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 글나무 시선 31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 글나무 시선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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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연홍

저자:권연홍
창신대문예창작과졸업
《조선문학》등단
조선문학시문학상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작사가등록
시집:『겨울산에핀꽃』,『국화는아직피지않았다』
조선문학문인협회회원,창원문인협회회원,가락문학회회원

목차

서(序)/목진숙―5
시인의말―10

1부

눈꽃나들이―19
왕후시장오후세시―20
전답가는길―22
이정표없는길―24
청산도,여백의시간―26
화산짐꾼―28
행성같은억새―30
합천왕후시장―32
초록신호등―34
우편함―36
신두리사구의삐삐꽃―38
불꽃이칠판이던밤―40
동정호의꿈―42
닭섬,그푸른사유―44
논골담아버지들―46
남은한사람―48
낙엽에묻다―50
겹겹의시간―52
금성산기원제―54

2부

집―59
자유와독수리―60
국화는아직피지않았다―62
마른통장의비명―64
거짓의옷깃―66
화진포와휴전선―68
한국가두부족―70
통일전망대―72
침묵의다짐―74
서민과정치―76
무지개화합―78
녹슨침묵―80
마니산―82
독도―83
자유와고독―84
추암촛대바위―86

3부

제비꽃폭죽―89
예당호출렁다리―90
미시령옛길―92
저무는여정―94
은빛잠수―95
오유지족―96
엉또폭포―98
속초포장마차―100
선상위의고요한침투―102
빛은안에서열린다―103
밭둑이합천호로간날―104
바다메시지―106
문보트―108
만선횟집―110
강낚시―111
황계폭포―112
탄금의혼―113
짠내와단내사이―114
헐렁한소매―116

4부

예순의끝자락―121
인력시장―122
억새춤―124
동해바다―125
운문사의침묵―126
할머니전답사랑―128
놀이터풍경―129
하멜등대의밤―130
카페플로라―132
인력공사사람들―134
그님이지새운밤―136
등산간친구를기다리며―138
그날과그날사이―139
예고없는이별―140
누가꿈을용접하는가―142
화산석에선향나무―144

5부

가을―149
늙어가는법―150
산너머별에게―152
붉은물결에스민이름―153
묵비권―154
몽돌의노래―156
달콤한꿈조각들―158
늦은향기―160
별을품은여자―161
별밤여행―162
나이테없는나이―164
서리꽃―166
그리운별하나―168
추억의그림자―169
나에게―170
황매산―172
똥―173

출판사 서평

합천호전경에반해대병면에서텃밭을가꾸며전원생활인으로살고있는권연홍시인의두번째시집『국화는아직피지않았다』를읽는일은즐겁다.평범한일상속에서잠재우진진실앞에,그는시에다삶을밀착시키는고독한자기방어로존재의의미를깊이있게들여보기를좋아한다.
저녁놀이번지는황매산이나물안개피어오르는합천호를바라보면서“야생마처럼승부를걸며세상을쫓았지만”그의시편들은“문패처럼성공을내걸고”사는삶이아닌“하늘이파랗다는단순한깨달음”으로내면의풍경을담담히밝히는빛으로표출된다.
황매산철쭉이피기시작하면“햇살이머문자리가안내판”이된다며짧은꽃한철이안타깝고그래서더욱아름다운꽃앞에문우들을불러모은다.
인생의가장화사한시절을놓치고말았다는회한보다“하늘담은합천호위에”지금이이미좋은시절이라며기쁜일굿은일마다않고정성을다해서주변을밝히는성품이다.
―옥영숙(시조시인,오늘의시조시인회의부의장)

책속에서



창원에서활약중인권연홍시인이첫시집『겨울산에핀꽃』에이어두번째시집『국화는아직피지않았다』를상재한다.월간《조선문학》에시가당선되어문단에나온권시인은그동안틈틈이써온시편들을모아이번작품집으로엮어냈다.
시내용을들여다보면전반적으로흐르는서정성이먼저감지된다.흙냄새가시편저변에잔잔하게풍기면서자연의숨결이곳곳에서느껴지는것은시인자신의삶의바탕에서기인한다고볼수있다.즉지리산자락이포근하게감싼전형적인산골마을에서태어나유년을보낸그에게유독풀향기가온몸에서풍기는것은우연이아닌자연스러운현상이라할수있다.

돌아앉은산맥
바람은방향을잃었다

비탈마다숨을고르던
사람들의기억을더듬는길
떠남과돌아옴이겹겹이쌓여있다

옛휴게소터
커피한모금머금고
속초를바라본다

바람은바퀴없는시간을굴려
내발길을재촉하고

도로의화살표는
이정표가아니라
내마음을가리킨다

멈춤과떠남사이
생성과소멸의틈에서
낯선여행자가되어
허공에버려진그림자하나걸어간다
―「미시령옛길」전문

이시는시인의대표작한가운데백미라고해도좋을만큼시적형상화가뛰어난수작이다.한때수많은사람의발자국과차량의바퀴가지나간흔적위에홀로서서흥망성쇠의애잔한감상에젖어들면불현듯‘나는누구인가’라는존재론적물음을마주한다.그러면서인간이란본질적으로“허공에버려진그림자”임을절감하게한다.
근작들에서는부조리한사회현실과정치권의당리당략으로얼룩진풍경을날카롭게비판하는시선이두드러진다.그런작품의하나가「국화는아직피지않았다」이다.시인은가슴에‘국회’라새겨진금배지를단이들이민초의고단한삶을외면한채싸움만일삼는현실을꾸짖으며“국화는아직피지않았다”고일갈한다.“겨울을견디지않았기에/눈물의온도를모른다”고질타하며시대의양심을일깨운다.
또한민초들과노동자의애환을읊은시,「인력시장」,「마른통장의비명」,「누가꿈을용접하는가-창원공단」등에서보이듯,시인은서민의삶을직시하며그속의자화상을담담히그려낸다.
그는지금우리민족이겪고있는참담한현실에도큰관심을쏟고있다.「통일전망대」,「화진포와휴전선」등의시에서나타나듯이분단으로인한한민족의고통을밀도있게표현한다.그러면서언젠가는다시하나가될것이란소망한자락을시의저변에깔아두고있음을보게된다.
권시인이걸어온길은순탄하지만은않았다.그러나부모님의사랑속에자란유년기와형제자매사이의우애,그리고단란한가정에서의현재삶은그에게큰힘이되고있다.“발끝에걸린과거와/손끝으로잡히는미래사이/어느쪽에도닿지않는나이로걷는다”(「나이테없는나이」중에서)라는구절처럼,그는지금이순간에충실한삶을살아가고자한다.

천생시인

이름만들으면
연한홍시같은살빛고운여인으로알겠다
가까이다가서면
지리산푸른기운이옷자락에나부낀다
삶의고단한땀방울도이슬같이빛나고
거친숨결에도향기로운흙냄새가난다
달빛젖은산야에피어난풀꽃처럼
고요히흔들리며백지위에필을들고
한구절또한구절시로(詩路)의길을닦는
지금의시간속에사는천생(天生)시인
권연홍
―자작시

이번시집에실린작품들은어느한주제로묶이기어려울만큼다양한색채를지닌다.그러나시편마다관통하는근원은‘순수서정의향기’라할것이다.향후그의시적여정이어떤방향으로나아가더라도,그바탕에는인간과자연,삶에대한따뜻한서정의결이계속이어질것이라믿는다.

목진숙
<시인,문학박사,전창신대문예창작과초빙교수>

<왕후시장오후세시>

바지락이입을다물면
오늘장사도끝난다

늙은호박마지막해를삼키고
할머니의저울은아직뜨겁다

“에이,싸게줄게요.”
그소리가하루의기도다

말하지않는상인들
값보다오래된침묵
신이팔리고
신이시장바닥을걷는다

뒤집힌햇빛속에서
그안엔바다가아니라
사라진궁전이흔들리고있다

점점작아지는목소리들
점점가벼워지는삶의무게

그러다문이닫힌다
왕후시장은스스로를팔고있는우주다

<국화는아직피지않았다>

일제의그림자를닮은옛문양을지우고
한글두글자를새겨넣을때도
꽃은달라지지않았다

그들은가슴에국화를달고
가을의품격을흉내내며
황금빛꽃잎사이로
묵음(音)의향기가새어나왔다

혀끝엔설(舌)화꽃이피었다
달콤한약속을겨울내내틔우며
얼어붙은입김사이로국민의이름을착취했다

무궁화형상안에박힌글자,국회
나라꽃을빌려쓴입으로
국민을향해이또한민의라며번역해내지만

그금빛은사실
로비와공천과이해관계의조명아래
더잘비치도록닦인거울일뿐
거리의피켓이비치지는않는다

그들은말한다
이꽃은국민뜻으로피웠다고
여섯그램남짓한금빛을만작거리지만
그안에뿌리도계절도장마도없다

가난한손,분노한눈동자
투표용지에남은손때의냄새로
진짜국화는
늘담장밖에서만피고져서
온실속에선법안보다먼저
스스로를갈기갈기찢는다

그리하여국화는피지않는다
양복깃위붙은꽃모양은
단한번도겨울을견디지않았기에
눈물의온도를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