는체념,그럼에도불구하고끝까지놓지말아야할것들을붙잡으려는다짐.효정의마지막당부는단호했다.너의삶은,누구의것도아닌,오직너의것일뿐이라고.
효정을떠나보낸뒤,민정은깊은슬픔속에서마침내한가지깨달음에다다른다.“적당히사랑하고,적당히느끼며,적당히표현하는삶의끝에는과연무엇이남을까?상처받지않기위해마음이무뎌지는것만큼인생에서슬픈일이있을까?”민정은효정과함께걸으며조금씩용기를배웠다.다시소중한사람을잃을까두렵지만,웅크린채머물러있기보다온마음으로사랑하고,온몸으로느끼며,삶의기쁨과슬픔을낱낱이표현하기로.
우리는우리의이야기가언제끝나는지알수없다.그렇기에지금이순간은유일한처음이자끝이다.매순간우리가주고받는말은‘이세상에마지막으로남기는말’이될수도있다.절망은피할수없지만,그안에갇혀있을필요는없다.우리는다시명랑해질수있다.아직남은삶을,계속써나가야할이야기를외면할수는없으니까.결국,이이야기는누구의것도아닌,온전히나자신의것이므로.
이제우리도서로에게‘명랑한유언’을건네자.민정과효정의이야기가지금이순간,우리자신에게충실할용기를주길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