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 - 모호 5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 - 모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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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세기 프랑스시를 대표하는 시인 필리프 자코테
자연에 깃든 아름다움을 섬세하고 절제된 언어로 그리는 시적 산문
필리프 자코테는 20세기 프랑스 시인 중 가장 많이 연구되고 읽히는 시인이다.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에서 그는 시와 산문의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문학적 풍경 곳곳을 살핀다. 자코테의 글은 자연과의 관계라는 주제를 주로 다루는데,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느끼는 기쁨과 서정을 그리면서도 자신의 언어가 무매개적인, 즉각적인 자연 혹은 사물을 가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운다. 사물을 대체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를 “거의” 현현할 뿐 문턱에서 멈추는 “절제와 묵시의 미학”, 시인은 이를 통해 사라짐이 빛을 비추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저자

필리프자코테

저자:필리프자코
시인이자번역가.1925년스위스에서태어나1950년프랑스로귀화했다.스위스로잔대학교에서문학을공부했으며,화가인아내와함께프랑스남동부드롬지방의그리냥에정착했다.그의시에는이지방의풍경이많이담겨있다.횔덜린,릴케,만델스탐,노발리스,토마스만,웅가레티등의작품을번역했으며프랑시스퐁주,장폴랑,이브본푸아,자크뒤팽등여러작가들과교유했다.1953년첫시집『올빼미L'Effraie』를발표한이후,다수의시와산문,평론을집필했다.생전에그의작품선집이갈리마르출판사의‘플레야드’총서로기획,출간되었다.2021년그리냥자택에서95세의나이에작고했다.

역자:류재
고려대학교불어불문학과를졸업하고파리소르본누벨대학에서파스칼키냐르연구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고려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통번역대학원,철학아카데미,대안연구공동체등에서프랑스문학및프랑스역사와문화,번역학을강의하고있다.옮긴책으로파스칼키냐르의『심연들』『세상의모든아침』『성적인밤』,클로드레비스트로스의『달의이면』『오늘날의토테미즘』『레비스트로스의인류학강의』『보다듣다읽다』,오노레드발자크의『공무원생리학』『기자생리학』,모리스블랑쇼의『우정』등이있다.

목차

부재하는형상들이있는풍경─9
문턱에서─37
숲과밀밭─41
튀르키예멧비둘기─49
못,갈대,거품─53
보이지않는새들─67
5월의풀밭─75
뱀,산문─79
저녁─91
같은장소,다른순간─97
두빛─101
“꽃들은아름답기만해도……”─107
“상들이그토록단순하고,그토록성스러워……”─127
잠시갠하늘─147
옮긴이의말─165

출판사 서평

자코테의글은자연이라는주제를전면적으로다룬다.양차세계대전이후많은유럽작가들이전쟁의참혹함을그리며인간조건에대해회의했던것을고려했을때,1925년에태어나전쟁직후본격적으로작품활동을시작한시인이주로자연을그렸다는사실은다소이상하게느껴질수있다.그러나자코테에게자연의‘풍경들’은현실로부터도피하기위한피난처,혹은현실을가리기위한공상적인공간이아니었다.그것은인간의고통과비참함만큼이나실재하는것일뿐만아니라그들삶의근본적인조건이었다.그렇기에20세기를관통한시인에게자연은‘단지아름다운’공간이상의것이었으며인간성을회복하기위한공간이었다.『부재하는형상들이있는풍경』은다음과같은문장으로시작한다.

수년전부터,나는내체류지이기도했던이풍경들속으로부단히되돌아왔다.나는사람들이내가세상을피해,아니고통을피해이런피난처를찾는다고비난할까봐두렵다.인간들과그들의(기쁨보다훨씬눈에잘보이고,집요한)아픔이내눈에그렇게잘들어오지않는다고할까봐두렵다.그렇지만,이글을잘읽어보면,이러한비난이거의다반박됨을보게될것이다.왜냐하면이글은(비록그파편에불과할지라도)실재만을,인간이라면다포착할수있는것(마을속으로들어가거나,길을우회하거나,지붕너머를보거나)만을말하기때문이다.적어도인간에게인간의비참함을그대로보여주는것만큼은유용할지모른다.비참함을벗어날출구가없다고설득하는것보다,아니면거기서눈을돌려비현실적인것에만현혹되게하는것(신문이나최근의많은책이바로이상반된유혹,그러나똑같이위험한유혹사이에서흔들리고있다)보다차라리이게훨씬나을지모른다.(9~10쪽)

생생한자연앞에서자코테는가능한가장정확한표현을찾는다.자연의아름다움앞에서느끼는기쁨과서정을감동적으로그리면서도그것이있는그대로의자연을가리지않도록노력한다.이러한노력덕에자코테는대상을자신의감정을표현하기위한수단으로전락시키지않는동시에과도한묘사에탐닉하지도않으며정확한균형을통해자신만의미학을완성한다.
요컨대실재하는자연대상을포착한자코테는그것을글로써이미지화하는동시에그결과로서이미지자체에대해서는경계하는태도를보인다.이는다음과같은문장으로드러난다.

상은실재를감춘다.시선을흩어지게한다.(68쪽)

단어들은그것을포착하지못한다.도리어거기서멀어지거나그것을변질시킨다.상들은때론벽의한면만을밝게비춘채나머지를어둡게놔두기도한다.(71쪽)

즉,실재하는대상에비교했을때이미지는불완전하고불충분하다.“사실에가까스로부합”하는이미지는대상을대체할수없다.이미지는오직살아있는대상에다가가는,다가가게해주는한에서만존재한다.
그결과자코테의글에는직전의묘사를취소하고수정하는표현이자주나타난다.부지불식간에떠오른이미지를바로글로옮기지않으려는시인의신중한태도도쉽게찾아볼수있다.“절제와묵시의미학”으로불리는이러한접근을통해시인은살아숨쉬는대상에고스란히빛을비춘다.그의글은언제나‘거의다다른’상태에머물뿐사물자체를대체하지않고우리를자연의아름다움에이르는문턱까지안내한다.

『부재하는형상들이있는풍경』은그제목부터화두를던진다.무엇이부재하는가?부재하는것으로이루어진풍경은어떻게존재하는가?
표제작「부재하는형상들이있는풍경」은이러한질문에대한답이자자코테스스로가자신의시창작의과정을그토대에서부터되짚은시적산문,혹은산문으로쓰인메타시이다.시인은우선겨울풍경을환기한다.시인이본겨울풍경은모든화려한외양(꽃,초록등)을벗고“잿빛과음영으로덮여”있다.그것은곧“은밀함”을,“죽음”을상기시킨다.종국에이풍경은“두터운과거”“짙은어둠,기억에도없는아득한옛날”을환기한다.즉,겨울풍경에부재하는것들은과거를불러일으키는상관물로전환된다.

이때시인은그과거의요체로서‘천국’이란단어를떠올린다.시인은이‘천국’이기독교적개념과는상관없는것임을밝힌다.그는이인상을“고양,완벽,빛”과같은느낌을자아내는것,더나아가“차분해지고,마음이놓이고,사라질지모른다는불안감이,혹은살아봤자헛것이라는불안감이”덜해지는시공간과연결짓는다.즉,많은것이부재하는풍경은도리어“태곳적의신성한숨결”을느낄수있는안정적이며기원적인공간으로인식된다.

‘천국’을환기하며기독교적개념으로의환원을거부했듯자코테는이때줄곧어떠한종교나도덕체계로자신의인상을제한하여해석하는것을거부한다.이는일차적으로이미지(관념)로실재하는대상을대체하길거부하는그의미학에서비롯된것이지만다른한편으로는그의현대에대한인식에서비롯된것이기도하다.즉,그에게현대는기원을느낄수있는신성이존재한다는객관적인“신적표식”이더이상존재하지않는시대,탈종교화된시대이기때문이다.그런데시인으로서자코테에게이러한부재와단절은도리어시적인가능성으로탈바꿈하다.

그렇다면이번에는내차례가되어그것을거둬들이고,새롭게다시눈에보이도록해볼수있을것이다.아마도신성이그곳에서그토록확고부동하게,순수하게하지만소리도없이,번득이는빛도없이,증거도없이,그저흩어진것들로말했다는것을입증할만한신적표식이더이상없기때문이지않을까.(33쪽)

시인에게많은것이부재하는겨울풍경은어렴풋하게나마기원적공간으로인식된다.하지만그러한인식을‘정당화할’신적표식이이시대에는존재하지않는다.그렇기에시인은자신이기적적으로감지할수있었던,하지만너무나까마득하여존재한다고말하기어려운형상들을자신의언어로지금이곳에불러들일수있을것이다.그렇게시인의언어를통해이형상들은비로소‘존재하게된다’.자코테에게시는단순히기원에대한경험을담은사후기록이아니라그기원을존재할수있게하는능동적이고동시적인창조동인으로작동한다.형상이부재하는풍경은시를통해부재하는형상들이있는풍경이된다.

『부재하는형상들이있는풍경』은다양한성격의시적산문으로구성되어있다.「문턱에서」「튀르키예멧비둘기」같은작품은그자체로산문시적인성격을보이는가하면표제작을포함하여「못,갈대,거품」같은작품은시가탄생하게되는과정을추적하기에논증적인성격을지니고있다(전자는“시의싹”,후자는“시-담론poeme-discours”으로불리기도한다.이때discours은담론이라는뜻을가지기이전에어원적으로‘종잡을수없이흩어지는말’을뜻한다는점에서선형적이지않고다양한방향으로뻗어나가는자코테의문체를잘반영한표현으로볼수있다.이문체는다시‘빛의시인’으로불리는자코테가포착하고자하는빛의성격을반영한것이라할수있을것이다─“그높이에서우리에게도달할빛은잠시갠빛,흩어져이리저리일렁이는빛,어쩌다드리운섬광같은빛이지,우리가꿈꾸는지속성을띤빛이아니다.”(162쪽))

시를직접적으로다루는산문이외에자코테는렘프란트와클로드로랭의그림을비교하며분석하거나(「두빛」),독일의대표적인두시인횔덜린과릴케에대해이야기한다(「“상들이그토록단순하고,그토록성스러워……”」「잠시갠하늘」).이는비평가와번역가로서의자코테의모습을반영한것으로특히자코테는횔덜린의프랑스어플레야드전집출간에역자로서,최종편집책임자로서참여하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