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좇을것인가,복음을따를것인가”
어릴때엄마손을잡고부흥회를많이따라다녔습니다.텐트집회,교회연합집회등유명부흥사가온다고하면엄마는빠지지않으셨고,저도늘그옆에있었습니다.강단에서쏟아지는말씀은뜨거웠고,찬양은높았고,사람들은울고또울었습니다.그시절부흥사들에게서자주들었던말이있습니다.
“예수믿고3년안에부자안되면,그건신앙생활을잘못한겁니다.”
그말이이상하다는생각은들지않았습니다.오히려가슴이뜨거워졌습니다.‘그래,열심히믿으면되는구나.우리집도달라지겠구나.’어린마음에그렇게새겨졌습니다.
지금돌아보면그것은가스라이팅이었습니다.복음을복으로바꿔치기한것이었습니다.그런데그말이얼마나깊이박혔는지,저는한동안그말을의심하지않았습니다.
1999년,결혼하고2달뒤에교회를개척했습니다.개척멤버는저와아내,둘뿐이었습니다.열심히전도했습니다.1년만에첫등록교인이생겼습니다.그후조금씩사람들이모였습니다.젊은목사가담임하는작은교회였지만,그래도사람들이왔습니다.빚에쪼들려숨이막히던사람,가정폭력으로매일밤이두렵던사람,사별과이혼으로삶이무너진사람들이하나둘찾아왔습니다.
저는그사람들에게정말공을들였습니다.심방을갔고,밤에전화가와도받았고,함께울었습니다.그래서그랬는지는모르겠지만,그들은조금씩달라졌습니다.믿음이생겼고,은혜를경험했고,삶에다시힘이붙기시작했습니다.
그렇게몇년이흘렀습니다.10년이지나희년의복음을깨닫고나서저는이렇게말하기시작했습니다.
“복음은나혼자잘되는이야기가아닙니다.”
“아나우,곧눌리고가난하고소외된사람들이없는세상,그것이예수님의꿈입니다.”
“그꿈을향해함께시간도나누고,물질도나누고,몸으로섬기는삶을살아봅시다.”
그때부터사람들이하나씩떠나기시작했습니다.어떤분은교회를옮기며이렇게말했습니다.
“목사님,저는이제좀편안한교회에다니고싶어요.”
어떤분은아무말도없이조용히사라졌습니다.그렇게공들이고함께울었던사람들이하나둘자리를비웠습니다.그시간이참아팠습니다.그런데그아픔속에서오히려분명해진것이있습니다.사람들이교회에서무엇을원하는지를알았습니다.사람들은위로를원했습니다.힘을얻고싶었습니다.잘되고싶었습니다.하지만방향이바뀌는것,삶의기준이달라지는것,나눔과섬김으로불편해지는것은원하지않았습니다.복음을원한것이아니라복을원했던것입니다.
코로나팬데믹이지나갔습니다.저는솔직히기대했습니다.
‘이렇게큰충격을겪으면한국교회가조금은달라지지않을까?성장과부흥만을외치던목소리가조금은낮아지지않을까?더불어사는것,약한사람들곁에서는것,이땅에서의정의에대해교회가진지하게고민하지않을까?’
그런데뚜껑을열어보니별로달라지지않았습니다.여전히강단에서는축복의언어가넘쳤습니다.여전히기도제목은내가족의성공,내사업의번창,내자녀의합격이었습니다.영혼구원은말하지만이땅의고통에는침묵했고,죽어서가는천국은말하지만지금여기서시작되어야할하나님나라는잘보이지않았습니다.
답답했습니다.그리고마음을더무겁게만드는장면들이보이기시작했습니다.뜨겁게신앙생활을하는청년들이방향을잃고,그들이잘못된권위에쉽게이용당하는모습이었습니다.그청년들이잘못된것이아닙니다.그들에게열심이없는것이아닙니다.오히려그들은누구보다뜨겁습니다.그런데그열심이향하는방향이복음이아닐때,얼마나위험해질수있는지를보면서이책을써야겠다는마음이더간절해졌습니다.
복음이방향을잃으면,사람도방향을잃습니다.방향없는열심은때로가장위험합니다.그청년들에게복음의방향을제대로가르쳐주지못한우리세대의책임입니다.
저는2012년부터본격적으로청소년사역에뛰어들었습니다.머리를노랗게물들이고아이들속으로들어갔습니다.‘진격의부흥사노랑머리최준식’이라는별명이붙을만큼전국을돌아다니며청소년들을만났습니다.그자리에서저는아이들에게희년의복음을전했습니다.
자유와해방의하나님나라,
아나우가없는세상,
복음이진로가되는삶.
아이들은받아들였습니다.눈빛이달라졌습니다.예배가끝나고찾아와서이렇게묻는아이들이있었습니다.
“목사님,저도그런삶을살수있을까요?”
“목사님,저는원래축구선수가되고싶었는데부상을입어더이상축구를할수없어요.뭘하면서살아야될지막막했는데,희년의복음을듣고어떻게살아야될지방향을잡게되었어요.”
그런데시간이지나면서보이는것이있었습니다.아이들이아무리복음을받아도,집에돌아가면부모님의언어속에서살아야했습니다.학교에서는선생님의가치관안에서자랐습니다.교회에서도결국어른들이보여주는신앙의모습을보며자랐습니다.그러다보니아이들이혼자방향을바꾸는데는한계가있었습니다.
그때깨달았습니다.다음세대가신앙을회복하려면기성세대가먼저복음을다시만나야한다는것을.부모가,교사가,목회자가총체적인복음,전인적인복음에눈을떠야한다는것을…….이책은그생각에서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믿는복음이우리를어디로데려가고있는지한번쯤은점검해봐야하지않을까요?요즘복음은참친절합니다.힘들면위로해주고,불안하면다독여주고,잘될거라고말해줍니다.언제부턴가복음을‘잘되는방법’으로소비하기시작했습니다.그런데가만히보니복음이위로는해주는데,방향은바꾸지않는것같습니다.
“예수님을믿으면복받는다.”
“기도하면만사형통한다.”
“헌신하면큰보상을받는다.”
이런말들이언제부턴가너무익숙해졌습니다.하지만성경을다시펼쳐보니예수님은그렇게말씀하지않으셨습니다.‘잘될것이다’보다먼저하신말씀은이것이었습니다.
“나를따르라.”
따름은보장이아니라결단입니다.따름은보상이아니라방향입니다.복음은나를성공시키는기술이아니라나를다시세우는기준입니다.그래서묻고싶습니다.
우리는지금복을좇고있습니까?
아니면복음을따르고있습니까?
만약복음이나를잘먹고잘살게만드는장치라면,우리는이미길을잘못든것입니다.
이책은복을약속하지않습니다.대신방향을말하려합니다.예수님을믿는다는것이도대체어디로가는일인지,함께다시묻고싶습니다.그질문은다음세대를위한질문이기도하지만,먼저는지금이글을읽는우리자신을향한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