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평국, 근대 제주를 짊어지다

강평국, 근대 제주를 짊어지다

$20.00
저자

한금순

문학박사,한국사
제주에서나고,자라,제주에서살고있다.일제강점기를높은기개,뜨거운울분,서늘한외로움,굴하지않는결기로산제주사람들의삶을두손모은존경의마음으로모아세상에내보이려게으르게노력하고있다.
제주,불교,여성.저자가붙잡고있는연구범위다.

저서
한금순,「한국근대제주불교사」(경인문화사,2013)
한금순,「제주법정사항일운동」(서귀포신문,2018.)

논문
「李衡祥의절오백당오백철폐,그설화와역사의교차점」,「제주역사문화」제15호,제주도사연구회,2006.
「1918년제주도법정사항일운동관련「형사사건부」분석」,「대각사상」제12집(대각사상연구원,2009.12)
「제주도존자암고(考)」「대각사상」제16집(대각사상연구원,2012.2)
한국불교민속학회ㆍ연등회보존위원회,「제주도연등절의시대적변천」,「연등회의종합적고찰」,민속원,2013
「최정숙의3ㆍ1운동재판관련문서분석」,「제주도연구」44집,제주학회,2015.
「최정숙독립운동재판관련문서자료집해제」,「최정숙독립운동관련판결문자료집」,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제주항일기념관,2016.
「17세기제주도여정(女丁)의성격-군역(軍役)부담에대한고찰」,「탐라문화」제53호,제주대학교탐라문화연구원,2016.
「제주여교사1호강평국독립운동연구자료조사해제」,「제주여교사1호강평국독립운동연구자료조사보고서」,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2017.
「유배인들이제주불교에끼친영향」,「대각사상」제28집,대각사상연구원,2017.
「‘제주한라산신제단법당’과제주불교」,「대각사상」제29집,대각사상연구원,2018.
「제주4.3항쟁과제주불교의사회참여활동」,「대각사상」대각사상연구원,제31집,2019.
「제주법정사항일운동‘정구용판결문’분석」,「대각사상」대각사상연구원,제34집,2020.
「강평국의삼일운동참여와수감」,「제주도연구」제51집,제주학회,2019.
「강평국의글〈여자해방의잡감(雜感)〉」,「제주도연구」제53집,제주학회,2020.
「1920년대제주여자청년회의성격과활동」,「제주도연구」제56집,제주학회,2021.
「강평국의일본에서의민족운동」,「제주도연구」제58집,제주학회,2022.

목차

여는글

제1장.강평국,근대제주를짊어지다

Ⅰ.강평국의수학
1.신성여학교
2.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본과
3.경성고등보통학교사범과
4.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

Ⅱ.강평국의사회활동
1.강평국의독립운동
2.강평국의교육활동
3.강평국의여성운동
4.강평국의재일본노동운동


제2장.독립운동가강평국,민족의자존을외치다

제1절.강평국의3.1운동참여
Ⅰ.박희도의비밀서클활동참여
Ⅱ.강평국의3.1운동참여
1.3월1일만세운동참여주도
2.서울시내만세행진참여

Ⅲ.강평국의제2차만세시위운동참여와수감
1.제2차만세시위운동
2.강평국의제2차만세시위운동참여와수감

제2절.강평국의여성비밀결사백청단활동가능성검토
Ⅰ.여성비밀결사백청단
1.백청단의활동
2.백청단사건수사

Ⅱ.1930년대초반학생운동

Ⅲ.강평국의백청단활동가능성검토
1.제주도의신여성
2.강평국의인맥
부록:강평국의3.1운동관련재판자료


제3장.제주도최초공립학교여교사강평국,교육으로조국의번영을선도하다
Ⅰ.제주도최초공립학교여교사강평국
Ⅱ.사립교육기관에서교육활동
1.여수원교육활동
2.사립명신학교교사활동


제4장.여성운동가강평국,여성의사회적역할수행을실천하다
Ⅰ.강평국의글〈여자해방의잡감〉

Ⅱ.유흥가여성구출활동

Ⅲ.제주여자청년회를통한강평국의여성운동
1.1920년대한국여성운동의특징
2.제주여자청년회의성격
3.제주여자청년회의활동
4.제주여자청년회활동주요인물
Ⅳ.근우회동경지회활동


제5장.노동운동가강평국,경제적자립으로독립된여성을희망하다

Ⅰ.강평국의청년단체활동
1.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활동
2.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활동
3.총독정치반대동맹기성회활동

Ⅱ.강평국의노동단체활동
1.동경조선노동조합동부지부활동
2.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활동
3.근우회동경지회노동운동활동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슬프다.시대의선각자요,여성의등불인그는삼일운동때피흘려청춘을불살랐고,청운의뜻을품고일본으로건너갔으나,품은이상이루지못한채애달픈생애딛고여기길이자노니지나는손이여.비앞에발멈춰전사의고혼(孤魂)에명복을빌지어다.여기뜻있는이모여정성들여하나의비를세우노니구천에사무친외로운영이여고이굽어살피소서.”
 
이는제주시황사평천주교공원묘지에세워져있는강평국(姜平國,1900~1933)지사의추도비에새겨져있는글이다.추도비에는‘아가다강평국선생추도비’라는글귀가빗돌에새겨져있다.아가다는강평국선생의세례명이다.

강평국은구한말,혼란한시대에태어나불꽃처럼살다간한시대의표상이기도하다.1900년6월19일나서1933년8월12일33세에병으로사망하였으니너무이른죽음이었다.하지만,그짧은생애동안그녀는‘불꽃처럼’이라는수식어에걸맞게치열하게살았음을이책을통해알수있다.
이책은대중적교양서는아니다.저자는강평국에대한그동안단편적인논문을발표하면서그녀의생애를추적해왔다.이책은그러한저자의강평국연구에대한종합판이라할수있을것이다.특히연구과정에서발굴한문헌자료들과사진자료들이이책에자료로서보강되어있다.근대시기여성운동가의활동을연구하고자하는후학들에게도큰도움이될수있는자료로서의가치또한높다.

제주출신인강평국의생애는제주에국한되지않는다.제주,한반도,일본열도로이어지는공간적범위내에서망국과항일의암울한시대를살아내야했던,근대시기지식인이자여성선구자로서의다양한면모가그의삶의기록에담겨있다.

강평국은제주도의근대식공립학교의첫여교사이다.제주도제주시일도리태생인강평국은1909년제주신성여학교에입학하여1914년제1회로졸업하였다.신성여학교는1909년10월천주교회에서설립한초등과정학교다.제1회졸업동기인고수선,최정숙이강평국과함께1915년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진학하였다.동기생들인세친구는독립운동과여성운동의선구자들이기도한다.본과를졸업한1918년,다시사범과에입학하여이듬해졸업하여정식교원으로발령받는다.정규교원으로임명받은제주의첫여교사다.그해제주도의대정공립보통학교,1920년전남진도공립보통학교,1925년조천공립보통학교의교사로학생들을가르쳤다.또한공립교사로서뿐만아니라,야간에는가톨릭계의여수원야학소와사립명신학교등에서도교육활동을하였다. 근대시기우리나라의교육운동은나라를되찾기위해서는실력이있어야한다는인식을바탕으로부강한조국을위해교육활동으로인재양성에힘을쏟았다.배워야산다는교육열이모두를사로잡던시대였다.

강평국은독립운동가이기도했다.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의“수령급”학생으로서울에서3.1운동에참여하여서대문감옥에수감되었다.
강평국은사범과수학중1919년1월21일고종이사망하자대한문곡반에기숙사생을이끌고참여하였다.1919년3월1일경성여고보학생으로서울에서의만세운동에참여하였고,다시1919년3월5일제2차만세운동에참여하여‘수령급’으로체포되었고,서대문감옥에수감되었다가3월24일풀려나3월25일극적으로졸업장을받은바있다.
교사활동을마치고난1926년일본으로건너가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다니며노동운동을통한민족해방운동에앞장섰다.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의임원으로청년활동,동경조선노동조합동부지부와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의부인부위원으로노동현장에서의민족차별에대한권익보호와여성의노동보호활동을주도하였다.1926년에8시간노동,주48시간제도의실시,최저임금제,노동절휴업등을주장하였다. 
또한근우회동경지회설립위원장으로선임되는등근우회활동을주도하기도하였다.일본내에서3.1운동과국치기념일등을기념하는활동과총독의폭압정치반대활동등일본내에서발생하는민족관련각종사안에강경한노선으로활동하였음이확인된다. 
근우회등의단체활동을통해3.1운동기념행사,국치일기념행사,조선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삼총해금운동,관동대지진조선인학살추도활동,재만동포탄압에대한항의활동,조선인노동자차별에대한항의활동,재일조선인노동자추방항의활동등으로민족운동에앞장섰다.

강평국은여성운동가이기도하다.그녀는1925년동아일보에기고한글〈여자해방의잡감〉에서“과거의역사는‘여자가남자의노예이다’함을의미한것에지나지아니합니다.그것이오늘날의도덕을아니법률을작성하였다고말하여도과언이아닐까합니다....형님!우리여자는오늘날까지남자에게물건시(物件視)하여왔으며가축시(家畜視)하여왔습니다.”라고쓴바있다.당대의다른누구보다도여성의사회적현실에대한비판적의식을견지하고있었다.그런고로그녀의생애에걸쳐서여성해방운동에대한당대의실천적활동은교사로서항일운동가로서의삶의저변에여성운동가로서의면모가배어있었던것이다.
강평국은새로운세상에서여성의역할은사회적으로역할을다하는여성이라는확고한목표를가지고활동하였다.여성스스로바뀐세상을배울것과실력있는여성이되기위해노력할것을촉구하였다.강평국은제주여자청년회를설립하여“힘써배우고굳센단결로삶의권리와자유를찾아야”함을주장하며수해구제활동등제주사회의현안에직접참여하는활동을주도하였다.전국단체활동에도참여하여만주에서핍박받는동포를위한재만동포옹동맹활동,관북수해제주구제회활동등의연대활동을하였다.또한,야학을통해여성의교육을위해노력하여실력있는여성을위한교육활동을하였다.



강평국은또한노동운동가였다.강평국은1926년봄이후일본에서민족운동을하였다.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학생으로동경에서생활하며민족과여성을화두로활동하며,여성노동의차별과조선인노동에대한차별에대항하는활동을하였다.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유학생강평국은일본에서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과동경조선노동조합동부지부의임원으로활동하며,여성과노동자의권익을위한활동과민족해방을위한활동을하였다.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과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에서공동활동을하기도하였다.
일본에서강평국은청년단체활동(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소속으로활동하는분야)과노동단체활동(동경조선노동조합,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활동분야)그리고여성단체활동(근우회동경지회)을병행했다.
강평국은여성의경제적이익과사회적지위향상을목표로활동하는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의임원이었고,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와공동활동도하였다.동경조선노동조합동부지부부인부위원과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의부인부위원,근우회동경지회임원활동등으로조선인노동자의권익을위한활동은물론이고민족차별에대한항의활동등을하였다.

교육자강평국은교육자,항일독립운동가,여성운동가,노동운동가로살았다.망국과항일,여성이라는존재에서오는그모든치열한시대적과제들을온몸으로끌어안고불꽃같은삶을살았던그녀.그러나일본에건너간뒤늑막염이심해지는등건강에빨간불이켜졌다.그러한몸을이끌고학업에정진하면서한편으로는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과근우회를창립하는등쉬지않고뛰었던것이다.그러나점점악화되는건강때문에아쉽게도학업을포기하고귀향길에올라야했다.하지만1933년1월,일본경찰에의해다시광주로끌려갔다.조사를마치고다시고향으로돌아왔을때는이미몸이만신창이가되어있었고그길로일어나지못하고1933년8월12일그만세상을뜨고말았다.강평국지사나이33살때였다.

제주에서강평국은일종의신화적인물이었다.베일속에가려진근대시기선각자이자선구자였던,그녀에대한이야기들은파편화된채로전해지는이야기로만남아있었는데,저자의단편적인연구논문들이발표되면서하나둘씩베일을벗는모습이다.이책은제주출신강평국에대한본격적인연구성과들을집대성한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