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세계

사랑의 세계

$17.00
Description
“마시면 목이 마를 걸 알면서도 자꾸 바닷물에 손을 뻗는,
세계 바깥으로 추방되고 난파된 인물들, 항상 갈구하고 허덕이는 인물들에 대해 쓰고 싶었어.”
이희주 연작 소설 『사랑의 세계』 개정판 출간
사랑에 사로잡힌 세 여자

이끌림과 머뭇거림이 교차하는 순간, 투명하게 드러나는 욕망의 풍경



이희주 연작 소설 『사랑의 세계』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그간 이희주의 소설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늘 비슷했다. ‘미친 여자.’ 그들은 사랑에 미쳐 있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러므로 여기 앉아 있는 나와는 다르게 이상한 여자들이라고.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멀리서 얼핏 바라보았을 때에나 가능한 감상 아닐까? 우리는 이 껍질 너머 속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미친 여자’라는 말은 우리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들기보다, 타인을 그저 구경하는 데 그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말은 경계선 바깥에 선 타인을 지칭할 뿐, 사랑에 사로잡힌 우리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사랑의 세계』 개정판은 바로 그 안쪽, 욕망의 투명한 풍경 속으로 독자를 다시 불러들이고자 기획되었다.
저자

이희주

2016년『환상통』으로문학동네대학소설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5년「최애의아이」로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장편소설『성소년』『나의천사』등이있다.

목차

탐정이야기7

여름99

또하나의신화199



대담|정기현(편집자·소설가)

사랑을헤집어건져낸말들295

리뷰|박솔뫼(소설가)

잘할수있지만더하지않은것320

추천의글|구구(독서공동체〈들불〉운영자)

나만의모래성을짓기로324

작가의말327

출판사 서평

이희주의소설에따라붙는수식어는늘비슷하다.‘미친여자.’그들은사랑에미쳐있고,욕망에사로잡혀있으며,그러므로여기앉아있는나와는다르게이상한여자들이다.끈적하고징그러운욕망,주체할수없는광기……
그런데이런말들은어디까지나멀리서얼핏바라보았을때에나가능한감상이아닐까?데뷔이래,이희주는여성의욕망을,그리고사랑과폭력이라는분리할수없는한몸을끝까지밀고나가며써왔다.그러므로이수식어들은지금도여전히,어쩌면가장적절한표현일지도모르겠다.
그러나우리는이껍질너머속살을들여다볼필요가있다.왜냐하면‘미친여자’라는말은우리를자기자신에게집중하게만들기보다,타인을그저구경하는데그치게만들기때문이다.그말은경계선바깥에선타인을지칭할뿐,사랑에사로잡힌우리자신의얼굴을가리키는말은아니다.『사랑의세계』개정판은바로그안쪽,욕망의투명한풍경속으로독자를다시불러들이고자기획되었다.

사랑에사로잡힌세여자
이끌림과머뭇거림이교차하는순간,투명하게드러나는욕망의풍경

『사랑의세계』에수록된세편의연작소설은일본동경(東京)에태풍이상륙하던여름밤,한여성의실종을두고서로다른주장을펼치는여성화자의목소리로이루어져있다.그음성은하나같이강렬하여,처음에독자는그들이말하는내용을곧이곧대로믿게된다.하지만이내충돌하는목소리들속에서그내용이조금씩어긋난다는사실을깨달을때,비로소독자의귀에는그들의떨리는숨소리와가빠진숨결이들려온다.
실종된여성의이름은지윤.「탐정이야기」에서그는히로스에료코풍의숏컷을한미인에편의점아르바이트생으로근무중이다.화자는지윤을짝사랑하는볼품없는외모의니카이도를지나치게경계하는한편,스스로도이해할수없을만큼(“어머.나왜이렇게지윤한테집착하는거야?난레즈비언도뭣도아닌데”)지윤에게사로잡힌자신에게놀란다.그는길거리에서지윤을닮은호스트가어떤여성과팔짱을끼고걸어가는모습을목격하고는마치‘탐정’처럼그뒤를밟는다.
이어지는이야기「여름」에서지윤은숨쉬듯주변여성들을홀리는매혹적인인물로등장한다.이작품의화자는친구지은의초대로일본에건너와그의집에머물고있다.남성과의연애를쉬지않는지은,그런지은에게마치구애라도하는것처럼보이는지윤,그리고그런지윤의태도를즐기는듯하는지은……그들과함께화자는,지윤이버린쓰레기를몰래주울만큼그를짝사랑하는마이를쉴새없이관찰한다.그시선은집요하지만마치‘도어맨’처럼일정한거리를두고있어그는사랑에굶주린것처럼도,전혀허기지지않은것처럼도보인다.
마지막이야기「또하나의신화」에서지윤은누군가의부활이자,재림이다.「탐정이야기」에등장했던니카이도가화자로,그는지윤이사고로죽은쌍둥이오빠쇼타라고믿는다.쇼타를사랑했던그는,지윤을본순간어김없이사랑에빠져든다.그는어떤여자가칼을휘두르며지윤에게다가가는모습을목격한다.그런데그가정신을차렸을때,지윤은칼에찔려쓰러져있고,그칼은그의손에들려있는상태다.
누가지윤을죽였을까?그는죽은걸까,사라진걸까?그러나이야기의표면으로떠오르는이런의문들보다더선명하게남는건지윤을향한세여자의욕망이다.그들이몰래뒤를밟고,어찌할수없다는듯바라보고,목마른듯갈구한까닭은바로그때문.이사실을깨닫고난후에는,세여자들의목소리와몸짓이더이상강렬하게다가오지않는다.되려한없이애처롭게느껴지는것이다.

서로의세계를가장잘이해하는두작가
정기현과이희주의대담으로다시만나는‘사랑의세계’

이희주의장편소설『나의천사』(2024)담당편집자였던정기현은『사랑의세계』에수록된대담「사랑을헤집어건져낸말들」의도입부에서다음과같이이야기한다.

『사랑의세계』의인물들이귀가후자신의방안에혼자있을때,그들은나처럼몸에힘을쭉빼고아무렇게나널브러지기보다는아직바깥에서의긴장을풀지못한모습인데,이는왠지큰새의형상에가까워보인다.수많은위험을무릅쓰고비상과활강을거듭하다마침내둥지로돌아와서는커다랗게펼쳤던몸을조그맣게웅크린자세로고쳐앉기.푸르르푸르르깃털을털며떨쳐내고싶지만마음처럼되지않는기억을또한번되새기기.자리를잡은뒤에는약한새의경계하는눈으로허공을응시하기.홀로남았음에도떨고있는인물들에게문득나는너를바라보고있어,하고말해주고싶다는마음이든다.

정기현은큰소리로떠들고끈질기게이야기하는화자들에게서놀랍게도연약한새의이미지를읽어낸다.아마그는사랑에닿고싶어안간힘을쓰는한편,저도모르는사이빨려들어갈까봐두려움에몸부림치는인물들의속살을느낀것이리라.
더불어이희주는정기현의질문에답하며,어쩌면독자들이이‘미친여자’들에게서더이상미끄러지지않고그안쪽으로진입할수있도록도와주는작은힌트를제공한다.

정기현:에리카는윤을정말쇼타라고생각해서좋아한걸까,아니면윤을좋아하는데스스로납득가능한이유가필요해서쇼타의환영을덧씌운걸까.
이희주:나의답은쇼타야.그의환상에최선을다해맞장구쳐주는게그당시에는내가작가로서할몫이라고생각했어.뭐랄까,에리카의나아지고싶지않은의지를존중하는게내사랑방식이었던거야.

당신은이희주의소설에서무엇을보고느끼게될까?바깥으로만뻗어나가던고집스러운시선이,이제부드럽게안쪽으로향하길바라며.새롭게펼쳐지는사랑의세계를다시만나주시길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