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여성 교육과 조국의 독립,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헌신한
김필례 선생의 삶과 철학!
김필례 선생의 삶과 철학!
여성 교육과 조국의 독립,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헌신했던 김필례 평전 『쉼 없는 열정』(부제 : 나라, 신앙, 교육을 향한 김필례의 삶)이 나왔다. 이 책은 2019년 김필례 선생의 삶을 다룬 평전과 함께 그에 관한 자료와 저술, 기록 등을 묶은 『김필례 그를 읽고 기억하다』(열화당)에서 평전 부분만 끄집어내 손보고 새로 편집한 것이다. 이번에 평전을 새로 발간하게 된 것은 지난번 책이 너무 두껍고 방대해서 어린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워 선생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전을 쓴 이정숙 한성대 명예교수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YWCA와 여전도회 창립, 광주에서의 야학 운영, 수피아여학교·정신여학교 근무, 미국 유학과 번역, 그리고 해방 후 정신여학교 재건과 한국전쟁 당시 국내 및 미국에서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보기에도 숨이 찰 정도로 쉼 없이 많은 일을 하신 선생을 보며 ‘쉼 없는 열정’이라는 제목이 절로 떠올랐다고 말한다.
김필례는 YWCA와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그리고 정신여자중·고등학교와 서울여자대학교 같은 기관과 단체를 이끌었던 여성 교육의 선구자였다. 그는 교육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 믿고 이들 단체를 만들기 위해 그 터를 다졌으며, 안 되는 일들은 부딪쳐 가며 되게 만들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스스로 길을 열어 나갔다.
한편 주변의 순종적인 여성들의 삶을 보며 여성으로서의 굴레를 벗어 버리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당시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들과 달리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을 넘어서거나 도외시하지 않았다. 특히 가정생활에서 아내나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해내기 위해 인내하며 고달프게 살았다.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에 맞게 순응하는 개인의 삶과,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부합되는 이타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병행해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이다. “배운 만큼 달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삶의 철학은 엄격하고 보수적인 교육으로 이어져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꽉 막히고 융통성 없는 교육자로 비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김필례 선생을 한정된 시각으로만 본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생이 공적인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대단히 엄격하고 카리스마가 강했”지만,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동시에 지닌 분이었다는 것이다. 『정신 백년사』에서 김필례 약전을 쓴 김광현은 “그는 판단력과 지도력을 겸비한 여성이었다. 우리 여성 지도자 중 김필례를 당할 인물을 내 평생 보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선생은 아는 것은 몸소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행동을 연결되지 않은 앎은 앎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당시 암매한 여성 사회를 깨우치고 발전시키기 위해 헌신했던 김필례 선생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정부는 2021년 선생에게 ‘독립유공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평전을 쓴 이정숙 한성대 명예교수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YWCA와 여전도회 창립, 광주에서의 야학 운영, 수피아여학교·정신여학교 근무, 미국 유학과 번역, 그리고 해방 후 정신여학교 재건과 한국전쟁 당시 국내 및 미국에서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보기에도 숨이 찰 정도로 쉼 없이 많은 일을 하신 선생을 보며 ‘쉼 없는 열정’이라는 제목이 절로 떠올랐다고 말한다.
김필례는 YWCA와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그리고 정신여자중·고등학교와 서울여자대학교 같은 기관과 단체를 이끌었던 여성 교육의 선구자였다. 그는 교육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 믿고 이들 단체를 만들기 위해 그 터를 다졌으며, 안 되는 일들은 부딪쳐 가며 되게 만들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스스로 길을 열어 나갔다.
한편 주변의 순종적인 여성들의 삶을 보며 여성으로서의 굴레를 벗어 버리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당시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들과 달리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을 넘어서거나 도외시하지 않았다. 특히 가정생활에서 아내나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해내기 위해 인내하며 고달프게 살았다.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에 맞게 순응하는 개인의 삶과,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부합되는 이타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병행해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이다. “배운 만큼 달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삶의 철학은 엄격하고 보수적인 교육으로 이어져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꽉 막히고 융통성 없는 교육자로 비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김필례 선생을 한정된 시각으로만 본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생이 공적인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대단히 엄격하고 카리스마가 강했”지만,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동시에 지닌 분이었다는 것이다. 『정신 백년사』에서 김필례 약전을 쓴 김광현은 “그는 판단력과 지도력을 겸비한 여성이었다. 우리 여성 지도자 중 김필례를 당할 인물을 내 평생 보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선생은 아는 것은 몸소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행동을 연결되지 않은 앎은 앎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당시 암매한 여성 사회를 깨우치고 발전시키기 위해 헌신했던 김필례 선생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정부는 2021년 선생에게 ‘독립유공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쉼 없는 열정 : 나라, 신앙, 교육을 향한 김필례의 삶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