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햇살은 동서남북을 따로 가르지 않고 저의 온몸에 쏟아집니다. 머리와 얼굴과 손에 뜨거움이 파고듭니다. 뜨거움이 물체처럼 제 살갗에 질량을 가지고 내려앉고 쌓입니다. 마치 눈처럼. 그러나 저는 이 뜨거움, 강렬함이 그립고 반갑습니다. 양양의 볕이니까요. _「지경리 바다엔 갯가가 없었습니다」 중에서
1.
출판사 난다에서 새로운 시리즈 방방곡꼭을 론칭합니다. 방방곡곡. 발음 [방방곡꼭]. “방방(坊坊) 뛰고 곡곡(曲曲) 걸으며 꼭꼭(ㆍ ㆍ) 눌러쓴 난다의 우리 도시 이야기.”(시인 오은) 방방곡꼭이 찾아간 첫번째 우리 도시는 소설가 이경자의 양양입니다. 드넓기만 한 동쪽 바다를 품고 반대편 서쪽으론 바닥을 알 수 없는 태백산맥이 가로질러놓인 땅, 설악산 어딘가로부터 떨어져나왔을 바위들이 구르고 굴러 둥근 자갈이 되고, 몽돌이 되고 바다의 모래가 되는 아득한 세월을 품은 곳, 서울보다 땅이 더 크지만 한국전쟁 이후 삼만 명 이상 살아본 적 없는 곳, 한 세기가 지나지 않은 우리 역사의 상처가 묻혀 있는 곳. 새나 짐승이나 벌레는 다닐 수 있어도 사람은 다닐 수 없는 경계, 삼팔선으로 생긴 슬픈 사연들을 지닌 양양. 그곳에서 나고 자란, 양양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왔고, 서울 사는 내내 타향살이의 서러움 같은 감정으로 고향 양양을 그리워한 이경자.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햇수로 몇 년을 양양과 집중적으로 살았습니다. 깊고 높고 아득하고 아름다운 양양의 원형(原形)을 문자로 형상화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느끼고 만지고 그리워하고 속삭이며 사랑과 몰아(沒我)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책이 양양의 백과사전은 될 수 없으되 이곳을 고향으로 둔 소녀가 소설가로 돌아와 고향에 바치는 극진한 제물(祭物)임은 분명하다고, 이경자는 고백합니다.
2.
성내리 11번지, 그곳에서 감리교회의 유치원에 다니고 구교리의 초등학교를 다니고 서문리의 여자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남설악으로부터 훑어 내리는 매서운 바람이 그의 헐벗은 사춘기를 어루만지고 때론 할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현산공원에 올라가 소설가의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문학이 무엇인지 그 의미도 모르는 채, 왜 문학을 하려 하는지 스스로도 대답할 수 없었으면서 무턱대로 원고지에 글을 썼다고요.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고 말해도 이해받거나 공감될 것 같지 않아서. 그러나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숨쉴 수 없는 절박감이 있어서 마구 썼다고요. 그렇게 이경자는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여성주의 관점으로 쓴 연작소설 『절반의 실패』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양양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사랑과 상처』는 양양의 지방 언어를 살려내려는 시도를 담고 있고요. 1953년 양양을 어린 소녀들의 눈으로 조명한 장편소설 『순이』로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명한 문학상을 여럿 받았지만 서울에 사는 양양 사람들의 모임인 재경양양군민회에서 주는 ‘자랑스런 양양군민상’ 1회 수상자인 걸 진짜 ‘자랑스러워하는’ 그입니다.
3.
책에는 양양에 대한 글이 서른 편 실려 있습니다. 방에 양양군 지도와 각 면의 지도를 붙여두고 땅을 대략 여섯 토막으로 구분지어 돌아다니며 공부를 시작한 결과물입니다. 한 곳을 한 번 가보고는 글을 쓸 수 없어 마음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날 때까지 여러 번 돌아다녀야 했고 그때마다 고향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첫번째로는 동해안을 낀 해파랑길입니다. 강릉시 주문진과 경계인 지경리에서부터 속초시와 경계인 물치의 쌍천교까지. 그 사이사이에 있는 어촌과 서핑으로 유명해진 해안 등이지요. 그다음은 태백산맥이 지나는 등허리 부분입니다. 구룡령 정상에서부터 송천까지. 이제는 사람들이 비껴가는 길이 되었지만 자꾸자꾸 걷고 싶어지는 ‘옛길’과 그곳의 구석기시대의 유적을 돌아봅니다. 다음은 인제군과의 경계인 오색령입니다. 흘림골에서 주전길로 이어지는 오색의 주전골은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축복, 그야말로 신성이 느껴지는 절경입니다. 그러고는 ‘산다는 일’의 근본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들, 낙산사와 영혈사와 진전사를 돌아봅니다. 이번은 읍내의 외곽으로 안내합니다. 소나무가 자기 생긴 대로 자라는 모노골, 연어와 은어, 황어들이 바다로부터 힘차게 돌아오는 남대천, 구탄봉. 남대천의 상류, 세 개의 지천이 하나로 만나는 서문리에서부터 저 아래 동해와 만나는 한개목까지. 그리고 양양의 오랜 역사가 깃든 놓칠 수 없는 오일장 풍경까지. “고향이라고 말하면 눈물이 나던 시절이 있었”(8쪽)던, 한 번도 고향 양양을 잊은 적이 없던 사람. 서울에서 양양으로 가는 길, 강원도에 이르는 경계에 오면 자기도 모르게 ‘강원도다!’ 소리치곤 했던 그. 누가 양양을 이토록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루도 같은 표정을 짓지 않고 하루도 같은 빛을 가지지 않으며 하루도 같은 향기를 뿜지 않는 곳, 양양. 글을 마무리하며 작가는 말합니다. 공간과 시간은 비어 보이지만 마음을 열면 자연 속에 온통 ‘인연’들이 바람처럼 흐른다고요. 그걸 느끼는 것만으로 여행은 성숙의 학교라고요. 양양에서 여러분의 성숙을 경험하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두 손 모아 바라봅니다. 맨발로 걷기 좋은 연한 흙빛이기도 흘림골의 가을 단풍 같기도 한 빛깔의 표지를 펼치면 양양의 시원한 바닷빛으로 물든 본문이 나옵니다. 양양의 자연과 역사와 사람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함께 방방곡꼭 걸어보아요.
1.
출판사 난다에서 새로운 시리즈 방방곡꼭을 론칭합니다. 방방곡곡. 발음 [방방곡꼭]. “방방(坊坊) 뛰고 곡곡(曲曲) 걸으며 꼭꼭(ㆍ ㆍ) 눌러쓴 난다의 우리 도시 이야기.”(시인 오은) 방방곡꼭이 찾아간 첫번째 우리 도시는 소설가 이경자의 양양입니다. 드넓기만 한 동쪽 바다를 품고 반대편 서쪽으론 바닥을 알 수 없는 태백산맥이 가로질러놓인 땅, 설악산 어딘가로부터 떨어져나왔을 바위들이 구르고 굴러 둥근 자갈이 되고, 몽돌이 되고 바다의 모래가 되는 아득한 세월을 품은 곳, 서울보다 땅이 더 크지만 한국전쟁 이후 삼만 명 이상 살아본 적 없는 곳, 한 세기가 지나지 않은 우리 역사의 상처가 묻혀 있는 곳. 새나 짐승이나 벌레는 다닐 수 있어도 사람은 다닐 수 없는 경계, 삼팔선으로 생긴 슬픈 사연들을 지닌 양양. 그곳에서 나고 자란, 양양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왔고, 서울 사는 내내 타향살이의 서러움 같은 감정으로 고향 양양을 그리워한 이경자.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햇수로 몇 년을 양양과 집중적으로 살았습니다. 깊고 높고 아득하고 아름다운 양양의 원형(原形)을 문자로 형상화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느끼고 만지고 그리워하고 속삭이며 사랑과 몰아(沒我)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책이 양양의 백과사전은 될 수 없으되 이곳을 고향으로 둔 소녀가 소설가로 돌아와 고향에 바치는 극진한 제물(祭物)임은 분명하다고, 이경자는 고백합니다.
2.
성내리 11번지, 그곳에서 감리교회의 유치원에 다니고 구교리의 초등학교를 다니고 서문리의 여자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남설악으로부터 훑어 내리는 매서운 바람이 그의 헐벗은 사춘기를 어루만지고 때론 할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현산공원에 올라가 소설가의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문학이 무엇인지 그 의미도 모르는 채, 왜 문학을 하려 하는지 스스로도 대답할 수 없었으면서 무턱대로 원고지에 글을 썼다고요.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고 말해도 이해받거나 공감될 것 같지 않아서. 그러나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숨쉴 수 없는 절박감이 있어서 마구 썼다고요. 그렇게 이경자는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여성주의 관점으로 쓴 연작소설 『절반의 실패』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양양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사랑과 상처』는 양양의 지방 언어를 살려내려는 시도를 담고 있고요. 1953년 양양을 어린 소녀들의 눈으로 조명한 장편소설 『순이』로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명한 문학상을 여럿 받았지만 서울에 사는 양양 사람들의 모임인 재경양양군민회에서 주는 ‘자랑스런 양양군민상’ 1회 수상자인 걸 진짜 ‘자랑스러워하는’ 그입니다.
3.
책에는 양양에 대한 글이 서른 편 실려 있습니다. 방에 양양군 지도와 각 면의 지도를 붙여두고 땅을 대략 여섯 토막으로 구분지어 돌아다니며 공부를 시작한 결과물입니다. 한 곳을 한 번 가보고는 글을 쓸 수 없어 마음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날 때까지 여러 번 돌아다녀야 했고 그때마다 고향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첫번째로는 동해안을 낀 해파랑길입니다. 강릉시 주문진과 경계인 지경리에서부터 속초시와 경계인 물치의 쌍천교까지. 그 사이사이에 있는 어촌과 서핑으로 유명해진 해안 등이지요. 그다음은 태백산맥이 지나는 등허리 부분입니다. 구룡령 정상에서부터 송천까지. 이제는 사람들이 비껴가는 길이 되었지만 자꾸자꾸 걷고 싶어지는 ‘옛길’과 그곳의 구석기시대의 유적을 돌아봅니다. 다음은 인제군과의 경계인 오색령입니다. 흘림골에서 주전길로 이어지는 오색의 주전골은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축복, 그야말로 신성이 느껴지는 절경입니다. 그러고는 ‘산다는 일’의 근본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들, 낙산사와 영혈사와 진전사를 돌아봅니다. 이번은 읍내의 외곽으로 안내합니다. 소나무가 자기 생긴 대로 자라는 모노골, 연어와 은어, 황어들이 바다로부터 힘차게 돌아오는 남대천, 구탄봉. 남대천의 상류, 세 개의 지천이 하나로 만나는 서문리에서부터 저 아래 동해와 만나는 한개목까지. 그리고 양양의 오랜 역사가 깃든 놓칠 수 없는 오일장 풍경까지. “고향이라고 말하면 눈물이 나던 시절이 있었”(8쪽)던, 한 번도 고향 양양을 잊은 적이 없던 사람. 서울에서 양양으로 가는 길, 강원도에 이르는 경계에 오면 자기도 모르게 ‘강원도다!’ 소리치곤 했던 그. 누가 양양을 이토록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루도 같은 표정을 짓지 않고 하루도 같은 빛을 가지지 않으며 하루도 같은 향기를 뿜지 않는 곳, 양양. 글을 마무리하며 작가는 말합니다. 공간과 시간은 비어 보이지만 마음을 열면 자연 속에 온통 ‘인연’들이 바람처럼 흐른다고요. 그걸 느끼는 것만으로 여행은 성숙의 학교라고요. 양양에서 여러분의 성숙을 경험하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두 손 모아 바라봅니다. 맨발로 걷기 좋은 연한 흙빛이기도 흘림골의 가을 단풍 같기도 한 빛깔의 표지를 펼치면 양양의 시원한 바닷빛으로 물든 본문이 나옵니다. 양양의 자연과 역사와 사람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함께 방방곡꼭 걸어보아요.
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 - 방방곡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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