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충동 (최윤정 드로잉 에세이)

선의 충동 (최윤정 드로잉 에세이)

$25.00
Description
평생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온 작가가 뒤늦게 만난 선과 색,
‘충분히 좋은’ 드로잉의 세계
9세기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샤를 보들레르는 사진 기술이 “예술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2022년 미국의 한 미술대회 수상자가 “예술은 죽었다. AI가 이기고, 인간이 졌다”라는 인터뷰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그는 AI를 활용한 디지털 미디어 작품으로 미술 부분 대상을 수상한 터였다. 이후 급속도로 이루어진 AI 기술의 발달은 예술 창작자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AI가 더 빠른 속도로,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인간 예술가들에게 작업물을 의뢰할 까닭이 어디 있을까? 산업적, 경제적 논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예술의 가치는 작품의 가격이 얼마인지로 판단되곤 한다. 예술을 하나의 상품이나 결과물로 축소해서 바라본다면 선을 긋고 색을 칠하고 무언가를 만지고 다듬는 모든 행위는 그저 기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예술은 단지 화려한 갤러리에 걸려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최윤정의 드로잉 에세이 『선의 충동』은 바로 예술의 존재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책이다. 저자는 조르주 바타유, 장 다비드 나지오 등을 우리말로 옮긴 프랑스어 번역가이자, 90년대 이후 한국 아동문학의 발전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아동문학평론가로 평생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온 인물이다. 그런 저자가 처음 드로잉을 시작한 것은 미켈란젤로의 화집을 번역하던 어느 날, 어린 자녀들이 쓰고 남은 종합장에 거장의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부터이다. 이후 간헐적으로 시도하던 그림은 어느새 취미를 넘어서 작업실을 마련하고 전시회를 열 정도로 발전했다. 이전에도 『양파 이야기』 『우호적인 무관심 』 등 에세이에 자신의 그림을 담아 출간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인 ‘드로잉 에세이’로는 첫 책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이십여 년 간 갈고 닦아온 그림 작업은 진지하고 본격적이다. 때로는 활달하고 거침없는 선이 페이지를 가로지르고, 때로는 뜯어붙이고 덧대어 그린 콜라주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저자는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피카소의 말에 기대어 한때 어린이였던 모든 인간은 예술가였다고 믿으며, “드로잉이란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라는 요셉 보이스의 말을 디딤돌 삼아 그림을 그린다. 따라서 그의 드로잉은 근사한 미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작업이라기보다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 방식이자 한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고 그 과정에서 위로와 보상을 받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선을 긋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마음을 다스리는 일로 바라보게 되면 어째서 예술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이해하게 된다.
저자

최윤정

작가,번역가,평론가.연세대학교와파리3대학에서불문학을공부했으며,현재바람의아이들대표로있다.1995년《작가세계》여름호에발표한오정희론「부재의정치성」으로비평활동을시작했다.저서로는에세이『우호적인무관심』『입안에고인침묵』,평론집『책밖의어른책속의아이』『슬픈거인』등이있다.번역서로는『미래의책』『문학과악』『미술과정신분석』『미켈란젤로부오나로티』등의비평서와『난아무것도먹고싶지않아』『악마와의계약』『스파게티신드롬』『딸들이자라서엄마가된다』『늑대의눈』등다수의소설및어린이·청소년도서가있다.2010년프랑스정부로부터문화예술공로훈장을,2017년문화체육관광부장관표창을받았다.

목차

서문:충분히좋은드로잉007

예술이없이는013
길가에뒹구는낙엽들018
눈한번깜빡이는사이022
고요하게살아있는죽음028
감정의통로,추상031

방랑의시간들034
이름을잊어버린다는것037
나하나의전쟁039
해를향해나아가는049

식물이라는반려053
내마음엔잡초가자란다054

염세주의라는열정063
괴로움이라는근원을
알수없는과잉에너지067
새는날아서075
해가없는날,무사하게
살기참힘들다078

발이땅에닿지않아도081
바다를보러가야한다082
꿈꿀시간085
43년의시간087

에필로그:곡선에대하여097

출판사 서평

언어의질서대신선의충동으로
내안의혼돈을다스릴수있을까?
그리하여마침내다다른해방에대하여

『선의충동』에서초고의90퍼센트가지워질정도로압축과생략을거친글과단순하지만힘있는드로잉의조합은단순한글과그림의결합이상을보여준다.조형언어와문자언어가서로넘나들고어울리면서자신의작업과정자체를성찰하는예술가의삶을그려내고,더나아가예술의의미를탐색하고있기때문이다.저자가미술작업에담긴의미를명징하게파악해낼수있었던것은언어의질서안에서살아온오랜경험덕분일것이다.이책에는저자가사무실로출근하는산책길에줍는플라타너스낙엽이나한국문학번역워크샵에서강의하기위해찾아간프랑스아를의고흐기념관이야기처럼흥미로운일상이야기가담겨있는동시에고흐를비롯해니콜라드스탈,헤르만헤세등에대한다양한예술가들의일화가곁들여진다.여기에저자가가려뽑은예술관련경구들을읽는재미도빼놓을수없을것이다.피카소,잭슨폴록,앙드레말로,존업다이크등예술가들이남긴말들은저자가문학을읽고쓰고번역하고출판하는과정에서건져낸언어의정수이다.
예민한문학적감수성을지닌저자는평생글을쓰며성공적인경력을쌓아왔지만예순이넘어서는“젊음의밀도가유지되지않는것이다행”이라고생각한다.그리고젊은시절에는내내낯설고불안하고슬픈기분과만성적인병들로인해발이땅에닿지않는듯불안정한상태로살아왔다고고백한다.마침내‘선의충동’을받아들인저자에게드로잉작업은삶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는방편이다.사무실에있는화분이나가로수를지그시오래바라보거나자신의사진을찍는관광객들을또다른눈으로응시할수있는것도한층너그러운시선을갖게된덕분일것이다.짧은글에담긴응시와관찰,묘사,그리고그옆에나란히놓인추상화는기법에얽매이기보다사물의내적표현을중시한문인화의전통에닿아있는듯보인다.
홍익대최욱교수는이책에대해“한사람의정신성을선의미학으로담아낸그림이‘서권기문자향書卷氣文字香’의문인화인만큼평생읽고쓰고사유하는자의문향이그녀의잉크로그린드로잉에도스며있다”고설명한뒤,저자의드로잉을“‘부드러워진직선과단단해진곡선으로’그수수한선묘의맛이슴슴하면서도깊다”고평가했다.펜과붓을이용한드로잉뿐아니라인쇄소에책을운반하려고덧댄박스종이를이용한유화나43년전소설습작을담은76장의원고지를오랜세월에걸쳐붙이고뜯고선을긋고색칠하여완성한콜라주작품에도작가의문자향과일상의체험이담겨있다.예술이우리의실제삶과단단히묶여있다는점을잘보여주는예라고할만하다.짧고시적인글과아름다운드로잉이보는즐거움을주는동시에인문교양서를읽는듯지적만족감도줄수있는에세이이다.아무데나펼쳐서음미하고여러번되풀이해서읽기를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