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양영수 작가가 작지만 의미 있는, 그것도 흔하지 않은 음악극 극본집을 냈다. 《제주역사 음악극 극본》. 극본집에 ‘제주역사’를 넣었다. 제주역사를 다룬 음악극의 극본을 표제로 단 이 두 편의 음악극의 테마는 제주역사를 소재로 했다.
그 역사적 사건이란 고려 말 제주섬을 피로 물들인 ‘목호의 난’과 ‘홍윤애 고문치사 사건’을 말한다.
〈범섬은 알고 있다〉는 제주에서 벌어진 피비린 역사적 사건 중 4.3이전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인 ‘목호의 난’은 1374년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목호란 말을 키우는 몽골인들을 뜻하는 말로, 몽골 제국에서 제주도에 설치한 목마장에서 일하던 몽골인들을 가리킨다. 몽골 제국이 무너진 후 새롭게 중원의 주인이 된 명은 고려 정부에 제주도에 군마를 바칠 것을 요구한다. 이에 고려 정부는 제주의 말을 징발하기 위해 여러 차례 관리와 군사를 파견하나 100년 가까이 제주에 뿌리내린 목호들은 원 제국의 황제가 기른 말들을 적에게 내어줄 수는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여 징발 왔던 관리들을 척살해버린다. 이에 고려 정부는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2만 5000여 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이를 진압한 사건이다.
작가는 이 사건을 총 4막으로 이루어진 음악극으로 엮어낸다. 기록된 역사는 뼈대만을 기록할 뿐,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상력이라는 살이 필요하다. 이 음악극은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운 살의 이야기다.
지나간 역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 개념이다. 당대의 관점에서 민족역사에 이득이 되는 사건이 나중에는 손실이 되고, 당장에는 민족발전에 손실이 될 것 같은 사건이 결국에는 이득이 되는 득실반전(得失反轉)의 아이러니가 왕왕 발생하는데, 고려 말기에 일어났던 ‘목호의 난’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원나라 통치 100년간 제ㅎ주도의 주민들 대다수는 지역 발전을 가능케 한 목호의 지배에 동조했으며, 그들은 목호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를 진압하러 온 고려군보다는 목호군에게 가세했다. 고려군은 2만 5천의 압도적인 병력을 가지고도 불과 기천 명인 목호군에게 간신히 신승(辛勝) 했음이 이를 말해준다. 만약에 그 당시 제주도 주민들이 끝까지 목호군에게 가세했다면 제주섬은 영원히 낯선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어이없는 운명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 초기 목호군에 대한 협력은 단기적인 안목에서의 근시안적인 선택이었고, 최후에 고려군에 대한 협력으로 돌아선 것은 장기적인 안목의 거시적인 판단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목호의 난’ 문학적인 재구성의 상징적인 의미〉, 12쪽)
그 역사적 사건이란 고려 말 제주섬을 피로 물들인 ‘목호의 난’과 ‘홍윤애 고문치사 사건’을 말한다.
〈범섬은 알고 있다〉는 제주에서 벌어진 피비린 역사적 사건 중 4.3이전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인 ‘목호의 난’은 1374년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목호란 말을 키우는 몽골인들을 뜻하는 말로, 몽골 제국에서 제주도에 설치한 목마장에서 일하던 몽골인들을 가리킨다. 몽골 제국이 무너진 후 새롭게 중원의 주인이 된 명은 고려 정부에 제주도에 군마를 바칠 것을 요구한다. 이에 고려 정부는 제주의 말을 징발하기 위해 여러 차례 관리와 군사를 파견하나 100년 가까이 제주에 뿌리내린 목호들은 원 제국의 황제가 기른 말들을 적에게 내어줄 수는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여 징발 왔던 관리들을 척살해버린다. 이에 고려 정부는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2만 5000여 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이를 진압한 사건이다.
작가는 이 사건을 총 4막으로 이루어진 음악극으로 엮어낸다. 기록된 역사는 뼈대만을 기록할 뿐,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상력이라는 살이 필요하다. 이 음악극은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운 살의 이야기다.
지나간 역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 개념이다. 당대의 관점에서 민족역사에 이득이 되는 사건이 나중에는 손실이 되고, 당장에는 민족발전에 손실이 될 것 같은 사건이 결국에는 이득이 되는 득실반전(得失反轉)의 아이러니가 왕왕 발생하는데, 고려 말기에 일어났던 ‘목호의 난’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원나라 통치 100년간 제ㅎ주도의 주민들 대다수는 지역 발전을 가능케 한 목호의 지배에 동조했으며, 그들은 목호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를 진압하러 온 고려군보다는 목호군에게 가세했다. 고려군은 2만 5천의 압도적인 병력을 가지고도 불과 기천 명인 목호군에게 간신히 신승(辛勝) 했음이 이를 말해준다. 만약에 그 당시 제주도 주민들이 끝까지 목호군에게 가세했다면 제주섬은 영원히 낯선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어이없는 운명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 초기 목호군에 대한 협력은 단기적인 안목에서의 근시안적인 선택이었고, 최후에 고려군에 대한 협력으로 돌아선 것은 장기적인 안목의 거시적인 판단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목호의 난’ 문학적인 재구성의 상징적인 의미〉, 12쪽)
제주역사 음악극 극본 (범섬은 알고있다/홍랑애화)
$1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