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강병주목사의 행적을 찾아서 (양장본 Hardcover)

백남강병주목사의 행적을 찾아서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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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목사요 한글학자였던 백남(白南) 강병주 목사의 목회 일생을 찾아, 기록한 책이다.”
백남 강병주 목사(1882~1955)는 영주 내매에서 출생하였고 25세 때인 1907년 예수를 영접하였다. 그는 훗날 대구성경학교에 진학하여 신학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마포삼열 선교사가 설립한 평양신학교(장로교)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깊이 있는 신학을 공부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41세가 되던 1923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1938년 일제의 신사 참배 거부운동 혐의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08년 8월 31일에 창립된 ‘국어연구학회’가 1930년 1월 조선어학회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 회원으로 한글연구와 한글사랑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2년 총회 종교 교육부 교사 양성과 과장으로 봉직하면서 서류 일체를 한글로 사용하도록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1934년 총회에서 성경과 찬송가를 한글의 새 맞춤법에 따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한글 보급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는 조선어학회가 펴낸 『큰 사전』 편찬에 기독교 용어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글 사랑에 힘쓴 바 그를 이르러 ‘한글 목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그는 향년 73세의 나이로 소천하였다.
저자

강석찬

강석찬(姜錫璨)목사는1948년생이다.
서울에서태어나
경복중,대구고,경북대학교물리학과2년후,
한신대학,한신대학원에서신학공부를했다.
조부백남(白南)강병주(姜炳周)목사님,
백부소죽(小竹)강신명(姜信明)목사님,
선친만산(晩山)강신정(姜信晶)목사님의대를이어
1979년에목사안수를받아목회하였다.
용산제일교회,서울성남교회에서봉사하고
강남교회전도사,송암교회부목사로,
서부교회,성호교회,경복교회,초동교회를담임하였다.
총회교육원에서교단교재집필과출판을담당하였고,2011년
초동교회사임후,은퇴때까지예따람예배공동체를인도했다.
“새가정”편집위원으로봉사했고,2006년3월부터현재까지
“기독교연합신문”‘연합시론’집필자로기고하고있다.

그동안
『0304,0506,0708,0911초동교회목회기』(생명나무)와
『성경꿰뚫어보기구약,신약』(예따람)의자료집을냈다.

목차

첫걸음,내디디며ㆍ5

01_소백산(小白山),남(南)쪽ㆍ13

02_내매교회ㆍ24

03_영남목사문화재제1호ㆍ28
영남목사문화재제1호ㆍ29

04_만산이쓴백남ㆍ40
백남(白南)강병주(姜炳周)(1882.3.91955.5.30)ㆍ42
가계(家系)ㆍ42;성장(成長)ㆍ43;학업(學業)ㆍ44
목사(牧師)백남ㆍ45;교육자(敎育者)백남ㆍ47;한글과백남ㆍ49
농사개량과백남ㆍ54;백남의인품(人品)ㆍ56
백남의사상(思想)ㆍ59;족보ㆍ63

05_내매교회100년사ㆍ67
내매교회설립ㆍ78
내매교회출신목회자(牧會者)와장로(長老)ㆍ87
목회사역(牧會使役)의길ㆍ90
한글사랑과함께펼친한글보급운동ㆍ91
농사법개량연구와보급ㆍ93
한인간으로서의백남(白南)강병주(姜炳周)ㆍ95
교역자로서마지막삶을살아온백남(白南)강병주(姜炳周)목사ㆍ97

06_백남의목회101
1.강병주목사와내매교회ㆍ103
2.영주교회(현영주제일교회)목회(1915-1922)ㆍ125
3.풍기교회(현성내교회)목회(1923~1932)ㆍ135
3.경안노회독립운동비사개요ㆍ147
4.총회종교교육부교사양성과정목회(1933~1941)ㆍ151
5.경동제일교회목회(1941~1945)ㆍ173

07_백남의설교,글ㆍ187

08_백남에대한논문과글ㆍ235
내매교회와강병주목사이야기ㆍ239
강병주목사의농촌선교운동ㆍ262
영주지역기독교전래및강병주목사의기독교수용과민족운동ㆍ285
코로나19재난속에서새롭게다가오는강병주·강신명ㆍ352

09_잠시,멈추어숨을고르다386
1955년,1965년ㆍ389
한글목사강병주406
할아버지와손자의만남ㆍ409
백남과이극로ㆍ420
小竹의白南기억ㆍ442

10_탈고이후에ㆍ449

11_때의복음ㆍ455
두번째행적을찾아서ㆍ464

출판사 서평

“첫걸음,내디디며”

이책은,나의할아버지,백남강병주목사님의목회일생을찾아,기록한책이다.
시작은아버지,만산강신정목사님의목회일생을기록하려고했다.
1997년11월16일,만산(晩山)강신정목사님이세상떠나셨다.
아버지께서는,목회를시작할때부터세상떠나시기전까지의모든설교,강의,수요성서강해,새벽기도회말씀,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의목회활동,각종모임설교등을노트,원고지,수첩,메모지,그리고16절갱지에남기셨다.전체를정리하기에는수년이걸릴너무나많은흔적(痕迹)이다.
남긴자료를정리하다가‘만산이쓴백남’원고를발견했다.
계획이바뀌었다.할아버지께서먼저라고판단했다.그렇지만내나이76세가되도록첫걸음을내디디지못했다.백남(白南)과만산(晩山)은나에게는태산(泰山)이었다.할아버지의길을찾다가몇번이나산(山)속에서길을잃고는하산하기를반복하게되었다.
도저히제대로그려낼수없는,나의능력이닿지않는일이었다는것을고백할수밖에없었다.들어선산속에서헤어나오지못하고,시간은흘렀다.
“더물러날수없다”라는내면의소리에묵은밀린숙제를풀듯책상머리에앉아,이삿짐속에품고다녔던아버지의자료묶음뭉치를,다시풀기시작했다.
마치옛유물들을발굴하듯남기신글들을풀어가다가,새로운세계에들어가게되었다.
할아버지,백남강병주목사님의세계이다.
할아버지께서어떻게하나님을믿게되었는지,목회자로100여년전에는어떻게목회하셨는지,그행적(行蹟)들을볼수있었는데,그시대가요구하던‘때의복음(福音)’에응답한목회였음을알았다.
이행적(行蹟)들은나의40여년의목회를이끌게한뿌리였다는것을깨달았다.
사도바울이갈라디아서6장17절에서“내가내몸에예수의흔적(痕迹)을지니고있노라”하였던,그흔적(痕迹)이다.
『행적(行蹟)을찾아서』로책의제목을정하고성령께서인도하시는걸음을따르기로했다.할아버지,만드신발자국의흔적(痕迹)을더듬어이어보려고했다.지난(至難)한작업(作業)이지만,첫걸음을내디디고여기까지도달할수있었다.
한국교회에서‘목사3대’라하면부러워하던때가있었다.나는한국신학대학(현한신대학교)에편입했을때,친구들이부러워하던신앙의대물림이었다.동문중에는신앙생활의개척자가많았다.신학도가족의반대라는시련을뚫고시작한경우가적지않았다.나는신앙생활을태중(胎中)에서부터한셈이고,나는태어나면서교회생활은당연한믿음의자리로여겼다.이소중한믿음의유산이귀한것인지몰랐다.교회울타리를벗어나보질않았기에,감사를몰랐다.그런데신학을공부하고,목회를시작하면서비로소조부,백부,선친께서한국교회에서소중한분들이었다는것을알게되었고,믿음을유산으로받은것이얼마나큰은혜인것을깨달았다.
그런데백부,소죽(小竹)강신명(姜信明)목사에대한글과책은많지만,할아버지에관한책은없었다.할아버지에대하여이곳저곳자료를뒤지다보니,한권의책을낼만큼의원고들이쌓였다.
이과정에서귀한분을만나게되었다.내매교회담임목사인윤재현목사이다.교회사를전공한윤재현목사는내매교회를담임하게되면서,내매교회가강(姜)씨집성촌에세워진교회로순교자와많은목회자를배출한한국교회사에서소중한교회인것을알게되었고,그중심에백남강병주목사가자리하고있음을연구하여밝히기시작하였다.2020년11월9일,‘제11회영주역사인물학술대회’를개최하여,백남강병주목사와소죽강신명목사를주제로한임희국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와손산문교수(영남신학교)의학술논문을발표하였다.이분들의논문을통해백남의행적을밝히알게되었다.귀한논문을조부의행적을찾아가는책에실을수있도록허락을받아,감사한마음을밝힌다.
이책,『행적을찾아서』는자료집이라할수있다.흩어져있던자료를모아출판하려다보니,중복된내용이많다.그래도자료가기록되었던시대를엿볼수있겠다는판단으로그냥가감없이실었다.
할아버지백남(白南)강병주(姜炳周)목사의『행적을찾아서』를탈고한후에는,선친만산(晩山)강신정(姜信晶)목사의『행적을찾아서』를출판하려한다.여기에는오래전에원고를부탁하여보내준선친을추모하는목사님들의글들이실리게된다.편저자의게으름때문에옥고를주신분중에는별세하신분도있다.이장식목사,여규식목사,박근원박사,김이곤박사는이책을만나지못하게되었다.죄송스러운마음이다.
할아버지,할머니께서는3남3녀를낳으셨다.신명(信明),신정(信晶),신의(信義),신상(信祥),신희(信羲),신성(信晟)이다.큰아버지막내아들석공(錫珙)과아버지의막내아들편저자석찬(錫璨)이목사의대(代)를이었고,나의둘째형석영(錫瑛)의아들민구(敏求)와,나의아들승구(承求)가목사로4대째목회를이어가게된은혜도있다.

2024년3월4일
홍은동에서죽우(竹友)강석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