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장을병 전 성균관대 총장 자서전, 서거 16주기 기념 보급판 발간
2010년 세상을 떠난 장을병 전 성균관대학교 총장의 자서전 『옹이 많은 나무』 보급판이 서거 16주기를 맞아 발간되었다. 고인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생전에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는 글을 쓰면서 “70대 중반에 이르러 이처럼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자서전 비슷한 글을 쓰고 있다니, 벌써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내 나이 80이 넘어서야 빛을 볼 수 있을 듯하니, 앞으로 몇 년간 내 손에서 떠나지 않는 원고가 될 듯싶다”고 술회했다. 퇴고만 못했을 뿐 거의 완성된 형태의 이 원고는 선생이 76세의 나이에 불현듯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예상과 달리 일찍 세상의 빛을 보았다.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 등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 구금됐다가 강제해직
1969년 박정희 정권의 삼선개헌 국민투표를 비판하는 글을 『신동아』에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험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선생은 1980년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 등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 구금되었다가 강제해직되기까지 했던,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그에게 학문과 사회참여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암울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많은 지식인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독재정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불의에 맞서 직접 행동했다.
1991년 대학 총장 직선제가 도입된 후 처음 치러진 선거에서 총장으로 선출되어 5년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냈을 당시, 시위 도중 사망한 김귀정 씨의 장례식 운구 행렬의 선두에 서서 학생들과 경찰 간의 일촉즉발의 충돌을 막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 후 현실정치에도 참여해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향도 구실만 해주는 조건으로” 정치에 관여했다가 어쩔 수 없이 정계에 발을 내딛게 되었지만, “체질에 맞지 않는 일이라 힘만 들고 성과는 없었던 것 같다”는 것이 선생의 고백이다.
단순히 한 개인의 기록이 아닌 역사의 산 증언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선생은 굴곡이 심한 초년기를 보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자 학비를 벌기 위해 나무를 져야 했는가 하면, 1.4 후퇴 직후에는 국민방위군에 입소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또 영동 지방의 폭설로 대학 입학원서가 제때 접수되지 않자 가짜 인장을 사용해 작성한 원서를 냈다가 시험이 늦춰지면서 원서가 이중으로 접수되는 바람에 시험 도중 쫓겨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옹이 많은 나무』에는 이처럼 유난히 굴곡이 많았던 어린 시절부터 험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 신군부 쿠데타로 핍박받고 강제해직됐다가 복직된 일을 비롯해 성균관대학교 총장, 15대 국회의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그리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하와이에서 마지막 연구에 몰두한 일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지난날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숱한 일화들이 상세하게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 사건들을 정치학자의 시각에서 분석해 놓아 단순히 한 개인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역사의 산 증언으로서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서거 16주기를 맞아 11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옥원 장을병 선생 16주기 추모 세미나’도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인간 회복의 정치를 주창했던 장을병 선생의 정치관과 정치혁신을 위한 실천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삶이 재조명되었다.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 등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 구금됐다가 강제해직
1969년 박정희 정권의 삼선개헌 국민투표를 비판하는 글을 『신동아』에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험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선생은 1980년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 등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 구금되었다가 강제해직되기까지 했던,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그에게 학문과 사회참여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암울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많은 지식인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독재정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불의에 맞서 직접 행동했다.
1991년 대학 총장 직선제가 도입된 후 처음 치러진 선거에서 총장으로 선출되어 5년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냈을 당시, 시위 도중 사망한 김귀정 씨의 장례식 운구 행렬의 선두에 서서 학생들과 경찰 간의 일촉즉발의 충돌을 막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 후 현실정치에도 참여해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향도 구실만 해주는 조건으로” 정치에 관여했다가 어쩔 수 없이 정계에 발을 내딛게 되었지만, “체질에 맞지 않는 일이라 힘만 들고 성과는 없었던 것 같다”는 것이 선생의 고백이다.
단순히 한 개인의 기록이 아닌 역사의 산 증언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선생은 굴곡이 심한 초년기를 보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자 학비를 벌기 위해 나무를 져야 했는가 하면, 1.4 후퇴 직후에는 국민방위군에 입소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또 영동 지방의 폭설로 대학 입학원서가 제때 접수되지 않자 가짜 인장을 사용해 작성한 원서를 냈다가 시험이 늦춰지면서 원서가 이중으로 접수되는 바람에 시험 도중 쫓겨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옹이 많은 나무』에는 이처럼 유난히 굴곡이 많았던 어린 시절부터 험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 신군부 쿠데타로 핍박받고 강제해직됐다가 복직된 일을 비롯해 성균관대학교 총장, 15대 국회의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그리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하와이에서 마지막 연구에 몰두한 일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지난날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숱한 일화들이 상세하게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 사건들을 정치학자의 시각에서 분석해 놓아 단순히 한 개인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역사의 산 증언으로서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서거 16주기를 맞아 11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옥원 장을병 선생 16주기 추모 세미나’도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인간 회복의 정치를 주창했던 장을병 선생의 정치관과 정치혁신을 위한 실천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삶이 재조명되었다.
옹이 많은 나무 (장을병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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