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계절에 만나요

다른 계절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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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경숙

저자:신경숙
당진출생.안양에서성장.2002년『지구문학』으로등단.시집『비처럼내리고싶다』
『남자의방』이있다.제17회서울시인상수상.2014년수원문화재단창작지원금수혜.
현재<시나모>동인.<용인문학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1부·깨진대문의안쪽

달이야위어간다
측도測島
10월의햇살,마른씨앗처럼쏟아지는
꽃차를마시는저녁,달의배꼽을만진다
뒤늦은
바다부채길
억새날다
얼굴화석
잠이오지않는밤에
축제는사라지지않는다
해가지는곳의뒤축은무겁다
자막대기로깨진이를재는시간
다른계절에만나요

2부·젖은땅을어루만지는일

시詩를만들수없는
소문을봉인하다
다락방에서
뒤축이무너지다
달항아리
경로를이탈했다
11월,서둘러저녁을건너는
기억을걷는시간
풀치*
목격자
당신을버리지않아요
봄냄새를열어본다
이제는,꼬리뼈의흔적만
부드러워지다
뿌리를옮기던날

3부·떠나보내지않았으나

사이에서길을잃다
슬픔을읽었다
생을박음질하는4월
여기산麗妓山의아침
갯벌계곡

길·3
길이환하다
나는가끔두루마기를빨고싶다
으아리꽃
크로키
환절기

4부·닦아내도얼룩지는기억

나무로자라는물
불통의사내
기억의오류
아버지의내력
빈집
날아오르다
봄냄새를열어본다
우산을접고돌아온다던
다시,당진
바람의모서리지나간자리
또다른계절의꿈/해설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시를만드는작업은잠수潛水다.
수영을배운적없는데수면아래에서허우적거리는일이다.
일상의껍질로부터나를찾아가는여정이다.
비우고덜어내고올해빈집을또한채사들인다.

2024년오월의끝날에
신경숙

책속에서

<달이야위어간다>

등뼈를구부린그믐달이그물에걸려있었다

가장가벼운몸으로,썩은나무의등걸같은
척추의계곡을지나한걸음도걸을수없는
너무깊은곳에뿌리를내린210호병실침상
그물을뚫고어디가출구인지알수없는
닳아버린달의옆구리를만진다

어둠속에서죽은아버지가살아나올것같은
삼길포에빠진비린달을건진다
돌아오지않는거라고물을버리지못해설마,
엄마는그믐밤마다정화수를떠놓았다
갈퀴같은굽은손으로그물을던진다
그물에걸리는것은유채꽃뿐

빈껍데기속을들락거리는아홉형제를머리에이고
후들거리는다리를끌어솔잎을긁어파는맏딸
어린동생을살리려고부뚜막에올라가죽을끓이는
이젠요양원침상에깊은뿌리를내렸다

달이야위어가는밤이면
어머니는그물을던지러침상을내려와
삼길포에빠진달을건지러간다

뒤돌아보니어머니발자국마다내가달의옆구리
를만지고있다

<바람의모서리지나간자리>

실핏줄을팽팽히당겨본다지워야할무늬가많은사
내의무릎일으켜세우듯안개비내리는새벽,울음삼
키는바람의모서리에눈이찔리고강이되어흐른다

어떤이는지문을남기고집을세운다누군가는흐
린발자국에먹물을엎지른다조심조심굳은관절세
워보지만여러날접어둔책갈피를화인처럼들추어
내는아침,혹시나,혹시나역시,모세혈관이길을잃
고붉은길을만든다

들숨이꽈리를부풀리는초저녁,날숨의꼬리경계
의철조망을넘지못하고바람의흉터를남긴다한
번더눈을찔린다검색어순위에고정된눈동자인
공눈물을넣어야깜빡거린다

졸혼과이혼사이저울질하며경계의너머를생각
해본다새살이차오르기시작하고,흐리게흉터를
지우며모서리각을낮추는,눈안에갇힌사내접은
무릎세우며붉은길을절뚝거리며출구를찾는다

<봄냄새를열어본다>

벌레들이꿈틀거리기시작하자
천둥소리에놀라부드러워지는흙
식목일앞서삽날을세우고
젖은땅을뒤엎는다

북동풍이동쪽으로밀어놓은봄,
계절을앞서걸어놓은옷을정리하는사이,
속살을감싸고원추리손을내민다

산비탈돌틈을빠져나온바람
냄새가가까워지며무너져내린다
순해진열린땅을맨발로걷는봄

온몸을밀어계절을건너온벌레의주름,
무너져내리는속살처럼생의절개지,
굽은등이잊혀진봄에서눈발이날린다
폰갤러리에저장된사진처럼
살포시밀어보는봄
젖은몸을뒤집어흙냄새를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