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가 가다 (박태만 시집)

황소가 가다 (박태만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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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태만의 『황소가 가다』는 크게 5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박태만지음

기해년경상남도진주시내동면삼계리한적한농촌에서태어났다.아호는심양(尋陽)이고,본관은태안(泰安)이다.내동초,동명중,진주고,국민대,동대학원을졸업했으며,서돈각교수님을모시고법학을전공했다(법학석사).

육군중위(정훈특임6기)로예편했으며,전문건설공제조합과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근무했고,현재메리츠증권(주)에근무중이고,무애문화재단감사를맡고있다.

뒤늦게민용태교수님을모시고,시공부를하는학생이다.2018년시인으로등단했으며(문학바탕신인상),민용태시포럼회원이다.

E-mail:redsun2100@naver.com

목차

시인의말…2

제1부황소가가다

황소1…10
황소2…12
황소3…14
황소4…15
황소5…16
황소6…18
황소7…19
황소8…20
황소9…22
〈심사평〉불교적상상력으로빚은진솔한시…24
어머니,나의어머니…26
눈도귀도…28
서너걸음앞…29
또들린다…30
부추…31
항아리…32
산소호흡기…34

제2부산다는것은

산다는것은…38
백일홍…40
사임당만나기…41
낙하산…42
다시원점이다…44
곰곰이생각해보면…46
오늘밤에는…48
그때그커피한잔…50
바둑한수…52
술잔…54
커피한잔…56
여성봉…58
돈,돈,돈…60
술한잔할까요…62
돌계단…64
국회의사당앞길…65
낮에도별은있다…66
지우개…67

제3부푸른신호등

그림에서시를읽다…70
히아신스그녀…72
이중주…73
가을하늘…74
푸른신호등…75
가을풍경…76
인천대교…78
족자섬…80
연꽃이노는곳…81
가을산책…82
눈에단풍…83
눈길…84
백합꽃…85
절임의미학…86
트로트요정의노래를들으며…88

제4부못다한참회懺悔

시간은…92
침묵沈默…94
거울1…96
거울2…98
거울3…100
거울4…101
거울5…102
그림그리기…104
윷놀이1…105
윷놀이2…106
윷놀이3…107
살풀이춤…108
한량춤…110
발걸음…112
시詩밭농사…113

제5부시시한시詩놀이

삶은눈물이다·삶은·이력서…116
코다리맛·집개·당신생각…117
낮잠·회초리·구름…118
가을소리·돌부처·빈그릇…119
참선·가로등·석류…120
짝사랑·점자點字·운명…121
성묘省墓·말없는저항·이팝나무…122
사랑1·사랑2·사랑3…123
골목·몽돌·생각…124
날씨·장맛비1·장맛비2…125
당신은·새벽이슬·파문波紋…126
그리움·시를쓴다는것·빗질…127
하루·장미·초승달…128
고독·의자·단풍잎…129
휴대폰·만능열쇠·연산홍…130
시집·헤밍웨이의단편소설·장콕도의귀…131

작품해설
끝없는탐구의열정과영감이빚은시_민용태…132

출판사 서평

끝없는탐구의열정과영감이빚은시

민용태(고려대학교명예교수,스페인왕립한림원위원)

박태만시인은타고난예술혼을가졌다.처음나의시창작교실을찾았을때그는황소같으신아버지의기억을황소같은집념으로그리고있었다.나는뛰어난박시인의시적재능을보고당장에“문학바탕신인상”을추천했다.다섯편이면될것을열편에가까운시들이었다.그때내가한말:“박시인은평생자신의이첫시들을뛰어넘지못할거야!”그리고6년이지나이묵직한시집을들고왔다.“돈버느라시쓸시간이없었어요”하는박시인의계면쩍은웃음을보고,나는“이친구가시집낼돈이없었구나!”를직감했다.그러자“…사실시집낼돈을못벌었거든요”하는흰머리를보고나는예쁜딸을손에잡고온할아버지나할머니를연상했다.박시인의“시집”이라는하이쿠俳句가그때를떠올린다:

할머니가시집을갔다
예쁜딸을낳았다
시집한권

사실할머니가시집을간것도거짓말같은일이다.더구나“예쁜딸을낳았다”면엎친데덮친격!그런일은있을수가없다.그런데그런일이벌어지기도한다.영감많은사춘기에써서내야할예쁜시집을이제백발이성성해서첫시집을낸다는일.이것은그나이손녀딸시집보내기보다기적에가까운일이다.그것이기적처럼잘표현된짧은시가일본의시체詩體인하이쿠스타일로쓴이시이다.이미20세기에가장인기있는세계인의짧은시형식이하이쿠다.그형식을연습해보자고한창작교실의열기를반영한시여서더욱반갑다.짧지만참잘쓴시이다.

박시인은딸이야기만나오면좋은시가나온다.“가로등”이란하이쿠가그렇다:

태풍에늦은귀갓길
딸을기다리는
가로등

이시는박시인같은영감의시인이아니고는기대할수없는절구이다.태풍이오는날집에돌아오지않는딸을기다리는아버지어머니의눈망울을본일이있는가?길모퉁이에우두커니서있는가로등이바로그것이다.왜하필“딸을기다리”냐고묻지마라.딸이더예쁘고귀엽고안타깝고아프다.그것을느끼고아는사람이박시인이다.그래서용감하게“딸을”이라고구체화한것이다.이정도면이미영감의시가무엇인가를잘말해준다.백발이성성한영감이무슨영감이냐고웃지마라.시인은나이를초월한다.그렇다고시인이“이력서”가없는것은아니다.누구보다거울을많이보는사람이시인이다:

살다보면
이력서를쓰게된다
얼굴주름

이마에주름살을구태여훈장이라고는말하지말자.그냥오래살아왔다는것그자체가이력서다.별로노력해서만든것도아니다.그냥“살다보면”생기는흔적이다.몇번이고취직하려고쓰다몇번이고떨어진쓰라린기억의흔적같은것이다.자랑스럽지않지만유일하게내놓을수있는자존심이그것이다.박시인의시에는유달리시간의이미지들이빛난다.그만큼살아왔음에서우러나온체감그리고온도의증표랄까:

눈길이텅비어간다
꽃잎은시들어바람개비가되고
시간과강은발목을잡는데
안개자욱한눈길밤을걷는다

나이들어가다보면나이가는소리가들린다.강물소리도들린다.눈에보이던것들도안보이는게많아진다:“눈길이텅비어간다”꽃잎은없다.낙엽이나바람개비가된다.시간이가고있음을알려준다.이러면안된다고억울하다고“발목을잡는데”,“안개”만이현주소이다:

허무와꿈사이
빈틈은부끄럼속으로숨어들고
울음과웃음은같은방에서
시와시간을나누어쓴다

그래서나이들면시를쓰나보다.쓸쓸하고서글프고아프기때문이다.살다보면다허무하다.인생이한자락꿈이다.잘못한것도많다.울고웃다보니시간만간다.시라도써야지,살아간다는느낌을증거로남겨야지,예술이라는게별건가?박시인은화가앙드레브라질리에의그림에서시간의흔적을본다:

앙드레브라질리에의무늬는
콘서트,서커스,말그리고아내
꽃잎을모두벗겨낸벌거벗은색
빛한줌을더해그린
얼굴,그림에서시를본다

시는잘써야할필요는없다
화가의붓으로중얼거리는
숲속,강가,해변을뛰노는말처럼
풀밭을찾아풀을뜯으며
영원속에서순간을쓴다

사람들은잘사는인생과못사는인생을말한다.그러나주어진시간은모두가같다.프랑스야수파화가의그림에서박시인은“시는잘써야할필요는없다/화가의붓으로중얼거리는”것처럼쓰면된다고배운다.“풀밭을찾아풀을뜯으며/영원속에서순간을쓴다”고말한다.여기에서박시인은노자의“도는자연에서길을찾는다道法自然”는말을떠올렸는지모른다.중요한것은“영원속에서순간을쓴다”는인상주의적화법을배운점이다.사실“영원”보다는“순간”속에서사는것이맞다.

서구의인상주의화가들은동양의화법畫法에서많은영향을받았다.마네,모네,고갱,고흐같은화가들이그들이다.일본의우키요에浮世絵의풍속화나춘화등에서볼수있는순간적현실또는단편적풍경을영원화하는화법이바로그것이다.세상을보는세상을그리는순간적스케치기법은동양의선법禪法에서유래한다.박시인은프랑스화가의그림에서그런시간성을읽은것으로보인다.“순간속에영원을찾기”나“영원속에서순간을쓰기”의느낌을받은것은그런의미였을것이다.자연풍경의한순간,영원의한궁극적시점을포착하는것은그림에도시에도매우중요하다.

박시인의시에는나이와시간흐름의이미지들이기발하게그려져있다:

삶의두루마리를거꾸로읽다가
지울수없는얼룩들
다림질로펼수없는주름들
반성은힘을잃고
가로등에이마를부딪힌다

갑자기세월의깊어진상처를박시인은이렇게드라마틱하게묘사한다.인생을살아가며세상을읽고회상하고알아가는것을“삶의두루마리를거꾸로읽다가”의전통적이미지로훌륭하게표현한다.그것이구태여큰잘못이있기에지우고싶었다기보다는,좋거나궂거나어차피“지울수없는얼룩들”로남는것이과거이다.그것이“다림질로펼수없는주름들”이라는표현은참좋다.가끔잘못살았다는“반성”을하더라도이미때는늦었다.길을가다가“가로등에이마를부딪힌다”는표현은참으로현실감이넘친다.가끔술을마시고집으로가다가부딪히는가로등의나무람처럼.

박시인은“시간은흰머리카락만남았다”고말한다.누군들시간의상흔이아프지않을까만은박시인이쓴세월의흔적은또한번그리스비극처럼드라마틱하다:

시간은
흰머리카락사이에서춤추며
뿌리깊은치아마저흔들어대고
무거운지렁이주름길위에서꿈틀댄다

시간이라는추상이흰머리카락사이에서춤추는모습은서양의“죽음의춤”처럼잔인하리만큼흥겹다.기독교의저승사자는긴칼춤을추며해골을으스댄다.그러나박시인의저승사자는아직여유가있다.저승사자가여유가있다고해서반길것은아니다.아직도영원히살것같은“뿌리깊은치아마저흔들어대고”주름이나지렁이를길가에드러내고있으니까말이다.늙어간다는것은누가봐도소름끼치는일이다.

술을마시고집에돌아온밤에세면대에서무심코제얼굴을본다:

거울은나를조각낸다
내면을가득채운지방질
욕망을대변하는큰밥그릇
술과함께허우적대는밤

눈밖에없는너는
눈을감으면더잘보인다고
내려놓아도괜찮다고
눈을버리고맨발로걸어보라고

늙음과죽음이가까이왔음을알리는친절하지않은친절이있다.아직도술과욕망에허우적거리는밤이다.박시인은“내면”이나“욕망”같은추상어를“지방질”이나“큰밥그릇”에맛깔나게요리하는훌륭한요리사다.그러나요리사는요리를“내려놓을때”더잘보인다.특히“눈을감으면더잘보인다고/내려놓아도괜찮다고/눈을버리고맨발로걸어보라고”할때“빈손”이나“맨발”로떠나는인생이보인다.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말할필요까지는없다.아침에보면맨발로산에오르는사람들이보인다.띠풀도삐비도맨발이다.그옆에제비꽃도맨발로맨얼굴로웃고있다.예쁘지않은가.맑은것은다예쁘다.겉치레도욕심도벗고,눈도눈치레도벗고가볍게길을나서보자.

박시인은아버지만생각하면저절로시인이된다.공부도열심히하지만그만큼영감의시인이다.박시인에게는아버지를그리는것이곧시를쓰는일이다:

어깨위에멍에걸어
질척대는화폭에
거침없이선을긋고

네가만든이랑
네가휘저은써레질이
새생명의태반이되고

가을이면
너의그넓은황금잔등
황금빛나락이열리고

김서린쇠죽가득한여물통마주하고
너와아버지는
“우리농사꾼들참고생많았어!”
서로눈인사한다

우리의유교적인전통사회에서는사람이하는일들을두고서열을매겼다.그게바로“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선비士는땅과하늘일을다아는사람이다.그선비에가장가까운사람이농부이다.하늘보고땅파며시절을따라순리대로살기때문이다.목수나석공은나무나돌자연을자르거나깨면서일하기때문에그다음으로쳤다.그리고상인商人은어떤가.하늘과땅과는전혀상관없이남들이만든곡식이나물건을사고파는직업이니자연과는가장먼삶을사는사람들이었다.그래서옛날에는장사치라고하며제일천시했다.지금은“돈돈돈”하는박시인의시에서처럼돈많은사람이최고지만말이다.

박시인의아버지는논이든밭이든“질척대는화폭에/거침없이선을긋고”자연의화폭에그림을그리신다.황소가“만든이랑/네가휘저은써레질이/새생명의태반이되고/가을이면/너의그넓은황금잔등/황금빛나락이열리고”,이것이황금들판을이루는신비가아닌가?하늘을살피고땅을일구는일에황소와농사꾼이따로없다:“우리농사꾼들참고생많았어!”“서로눈인사하는”모습에넘어가는해가설핏웃는다.

박시인은그황소와황소같은아버지의피와땀으로만들어진“그들의등줄기를…파먹고”자랐다고고백한다.그것은배우지않은삶의지혜요깨달음의실현이다:

그들의그것들은
아들의체액體液이되었다
그들의등줄기는아들이파먹었다

두분은모두갔다
푸른소靑牛는아버지를태우고
고향동굴암벽속으로갔다

약수암법당뒷벽
심우도尋牛圖를아들은
물끄러미바라보고있다

머리를깎고절에들어가야소를찾는가尋牛?박시인은이렇게흙으로빚은아버지의길에서소를찾았다.깨달음은하늘과땅,사람과동물,그리고우주가하나임을느끼고하나되어사는것이다.내속에물이있고,나락이있고,소가있고,쌀이있다.내속에해가있고,공기가있고,비가있다.자연속에서자연이되어사는일이바로소를찾는길이아니겠는가?

박시인의시는황소처럼믿음직스럽다.황소처럼속없이웃는모습이득도한선승禪僧같다.요즘코로나니정쟁이니전쟁이니살기도힘들고,돈도잘벌수없으니,도나닦자고하는허허로운자세가오히려노을처럼미더울때가있다:

산다는것은
우리속에갇혀우주를바라보는것
먹이를찾고무게를재고
우리속에서장애물을넘고
그너머에있는더높은담장을넘는다

해질무렵나뭇가지에걸린풋달
강물위에되비친목마름
사각틀에묶인가로수같은
텅빈속박과선택그리고자유
나는이미다른길위에서있다

산다는것은
디딤돌보다키가큰미로
어찌할수없는것은그냥두고
몸과마음에서힘을빼고
웃자,그냥웃자

“그냥웃는”삶에서스스로자연의기운이느껴진다.구름이느껴진다.하늘이보인다.이렇듯박시인의시에는“사각틀에묶인가로수같은/텅빈속박과선택그리고자유”의낯설지않은낯설음이존재한다.늘가로수같은길가기이면서“이미다른길위에”있는평범속비범한혁명이그것이다.박시인의시가마침내선사의웃음같은티없음이되는것은결코우연이아니다.끝없는탐구와명상의흐름이다.시방폭죽터지듯벚꽃이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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