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과 여성 5, 고통의 기억, 그 너머에서

4·3과 여성 5, 고통의 기억, 그 너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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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루 말할 수 없는 날들에 대한 기록
이제 이 5권에 실린 사람들의 기억과 삶을 말하자. 여기엔 그들이 살았던 지역의 학살에 대한 목격과 경험이 들어있다. 또한 4·3 후유장애를 겪고 있는 여성들이 직접 당했던 총상과 고문의 흔적까지 담겨 있다.

강숙자는 성산면 수산리 출신. 그녀의 어머니는 1948년 11월 27일 성산포 터진목에서 학살됐다. 갓 돌이 지난 그녀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터진목으로 가다가 죽음을 직감한 어머니가 마침 그곳을 지나던 신양리 이웃에게 맡겨 살아난 경우다. 4·3은 6채나 되는 할아버지네 집을 모두 태웠고, 아버지의 행방불명, 어머니의 죽음을 가져왔다. 이모의 품에서 자란 그녀는 15살 무렵까지 이모를 어머니로 알고 자랐다.

그녀의 노동은 농가에서 이뤄지는 일 거의 전부였다. 특히 물질은 삶의 원천이 됐다. 물질은 가정을 일구고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원천이었다. 농사를 짓거나 보험 외판을 하다가 물때가 되면 바다로 달려갔다. 일본에서도 물질을 했다.
강숙자에게 온 기적같은 일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69년 만에 이묘하다 어머니의 은반지를 발견한 것. 그순간 흡사 어머니가 살아온 기분이었다. 강숙자는 지금도 터진목에만 가면 서러움이 밀려온다고 말한다.

1943년 서귀포 태생의 고옥화는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만 메밀밭에 가려고 준비하던 아침에 느닷없이 불려 나간 후 끝이었다. 마을의 가장들 열다섯이 이날 서귀포 소남머리에서 한꺼번에 희생됐다. 과수원 일을 하던 그녀의 작은 아버지 역시 마을 청년들과 함께 끌려가 행방불명 됐다. 이때 마을 청년들과 함께 차에 올랐던 작은아버지는 제주국제공항에서 유해로 나타났다. 어렸으나 그녀는 학교 마당에서의 학살, 작은 아버지가 차에 실려 가는 장면 등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오로지 외동딸이 된 고옥화 하나를 품고 살다가 10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떴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한라산 기슭까지 나무하러 갔고, 그 나무를 팔러 다녔다. 열다섯 살엔 감귤 접목, 양재점 기술까지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대개 다 했다. 지금은 왜 아버지의 죽음을 묻지 못하고 살았나 생각한다.

토산리 태생의 김옥자는 당시 열한 살로, 1948년 12월 표선백사장에서 아버지와 샛아버지 작은아버지 모두 세 분을 잃었다. 학생이었던 오빠는 행방불명.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가란 의문을 늘 품고 살았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마을 회의까지 할아버지 대신 참석, 마을 삼촌들한테서 여자아이가 참석했다고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들 모두 잃은 할아버지의 홧병을 마음으로 이해했다. 1남2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나 거의 가장의 삶을 살아야 했던 김옥자는 어려서 밭일, 물질을 닥치는대로 해야 했다. 가장 한스러운 것은 공부. 미칠 정도로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1948년에 4학년 교과서 타놓고 선생님한테 교과서 설명 한 번도 못 들어보고 그걸로 끝이었다. 왜 죄라는 것을 묻지도 않고 그 사람들을 다 죽여야 했는가란 물음이 지금도 떠나지 않고, 4·3의 기억이 떠나질 않는다.

1938년 남원읍 하례리에서 태어난 문희선은 4·3후유장애자다. 그녀는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4·3 와중에 다리에 총상을 입어 다 죽을 것으로 알고 모두 포기 할 뻔 했다. 서귀포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면서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 살게 되었다.

‘삶이 좋을 때든 어떻든 살아가는 거지’ 라고 말하는 그는 다리에 입은 총상으로 평생 평범한 일상을 살 수가 없었다. 4·3 생존희생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이해의 한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하는 원망 섞인 말이다. 안 당한 사람은 모른다는 그녀는 시시때때로 ‘왜 나만 다리에 총을 맞았나’ 그때 아예 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원망이 밀려온다.
목욕탕에도 가면 상처난 다리를 내놓기 싫어서 수건으로 가린다는 그녀. 지금도 그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기억이고, 그때 기억은 생생한 현재로 다가온다.

신희자는 1940년 생으로 한림읍 대림리 출신. 예비검속으로 아버지가 총살되어 만벵디 묘역에 합장되었다. 오빠가 셋인데 첫째 오빠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재학 중 한국전쟁으로 납북되었고, 둘째 오빠는 오현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업(방앗간)을 운영하다 폐결핵으로 돌아갔다. 농협 다니던 셋째 오빠는 연좌제로 오랫동안 정신병을 앓았다. 4·3시기 이웃마을 보다 한림지역은 특히 위험한 지역이어서 마을 어머니들이 한림 젊은 여성들을 대구 등 방직회사로 많이 보냈다고 기억한다. 신희자는 둘째 오빠의 병으로 신변이 위험해지자 제주시 양재학원교육을 마치고 서울을 거쳐 대구로 가 양장점을 차렸다.
22세에 귀향, 한림 최초의 양장점을 운영하다 27세에 결혼하고 그만두었다. 그러나 경제적 가장이 되자 다시 양장점을 하였고 지금도 한복집을 30년 째 하고 있다. 마음의 병을 다스리려 70세부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1935년생 정순희는 중문면 강정리 출신이다. 강정에서 태어난 후 한 번도 강정을 떠나본 적이 없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서북청년 군인들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강정국민학교 옆에 집을 짓고, 자신의 눈앞에서 총살당한 어머니가 죽어간 메모루동산을 매일 같이 넘어 다녔다. ‘폭도새끼’라고 등을 돌렸던 마을 어른들의 얼굴을 매일 마주하면서, 75년을 숨죽여 살아왔다.
깜깜한 밤이면 열두 살 그날처럼 쥐와 고양이가 타닥타닥! 자신의 온몸을 휘젓고 다닐 것만 같아 조그만 불빛에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 ‘망상장애’라며 한평생 정신과·신경과 약을 한 움큼씩 처방해 준 의사들은 4·3을 모른다며 진단서를 제대로 써주지 않았다. 지금은 ‘4·3후유장애인 불인정’ 딱지가 ‘폭도새끼’라는 낙인보다 더 아픈 응어리로 남아 버렸다.

너무나 압도하는 삶의 이야기들로 쌓여진 세월들이다. 온전히 그들의 4·3과 그들의 생활사를 담아낸다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렵다. 혹여 빠진 대목이 있을 것이기에 짚고 또 짚었다. 그럼에도 미진함은 남을 것이다.
봄이 올 것이다. 봄의 힘을 빌어 아마도 이 책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그 혹독한 4·3의 기억으로 육신과 정신이 아프고 고통스런 세월을 살아낸 이들이여, 그럼에도 그 이상의 삶을 일궈낸 이 아름다운 여섯의 어머니여, “결국은 아픈 대지 위에도 끝내는 살아서 파릇파릇 꽃을 피워낸다는 것입니다.” 말하고 싶다. (발간사 중에서)
저자

제주4·3연구소,허영선,양성자,허호준,염미경

시인.제민일보편집부국장,5ㆍ18기념재단이사,제주4ㆍ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을역임했으며,제주4ㆍ3연구소장으로있다.저서로,시집《해녀들》,《뿌리의노래》,《추억처럼나의자유는》,산문집《당신은설워할봄이라고있었겠지만》,《탐라에매혹된세계인의제주오딧세이》,《섬,기억의바람》,역사서《제주4ㆍ3을묻는너에게》,4ㆍ3생활사총서《4ㆍ3과여성》1~4권(공저)펴냄.

목차

책을펴내며
강숙자ㆍ터진목에만가면서러워
고옥화ㆍ낭장사하고학교가야했어
김옥자ㆍ죄를묻지도않고어떻게그렇게합니까
문희선ㆍ다행이난이때까지살아진게
신희자ㆍ바느질매듭풀듯
정순희ㆍ쥐와고양이,그리고열두살소녀

출판사 서평

“어떻게말로다합니까.”어떤기억은자신의말을넘어설수가없다.어떤기억은온몸에달라붙어떨어질줄모른다.저참혹했던4·3을살았던누군가에게그고통으로감겨진기억은여전히현재다.그러니까이루말할수없는날들의이면에조금은닿을듯도하다.

4·3의겨울이또다시거세게우리에게왔고,우린이제그말들을서둘러정리해야했다.기억이란것은이미바닥에엎드려있다가,일어설줄모르다가,어느날부활하기도한다.이번작업속에서우리는그것을다시한번확인했다.처음뱉어냈던말들이모든것이아니고,그밖의것들을들어주고질문하는자에의해또기어이살아나기도한다는것을.

제주4·3연구소는4·3이꽉억눌려숨조차쉬기어렵던시절부터4·3을살아낸사람들의4·3을기록해왔다.《4·3과여성》시리즈를시작한지어느새5년이흘렀다.이세월동안4·3으로뒤엉킨개인사를살아내야했던여성들을기록했다.이들가운데세상을떠난분들도우리는마주한다.그러나그의목소리는기록으로남게됐다.흩어진기억들은촘촘히재생하고기록되면서비로소역사적생명력을얻는다.이것은처음이시리즈를기획하고낸첫번째책《4·3과여성-살아낸날들의기록》을세상에내보내면서부터확신하게했다.

묻혀졌던4·3속여성들의일상,생활사를기록한다는것은4·3의진실규명과정과도같은선상에있다.이러한맥락에서이책이갖는의미와성과를돌아본다면파급력은출발보다컸다고볼수있다.4·3진실규명의토대가되었던1차자료가증언에있다는것을볼때그것은설득력을갖는다.

무엇보다이구술집은최초로영문판번역의기회를얻었다.이로인해해외의연구자들과4·3에입문하는이들에게닿을수있었다.이증언을텍스트로한논문이발표되는등일련의성과도낼수있었다.4·3을살아낸여성들의생생한목소리를국제적으로내보냈다는것은비로소4·3소통의길이열렸다는것을말한다.
그럼에도우리는이번에또다른중요한부분들을놓치고있는것은없는가들여다봐야했다.이다섯권째책에대해서다.

우리는이번공동작업의방향을4권까지담아내지못했던,비어있는지역들에대해눈을돌리기로했다.제주도전지역여성들의‘4·3과생활사’를채워넣어야4·3속삶의형태를총체적으로들여다볼수있기때문이다.

그동안채록대상자들은제주읍9명,조천면5명,구좌면4명,남원면1명,안덕면2명,대정면3명,애월면1명등이었다.4·3의전체상을조망하고차후연구를위해서도지역의균형은중요했다.때문에이번책의채록대상자는서귀면,중문면,한림면,성산면,표선면으로한정하기로했다.물론그만큼대상자선정에어려움이있었던것도사실이다.

서술은여전히예전기조를이어가기로했다.날것의제주어를그대로남기고싶었으나그것은일차자료로남겨두고,대중성가독성을위해거의표준어로갔음을밝혀둔다.

너무나압도하는삶의이야기들로쌓여진세월들이다.온전히그들의4·3과그들의생활사를담아낸다는것은여전히조심스럽고어렵다.혹여빠진대목이있을것이기에짚고또짚었다.그럼에도미진함은남을것이다.
봄이올것이다.봄의힘을빌어아마도이책이작은위로가되기를.그혹독한4·3의기억으로육신과정신이아프고고통스런세월을살아낸이들이여,그럼에도그이상의삶을일궈낸이아름다운여섯의어머니여,“결국은아픈대지위에도끝내는살아서파릇파릇꽃을피워낸다는것입니다.”말하고싶다.(발간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