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그녀들을불온하다고말했다
그러나백년이지난지금
우리는다시그녀들의문장을읽는다
그들은변화하는시대의물결을누구보다먼저인식하고받아들였으며,이를통해순응적여성상에서벗어나현실의파도와싸웠다.일제강점기라는시대적상황,가부장제와남성우월주의시대에그들의외침과저항은용납되지않는여정이었고,비난의대상이기도했다.하지만제한된현실과제약속에서자신만의길을나섰다.자기자신을돌아보고,세상에서밀려난이들의삶을건져올리고,고루한벽을부수고자했다.그렇게근대의물결을배경으로세상을계몽했고,소외되고억압된여성들을대변하고일깨웠다.글쓰기를통해주어진삶을거부하고남들이가지않는길을택했다.
딸과아내,어머니라는전형적인굴레에서벗어나자유로운인간이되고자한그들의무기는문학이었다.근대적인교육의수혜자로서글쓰기는오랜세월순응해온여성성에대한자각이었다.그리고가정성의역할을강요하는사회에대한절박한아우성이었다.그렇게글로엮은변화의목소리를광장으로이끌었다.
여성이라는이유만으로문단에서등한시되던때,우리나라첫여성작가가탄생했다.1917년김명순의〈의심의소녀〉가『청춘』현상작품모집에서입선한것이다.이를계기로여성작가들이등장했고,특히의식있는이들은대중에영합하는대신당대의모순,차별과편견,시대적가난을자신만의시각과문체로그려냈다.그것은여성이기이전에주체적인간으로서살고자하는다짐이었으며,남성과동등한여성으로서당당히살기위한사명이었다.
그들중에는김명순을비롯해강경애,나혜석,백신애가있다.그들은억압적인현실속에서자신의존재를증명하고,침묵하라는사회에저항했다.그것은해방을넘어자기존재가치를확인하고자유를찾고자한몸부림이었다.억압적인사회속에서깊은상처를입었지만기어이일어섰고,경직된시대에자기목소리를냈으며,누구보다자신을사랑했으며,남이아닌자기삶을스스로개척했다.
세상은그들을급진적이거나사회와융화하지못한다는이유로외면하거나터부시했다.때로는자기검열에시달려야했고,사회적낙인을안고살아야했으며,정신적고통속에서비참한최후를맞이해야했다.그렇게세상에서지워졌지만,그들이남긴글은기어이살아남아우리곁에다가왔다.첨예한삶을살며시대에던진질문들은지금도여전히계속되고있다.그들이사회의부속품이아닌,온전한인간이자주체적인존재로살고자했다면,지금우리는무엇을고민하고어떤길을찾고있을까?이제아무말도하지않지만,그들이남긴작품들은여전히우리에게묻는다.
책속으로
그렇다.괴로움이지나면낙이있고울음이다하면웃음이오고하는것이금수와다른사람이다.금수가능히못하는생각을하고창조해내는것이사람이다.사람이번쌀,사람이먹고남은밥찌꺼기를바라고있는금수,주면좋다는금수와다른사람은제힘으로찾고제실력으로얻는다.이것은조금도모순이없는사람과금수와의차별이다.조금도의심없는진리다.
경희도사람이다.그다음에는여자다.그러면여자라는것보다먼저사람이다.또조선사회의여자보다먼저우주안전인류의여성이다.이철원김부인의딸보다먼저하나님의딸이다.여하튼두말할것없이사람의형상이다.그형상은잠깐들씌운가죽뿐아니라내장의구조도확실히금수가아니라사람이다.
---p.61
나는남만못한처지에서나서기생의딸이니첩년의딸이니하고많은업심을받았다.그리고내가생장하는나라는약하고무식하므로역사적으로남을이겨본때가별로없었고늘강한나라의업심을받았다.그러나나는이경우에서벗어나야하겠다.벗어나야하겠다.남의나라처녀가다섯자를배우고노는동안에나는놀지않고열두자를배우고생각하지않으면안된다.남이겉으로명예를찾을때나는속으로실력을기르지않으면안되겠다.지금의한마디욕,한치의미움이장차내영광이되도록나는내모든정력으로배우고생각해서무엇보다도듣기싫은첩이란이름을듣지않을성숙한여자가되어야하겠다.그러려면나는다른집처녀가가지고있는정숙한부인의딸이란팔자가아니니,그대신공부만을잘해서그결점을감추지않으면안되겠다.
---p.141
오늘도집으로돌아오는길에서
‘대문이닫혔으면어떻게하나.어머니가아직주무시지않으실까?’
하는걱정과함께
‘지금내게도돈이월급처럼꼭꼭나오는데가있었으면…….’
하는엉터리없는공상을하기도했다.가라앉지않는뒤숭숭한가슴으로조심히대문을밀었다.의외로대문은소리없이열렸다.
‘옳다,되었다.’
나는소리없이살며시대문안에들어서서도적놈처럼안방동정을살폈다.안방에는등잔불이흐릿하게낮춰있었다.
‘어머니가벌써주무시는구나…….’
---p.165
그는잠깐귀를기울여밖을주의한후에가만히손을넣어소금자루를쓸어만졌다.이것을팔면얼만가……팔원하고팔십전!그러면밀린집세나마저물고……한달살까?이것을밑천으로무슨장사라도해야지.무슨장사……?하며그는무심히만져지는소금덩이를입에넣으니어느덧입안에는군물이스르르돌며밥이라도한술먹었으면싶게입맛이버쩍당긴다.그는입맛을다시며침을두어번삼킬때소금이란맛을나게한다.아무리좋은음식이나소금이들지않으면맛이없다.그렇다!했다.그때그는문득남편과아들딸을생각하며그들이있으면이소금으로장을담가서반찬을해먹으면얼마나맛이있을까!그러나그들을잃은오늘에와서장을담을생각인들할수가있으랴!그저죽지못해먹는것이다.그는한숨을푹쉬었다.
---p.237
“네?선생님저는고로(苦勞)하지않아요.엄벙하고지내요.그렇지않으면살길이없지않아요?”
“응그렇지.”
“그러므로저는선생님이생각하고계시는것보다태연해요…….나라는여자는고마운일이아니면울고싶지아니해요.남이야속하게한다고울지않아요!”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