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명성황후

$28.00
Description
한국 뮤지컬의 살아 있는 역사 〈명성황후〉
지속 가능한 ‘마스터피스’를 만들기 위한 30년간의 여정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 그것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다.
‘의지’다. ‘열정’이다. ‘꿈’이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선구자 윤호진 예술감독이 〈명성황후〉 30주년 기념공연을 맞아 지난 30년간의 열정과 도전을 담은 자전 에세이 『명성황후』(부제 : 뮤지컬 〈명성황후〉 탄생부터 30주년 기념공연까지)를 내놓았다. 뮤지컬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딛고 1995년 무대에 첫선을 보인 뒤 아시아 최초로 브로드웨이 진출,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 입성, 200만 관객 돌파 등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우며 한국 뮤지컬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된 〈명성황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윤호진 감독이 뮤지컬에 매료된 것은 1982년 영국 연수 중 웨스트엔드에서 당시 초연 중인 〈캣츠〉를 보고 나서였다. 줄거리만 보자면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음에도 그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스펙터클하면서도 아름다운 무대, 생생한 분장과 디테일한 안무, 감미로우면서도 다양한 음악…. 그때까지 유신에 반대하던 사회성 짙고 진지한 연극만 하던 그에게는 한마디로 문화적 쇼크였다. 윤 감독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우리도 준비하지 않으면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우리 시장을 고스란히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방어 의식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 이 뮤지컬이 꽉 막힌 우리 공연문화에 어쩌면 새로운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뮤지컬에 매료돼 1984년 한 학기 등록금만 간신히 마련해서 뉴욕대학교 대학원 공연학과에 입학해 악착같이 일하고 공부해 4년 만에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대학 강의실과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이론과 실전을 두루 섭렵한 그는 그동안 품고 배웠던 뜻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안고 뉴욕 공항을 떠나며 속으로 다짐했다. ‘기다려라, 브로드웨이. 내가 딱 10년 안에 내 작품을 들고 다시 돌아온다!’

귀국 후 윤심덕과 김우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그린 세미 뮤지컬 〈사의 찬미〉로 뮤지컬의 가능성을 엿본 그는 1991년 극단 에이콤을 설립한 데 이어 1993년에는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문 회사 에이콤인터내셔널을 만들고 본격적인 뮤지컬 제작에 들어갔다. 1994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 〈아가씨와 건달들〉이 창립 작품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빚을 내서 시작한 공연이었는데 정산해 보니 5억이 남았을 정도로 대박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는 연장 공연 없이 한 차례 지방 공연 후 모든 세트를 불살라 버렸다. 당시 머릿속에 기획 중인 〈명성황후〉로 가득 차 있던 때라서 행여 미련이 남을까 부린 객기였다.

그리고 5년간의 준비 끝에 1995년 12월 30일 뮤지컬 〈명성황후〉를 무대에 올렸다. 명성황후 시해 100주기가 되는 1995년 10월 8일에 맞춰 올리려고 했지만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 윤 감독은 “고백하건대, 처음부터 〈명성황후〉가 30년을 롱런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무대에만 올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고 말한다. 기획부터 대본 작업, 캐스팅, 음악, 의상, 무대장치 등에 이르기까지 제작 과정이 그만큼 지난했기 때문이다.

명성황후 역은 배우 윤석화가, 고종 역은 홍경인이 맡아 열연한 〈명성황후〉 첫 공연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막이 내리자 모두 기립해서 한참 동안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당시 연극평론가 유민영은 “구한말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비극적 죽음을 당한 민비를 오늘의 시각에서 재구성하고 그것을 다시 빼어나게 예술화함으로써 관중을 숙연케” 한다며 “종래의 진부한 서양풍 뮤지컬과는 달리 관중에게 색다른 맛과 감동을 안겨 줄 것”이라고 호평했다. 언론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자

윤호진

충남당진에서태어났다.고등학교때처음접한연극에매료돼대학3학년때실험극장연습생으로연극계에발을들여놓았고,동국대대학원연극영화과에도진학했다.1976년〈그린줄리아〉를통해연출가로선을보이고,이듬해남아공의인종차별과인권문제를다룬〈아일랜드〉로이름을알렸다.이작품으로동아연극상연출상을받았으며,해외연수기회도얻었다.유학을떠나기전에만든연극〈신의아그네스〉는국내최장기공연에최다관객기록을갈아치우며크게히트했다.영국연수중뮤지컬〈캣츠〉를보고충격을받아1984년뉴욕대학교대학원공연학과에입학해뮤지컬을공부했다.
4년간의유학을마치고한국으로돌아와1991년극단‘에이콤’을만든데이어1993년국내최초의뮤지컬전문회사‘에이콤인터내셔널’을설립하고본격적으로뮤지컬제작과연출에들어갔다.〈사의찬미〉와〈아가씨와건달들〉로뮤지컬의가능성을확인한후,한국창작뮤지컬〈명성황후〉를명성황후시해100주년이되는1995년12월무대에올렸다.〈명성황후〉는1997년아시아최초로브로드웨이에진출한것을시작으로1998년두번째뉴욕공연과LA공연,2002년영국런던공연,2003년LA공연,2004년캐나다토론토공연등코로나19이전까지단한해도빠지지않고국내외공연을한것은물론,2015년20주년기념공연,2021년25주년기념공연,2025년30주년기념공연을하기에이르렀다.2009년안중근의사의의거를그린뮤지컬〈영웅〉역시지난해15주년기념공연을성황리에마쳤다.
이밖에도연극〈사람의아들〉(1980),〈들소〉(1981),〈마지막잔을위하여〉(1989),〈실비명〉(1989),〈안토니와클레오파트라〉(1991),〈두교황〉(2012),뮤지컬〈겨울나그네〉(1997),〈FAME〉(1999),〈둘리〉(2001),〈몽유도원도〉(2002),〈라롱드〉(2006),〈러브〉(2008),〈완득이〉(2012),〈보이첵〉(2014)등을무대에올렸다.
한국뮤지컬협회초대회장,극단실험극장대표,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단국대공연영화학부교수,홍익대공연예술대학원대학원장을지냈으며,현재㈜에이콤예술감독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프롤로그기억은기록을이기지못한다

1새로운세상을만나다

연극에흠뻑빠지다
내인생을다시바꾼〈캣츠〉
웨스트엔드찍고브로드웨이로~
브로드웨이돌며공연관람
10만관객돌파한〈신의아그네스〉
늦깎이유학생활
‘기다려라,브로드웨이.10년안에내작품들고다시돌아온다!’

2내인생을바꾼명성황후

뮤지컬의가능성보여준〈사의찬미〉와〈아가씨와건달들〉
뮤지컬〈명성황후〉의닻을올리다
이문열의〈여우사냥〉
풍부한색상과장중한질감의의상들
오늘의〈명성황후〉를있게한일등공신들
스펙터클한무대〈명성황후〉
매일매일이전쟁
〈명성황후〉첫공연폭발적반응

3브로드웨이찍고웨스트엔드로!

‘감정에동서양이따로있나’
“여러분,돈받고독립운동했다는얘기들어봤습니까?”
명성황후역에이태원·김원정더블캐스팅
돌발상황의연속이었던뉴욕공연전날
브로드웨이뉴욕주립극장연일매진사례
《뉴욕타임스》의극찬
뉴욕두번째공연,IMF위기로20억적자
〈명성황후〉브로드웨이진출과성과
영어버전〈명성황후〉들고런던무대입성
LA,토론토,구마모토공연

4〈명성황후〉의항해는아직끝나지않았다

〈명성황후〉20주년공연
뮤지컬〈영웅〉의탄생
〈영웅〉탄생15년
내탓이오,내큰탓이로다
〈명성황후〉25주년공연장덮친코로나사태
서른살맞은뮤지컬〈명성황후〉

에필로그〈명성황후〉그이후

부록뮤지컬〈명성황후〉30년

1.뮤지컬〈명성황후〉의탄생
2.한국뮤지컬최초로브로드웨이진출
3.2002년영국무대입성
4.다시떠난북미투어
5.명성황후의숨결을찾아서
6.〈명성황후〉20주년기념공연
7.2018년공연
8.〈명성황후〉25주년기념공연
9.〈명성황후〉30주년기념공연
10.〈명성황후〉무대미술30년사

역대포스터
뮤지컬〈명성황후〉공연연표
뮤지컬〈명성황후〉수상내역
역대명성황후
뮤지컬〈명성황후〉30주년기념공연배우와스태프

출판사 서평

“여러분,돈받고독립운동했다는얘기들어봤습니까?”

그리고마침내1998년브로드웨이에진출하는꿈을이루었다.한국최초,아시아최초의뮤지컬공연이었다.10년전자신과의약속을지킨것이다.매스컴은〈명성황후〉의브로드웨이진출을대서특필했지만후원을하겠다는기업이하나도없어고난의행군끝에이뤄낸성과였다.배우들을캐스팅해놓고도돈이없어계약할수없을정도였다.할수없이그는배우들을불러놓고이렇게말했다.“여러분,돈받고독립운동했다는얘기들어봤습니까?”

게다가공연전날까지도돌발상황이속출해진땀을흘려야했다.하지만그모든어려움을딛고〈명성황후〉는2586석의링컨센터뉴욕주립극장이연일매진사례를기록하는성공을거두었다.우리것을소재로하면서도역사와환경이다른사람에게도공감과감동을줄수있는작품을만들고자했던윤감독의뚝심이결실을본순간이었다.《뉴욕타임스》도“하늘에서내려오는황금같은조명과기발한무대세트,화려한의상으로관객들을매료”시켰다며극찬했다.

그뒤로도1998년두번째뉴욕공연과LA공연,2002년영국공연,2003년LA공연,2004년캐나다토론토공연을하며한국창작뮤지컬의위상을높여갔다.물론그사이힘든일도많았다.IMF로뉴욕두번째공연이처참한흥행실패로20억적자를봤을때는호텔에서뛰어내리는생각까지했을정도로참담했다.그러나비극적인뉴욕공연을끝내고돌아와올린예술의전당에서의공연에관객들의발길이끊이지않으면서20억의빚을갚고흑자를냈다.믿기지않는기적이일어난것이다.〈명성황후〉의항해는그뒤로도계속돼10주년공연,20주년공연,25주년공연에이어이제30주년기념공연을하기에이르렀다.200만관객돌파,2000회공연을향해달려가고있는것이다.

뿐만아니라2009년에는안중근의사의하얼빈의거를그린뮤지컬〈영웅〉을세상에내놓았다.윤감독은이제항일역사뮤지컬연작세번째작품으로이순신장군과그시대민중들의삶을그린〈칼의노래〉를기획하고있다.

꿈이많은윤감독은지금도다면기를두는바둑기사처럼몇개의작품을머릿속에넣고시뮬레이션을하고있다.그는“나는마음먹은것은무엇이든지이루어진다고생각하는사람이다.연극을만들때부터뮤지컬을만드는지금까지남들이모두안된다는길만걸어왔다.(…)뮤지컬불모지인이땅에서대형창작뮤지컬을만들었다.다들제정신이아니라고손가락질했고외면했다.그런데그뮤지컬〈명성황후〉가30년을롱런하고본고장인브로드웨이와웨스트엔드에서호평을받았다.남들이모두불가능하다고하는것을현실로이뤄냈다.불가능을가능케하는힘,그것은돈도아니고권력도아니다.‘의지’다.‘열정’이다.‘꿈’이다.”라며“지금꿈이없는이는꿈을꾸고,또꿈을꾸고있는이는더큰꿈을꾸라”고말한다.그러면“머잖아세상이여러분의것이된다”는것이다.


우리공연역사에한획을그은‘뮤지컬〈명성황후〉30년’총정리

이책은윤호진감독의자전적에세이와함께뮤지컬〈명성황후〉30년을총정리한글도실려있다.부록은세사람의필자가썼는데,뮤지컬〈명성황후〉의탄생부터20주년기념공연까지를다룬1장부터6장까지는〈명성황후〉공연사와해외공연동향에관한연구로박사학위를받은이윤정홍익대교수가썼고,그후부터30주년기념공연까지지속가능한마스터피스를만들기위한10년간의여정을정리한7장부터9장까지는〈명성황후〉연출가안재승이썼다.마지막으로스펙터클한무대로찬사를받는〈명성황후〉무대미술30년사를정리한10장은무대디자이너박동우가썼다.뮤지컬〈명성황후〉의탄생부터현재까지의발전과정을일목요연하게볼수있어작품에대한이해를한층높여줄것으로생각한다.뿐만아니라역대포스터와공연연표,수상내역,역대명성황후,30주년기념공연배우와스태프까지한눈에볼수있도록잘정리되어있다.공연예술에몸담고있는사람이라면반드시읽어보길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