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밤

씨 밤

$12.44
Type: 현대시
SKU: 9791193802137
Categories: ALL BOOKS
Description
시를 쓰는 사람들의 가슴은 따뜻하다. 온화한 손길, 포근한 눈길,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마음이 아니면 맑고 깊은 시가 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감동의 세계로 이끌 수도 없다. 그래서 시를 지어 세상에 내놓는 시인들은 가장 먼저 자기 스스로를 정갈하게 비우고 참된 것으로 다시 채우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정돈하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다.

최병관 시인의 시가 그러하다. 최병관 시인은 유난스러운 현학적 수사나 미사여구에 기대지 않으면서 삶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최 시인의 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고 가장 애정 깊게 다루어지는 소재는 가족(어머니, 아버지, 형님, 아내), 고향, 자연(꽃), 우주적 상상력이다.

주제면에 있어서는 사람의 도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천착하고 있다. 그것은 인정, 사랑, 오래된 그리움들로 무늬 지어 있다. 최병관 시인의 시에서 유독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소재와 주제의 범주 속에 시심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최병관

전북완주비봉출생
2022년월간문학바탕시부문신인상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정회원
인천문인협회정회원

목차

시인의말 3


1부바람꽃
안수산달그림자 10
짝사랑 12
금주령 14
김씨의출근길 16
달항아리 17
그림자 18
바람(願)꽃 19
아내의그릇장 20
어떤세밑풍경 21
비갠아침 22
산수유꽃만나던날 24
담보실 26
담보실,그집 27
담보실,그여름밤의향수 28
만경강 30


2부씨밤
씨밤 32
아버지약방문 34
달빛에젖다 35
꽃밭 36
어머니가그립다 37
나는왜울컥하는가 38
어머니기일(忌日) 40
내리사랑 42
수산(壽山)을걸으며 44
옹아리천사 46
형과형수 48
전쟁의애환 49
세수 50
대나무 52
소쩍새우는밤 54
사모곡(思母曲) 56

3부연필로짓는글집
연필로짓는글집 58
가을 60
겨울나무앞에서 61
환경미화원 62
독수리 64
마파람 66
백로(白露),스케치 68
병석의친구가생각나는아침 69
사회적거리두기,건널목단상 70
우수(雨水) 72
인천대공원밤벚꽃 74
가을서곡 75
입춘추위 76
첫사랑 77
해동용궁사에서 78
화장실 80
종이비행기 83
가족사진 84

4부농심
경신마을소묘 86
농심 87
늦가을가랑비 88
홍시의추억 90
고향길 91
비봉초등학교 92
숨 94
절개지의꿈 96
제야의종소리 98
황제노동과훈훈한정 100
후회 102
우정의선물 104
살아야할이유 106
퇴근길 108
편지 109
봄은,아직기다려야할때 110
이불속의봄 111
단풍,가을남자 112


작품해설 113
따뜻하게세상을응시하는시인(詩人),
맑고깊은시학(詩學)

출판사 서평

따뜻하게세상을응시하는시인(詩人),
맑고깊은시학(詩學)


시를쓰는사람들의가슴은따뜻하다.온화한손길,포근한눈길,아픔과슬픔을어루만지는마음이아니면맑고깊은시가나올수없을뿐만아니라독자들을감동의세계로이끌수도없다.그래서시를지어세상에내놓는시인들은가장먼저자기스스로를정갈하게비우고참된것으로다시채우려는마음을다잡으며아주작은것하나까지도정돈하는것을우선하는것이다.

최병관시인의시가그러하다.최병관시인은유난스러운현학적수사나미사여구에기대지않으면서삶의본질을직관적으로표현해내고있다.최시인의시에서가장자주등장하고가장애정깊게다루어지는소재는가족(어머니,아버지,형님,아내),고향,자연(꽃),우주적상상력이다.
주제면에있어서는사람의도리,사람과사람사이의관계에천착하고있다.그것은인정,사랑,오래된그리움들로무늬지어있다.최병관시인의시에서유독따스함을느끼는것은이러한소재와주제의범주속에시심이오롯이자리하고있기때문이다.

1.고향의그리움으로빚은시의에스프리

시인에게고향은다양하고도무한한상상력을제공한다.특히최시인에게고향은사랑과긍정,희망으로이어진다.

어두운밤에도강은흘러
넘어진별들을보듬고간다

밤새내려온산이
아침강안에들면
뭉게구름산새들술래가되는곳

간혹불어난강물은
사람들욕심처럼무거워

몸을뒤집을때면
우리를애태우기도하지만
배신한적없다

오늘도어머니같은강이
만경평야너른들에젖을물리니

들이자라고우리가사네

-「만경강」전문

“어두운밤에도강은흘러/넘어진별들을보듬고간다”.이대목은절구중에절구이다.사람들이잠든한밤중에도쉬지않고흐르는강물의속성만을얘기하는것이아니라“별들을보듬고간다”라는표현은고도의상상력과시적영감없이는누구도쉽게흉내내지못할시적형상화이기때문이다.
이뿐만아니라“몸을뒤집을때면”,“만경평야너른들에젖을물리니”같은표현도시의품격을올려주는고난도의수사이다.

고향에대한따뜻한그리움을“산수유꽃만나던날”에서도만나게된다.

그리움짙어지면
향수마저봄이되나

맨먼저꽃소식전하려고
양지따라숨가쁘게달려왔을
산수유꽃반가워고향으로머리두르면

지금쯤다랭이논언덕에는
아지랑이가물거리고
울타리가품었던개나리들
어미닭뒤따르는병아리들처럼피어날텐데

앞산진달래
눈비비고일어나
분홍기지개켜고뒤돌아보면

나도,꽃물들수있을까?

-「산수유꽃만나던날」부분

이시는개나리가노란병아리들처럼피어나고진달래가눈비비고뒤돌아오면“나도꽃물들수있을까?”라고물으며시를맺는다.물론이물음은자아에게향해있음을어렵지않게알수있다.산수유꽃과개나리,진달래의색채이미지가눈앞에펼쳐지는효과를낳는이시는화폭으로치면수채화나파스텔화로그려질것이다.그만큼섬세하고아련하고예쁜그리움이며향수이다.더욱이시적화자는자신도“꽃물”들고싶다는내적소망을드러내고있는바이는고향과꽃과의합일을소망하는것이다.
최시인의고향에관한일련의시들을들여다보면정지용의향수가떠오른다.우리에게잘알려진정지용의향수에버금가는고향에대한에스프리가독자의마음을사로잡는다.

최시인의다음시에서나타나는향토적인면모또한고향의구수한정서를더해준다.

언젠가우리아부지생신날,김제사시는둘째성님은치질을앓리라못옹께성수님만오셨는디,반주멧잔에거나해진우리아부지메누리헌티단방약을처방허시는디“야,김제애야”“예아부님”“거시기뭐냐허면말여집에가거들랑잽싸게건재국에가서바우손(卷柏)좀사다가말여가마솥에물닷되쯤봇고말여서되쯤되게푹달여서요강에쏟아붓고는말여걸터타고앉아서짐을쐬는디식기를기다렸다가하루에서너차례씩한사날계속허면깨까시나설팅께잊어부리지말고싸게혔으먼쓰겄다.알아들었냐?”“예아부님”성질급한우리아부지자식이아푸당께싸게나섰으면혀서오래전귀담아들었던기억을더듬어가며찬찬이말씀하시는디말끝메다“말여”소리를혀싸싱께어른께서허시는말씀인지라소리내서웃을수도없고,눈물이쏙빠지도록배꼽을부여잡고있었는디……어메!죽것다.인제다끝났능가싶었는디형수께서“아멘”허시는디,깨딱혔으면그때우리가족들참말로배꼽다빠져나갈뻔혔당께!

-「아버지약방문」전문

「아버지약방문」은최시인의토속적이고향토적인시세계를한눈에보여주는시이다.“약방문”이란약을짓기위해약이름과분량을조목조목적은종이로아버지가알고있는민간처방을구수한사투리로구사하신것을시화함으로써다양한문체와풍부한시어들을동원하여전통서정의예술성을극대화시키고있다.

2.가족이곧시가되는,평범속비범의시적승화

최병관시인의시에고향이중심이면시인의마음속중심에는아버지,어머니가있다.최시인은자다가도아버지만생각하면의관을고쳐맬만큼엄격한가정교육환경에서유년을보냈다.“제모습잃지않고/살아가는대나무처럼”“스스로뱉은말과행동을/책임질줄알아야한다던아버지”는“오늘도천년처럼푸”른“대나무”로각인되어한시도잊지않고명심하며살아간다.시인자신또한지금은연만한나이가되었지만지금도아버지의존재는퇴색되지않는다.

옹이진마디마다
올곧게세운뜻
제모습잃지않고
살아가는대나무처럼

스스로뱉은말과행동을
책임질줄알아야한다던아버지

언젠가동네에초상이났을때
농번기라어린내가호상을본적이있다

정산할돈이모자라자
돈앞에는냉정해야한다며
표나지않게메꾸어주셔서부끄럽지않은
얼굴을지니고다닐수있었다

언행이바르지못해
조상을욕되게하는것이
불효다하시던아버지의훈계처럼

우리집뒤란의대나무는
오늘도천년처럼푸르다

-「대나무」부분

“아버지를닮은/늙은아들”인시인의모습에서아버지가언뜻언뜻보인다.“좋은씨밤은가진것에만족할줄알며/홍익인간의뜻을세울수있도록/쌓은덕이후손들의울타리가되어야한다”는말을아버지의기일인오늘“아버지생전의그말씀을”시인자신이전해야하는것이다.

오늘은아버지기일

아버지를닮은
늙은아들이아랫목에앉아
밤을치며생전의어버이를생각한다

아버지말씀이
제사(祭祀)는4대봉사(奉祀)를하는데
명절에는신주(神主)를모신사당에서차례를지내고

기일(忌日)에는신주를안방이나거실에
모셔다제사를지내는것이다하셨다

신주(神主)는밤나무로만드는데
밤나무는열매를맺기전에는
벌레가타지않고씨밤이
뿌리에달려있기때문에대를이어
자손이번창할것을바라는뜻이다하시며

퇴색되어가는예절을한탄이라도하듯
쯧쯧쯧혀를차시더니

내가좋은씨밤이되어야
좋은가문을이룰수있는것이다

좋은씨밤은가진것에만족할줄알며
홍익인간의뜻을세울수있도록
쌓은덕이후손들의울타리가되어야한다시며

음복때면잘생긴밤한줌씩
꼬-옥쥐어주시던아버지

아버지생전의그말씀을
오늘은내가대신전해야합니다.

-「씨밤」전문

아버지가엄격하신반면어머니는한없이너그러우셨다.어려서부터늘잔병치레를해온시적화자,어머니는늘마음졸이며노심초사하셨다.이제는“재가되어훨훨날아간/어머니의빈자리”는너무도크건만어머니는“불러도불러봐도”대답이없으시다.

잔병을달고살던애물단지를
품다가품다가
재가되어훨훨날아간
어머니의빈자리

이제는닳아버린지문처럼
기억조차희미해지는데
아직도보채듯이
불러보는어머니……

계신곳이너무멀어
못들으시나
소리도보듬어야
노래가된다는데

불러도불러봐도,덩그러니
그리움만자라는귀

-「사모곡(思母曲)」전문

어머니를다신볼수없고어머니의음성또한들을수없지만어머니가열어주신“가르마같은”반듯한길을따라어머니의“발꿈치를밟아가며/새로운내(我)가되는것을”을터득하고“지금걷고있는/이길도등골이드러나게/단단해져야길손이드는거라는어머니”의말씀을새기며지금까지모범적인인생길을가고있다.

닭우는소리에
수산입구까지마중나온어머니

‘어서오너라.’

치맛자락거머쥐고
“따라오너라”가르마같은
길을열어주신다.

꽃피고열매맺는것과
살아움직이는생명들이

당신의발꿈치를밟아가며
새로운내(我)가되는것을

덩치큰소나무
몸집불리느라살갗에난
생채기아물도록어루만져주시고

키작은도토리나무도
어서꽃피고열매맺으라고
머리를쓰다듬으며격려하신다.

지금걷고있는
이길도등골이드러나게
단단해져야길손이드는거라는어머니

오늘도도토리묵밥같은
묵언의경전을가슴에새기며
새벽길을걷고있다.

-「수산(壽山)을걸으며」전문

최시인의가족에대한사랑과연민의시는“스물아홉청상으로/삼남매의장래를책임져야했”던“누님”의서사적인사연을네러티브형식을담아시화한「소쩍새우는밤」,“해질녘하루의고단함을/이야기고삐에매어달고”“오손도손밭둑길걸어/집으로가는길”“등뒤에서비춰주는햇살이/하루의고단함을달래준다”는「형과형수」그리고「아내의그릇장」에서도그려진다.평범한가족관계,일상적삶에서길어올린문학성탁월한작품들이다.

3.“연필로짓는글집”같은세상살이

최병관시인의시선이고향이나가족에게만국한되어있거나머물러있지는않다.최시인의가장큰장점이며가장시인다운면모는“서정성”이다.맑게바라보고깊게사색하는몰입뿐만아니라세상을대하는최시인만의세계관이시의곳곳에서보석처럼빛나고있다.

빈손으로도불편하거나탐심이없던
그시절이고싶습니다

계절따라산과들이새옷을갈아입고
시냇물과새들이어울려합창을하던곳

어젯밤꿈에그대와내가잡은손에
웃음꽃피워놓고냇물에빠진
별을줍던곳

-「담보실」부분

최시인이바라는유토피아는바로“어젯밤꿈에그대와내가잡은손에/웃음꽃피워놓고냇물에빠진/별을줍던곳”이다.그곳은시인의고향어디쯤지명으로보이는“담보실”이다.담보실은고향의지명일수도있고모두가소망하는“탐심”없는순수이상세계일수도있다.
최시인이천생시인인것은「제야의종소리」에서“한줄의글귀라도얻는날은/쉴만한계곡이나시냇가에발담그고/산새들노래와물소리장단에삿갓도되어보고,/소월이되어인생의참맛을누려보련다.”라는대목에서또렷하게나타난다.
“기쁨의모서리가헐어/까맣게문드러질때까지/주머니에넣고다니며/읽고또읽었던너의편지”(「편지」)의시적화자의때묻지않은고운서정이시의예술성을뒷받침하고있다.

최병관시인의작품중에다음에인용되는「연필로짓는글집」은최시인의인생관세계관을가장잘표현해주는명시이다.죽는날까지인생은미완성이며인생은영원한아마추어이다.우리는사는동안늘처음을접한다.처음으로학교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