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말고는 뛰지 말자

사랑 말고는 뛰지 말자

$15.00
Description
2025년 난다의 시의적절, 그 세번째 이야기!
시인 김용택이 매일매일 그러모은
3월의, 3월에 의한, 3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열두 시인의 열두 달 릴레이. 2024년 매월 매일 하나의 이름으로, 365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로 꼭 채워온 시의적절 시리즈 2025년 3월의 주인공은 김용택 시인이다. 1월이 가고 2월이 가고 이제 우리 나이 일흔여덟 살의 3월로 돌아온 김용택. 전북 임실의 진메마을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그곳에 살며 섬진강을 걷는 그다. 시인은 꽃들을 따라다니며 작은 생명들 곁에 엎드려 시를 쓴다. 죽은 가지는 부러뜨리고 마른 풀은 쓰러뜨리는 차고 힘찬 바람이 부는 3월. 잡목 숲 실가지들의 색깔이 달라지고 딱따구리들이 나무 쪼는 소리가 많아지는 봄. 그것은 나무껍질이나 썩은 나무 속에 벌레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뜻이다(「새들」). ‘헌옷을 벗고 내 몸에 맞는 새 옷을 입은 듯 삶이 홀가분해진’(「무채색」) 기분으로 ‘실가지 끝에 맺혀 추운 겨울을 지내온 꽃눈과 잎눈’(「새」)이 기지개를 켜는 봄. 키도 작고 꽃은 더 작은 냉이에게 다가가 무릎 꿇고 한쪽 얼굴을 땅에 대고 ‘우리 마을의 예쁜 것’(「우리 마을에 예쁜 것들은 다 나한테 들킨다」)을 발견하는 시인에게서 천진한 연두를 본다. 동시와 시가 도합 11편, 아포리즘 4편, 나머지는 일기로 구성했다. 김용택의 일기는 어깨에 힘을 주지 않은 자연으로 그 자체가 시이거나 아포리즘이다. 일기와 시의 구분이 없는 시인의 일상이어서 귀하다. 이러하니 시의적절이랄까.
노동은 몸을 써서 하는 일, 허리와 팔과 다리를 무리하고 가혹하게 쓰는 일이다. 옛날 어른들이 내 몸이 쇠였다면 진즉 다 닳아져버렸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쇠보다 더 강한 것이 사람의 몸뚱이다(「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자연 에서 사신 시인의 어머니는 다닥다닥 달린 콩을 따면서 말씀하셨다. 콩 한 개를 심어 이렇게 콩이 다닥다닥 열렸는데도 사람들이 이렇게 못산다고 아우성이라고. 자연과 내가 한몸이고 하나의 핏줄로 이어졌음을 자각하면 그것이 상생임을 시인은 알고 있다(「나는 저 앞산을 끝내 모르리라」).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도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의 집’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그러나 사람보다 큰 책은 없다」).
‘가난과 약함과 슬픔에 한없이 고개 숙여지고 약해지는 나를 본 날’ ‘마음과 마음이 닿아 사랑을 불러내고 사랑이 닿아 눈물이 오고 눈물이 기쁨이 된다’(「기분 좋은 맛을 우려내준 슬픔」). 그에게 시는 반짝이지 않고 지긋한 것. 너무 깊고 깊은 데 있어 손은 닿지 않고 영혼만이 길어올 수 있다(「시인에게 죽은 것은 하나도 없다」). 자기처럼 보이지 않는 작은 비가 와야 받아드는 이끼꽃. 자기 힘으로 들고 있을 수 있을 만한 크기와 무게를 받아 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연은 휘어지지 않을 고통의 특이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할머니가 꽃을 혼낸 날」). ‘얼마나 작은 일로 우리는 생사를 건 씨름을 하는가’(「첫발」) ‘겨울날 아침 펑펑 내리는 눈송이만큼 중요하지도 않는 것으로 싸우고 죽는 우리’(「봄 물소리처럼 가난하게 서보자」)에게 이 한 권의 봄은 선연한 슬픔으로 아름답다. 환히 웃으며 경쾌히 뛰어가는 모습을 담은 표지 사진은 장우철 작가의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논산〉(2015)이다. “문학을 왜 하는가? 살아야지. 죽어도 괜찮다는 하루를 나는 그냥 살 뿐이다. 내게 문학은 최고의 삶을 사는 일이다.”(153쪽)

바람에 대해서
아침 바람과 저녁 바람과
때늦은 봄바람의 꽃샘추위에 대해서
몰려다니는 여름 구름에 대해서
햇살에 대해서
비와 눈과 서리와 이슬에 대해서
느티나무 단풍과 팽나무 새싹과
앵두나무 우물가에 앵두 같은 입술에 대해서
봄맞이, 냉이, 광대살이, 씀바귀,
개불알꽃들에 대해서
가을 노란 산국에 대해서
산수국꽃에 앉은 부전나비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기억하고
그 꽃들이 피고 지는 날에 대해서
그 유일무이했던 날들에 대해서
그런 것들로 사랑을 예감하고
사랑을 나누던
풀밭에 바람을 잡고
이별을 통보하고
앉아 울고
금이 간 두 손을 잡고
울고
사랑은 가고
그 사랑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전문
저자

김용택

저자:김용택
전북임실의진메마을에서나고자라지금도살고있다.초등학교교사였다.그리고여전히시인이다.시집『나비가숨은어린나무』『모두가첫날처럼』『그때가배고프지않은지금이었으면』등이있다.
수상:1997년소월시문학상,1986년김수영문학상

목차


작가의말핵심의전율7

3월1일일기한봄13
3월2일일기팥15
3월3일일기삼짇날19
3월4일일기새23
3월5일일기무채색27
3월6일동시학교31
3월7일아포리즘봄물소리처럼가난하게서보자33
3월8일일기베토벤과슈베르트의피아노41
3월9일일기기분좋은맛을우려내준슬픔45
3월10일일기새들49
3월11일동시아무렇지않게55
3월12일일기첫발59
3월13일동시물고기살려!63
3월14일시사랑에대하여65
3월15일아포리즘시인에게죽은것은하나도없다69
3월16일일기이게맞는지모르겠다79
3월17일동시우리마을에예쁜것들은다나한테들킨다83
3월18일일기할머니가꽃을혼낸날87
3월19일동시까치눈이캄캄해요97
3월20일일기춘분101
3월21일시시와제목사이105
3월22일아포리즘그러나사람보다큰책은없다109
3월23일시사랑말고는뛰지말자117
3월24일동시이슬과별121
3월25일일기모든자연은지금자라고있다125
3월26일일기이작은집이나의시다133
3월27일시그때137
3월28일일기걱정이야141
3월29일아포리즘나는저앞산을끝내모르리라145
3월30일동시미안해요155
3월31일일기돌이돌의얼굴을찾았을때157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책소개

2025년난다의시의적절,그세번째이야기!
시인김용택이매일매일그러모은
3월의,3월에의한,3월을위한
단한권의읽을거리

열두시인의열두달릴레이.2024년매월매일하나의이름으로,365가지서로다른이야기로꼭채워온시의적절시리즈2025년3월의주인공은김용택시인이다.1월이가고2월이가고이제우리나이일흔여덟살의3월로돌아온김용택.전북임실의진메마을에서나고자라지금도그곳에살며섬진강을걷는그다.시인은꽃들을따라다니며작은생명들곁에엎드려시를쓴다.죽은가지는부러뜨리고마른풀은쓰러뜨리는차고힘찬바람이부는3월.잡목숲실가지들의색깔이달라지고딱따구리들이나무쪼는소리가많아지는봄.그것은나무껍질이나썩은나무속에벌레들의움직임이달라졌다는뜻이다(「새들」).‘헌옷을벗고내몸에맞는새옷을입은듯삶이홀가분해진’(「무채색」)기분으로‘실가지끝에맺혀추운겨울을지내온꽃눈과잎눈’(「새」)이기지개를켜는봄.키도작고꽃은더작은냉이에게다가가무릎꿇고한쪽얼굴을땅에대고‘우리마을의예쁜것’(「우리마을에예쁜것들은다나한테들킨다」)을발견하는시인에게서천진한연두를본다.동시와시가도합11편,아포리즘4편,나머지는일기로구성했다.김용택의일기는어깨에힘을주지않은자연으로그자체가시이거나아포리즘이다.일기와시의구분이없는시인의일상이어서귀하다.이러하니시의적절이랄까.
노동은몸을써서하는일,허리와팔과다리를무리하고가혹하게쓰는일이다.옛날어른들이내몸이쇠였다면진즉다닳아져버렸을것이라는말을많이했다.쇠보다더강한것이사람의몸뚱이다(「이게맞는지모르겠다」).오랫동안농사를지으며평생을자연에서사신시인의어머니는다닥다닥달린콩을따면서말씀하셨다.콩한개를심어이렇게콩이다닥다닥열렸는데도사람들이이렇게못산다고아우성이라고.자연과내가한몸이고하나의핏줄로이어졌음을자각하면그것이상생임을시인은알고있다(「나는저앞산을끝내모르리라」).아무리좋은집을지어도그집에사는사람들의마음에세상을사랑하는‘마음의집’이없으면무슨소용일까(「그러나사람보다큰책은없다」).
‘가난과약함과슬픔에한없이고개숙여지고약해지는나를본날’‘마음과마음이닿아사랑을불러내고사랑이닿아눈물이오고눈물이기쁨이된다’(「기분좋은맛을우려내준슬픔」).그에게시는반짝이지않고지긋한것.너무깊고깊은데있어손은닿지않고영혼만이길어올수있다(「시인에게죽은것은하나도없다」).자기처럼보이지않는작은비가와야받아드는이끼꽃.자기힘으로들고있을수있을만한크기와무게를받아달고있는모습을보며자연은휘어지지않을고통의특이점을알고있다는사실을배운다(「할머니가꽃을혼낸날」).‘얼마나작은일로우리는생사를건씨름을하는가’(「첫발」)‘겨울날아침펑펑내리는눈송이만큼중요하지도않는것으로싸우고죽는우리’(「봄물소리처럼가난하게서보자」)에게이한권의봄은선연한슬픔으로아름답다.환히웃으며경쾌히뛰어가는모습을담은표지사진은장우철작가의<할아버지산소가는길,논산>(2015)이다.“문학을왜하는가?살아야지.죽어도괜찮다는하루를나는그냥살뿐이다.내게문학은최고의삶을사는일이다.”(153쪽)

바람에대해서
아침바람과저녁바람과
때늦은봄바람의꽃샘추위에대해서
몰려다니는여름구름에대해서
햇살에대해서
비와눈과서리와이슬에대해서
느티나무단풍과팽나무새싹과
앵두나무우물가에앵두같은입술에대해서
봄맞이,냉이,광대살이,씀바귀,
개불알꽃들에대해서
가을노란산국에대해서
산수국꽃에앉은부전나비에대해서
우리가생각하고말하고기억하고
그꽃들이피고지는날에대해서
그유일무이했던날들에대해서
그런것들로사랑을예감하고
사랑을나누던
풀밭에바람을잡고
이별을통보하고
앉아울고
금이간두손을잡고
울고
사랑은가고
그사랑에대하여

─「사랑에대하여」전문