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시작하겠습니다 - YA! 26

살인을 시작하겠습니다 - YA!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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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배예람

저자:배예람
앤솔러지『대스타』에「스타이즈본」을수록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좀비즈어웨이』를펴냈다.느슨하더라도포기하지않고이야기를쓰는삶을목표로한다.

목차


1층목이긴여자
5층거미를닮은남자
2층움직이는인체모형
4층노래하는음악선생님
3층그리고……
에필로그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둘도없는친구사이에서
둘중하나를죽여야하는적이되다

“그런마음이있었다.
그아이를좋아했던만큼
그아이가고통스럽게죽어주길바라는마음이.”

6월모의고사가끝난밤,‘나희’는학교교실에서눈을떴다.최악의점수를확인하고좌절하며잠깐엎드려있겠다는게한밤중까지이어진것이었다.그런데교실풍경이어딘가이질적이고낯설다는느낌을받는순간,기이한종소리가울리더니티브이모니터화면에낡은토끼가등장했다.봉암여자고등학교의오래된마스코트봉봉이였다.‘봉봉이’는‘나희’에게알수없는이야기를시작했다.‘나희’가‘제0교시살의영역’시험에응시하게되었다는것이다.‘나희’는그제야제앞에놓인시험지와그아래적힌필적확인란을읽었다.“죽이고자하는열의가나를움직이는모든것이었고.”그리고뒷장을넘겨제0교시살의영역의시험문제와마주했다.

1번.살의란무엇인가?
2번.사람을죽이는데가장적절한방법은무엇이라생각하는가?
3번.죽이고싶은사람의이름과반번호를쓰시오.

꿈과현실의경계에걸쳐모든게희미하기만했던‘나희’는자신이아직꿈에서깨지않은것이라생각했다.그리고꿈에서깨려면,가만히있기보다무엇이든부딪혀야된다는걸깨닫고시험지의문항에답을써내려갔다.1번과2번은별고민없이쓸수있었다.단번에생각나는답이있었기때문이다.마지막으로3번.그역시바로떠오른얼굴이있었으므로천천히,소중히그이름을또박또박적었다.광대뼈에박힌점까지아름답고우아한,‘나희’가온힘을다해사랑한박이경의이름을.

같은시각5층에서눈을뜬‘이경’도똑같은시험문제를풀었다.‘이경’은‘나희’와달리제0교시살의영역에빠르게적응하고막힘없이문제의답을적어나갔다.6월모의고사의저주를믿고있던‘이경’은이것이바로그저주임을알아차리고,자신의살의가향해있던‘나희’의이름을적었다.제0교시살의영역의규칙은간단했다.‘나희’는1층에서출발하고,‘이경’은5층에서출발해3층에서만나서로를죽이면되는것이었다.물론,각층을벗어나기위해서는중앙계단을지키고있는괴물들을무너뜨려야하지만,‘이경’에게그건어려운일이아니었다.상대의가장큰약점을파고들어죽음과같은고통을선사하는게특기였으므로.

각층의‘괴물’들은‘목이긴여자’‘거미를닮은남자’‘움직이는인체모형’‘노래하는음악선생님’이다.이들은언뜻보면‘나희’와‘이경’의앞길을방해하기위해놓인끔찍한괴물자체에지나지않는듯보인다.하지만이들을물리칠수록‘나희’와‘이경’은깨닫는다.‘괴물’들은바로두사람의아픔이자약점과밀접하게닿아있다는것을말이다.타인의시선을지나치게신경쓰고,강박적으로자기자신을타인에게맞추려한‘나희’는정작스스로를돌보는데실패했다.‘나희’는눈이없고목이길게늘어져오직소리만으로움직이는‘목이긴여자’와맞서게되었다.눈을잃고소리에예민해벽과창문에머리를박으며붉은핏자국을남긴‘목이긴여자’와대적하면서,‘나희’는그리고5층에있는‘이경’은어떤성장을하게될까.

타인과어울리기위해타인을미워하고
버림받지않기위해버려야만하는관계의모순

“나는나날이더추악해지고
나날이더역겨워지는데
너는이런나를언제까지버틸수있을까.”

‘나희’는갈망했다.언제나새학기가시작되면‘나희’를엄습해오는불안은‘친구만들기’였다.새로운시작과함께무리를만들어가는아이들틈에서,늘어중간한‘나희’의자리는맨뒷줄이나맨앞줄이었다.그누구도신경쓰지않는한구석에불과한것이다.그런‘나희’의눈에들어온사람은예쁘고마른‘이경’이었다.화려한외모와호감적인인상이피라미드의꼭대기를꿰찬다는것을증명하듯,‘이경’의주변에는항상친구들이많았다.‘나희’는늘생각해왔다.무리에소속되고자하는아이는필사적이고,아무리몸과마음이어려도아이들은그필사적인한아이를눈치챈다.그리고싫어한다.필사적인아이는비참해보이기때문이다.그러나‘나희’가잠깐‘이경’과눈이마주쳤을때,‘나희’는‘이경’의눈에서자신의것과같은비참함을마주한다.

‘이경’이어디를가나제일많이듣는말은‘예쁘다’‘말랐다’‘날씬하다’‘보기좋다’는것이었다.‘이경’은마르고예뻐야만자신을사랑해주는엄마와친구들의기대에부응하고자언제나조금먹었고,언제나극심한허기에시달렸다.제몸이망가지고머리카락이빠지고죽기전까지목이말라도,먹지않아야했다.하지만‘이경’의주변에는늘외모에관심이많은아이들뿐이었기에,살이찔까두려워하면서도그들이보는앞에서급식판을전부비워야했다.그리고수업시간에홀로나와화장실에서먹토를하는게일상이되어갔다.문제는하필이면,그장면을‘나희’가목격했다는것이다.‘이경’은차라리잘되었다고생각했다.입학식날자신을뚫어지게쳐다보다바람막이를밟아놓고사과를하지않은‘나희’,친구들몰래피아노를치는데불쑥음악실에들어온‘나희’,결국먹토하는것까지알아버린‘나희’였으니까.‘이경’은언제나맹한표정으로남들눈에띄지않게살아가는주제에은근히신경쓰였던‘나희’가친구들처럼형식적인위로나어쭙잖은참견을하길원했다.그러면‘이경’은주저없이그오지랖을마음껏비웃고비난할준비가되어있었다.

하지만‘나희’는정확히‘이경’의예상을빗나갔다.‘나희’는아무것도묻지않았고,그저말없이‘이경’의옆을지켰다.그리고아무도알아주지않았던‘이경’의속마음을들여다보고,과하지않게자신만의방식으로‘이경’에게다가갔다.‘이경’은직감적으로알아차렸다.‘나희’와친해질것이라고,친해질수밖에없을것이라고.둘만의작은무리를이룬‘나희’와‘이경’은다른친구들에게서같은질문을받곤했다.‘너왜저런애랑다녀?’어울리지않는한쌍을바라보는수십쌍의시선은결국‘나희’와‘이경’사이에희미한균열을내고말았다.불행은늘예고없이찾아온다고했던가.서로를지켜주고싶다는‘열의’로가득차있던그들의마음을삽시간에‘살의’로바꾸어놓은사건은불현듯찾아왔다.‘나희’는,‘이경’은생각했다.좋아했던만큼,위했던만큼네가고통스럽기를바란다고.그렇게죽어버리면좋겠다고.

배예람작가의『살인을시작하겠습니다』는학교가마치하나의던전인것처럼각층에무시무시한괴물을배치하고,역동적인액션을전면에내세워독자들의이목을끄는듯보인다.그러나‘나희’와‘이경’의관계성이일련의서사와함께서술될수록,그들이진정으로맞서고자했던‘괴물’이무엇이었는지알수있게된다.어떤마음은글자로,말로완전한형태를갖췄을때전해지기마련이다.‘나희’와‘이경’은서로의진심을가린가면을벗고,더솔직해진모습으로서로에게다가갈수있을까?과연,제0교시살의영역의‘진정한’합격자는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