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오기 : 유희경의 9월 - 시의적절 9

나와 오기 : 유희경의 9월 - 시의적절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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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난다의 시의적절, 그 아홉번째 이야기!
시인 유희경이 매일매일 그러모은
9월의, 9월에 의한, 9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제철 음식 대신 제철 책, 하루 한 편의 글이 모여 1년 365일의 읽을거리가 되는 ‘시의적절’ 시리즈 9월 주자는 유희경 시인이다. 시를 쓰고 시집을 알리며 언제나 시의 곁에서 보내는 하루하루, 시인의 일상을 담았다. 『나와 오기』는 그렇게 시처럼, 어쩌면 삶처럼 이따금 가까이, 더러는 멀찍이 ‘함께하는’ 나와 ‘오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9월 한 달의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에피소드 있으니 꼭 한 편의 소설처럼도 읽히건대, 에세이와 시뿐만 아니라 편지, 인터뷰, 희곡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이 계절의 일상을 불러낸다. 그 어디에나 오기가 있고 그 어디에도 오기는 머물지 않음에, 그의 흔적을 따라가는 우리로서도 ‘오기’는 누구일까, 어떤 아스라함과 그리움, 그리하여 반가움으로 오기를 생각하게 한다. 9월 한 달 따라 읽다보면 가을이 성큼일 테다. 가을을, 가을의 오기를,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며. 저마다의 오기, 누구나의 오기, 세상 모든 오기를 기다리며.

어느덧 9월이다. 나는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기가 오지 않는다 해서 가을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오기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나의 가을은 달라진다. 오기를 만나기 전의 9월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전에도 있었겠지. 오기와 같은 오기가. 그리고 누구에게나 오기가, 일상을 기꺼이 가을로 바꾸어내는 존재가, 언어가, 감각이 있는 것이다. 없다면 부디 이 책이, 이 책의 나와 오기가 당신에게 그러하기를 바란다. 감히.
─본문 중에서
저자

유희경

저자:유희경
1980년서울에서태어났다.서울예술대학에서문예창작을,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극작을전공했다.조선일보신춘문예를통해시인이되었다.시집『오늘아침단어』『당신의자리-나무로자라는방법』『우리에게잠시신이었던』『이다음봄에우리는』『겨울밤토끼걱정』과산문집『반짝이는밤의낱말들』『세상어딘가에하나쯤』『사진과시』가있다.현대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작가의말가을선언9

9월1일시대화15
9월2일에세이가방19
9월3일시대화25
9월4일에세이선에대하여31
9월5일에세이좋음과싫음37
9월6일에세이우산45
9월7일에세이오기이야기53
9월8일에세이아기고양이의울음소리63
9월9일에세이야구장과롤러코스터73
9월10일에세이한밤중에찬물마시기81
9월11일에세이위통과커피89
9월12일인터뷰오기와의인터뷰195
9월13일시대화105
9월14일에세이오뚜기삼분카레!109
9월15일편지지난겨울,오기에게보낸편지117
9월16일에세이오기와사진125
9월17일희곡오기의희곡137
9월18일시대화153
9월19일에세이오기와시161
9월20일인터뷰오기와의인터뷰2169
9월21일편지오기의답장177
9월22일에세이오기와밤에걷기185
9월23일시대화195
9월24일에세이텔레비전이야기199
9월25일에세이오기만아는이야기207
9월26일에세이오기의혼자217
9월27일시오기의시227
9월28일에세이오기에게만하는이야기235
9월29일에세이오기의좋아함241
9월30일시대화249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나는젖은커피잔을엎어두고
젖은손을닦으려하는데
엎어둔건커피잔이아니었고
곤란하게도
젖은내손이었다
커피잔대신손을엎어두었다고
곤란할이유는또무엇인가
젖은내손은옛일과무관하고
네가꺼내읽을것도아니다
성립하지않는변명처럼
오늘은볕이좋다아직
네가여기있는기분
너는책에푹빠져있고
손은금방마를것이며
네가두고간커피잔은
어디있을까나는
체념한채우두커니서있었다
_9월1일「대화」,17쪽

오기는천천히계단을밟아서점으로올라온다.무척독특한리듬이라,나는그가첫계단을밟는즉시그가왔음을알수있다.내가반가움을애써감추며무심한척표정을가장하는동안그는올라온다.우리는가볍게인사를나눈다.그리고,예열하는엔진처럼잠시아무런대화도나누지않는다.오기가있는동안,서점의빈책상하나는오로지오기의것이다.오기는그자리에앉아무언가를쓴다.오기는컴퓨터나키보드로글을쓰지않는다.아무펜,아무종이나잡고쓴다.쓴것을아무렇게나접어주머니에집어넣는다.다시는꺼내보지않을사람처럼.어쩌면정말오기는그렇게함으로써자신이쓴글과작별하는지도모른다.그가쓰는것은여전히희곡일거라고나는생각한다.그희곡을그는어떻게하려는것일까.알수없다.이윽고그는일어나내게로온다.와서말을건다.그렇게또한번의대화가시작된다.
_9월7일「오기이야기」,58~59쪽

하긴커피.그러면얼마나많은기억이넘실대는가.커피한잔혹은두잔을놓고쌓아왔던모든사연,기다렸고만났고웃고떠들었으며이따금엎드려울었던,너무나진부하지만그만큼일상적인이야기들이마치성냥개비로만든탑처럼와르르무너지고차근차근다시쌓여올라간다.그리고그이야기들은언젠가의자판기앞쌀쌀맞은그애처럼느닷없이떠오르며아픈것도쓰린것도아니고하여간설명하기어렵게아슬아슬한감각을,차마통증이라이를수없는감각을불러올것이다.오기,커피를끊는건그리쉬운일이아니란다.그러면서나는내자리로돌아와인터넷창을띄워‘위통에도마실수있는커피’라든가‘위통에어울리는커피’따위의문장을검색해보는것이다.물론세상에그런커피는없다.어쩔수없이나는며칠커피를단절한채보내야겠지.그로부터며칠뒤명치의통증이가시고나면나는오랜만에자판기에서커피를뽑아볼생각이다.마침근처에구닥다리자판기가한대있다.내가커피를뽑으려할적에혹시누가동전을넣어준다면,나는반환레버를돌리지않고한껏그이를사랑해줄마음이다.
_9월11일「위통과커피」,93~94쪽

나는새로이사람을만나알고싶어지면,그런경우는거의없지만말이야,그의언덕을상상해봐.얼마나높을지,어떤재질의언덕일지,그곳의저녁은어떤지.나는너의언덕도상상해본적있어.너는알면알수록가파르고양옆에숲을키우고있는밤의언덕을가진사람이야.무섭겠지.하지만너는용감해.거침없이달리고있어.그래서나는너를존경해.너를알고싶고너의언덕을알고싶어져.물론언덕은보여줄수있는게아니야,드러나는거지.그러니너도나의언덕을상상해봤으면좋겠어.한편나는지금내가살고있는나의삶을,어린시절어떤저녁에엄마의심부름으로두부를사기위해서내달리던언덕에서의꿈이아닐까의심하기도해.나는내게서마치떨어져나갈듯길게늘어진나의그림자를봐.언덕은붉게달아올랐고나의그림자는까맣고나는,달려가가게앞까지.두부앞에다다를때까지.
_9월12일「오기와의인터뷰」,102~103쪽

조그마한무덤은
나무와수풀에가려
보이지않고
보라색꽃은사방에피어있고
우듬지로돌아오는
바람과새들
새들의울음은오지않고
비가내릴모양이네

내일다시
비석을보러가야겠어
오솔길을기억해야지

의자에앉아서
그러면방은넓어지고
조금의기쁨과조금의슬픔
나는듣고있다
_9월30일「대화」,252~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