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기적이다

가족은 기적이다

$14.80
저자

곽혜란

시인,수필가
월간문학바탕발행인
시집『오래입어목이늘어난옷같은』
『단한사람』
『feel,이런느낌처음입니다』
수필집『사람꽃인연꽃』

목차

시인의말 시를쓰는이유 3

1부
토끼풀 10
세상에대한예의 12
무더위 14
다시시동이걸리다 16
연꽃 17
삼색신호등 18
혼자아플때 19
꽃등불속에서 20
주먹 21
큰언니 22
시에서건진말 23
별빛 24
일상 26
봄바람 27
일기예보 28
규화목 30
시내림 31
SRT를탔다 32
벚꽃과시 33
도깨비장난 34

2부
우연히만나고싶은사람 38
유리창을통해유리창을본다 40
봄은철부지 42
수마 44
하나도아닌둘도아닌 46
퇴근 47
김삿갓풍류화순(和順) 48
무지개다리 50
공 52
덮어두고묻어두고 54
오늘하루 56
봄비는스카프한겹정도 58
음력2월28일 59
가족은기적 60
이상한반어법 62
사랑하는사람들의화법 63
다시 64
나무와새 65
양화대교남단 66
마음공부 67
초 68
간섭 69

3부
첫눈 72
감나무 73
저녁고향 74
신발을신으며 75
달빛박치기 76
내안의싸움 78
보성여우 80
수서역에서 81
잠실역에서 82
2월과3월사이 83
나에게묻는다 84
숙제 85
어느덧어느새 86
자전거바퀴 87
엄마의모닝커피 88
퍼즐 90
자 91
바느질 92
감자를삶으며 94
간장 95
수국꽃그늘아래 96
한때우리도 97

4부
너를추억한다 100
겨울나기 101
횡단보도 102
로즈마리살리기 105
오후4시30분그리고노을 106
애쓴다 108
시인 110
가까운행복 112
하루 114
오래된것들의변화 115
뤼순형무소 116
한탄강 118
가을의화폭 119
수의에는주머니가없다 120
동전의양면 121
고요에이르는길 122
탁월함과타고남 124
다시,봄 126

작품해설 128
일상을꿰매는따스한시어의바느질
곽혜란시의미학

출판사 서평

시를쓰는이유

영원에의약속은어설픈것이라
어쩔수없다치자.
약속,소유,집착과젊음,그밖에현상들
모두가가벼워서
언젠가훅날아가버리고말것을…

그래도시를쓰는것은
진실과본질을따라가보기위함이다.
눈물도잘여물면꽃별노래가되게하는
시의프리즘,그빛의투과로나를들여다보기위함이다.

시는
사랑이며슬픔이요
아픔이며환희이기도한것.


일상을꿰매는따스한시어의바느질
곽혜란시의미학

민용태(고려대명예교수,스페인왕립한림원위원)



곽혜란시인은그고운미모와는달리착실한일상을꾸려가는평범한생활인이다.시간을쪼개며하루종일여기저기차를몰고다니다더러고장이나기도한다.정말짜증나는일이지만아름다운사람은의외로차분하다:

자동차시동이걸렸다안걸렸다
오늘은아예걸리지않는다
배터리를교환했더니
언제그랬냐는듯세상잘나간다
차가다시살아난것이다

사람도더이상시동이걸리지않을때
교환할수있는배터리가있다면
세상의슬픔도눈물도반으로줄텐데

나는혈육과영영이별을해본사람인데도
일상의위대함을자주잊고산다
매일새날이시작되고새삶을살아가는
아침의기적앞에지금막힘찬시동을건다

-「다시시동이걸리다」전문

곽시인에게일상은늘이렇게“매일새날이시작되고새삶을살아가는아침의기적”같은것이다.늘다시“힘찬시동을거는”아무렇지도않은직장인,생활인.그아무렇지도않은것이“기적”임을안다.짧은시간에“한강의기적”을이룬한국인에게어깨두드리며보여주고싶은우리모습이다.
곽혜란시인은평범한소시민이다.시인은나와같은시민들을자주만난다.얼굴이비슷하거나목소리가비슷하거나어디서본것같은얼굴들.그래서곽시인은인사대신인연을신기해한다.처음만난사람한테“어쩌면저와얼굴이똑같아요?”하기는민망스럽다.그러나시인은얼굴이똑같고목소리도똑같은,그러나너와다를너와나를눈여겨본다.신기하다.신기함은시다.
곽시인은소리가비슷한말에민감하다.소리가비슷하면뜻이비슷하리라는것이우리생각이다.그러나비슷한소리가뜻이다를때우리는놀란다.우리는두번이상하다.같은사람일줄알았는데,전연다른사람일때우리가섭섭하리만큼낯설듯이.이런아이러니기법은오늘시의강점이다.
곽시인이,“일탈이고맙다/일상이반갑다”라고할때우리는이상하다.일상생활은날마다틀에박힌루틴(routine)이지“일탈”을용납하지않기때문이다.이렇게반어법에가까운“일상”과“일탈”의반복은아이러니하면서눈에뜨이지않은적응을위한안간힘이느껴진다.반복이어서리듬을도우면서동시에뉘앙스를달리하는의미의무늬와그림자가맛깔지다.
“다시라는말이있어/정말다행이다”는시구의“다”의반복도평안한느낌을준다.시행의리듬이원래의뜻을반추한다.곽시인의시어에는가장평범한반복이어도속마음이드러난다:

속내를드러내지않는그속을
나는언제쯤한번에척가늠할까

-「간장」중에서

이런시구에서“속내”와“속”,“척”의“ㄱ”받침이이상하리만큼안타까운속마음을메아리친다.자유시라고해도이런리듬의소리상징은시의맛과뜻을풍요롭게한다.그래서시인은자신과비슷한사람들을사랑한다:

누군가시인은바보같다고했다
고개를끄덕인다
떼인돈보다잊어버린시구를아까워하고
시한편과마주앉아밤새이야기할수있는
요즘세상과는동떨어진문사들
천사가되었다가여우가되었다가
아기가되어꿈망울을먹고사는바보
꽃과시와별똥별을한수레끌고
고운마음씨순정을바칠줄아는
정말바보

-「시인」중에서

“떼인돈보다잊어버린시구를아까워하는”시인은참많다.돈이나물건,실용주의보다는꿈을먹고사는,“아기가되어꿈망울을먹고사는바보/꽃과시와별똥별을한수레끌고”가는시인의모습은아름답다못해눈물이난다.이런“바람”같고“바보”스러운사람을노래하듯칭송하는시는동음반복이최대의효과를낸다:

바람둥이라고해도
바보라고해도

시가좋아시로살아가는사람들
시인은시인할밖에

-「시인」중에서

나이든어머니를모시고사는착한시인은어머니의말을시적으로잘알아듣는다.아리스토텔레스는시어(메타포)는사실을제이름으로부르지않는것부터시작한다했다.곽시인은어머니의말을곧잘알아듣는다:

비웠다내려놓았다그말도
여전히아프고무겁다는말

괜찮아걱정마했던그말도
아직따뜻한손길이필요하다는말

거칠게뿌리치며밀어내는것은
나힘들어요나좀붙잡아줘요하는
참으로여린절규

-「이상한반어법」중에서

시인은항상작고여리고가여운것쪽이다.구태여좌파우파를말해서는안된다.세르반테스는“시란나이어린여리고가녀린소녀”라고했다.소녀아닌어머니가어디있으랴?아이아닌어른이어디있으랴?사람은다속으로여리고아프다.더구나나이든어머니는더어리다.자식걱정할까봐늘“괜찮아”하는말도곽시인처럼잘이해주길바란다.바라는건아니지만…

네잎클로버를찾으면행운이온다.그꿈은우리어린시절부터지금까지“토끼풀”을볼때마다머릿속에있어왔다.더러는게을러서,더러는나이들어서지나치곤하지만곽시인은그행운이“하얀꽃들을낳아돌보며/당당하게살아가는풀들이이루어놓은/소담한진실”로자기속에살아있는삶의기적이었음을깨닫는다:

행운이라는말에눈이멀어
수많은시간을허비하고서야
더소중한것들을다지나쳐왔음을깨닫습니다

하얀꽃들을낳아돌보며
당당하게살아가는풀들이이루어놓은
소담한진실이거기있었는데

대대한것만쫓느라
소소한행복을놓치고말았네요
세상에는행운보다더소중한것이많다는걸

-「토끼풀」중에서

곽혜란시인에있어서삶과일상은그대로기적이다.살아간다는것은순간순간기적의발견이다.사람들은“대대한것만쫓느라/소소한행복을”이진짜행복임을놓치고산다.들숨날숨사이,사랑하고애낳고기르고하는일생이진짜살아있음임을잘모른다.그러나참으로큰것은작고“소소한”것에있다.“대대한”대통령에게보다는작은나에게있다.
그래서시인은삶속에서날마다조금씩깨달아간다:

내가귀함을받고싶거든
이세상그누구와도
그무엇과도예의를갖추라

사랑이있어사람이고
사람이라서사랑이다

-「세상에대한예의」중에서

공자에게가장중요한것은사랑,즉“仁”이었다.“人”은“仁(사랑)”이다.곽시인의말대로라면,“사랑이있어사람이고/사람이라서사랑이다”.어렸을때부터올곧은유교의집안에서자란곽혜란시인의미덕은고운말씨와예절바름이다.이시는곽시인의생각이면서마치유교경전인“예기(禮記)”를읽는느낌이다.곽시인은우리모두처럼유교인이면서불교인이다:

하늘과강물
바람과나무들이
몸을섞어
빚어놓은
황홀의찰나
내가있으되내가없고

-「연꽃」중에서

불교선시(禪詩)의한구절같은시이다.특히마지막구절“활홀의찰나/내가있으되내가없고”는깨달음의소리이다.“무어(無我)”의경지를느껴야우주안의참나의빈모습을안다.곽시인의다른시에서도일본바쇼(芭蕉)의하이꾸(徘句)에서나느끼는선미(禪味)가느껴진다:

사방은온통
스카프한겹정도
엷은저녁비6시30분

얄팍한속셈처럼
가늘게내리는봄비
그속을걷는우산하나
빗방울수만큼많은할얘기들…

-「봄비는스카프한겹정도」중에서

“얄팍한속셈”처럼세속과자연,가늘게내리는봄비가밉지않다.“그속을걷는우산하나”가도시에사는우리마음속에서있다.
도시삶에시달리다보면피로속에서문득내가어린한살이었음을알고놀란다:

안간힘이필요할때
어디한번해보자고다짐할때
두주먹을쥐어본다

어머니뱃속으로부터
여리디여린생명으로
미지의세상에내던져질때

첫울음터뜨리며온힘으로쥐었던
조그맣고장한주먹

-「주먹」전문

그래서“첫울음”의“조그맣고장한주먹”의힘으로지금까지모질게버텨왔구나생각이든다.첫울음이있으면“종착역”도있는법.다음시를보자:

내인생도눈깜짝할새에
막다른종착역에덜렁혼자내려
다음생으로가는열차로환승하겠지

길을떠나는것은일부를놓아야하는것
낯선길위의내그림자를돌아보는것

-「SRT를탔다」중에서

스페인말에“길을떠나는것은조금죽는것(Viajaresmorirunpoco)”이라는말이있다.“일부를놓아야하는것”은겸손이있어서더좋다.“낯선길위의내그림자를돌아보는”여유는향기롭다.무슨삶의의미를찾아서이랴.다음시는마지막길이다:

수의에는주머니가없다
세상그무엇을휘어잡았을지라도
그손안에남는것은아무것도없다

빈손에가득한진리
세상을떠도는바람처럼
모든것을품고아무것도거두지않는다

-「수의에는주머니가없다」중에서

참한불자의모습이보인다.빈손으로왔다빈손으로가는길,뭐가지고갈게또있으랴.곽시인에게유교인의모습과불자의모습이함께보이는것은이상할거없다.한국인이기때문이다.신라최치원선생께서는“우리나라에현묘한종교정신(國有玄妙之道)”이있으니“풍류도(風流道)라하신다.풍류도는유불선(儒佛仙)을포함한다”고말한다.기독교신학자유동식교수는한국의종교정신이풍류도임을역설한다.곽혜란시인은나와함께김삿갓이말년10여년을머물었던화순적벽에서“풍류도선언”을한풍류인이다.다음시를보자:

바위와바람이같은말로통해서
화순은바윗돌하나도
부처가되고
바윗돌하나갖고도
천년은너끈히받치고사는곳
하릴없는도깨비도마음씨좋은곳

수백년씩살고있는은행나무은행나무…
둥치보듬어안고
승천을꿈꾸는화순
하늘의친척땅의친구
나무와바람과바윗돌
한식구같은곳

-「김삿갓풍류화순(和順)」중에서

천불천탑(千佛千塔)이있는운주사에는불상이라기보다는그냥맨돌들이부처님이다.화순에는천년을사는은행나무도있다.거기에서은행나무를닮아천년무병장수하자는“풍류도선언”을한다.예술과시를위하며목숨을바치는것보다는풍류를즐기며오래오래살자는것.“道”는자연을본받는것(道法自然).곽시인의다음시를보자:

작은새한마리날아와
나뭇가지위에앉자
나무는팔뚝에힘을주어새를받쳐준다
새가조그마한입으로노래를부르자
나무는손을흔들며화답해준다

-「나무와새」중에서

새와나무,나무의팔뚝.새의노래에화답하는잎가지손바닥들.이것이자연과우주와의합일이고화합이아니겠는가?그러나곽혜란의시의장점은무엇보다일상속에서기적을발견하는혜안(慧眼)에있다.일상중에서도가장가깝고친숙해서이야깃거리도안된다는생각을넘어곽시인은가족이기적임을느낀다.그녀의어린시절가족모습을보자:

온마을불빛들별로할일없이
졸린눈비비며서있다
밥숟가락입에물고
자울자울조는막냇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